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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2015년 신년 3강(시119:129-148)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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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15-01-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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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 말씀 제 3 강 
말씀 | 시편 119:129-152
요절 | 시편 119:130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 119편은 다윗 또는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구약 시편 가운데 가장 긴 장입니다. 이 시는 2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연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글자로 시작합니다. 시편 119장의 중심 주제는 “오 내가 얼마나 당신의 율법을 사랑하는지요?”(시119:97)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말씀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열어 기이한 빛을 찬란하게 비추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주의 증거들은 놀랍습니다(129-136). 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비추는 빛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29절을 보십시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시인은 주의 증거들은 놀랍다고 말합니다. 저는 처음 마가복음 말씀을 공부할 때 예수님이 살아서 내가 처한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시고 가장 적절하게 문제에 대한 처방과 방향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을 인해 감격하였습니다. 전도서 말씀을 읽으면서 인생을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이 꿰뚫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말씀을 공부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믿음에 대해서 깨달으면서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놀랍거나 멋진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무엇도 신비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진부하고 예상 가능하고 단조롭습니다. 세상 일이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술 문명의 발달입니다. 기술 문명은 모든 현실이 설명 가능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이감을 상실하게 된 것은 기술 문명 탓이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진정으로 경이로우실 뿐 아니라 모든 경이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경이로운 것들이 하나님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기묘자이십니다(사9:6). 그의 말씀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그 속에 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선포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주의 말씀은 깨달음을 줍니다.

  130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열면’(unfolding)이라는 말은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이 일찍이 천막생활을 하던 유목민 시절에 히브리어가 형성되었습니다. 천막의 문은 가죽 덮개가 고작이었습니다. 따라서 문을 걷으면(열면) 빛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안에 있는 사물들을 비추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라는  시편 기자의 말은 그 상황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갈 길을 밝혀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빛을 비추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나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연다는 것은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 때 성령께서는 말씀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자기가 교만한 죄인을 줄 모르는 사람을 깨닫게 하여 회개로 인도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말씀이 우리의 문제와 시련, 다른 사람들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올바른 행위, 올바른 목적, 바른 우선 순위 등 우리 삶 전반에 빛을 비추어 줍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의 광채에 비췸을 받고 나서야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 뜨거운 피의 은혜를 체험하고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우리에게 창세기와 복음서, 로마서, 사도행전이 열렸을 때 예수님을 배우며 세계 선교를 위해 인생을 바치는 청년들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말씀의 빛을 보고 말씀의 빛을 비추는 빛의 사자들입니다.

  말씀의 문이 늘 그렇게 열려 있다면 감격의 연속일 터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때로는 아주 오랜 세월 문이 닫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사사 시대에 말씀이 닫혔다가 사무엘 때에 이르러 말씀의 등불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세례 요한이 등장할 때까지 400년 동안 말씀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때는 어두움이 찾아왔습니다. 중세시대에도 말씀이 닫혀 있다가 칼뱅과 루터, 쟌 웨슬레에 의해서 말씀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은 방자하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잠29:18). 그러니까 말씀이 열리느냐 말씀이 닫히느냐에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말씀을 향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는 주의 계명들을 사모했기 때문에 입을 열고 헐떡였습니다. 13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사모한다는 것은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문제 가운데 헤맬 때 주의 명령을 사모합니다. 사무엘상 23장에 보면 사람들이 방랑 생활을 하던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려운데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다윗이 가서 크게 이기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군사를 모으고 잡으러 왔습니다. 다윗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가서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다시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다윗은 그일라는 떠나 사울을 피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헐떡임 같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이 피난처를 구하듯이, “말씀이 아니면 죽습니다. 지금 주시지 않으면 전 죽습니다.” 이런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을 향해 입을 열고 그는 헐떡였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도우심과 방향을 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급하다고 스스로 문을 열려고 하거나 문을 연 것처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조급증 때문에 우리가 죄악에 휘둘립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말씀이 열리길 사모한다면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어떻게 피 말리는 시간들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까? 132절을 봅시다.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수단은 말씀과 성만찬입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이다(눅18:13)”라고 부르짖었던 세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하고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품을 사모하고 그의 성품을 닮아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133,134절을 보십시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여기서 ‘발걸음’이란 ‘한 걸음’이란 뜻입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지질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말씀을 따라 살 때 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것이 죄를 범치 않는 길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는 장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 때에 사람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사람들에게 박해를 받을 일이 없지만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자신들과 구별되게 산다고 무시하고, 불신자들이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기에 핍박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박해가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기도합니다.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134).”

