특강 2020년 신년2강(사43:1-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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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년 제 2 강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우리는 2020년 새 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하는 성실한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과연 누구신가?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그 백성을 통해서 무슨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는가 깨닫고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은 이사야의 시대를 가리킨 듯 하나 앞으로 200년 뒤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그런 미래의 일이 ‘이제’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와 같은 만큼 방금 될 일처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서 일하시기에 모든 것이 늘 현재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 땅에 사는 자체가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정죄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회생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돌보고 책임져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 때 불안,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목자이십니다. 4a을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보배롭게 여기십니다. 그들이 비록 바벨론의 포로로 있지만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마음에 파고드는 여러 가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바사 왕 고레스는 제국을 꿈꾸며 애굽과 애굽의 남쪽에 있는 구스와 스바를 점령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병력을 집결할 주둔지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애굽과 주변국을 침략할 거점지역으로는 최적지였습니다. 때문에 고레스는 칙령을 통해 이스라엘 포로들을 갑자기 귀환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보내 그들을 해방시키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물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불같은 사막을 건널 때에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환란 가운데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죄를 짓고 실수를 하고 연약해도 사랑하고 보호하고 감당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 된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감당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동서남북에서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동쪽은 바벨론 지역, 서쪽은 지중해 연안, 남방은 애굽, 북방은 앗수르 지역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그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불러 모으십니다(7). 그들은 돌아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새해에 다섯 명의 형제들이 군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들이 군에 선교사로 나아가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2020 학번들을 강원도에서, 경상도에서, 경기도에서, 전라도에서 프랑스에서 우즈벡에서 영국에서 보내주시고 함께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그 삶은 진정 복되고 의미가 있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합니까?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많은 일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않고, 귀가 열려 있을 지라도 듣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영적으로 둔하고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열방이 모이고 민족들이 회집하였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법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 즉 이방신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과 미래를 예언해 줄 수 없습니다. 9절에서 ‘이 일’은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포로들의 해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때가 되면 그 예언을 성취하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을 미리 알리시고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시며 때가 되면 그대로 성취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런 일들을 이방 신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듣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전하는 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상황도 알려 주셨고 앞으로 해방될 년수도 알려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까지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일에 대한 목격자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영향을 받았고, 바벨론에서 마르둑과 이슈타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혼합주의 신앙을 가지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종교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절대적인 것을 믿지 않고 다양성, 다원주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어라 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만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유일한 주권자이시오, 태초부터 자존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붙들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떤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바벨론에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바벨론을 쳐서 정복한 자는 메대 – 페르시아 연합군을 이끌었던 고레스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을 보낸 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해서 550년 메대를 멸망시키고, 얼마 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리디아를 정복했고, 여러 소국들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바벨론 진격에 앞서 이란 고원 전역과 북서인도까지 이르는 영토를 확보한 고레스는 마침내 BC 539년에 바벨론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때 바벨론 내부의 여러 갈등과 분열들로 인해, 역사의 기록들은 그가 무혈입성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군사를 이끌고 바벨론에 쳐들어올 때 바벨론 귀족들은 자기들이 연락하며 즐기던 그 배를 타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도망하기에 바쁘게 될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성은 수로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그들의 왕이십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능력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셨습니다. 또한 바로의 마음을 격동시키셔서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바다 속에서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전 일은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받고 현실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꾸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잘 했던 것, 과거에 힘들었던 것,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빌 3:13)”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이 좋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방법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데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니 그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제 그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그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그 백성들을 마시게 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지었는데 그를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새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새 일이란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함으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낡은 사람이 새 사람이 되고, 죽어 가는 사람이 다시 새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불안한 마음을 평화로 채워주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질 때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내 마음이 새로워질 때 관계가 회복됩니다. 우리도 죄 때문에 원치 않게 미움에 포로가 되고 음란에 사로잡히고, 시기심과 두려움, 절망과 열등감에 포로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런 죄의 세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둘째, 새 일은 성령 충만함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말씀은 순조롭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돌아오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새로운 산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히10:20). 광야 같이 메마른 인생길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하고 감격적인 일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하늘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에 이루어집니다.
