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강 특강(딤후3:10-4:8)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김아브라함)
페이지 정보

본문
2014년 신년 메시지 (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3:10-4:8
요절: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그의 순교가 가까운 때에 쓴 마지막 서신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준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유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였습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진리와 영적 삶에 대해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프로그램이나 방법들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의 사역의 초점이 무엇인가에서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부르심을 새롭게 하도록 엄숙하고 긴박한 어조로 권고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오늘 말씀을 세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의 성격이 무엇인가? 둘째, 왜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셋째,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말씀의 성격
3장 14,1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본 서신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즉, 거짓 교사들과 하나님의 진리에 적대적인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14절은 ‘그러나 너는’ 으로 시작합니다. 거짓 교사와 불신자들과 대조적으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하라’는 말은 요한복음 15장의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디모데가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배운 성경 이 가르치는 복음신앙 안에 항상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가 배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사도 바울과, 그와 동역했던 바나바, 실라, 의사 누가,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을 목자로서 보살폈고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들의 믿음과 삶의 본을 계속하여 따르도록 권면합니다.
저는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신앙을 배운 것을 가장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이 없었다면 저의 온 생애를 세속적 삶과 가치 없는 일들에 허비했을 것입니다. 제가 배우고 확신한 것들은 나의 생애를 진정으로 의미있고 열매있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간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복음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이 무엇입니까?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양육받은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양육하는 많은 어머니들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는 성경을 ‘거룩한 기록들 (holy Scriptures)’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거룩하여 다른 모든 책들과 구분됩니다. 성경은 어떤 점에서 거룩합니까?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성경은 유일하게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들—곧,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데 대하여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세계 구원의 계획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 질문들에 대한 진리는 인간의 영혼에 큰 빛을 비춰주며 우리들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킵니다.
16a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창세기 2:7에 “하나님이 땅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생기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곧 생명입니다 (요6:63). 성경은 40명의 저자에 의해서 1,400여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각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각 단어와 문장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 안에 기록된 말씀들에게 무한한 권위와 신뢰를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관계성을 맺어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말씀을 통해서 소통하시고 관계성을 맺어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친구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대한 신앙과 순종을 통해 그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을 보였던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과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드와이트 무디 (Dwight L. Moody)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었고, 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의 말씀을 그대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말씀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대해서 기록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못 믿는다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내가 내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있는가 물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면 그는 나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친구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불신은 불행이 아니고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이 한 사람을 통해서 북미와 영국에 큰 영적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저는 한 UBF 선교사의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는 창세기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소감입니다; “창세기 1장은 세상에 주는 빛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왔으며 또 그로 인해 존재한다는 선포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되었는가 선포합니다. 제가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온전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창세기 성경공부는 저의 선교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이 2004년에 새 지부를 개척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잃은 자들과 상처받은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의 목자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영접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11장 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을 붙들고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한 고등학교 졸업생을 섬겼습니다. 그 젊은이는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을 영접하고 믿음의 조상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고 많은 젊은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제자들이 자라자 그 선교사는 그들이 한 말씀을 영접하기까지 소감을 깊이 쓰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배운 것에 기초해서 성경공부 노트를 준비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학생들을 초청하여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십 년 후인 현재 그의 지부에는 50명의 제자들과 일곱 가정이 있습니다. 많은 리더들은 주중 10내지 20팀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섬깁니다. 그들이 매주 리더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은혜를 나눌 때 그들은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은 한 선교사 가정을 통해서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와 같은 믿음으로 전파하며 가르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1)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4장 1,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이는 권고가 아니고 명령입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명합니다.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요 우주의 통치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보다도 더 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말씀 전파가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단지 성경 본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파한다는 것은 왕의 말씀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왕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파자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왕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9-20).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사역 동안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남은 사역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그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울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역사하셔서 제자들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구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전체적으로 구약성경은 오실 구주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죄인들이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엠뷸런스가 지나가면 모든 차들이 비켜주는데, 이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귀하고 긴급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람들의 생명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죄의 어두움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생겨납니다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하나님의 생기로부터 오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멸망하는 영혼들을 구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구약 모든 성경말씀에서 구주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3장 16,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가 어떻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에스라는 유대인 포로로서 그의 시대와 동족들에 대해서 깊은 문제의식과 상한 심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에스라 7:10에 말씀하기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가 먼저 한 일은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어두운 시대에 그의 백성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해서 죄와 타협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리털을 뽑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머리털을 뽑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말씀 전파와 가르침을 통해서 거국적인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깊은 성경공부는 제자들을 양육하는데 가장 유익합니다. 깊은 성경공부란 성경 본문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삶을 온전히 주장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서 많은 프로그램이나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들을 변화시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파하고 양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도록 기도하며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까?
