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요한복음 2021년요12강(8:21-59)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4회 작성일 21-06-13 23:08

본문

2021년 요한복음 제 12 강
말씀 | 요한복음 8:21-59     
요절 | 요한복음 8:31,32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홍익대학교의 교훈은 홍익인간입니다. 연세대학교의 교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입니다. 또 서울대학교의 교훈은 “진리는 나의 빛”입니다. 본래 대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장소였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자유를 누리며 인류에 공헌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키우는게 대학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알고 자유를 누리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31). 31,3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두 절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하게 되는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31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되는 첫 번째 단계를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예수님의 인격을 만나게 되고 그를 닮아가게 됩니다. 말씀대로 살다보면 내가 작은 예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입니다. 제자는 배우는 자, 훈련을 받는 사람, 전수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사역과 성품을 배우고 전수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자이며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면서 그 말씀 안에 거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은 매일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무엇보다도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그 사람의 양식과 힘이 되고 말씀이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고 말씀이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관과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거하는 것은 진리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그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암송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까요? 그들이 율법주의자, 형식주의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지켰지 내면화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33)?”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고 깨우쳐 주십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불법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불법은 헬라어로 아노미아인데 무법이란 뜻입니다. 죄인은 무법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법자란 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법인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4:17은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선한 일’은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자신의 미래가 자신에게 달린 것처럼 자기를 믿고 살아갑니다. 로마서 14:23b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문제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는 우리의 태도, 자신이 하나님 노릇하려는 것이 죄의 핵심입니다.

  37절을 보십시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유대인들은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을 곳이 없었을까요? 권위 있는 예수님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들의 교만과 완악함 때문입니다.

  또한 43절을 보십시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새번역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가 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을까요? 이것은 그들의 소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리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말을 들었습니다. 44,45절을 봅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참 제자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을 구주요 주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소속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그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습니다(요 5:24). 마귀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갔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거듭나게 되고 소속이 바뀌게 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거할 때 참 제자가 됩니다.

  둘째, 진리를 알게 됩니다(32). 32절을 다시 보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로마총독인 빌라도 앞에 섰을 때 그가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요18:37).”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아쉽게도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정말 진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많이 쓰는 말이지만 혼돈하고 왜곡하는 말 중에 하나가 사실과 진실 그리고 진리라는 말입니다. 사실(fact)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말하고, 진실(truth)은 거짓이 없는 사실입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절대적이고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참된 이치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진리는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진리는 보배처럼 가장 귀한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진리를 안다면 오늘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공원 의자에 앉아서 고민했습니다. 공원 관리인이 문을 닫으려고 말했습니다. “왜 돌아가지 않고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내가 어디서 온 것을 알았으면 갔지. 온 곳을 모르는데 어디로 간단 말이오.” 사람은 그 누구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왜 예수님이 진리이십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이 세상의 순례길을 마치고 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 영원한 생명을 즐기며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10분만이라도 더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27은 말씀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새번역)” 그러므로 세상의 어느 것도 진리일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진리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다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셋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32-47). 32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는 감추어진 것을 밝히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 ‘실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진리는 ‘가짜’, ‘그림자’와 대칭되는 말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참된 것, 실체를 안다는 것입니다. 참된 것, 실체를 알게 된다면 그 참된 것이 자유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면 자유하게 됩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래서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집니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자유를 추구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자유를 주시면서 ‘모든 것을 다 하되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자유는 선택의 자유이고 질서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무엇이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원칙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과 행하신 일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될 때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거짓된 삶을 살지 않고 참된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에서 아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에게 타락 이전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18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포로 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죄의 포로 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탐욕과 정욕과 돈의 노예가 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염려의 노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짐, 율법의 짐에 눌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으로서 우리가 죄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도록 값을 다 치루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진리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대가로 얻은 값비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 숨통이 트이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돈의 의지하면 돈의 종노릇을 하기 쉽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내 맘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그것은 무법으로 치닫게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 죽음의 노예로부터 자유롭게 해줍니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자유는 단지 어떤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것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19)” 바울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종으로 오신 것을 닮고자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가장 값지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가난에도 처할 줄 알고 부에도 처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 안에서 풍성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영적 훈련은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름방학 동안 영적 훈련을 잘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체험하고 자유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7건 1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