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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2014년 신년 1강(렘3:1-4:4) 묵은 땅을 갈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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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3-12-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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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년 1 강 
말씀 | 예레미야 3:1-4:4
요절 | 예레미야 4:3

묵은 땅을 갈아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오늘 말씀은 죄로 인해서 묵은 땅과 같이 못쓰게 되어 버린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책망의 말씀이요, 소망의 말씀입니다. 농사를 해 보신 분들은 씨를 뿌리기 전에 땅을 갈아서 좋은 밭으로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절대로 가시떨기와 잡초로 가득한 밭에 그냥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묵은 땅을 갈아엎고 좋은 밭으로 준비해야만 씨가 잘 심기고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 해 한 해의 인생 농사를 시작하면서 연말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어떤 준비와 투쟁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부부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결혼 한 후에 아내의 외도로 그를 버리므로, 그녀가 타인의 아내가 된 이후에 남편이 그를 다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많은 무리 즉 많은 애인들과 행음하고서도 남편되신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행음을 하였다는 것은 우상 숭배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창녀가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팔 듯이 이 우상 저 우상에게 경배하였습니다. 그 결과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 흉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바알 신이 비를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도록 하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이렇게 그들의 우상숭배를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그 의미를 알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창녀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란과 행악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스러운 자들이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게 되자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이 말만 들으면 그들의 마음이 무척 가난해져서 지난 시절 보호자이셨던 여호와께 이제 그만 노여움을 푸시라고 간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의 아버지여’라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런 부르짖음은 말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실제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5).” 말만 잘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살다가 힘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도움을 청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마음으로부터 회개를 하지 못하고 몸만 왔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용하고 자기 욕심대로 다 해버렸습니다.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그가 이 모든 일들을 행한 후에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게로 돌아오리라 하였으나 아직도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느니라(6,7).” 배역하다는 faithless로서 신의를 지키지 않다, 불성실하다, 부정하다는 뜻입니다. 남편에게 성실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부정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배역을 해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수많은 애인과 간음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의 음행 후에 지겹게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그가 돌아오리라’는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7a). 여호와께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을 보고 그를 내쫓고 이혼서까지 주셨습니다(8a). 이는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리킵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왕하17:1-6).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잘 배워야 합니다. 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게 됩니다. 유다는 이스라엘이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듯 하였습니다. 이것은 B.C. 622년 요시야 왕의 개혁을 말합니다. 그 때 요시야는 바알, 아세라, 아스다롯, 그모스, 밀곰을 섬기던 산당들을 헐고 각종 석상들과 아세라 목상 등을 불태우고 깨뜨렸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쫓아내고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런 개혁 조치로 인해 유다는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짓으로 할 뿐이었습니다(10). 이 말씀은 유다의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형식주의, 예전 중심의 예배, 겉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꾸며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거짓으로 돌아온 척만 하는지, 진심으로 돌아오는지 하나님은 면밀히 지켜보십니다.

  예레미야는 북이스라엘을 향해서,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더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선포합니다. 유다가 얼마나 죄악 되었으면 이런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배역한 이스라엘은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가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워 진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 망해버린 아내를 향하여 다시 돌아오라고 합니다. 다른 남자와 음행한 아내에게 ‘돌아오라. 내가 당신의 남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을 징계하시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는 의미는 그들에게 아직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요, 어찌하든지 회복하고 축복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들이 죄를 자복하라고 하십니다. 자복하라는 말씀은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이는 ‘알다, 깨닫다,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피상적으로 알아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근본문제를 알아야합니다. 이를 알기까지 집중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아하! 무릎을 치면서 깨달을 때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복하고 고백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고치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십니다. 그들 중에서 소수이지만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영접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주십니다. 다윗, 느헤미야, 에스라, 스룹바벨과 같은 훌륭한 목자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십니다. 그 목자들은 지식과 명철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육할 것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음으로 세상의 헛된 우상을 섬기며 행음합니다. 점점 엽기적이 되어 가고 괴상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로 믿고 섬길 때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해도 지식을 겸비한 사랑을 해야 사람을 올바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명철은 삶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말합니다. 양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디가 어떻게 병들었는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과 명철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에게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 때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언약궤가 여호와의 보좌 역할을 했지만 후에는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가 된다는 뜻입니다. 언약궤는 여호와의 임재를 보증하는 역할이었는데, 예루살렘에 여호와가 임재하시니 굳이 언약궤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또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모일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모이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음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그 때 모이는 백성 중에는 북이스라엘도 있습니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통일되어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하든지 자녀들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들 중에 아름다운 기업인 이 귀한 땅을 주십니다.