(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4장 2절하반절을 보겠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서 ‘힘쓰라’는 단어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이 말은 ‘접근한다, 나타난다, 옆에 선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가 캠퍼스에서 양들을 초청하는 것을 잘 묘사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언제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순조로울 때든지 역경의 때든지, 편리한 때든지 불편한 때든지,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든지 안 하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느 때든 그의 역사에 쓰실 수 있습니다.
한 UBF지부의 목자들이 의대생들을 성경공부에 초청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낮 동안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너무 바빠서 말조차 하기를 피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전략을 바꿔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밤 시간에 피싱을 하기로 했습니다. 황금 피싱 시간은 학교 도서관 문을 닫는 밤 11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 늦게 캠퍼스에 가서 학생들을 초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제자들이 자랐고 그들은 의사 선교사들이요 목자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캠퍼스에서 성공적인 복음역사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목자들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썼을 때, 오늘날 이 지부는 한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지부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일방적인 설교나 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자의 섬김을 동반합니다. 사도는 말씀하기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씀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경책하며 경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양들을 돕고 권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개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기도를 통해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가 나 있을 때 이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화가 날 때는 기도해야 될 때이지 경책하며 경계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예견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했습니다 (4:3-4). 사도바울이 마치 우리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경험을 중시하며 도덕은 개인적 선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공허함과 어두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의 내면을 강건하게 할 수 없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인간적 교훈들을 찾고 받아들입니다. 이 포스트모던 사고는 성경보다도 개인적 체험에 기초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많은 신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단적 교훈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교사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4장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여기서 ‘신중하여’란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취하게 하는 것은 단지 주류나 마약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볼 때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정신을 취하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모든 일에 신중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환경가운데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감당하여 전도자의 일을 하며, 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제자들을 세움으로 우리의 직무를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는 끝까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전제와 같이 하나님께 부어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전제는 번제에 붓는 포도주로서 그 향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민5:7).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심령 깊은 소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장 7, 8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안에 슬픔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마라톤 경기를 마치고 금메달 수상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와 같이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경기 중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만난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그들은 ‘벽’이라고 부릅니다. 그 벽을 극복하는 선수들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군인이나 선수나 궁극적인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그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계셨기 때문에, 모든 벽들을 극복하고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끝까지 말씀을 전파하며 저희의 직무를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상 사역 동안 말씀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양떼들을 돌보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셨던 우리 주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그의 지상명령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전파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왕의 말씀을 흐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과 영광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며 사람들을 구주께 인도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말씀을 전파함으로 바울 사도와 같이 승리에 찬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메시지를 한 유명한 설교자의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Only one life, ‘Twill soon be past (단지 한번 뿐인 삶, 그것은 금방 지나가고);
Only what is done for Christ will last forever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것만이 영원히 남으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3:10-4:8
요절: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그의 순교가 가까운 때에 쓴 마지막 서신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준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유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였습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진리와 영적 삶에 대해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들을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프로그램이나 방법들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의 사역의 초점이 무엇인가에서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부르심을 새롭게 하도록 엄숙하고 긴박한 어조로 권고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오늘 말씀을 세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의 성격이 무엇인가? 둘째, 왜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셋째,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말씀의 성격
3장 14,1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본 서신에서 우리는 디모데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즉, 거짓 교사들과 하나님의 진리에 적대적인 환경을 볼 수 있습니다. 14절은 ‘그러나 너는’ 으로 시작합니다. 거짓 교사와 불신자들과 대조적으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하라’는 말은 요한복음 15장의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거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디모데가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배운 성경 이 가르치는 복음신앙 안에 항상 거하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가 배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사도 바울과, 그와 동역했던 바나바, 실라, 의사 누가, 그리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을 목자로서 보살폈고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그들의 믿음과 삶의 본을 계속하여 따르도록 권면합니다.