  시인이 말씀을 사모하며 구한 것은 어디까지 입니까? 시인은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135)”라고 간구합니다.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요일1:1). 그와 같이 우리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깊은 사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이런 사귐을 통해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입니다. 말씀이 열릴 때 가장 놀라운 일은 이렇게 주님의 얼굴을 보며 배우며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체험한 시인은 박해자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봅니까? 13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고 지키지 않는 신자들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며 언쟁을 일삼기 쉽습니다. 때로는 물리적인 충돌을 빚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주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릅니다. 죄인들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눅19:41).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으로 인해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꼈습니다(롬9:1-4).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거센 논쟁이나 분노보다는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한 사모님이 양들의 죄문제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며 몸이 말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양들에 대한 상한 마음이 그의 몸을 상하게 까지 하였습니다. 칼빈은 눈물을 흘리더라도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을 먼저 보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면 자기 의가 마음에 싹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해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야 마땅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기보다 안목의 정욕과 세상 소식, 뉴스에 목말라 하였던 천박한 저의 죄로 인해서 회개합니다. 제가 역사에 따라 울고 웃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말씀을 기다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일에 힘쓰며 눈물로 간구하는 데서 자라기를 원합니다. 또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말씀을 배워도 변화가 없고, 성장이 없는 양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께 주님의 위로가 늘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주의 판단은 옳습니다(137-144). 시편 119편의 18번째 연의 주제는 의입니다. 137,13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옳습니다. 여호와께서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옳습니다. 말은 존재의 집이라고 하이덱거는 말했습니다. 잠언에서는 그 사람의 말이 어떠하면 그 사람도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늘 한결같이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전심으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지극히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증거들은 지극히 성실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여전하십니다. 그는 일관성을 잃지 않으십니다. 그는 신실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하루에 5번 이상 변화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감정, 때로는 우울한 감정에 속기 쉽습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체험한 바로는 좋은 감정에 잘 속아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증되고 입증된 진리입니다. 139-141절을 보십시오.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순수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순수하다는 말씀은 영어로는 ‘Throughly tested’라고 했습니다. 금속이 철저하게 정련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풀무 불에 일곱 번 연단된 것처럼 순수합니다. 불순물들이 철저하게 제거된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놀라운 깨달음을 줍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삶의 방향을 인도하고, 죄를 극복하게 하고, 악인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며, 하나님을 계시하고, 참된 의를 가르칠 뿐 아니라 성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약속을 시험한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실험하였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기도했을 때 일생 5만번의 기도 응답을 받고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그의 삶을 통해서 증거했습니다.

  141절을 보십시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시인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목자요 선교사인데 열매가 없어서 목자 같지도 않고 선교사 같지도 않아서 무시를 당합니다. 너무나 자신이 초라하고 작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법도 즉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롬1:5)”, “무서워 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5:10)”,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그가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또는 원수들에게 멸시를 당하지만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합니다. 자신이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면 모든 것을 버리기 쉽습니다. 내가 멸시를 당하면 신앙 생활도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멸시를 당하는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의 기쁨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의 율법은 진리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영원합니다. 

  143절을 보십시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유럽의 선교사님들이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서 겪는 환난과 우환은 매우 큽니다. 어학 정복, 물질의 압박, 동역과 제자 양성을 하면서 고민과 스트레스가 선교사님들을 사로잡습니다. 요즘 한국의 몇몇 캠퍼스에서는 복음을 전하면 학교 당국에서 잡아갑니다. 학생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신고를 하여 우리를 위축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캠퍼스 현실이 어려운데, 있던 동역자들이 떠나고 제자들이 떠나 갈 때 잠을 못 이룹니다. 자녀 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빛이 비추일 때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우환을 이기고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11월 9일 요회 모임에서 영어로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김다윗 목자님으로부터 유럽 지부장 수양회에 가서 영어로 메시지를 전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자신의 영어 실력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순종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치통이 생기고, 결국 임플란트를 빼야 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면서 말씀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오묘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아주 과학적으로 씌여졌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담긴 깊은 뜻을 알아갈수록 저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저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럽 지부장 수양회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환난과 우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144절을 보십시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주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셔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죽을 맛입니다. 십계명은 우리를 살게 하는 법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합니다. 말씀을 깨달을 때 우리는 삶에 활력을 얻습니다. 
 
  셋째, 주님의 말씀은 기도의 근거입니다(145-152). 시인의 기도 생활이 어떠하며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 145,14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나서 기도해야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바 구원의 은혜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147,148절을 보십시오.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인이 날이 밝기 전에 깨어 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기 위함입니다. 읊조린다는 것은 그르렁그르렁 거리다, 탄식하듯이, 뱃속에서 우러 나오는 소리로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얻고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의 인자하심을 따라 기도를 들으십니다. 주님은 원수들이 가까이 온 것보다 더 가까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주신 명령들이 진리라는 것을 드러냅니다(151). 그때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 알았나이다.” 주님께서 우리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을 열어 주시어 찬란한 빛을 받고 전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환난과 우환 속에서 말씀을 즐거워하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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