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마치 아내가 그의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그들은 확실히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확실히 속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속아주셨습니다. 그들의 소리가 헐벗은 산 위에서 들린다는 것은 푸른 나무에서 우상을 숭배할 곳이 없어서 이제는 민둥산에서도 우상숭배를 하기 위해 모였음을 뜻합니다. 죄의 잔재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저 떼를 쓰고 애곡하고 간구하면 여호와께서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역한 자식들을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배역함을 고치고자 하십니다. 그들은 고백합니다. “예, 우리가 주께로 갑니다.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우리가 산언덕에서 떠들어대며 우상을 섬겼으나 헛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에게만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수치스러운 신들이 우리 조상들의 모든 소유, 곧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워 얼굴도 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어렸을 때부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2b-25).” 그들의 고백은 청산유수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4:1-4절을 보면 이 회개에는 진정성 즉 마음이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회개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돌아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섬기는 대상을 확실히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그만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여호와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정했으면 일편단심이 되어야 합니다. 좌우로 도리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우상들을버리고 하나님만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진실하고 정의롭게 공의롭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할 때 이스라엘이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들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복을 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 다른 나라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신자가 신자답게 살 때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다 같이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묵은 땅은 오랫동안 갈지 않은 땅을 말합니다. 갈지 않은 땅은 굳어지고 황폐해지고 거기에 온갖 잡초와 가시덤불이 납니다. 사람의 마음은 씨앗이 자라나는 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마음 밭이 부드럽고 좋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심겨지고 쑥쑥 잘 자랍니다. 그러나 마음 밭이 묵은 땅과 같으면 말씀이 심겨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할 때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나 어떤 종교적인 행위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유다도 처음에는 묵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몸만 돌아서면 안 됩니다. 말만 잘해서도 안 됩니다. 마음이 돌아서야 합니다. 마음 중에서도 그동안 갈지 않고 내버려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음란한 마음은 회개했지만 탐욕스런 마음은 회개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회개하지 않고 방치해둔 부분은 무엇이나 묵은 땅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죄인데 정작 나 자신은 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 알면서도 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죄로 인정하고자 할 때 죽을 것 같고 자기가 무너질 것 같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와 직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피하고 싶습니다. 그냥 덮어두고 문제의식 없이 살고 싶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이 무겁고 편하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눌리고 답답합니다. 기쁨도 없고 스피릿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 이상 진전이 없습니다. 열매는 많이 맺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적인 열매를 풍성히 맺으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예수님을 닮은 학생 제자들을 열매로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먼저 나의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또한 양들의 묵은 마음 밭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마음을 갈아엎는 것은 정말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입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나의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는 아픔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신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 없는 것이 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포기하고 환경을 탓하는 것도 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인내할 수 없습니다. 또 죄를 반복하면 그것이 오랫동안 굳어져서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이 화인 맞은 것처럼 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게으름이 그렇게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죄의 온상입니다. 게으름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도 있습니다. 배우기를 더디하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무엇을 시키면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더디게 하는 것도 죄입니다. 게으름은 그릇된 자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도 영적인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무지한 열심을 내는 것도 죄입니다. 부주의는 매사에 꼼꼼하게 살피며 성실하게 처리하는데 드는 육체와 마음의 노고를 아끼려는 게으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이기심, 거짓말, 사기, 교만, 음란 등의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지만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죄, 전도하지 않는 죄, 무지 가운데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합리화하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용할 양식과 주일 소감을 쓰면서 말씀의 쟁기로 우리의 죄들을 갈아엎는 투쟁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묵은 마음 밭이 갈아지고 좋은 마음이 되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소감쓰기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정말 행복한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죄와 직면하고 마음을 갈아엎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합니다. 말씀 앞에 나의 마음을 살피고 묵은 마음을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감을 쓰고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말씀의 쟁기로 묵은 마음을 갈아엎는 과정이 없다면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갈아엎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말씀이 부딪쳐 올 때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말씀이 부딪쳐 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굳은 마음을 갈아엎으라는 신호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부딪쳐 오는데도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마음을 갈아엎지 않으면 기회를 잃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을 갈아엎지 않을 때 시련을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때 미루지 말고 갈아엎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주실 때 갈아엎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면 비가 내린 후의 땅처럼 마음을 갈아엎기도 수월해집니다.
  4절을 보십시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할례를 행하되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마음 가죽을 베는 것은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또한 마음 가죽을 베라는 말씀은 나 여호와께 속하라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즉 마음 가죽을 베는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죄악을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마음 가죽을 벤 결과가 반드시 여호와께 속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2014년 새해에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한 가지를 버리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말씀의 쟁기, 기도의 쟁기로 딱딱한 마음 밭을 매일 매일 갈아엎어 말씀을 잘 받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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