셋째, 새 일이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사람이 비전이 없기 때문에 자꾸 과거 일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크고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크고 위대한 일을 시도해야 합니다(윌리엄 캐리).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회개하는 마음에 성령을 부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을 주십니다. 20절에서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 같은 이방인들이, 또 비천한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며 찬송하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 학생들이 태국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이들이 한 달 동안 태국어 기본 회화 배우기, 태국 문화와 종교 연구, 전도 훈련, 합심 기도 등을 통해서 선교준비를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세계를 마음에 품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2020학번 양들이 들어옵니다. 죄인들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지난 33년 동안 동교센터를 통해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성서한국과 세계 선교의 일꾼이 되어서 세계 각처에서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오늘날 이 시대 가운데서도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학생 연합 모임이 더욱 발전하여 각 캠퍼스에서 양을 치고 제자 양성하는 목자들이요, 선교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이사야 43:1-21
요절 |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우리는 2020년 새 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하는 성실한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과연 누구신가?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그 백성을 통해서 무슨 일을 행하기를 원하시는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가, 그리고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이루기를 원하시는가 깨닫고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은 이사야의 시대를 가리킨 듯 하나 앞으로 200년 뒤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그런 미래의 일이 ‘이제’ 일어날 것으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와 같은 만큼 방금 될 일처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서 일하시기에 모든 것이 늘 현재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 땅에 사는 자체가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정죄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언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회생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할 때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돌보고 책임져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 때 불안,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목자이십니다. 4a을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여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보배롭게 여기십니다. 그들이 비록 바벨론의 포로로 있지만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마음에 파고드는 여러 가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바사 왕 고레스는 제국을 꿈꾸며 애굽과 애굽의 남쪽에 있는 구스와 스바를 점령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병력을 집결할 주둔지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형적으로 애굽과 주변국을 침략할 거점지역으로는 최적지였습니다. 때문에 고레스는 칙령을 통해 이스라엘 포로들을 갑자기 귀환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보내 그들을 해방시키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물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불같은 사막을 건널 때에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환란 가운데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죄를 짓고 실수를 하고 연약해도 사랑하고 보호하고 감당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 된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감당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동서남북에서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동쪽은 바벨론 지역, 서쪽은 지중해 연안, 남방은 애굽, 북방은 앗수르 지역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그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불러 모으십니다(7). 그들은 돌아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새해에 다섯 명의 형제들이 군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들이 군에 선교사로 나아가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2020 학번들을 강원도에서, 경상도에서, 경기도에서, 전라도에서 프랑스에서 우즈벡에서 영국에서 보내주시고 함께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그 삶은 진정 복되고 의미가 있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어떠합니까?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많은 일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않고, 귀가 열려 있을 지라도 듣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그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영적으로 둔하고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열방이 모이고 민족들이 회집하였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법정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 즉 이방신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과 미래를 예언해 줄 수 없습니다. 9절에서 ‘이 일’은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에 의한 포로들의 해방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래의 일을 예언하시고 때가 되면 그 예언을 성취하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을 미리 알리시고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시며 때가 되면 그대로 성취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런 일들을 이방 신들은 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듣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전하는 자가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상황도 알려 주셨고 앞으로 해방될 년수도 알려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까지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일에 대한 목격자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영향을 받았고, 바벨론에서 마르둑과 이슈타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혼합주의 신앙을 가지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종교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절대적인 것을 믿지 않고 다양성, 다원주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어라 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은 여호와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만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유일한 주권자이시오, 태초부터 자존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붙들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떤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바벨론에 어떤 일을 일으키십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바벨론을 쳐서 정복한 자는 메대 – 페르시아 연합군을 이끌었던 고레스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을 보낸 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여러 부족들을 규합해서 550년 메대를 멸망시키고, 얼마 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리디아를 정복했고, 여러 소국들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바벨론 진격에 앞서 이란 고원 전역과 북서인도까지 이르는 영토를 확보한 고레스는 마침내 BC 539년에 바벨론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때 바벨론 내부의 여러 갈등과 분열들로 인해, 역사의 기록들은 그가 무혈입성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레스가 군사를 이끌고 바벨론에 쳐들어올 때 바벨론 귀족들은 자기들이 연락하며 즐기던 그 배를 타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도망하기에 바쁘게 될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성은 수로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그들의 왕이십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능력의 하나님이요,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셨습니다. 또한 바로의 마음을 격동시키셔서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바다 속에서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전 일은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받고 현실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꾸 뒤를 돌아보고 과거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과거에 잘 했던 것, 과거에 힘들었던 것,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빌 3:13)”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이 좋았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방법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데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니 그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이제 그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그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그 백성들을 마시게 할 것입니다. 이 백성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지었는데 그를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새 일은 무엇입니까?
첫째, 새 일이란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함으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낡은 사람이 새 사람이 되고, 죽어 가는 사람이 다시 새 생명을 얻게 하십니다. 불안한 마음을 평화로 채워주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질 때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내 마음이 새로워질 때 관계가 회복됩니다. 우리도 죄 때문에 원치 않게 미움에 포로가 되고 음란에 사로잡히고, 시기심과 두려움, 절망과 열등감에 포로가 되어 비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런 죄의 세력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둘째, 새 일은 성령 충만함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말씀은 순조롭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돌아오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 사역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죄의 노예가 되어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새로운 산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히10:20). 광야 같이 메마른 인생길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곳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하고 감격적인 일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생수를 마시고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 하늘나라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에 이루어집니다.
셋째, 새 일이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사람이 비전이 없기 때문에 자꾸 과거 일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크고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크고 위대한 일을 시도해야 합니다(윌리엄 캐리).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회개하는 마음에 성령을 부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을 주십니다. 20절에서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 같은 이방인들이, 또 비천한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경배하며 찬송하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 학생들이 태국 단기 선교를 다녀오고자 합니다. 이들이 한 달 동안 태국어 기본 회화 배우기, 태국 문화와 종교 연구, 전도 훈련, 합심 기도 등을 통해서 선교준비를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이들이 세계를 마음에 품고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2020학번 양들이 들어옵니다. 죄인들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지난 33년 동안 동교센터를 통해서 말씀을 전파하시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성서한국과 세계 선교의 일꾼이 되어서 세계 각처에서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오늘날 이 시대 가운데서도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학생 연합 모임이 더욱 발전하여 각 캠퍼스에서 양을 치고 제자 양성하는 목자들이요, 선교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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