저는 충성스런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신앙을 배운 것을 가장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이 없었다면 저의 온 생애를 세속적 삶과 가치 없는 일들에 허비했을 것입니다. 제가 배우고 확신한 것들은 나의 생애를 진정으로 의미있고 열매있게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간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복음신앙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항상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이 무엇입니까?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양육받은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양육하는 많은 어머니들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는 성경을 ‘거룩한 기록들 (holy Scriptures)’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거룩하여 다른 모든 책들과 구분됩니다. 성경은 어떤 점에서 거룩합니까?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성경은 유일하게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들—곧,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데 대하여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세계 구원의 계획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 질문들에 대한 진리는 인간의 영혼에 큰 빛을 비춰주며 우리들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킵니다.
16a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창세기 2:7에 “하나님이 땅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생기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곧 생명입니다 (요6:63). 성경은 40명의 저자에 의해서 1,400여년에 걸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라는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각 저자들을 감동하셔서 각 단어와 문장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 안에 기록된 말씀들에게 무한한 권위와 신뢰를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관계성을 맺어갑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말씀을 통해서 소통하시고 관계성을 맺어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친구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 대한 신앙과 순종을 통해 그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을 보였던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과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드와이트 무디 (Dwight L. Moody)는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었고, 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의 설교의 예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의 말씀을 그대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말씀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대해서 기록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못 믿는다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내가 내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있는가 물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면 그는 나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친구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불신은 불행이 아니고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이 한 사람을 통해서 북미와 영국에 큰 영적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저는 한 UBF 선교사의 간증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과 같이 그는 창세기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소감입니다; “창세기 1장은 세상에 주는 빛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왔으며 또 그로 인해 존재한다는 선포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은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되었는가 선포합니다. 제가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온전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창세기 성경공부는 저의 선교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이 2004년에 새 지부를 개척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잃은 자들과 상처받은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의 목자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영접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11장 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말씀을 붙들고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한 고등학교 졸업생을 섬겼습니다. 그 젊은이는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을 영접하고 믿음의 조상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고 많은 젊은이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제자들이 자라자 그 선교사는 그들이 한 말씀을 영접하기까지 소감을 깊이 쓰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배운 것에 기초해서 성경공부 노트를 준비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학생들을 초청하여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십 년 후인 현재 그의 지부에는 50명의 제자들과 일곱 가정이 있습니다. 많은 리더들은 주중 10내지 20팀의 일대일 성경공부를 섬깁니다. 그들이 매주 리더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은혜를 나눌 때 그들은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은 한 선교사 가정을 통해서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와 같은 믿음으로 전파하며 가르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가?
(1)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4장 1,2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이는 권고가 아니고 명령입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엄히 명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명합니다. 하나님, 그리고 심판주요 우주의 통치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보다도 더 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세상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말씀 전파가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단지 성경 본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파한다는 것은 왕의 말씀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왕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파자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왕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9-20). 예수께서는 그의 지상 사역 동안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남은 사역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그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울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역사하셔서 제자들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구주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전체적으로 구약성경은 오실 구주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죄인들이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엠뷸런스가 지나가면 모든 차들이 비켜주는데, 이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더 귀하고 긴급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람들의 생명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는 죄의 어두움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생겨납니다 (롬 10:17).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하나님의 생기로부터 오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멸망하는 영혼들을 구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구약 모든 성경말씀에서 구주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3장 16,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여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로서 우리가 어떻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에스라는 유대인 포로로서 그의 시대와 동족들에 대해서 깊은 문제의식과 상한 심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했습니까? 에스라 7:10에 말씀하기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그가 먼저 한 일은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어두운 시대에 그의 백성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충만해서 죄와 타협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머리털을 뽑기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머리털을 뽑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말씀 전파와 가르침을 통해서 거국적인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깊은 성경공부는 제자들을 양육하는데 가장 유익합니다. 깊은 성경공부란 성경 본문을 깊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살아 있고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과 삶을 온전히 주장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서 많은 프로그램이나 방법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단지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들을 변화시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파하고 양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도록 기도하며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까?
(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4장 2절하반절을 보겠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여기서 ‘힘쓰라’는 단어는 적극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이 말은 ‘접근한다, 나타난다, 옆에 선다‘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가 캠퍼스에서 양들을 초청하는 것을 잘 묘사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언제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순조로울 때든지 역경의 때든지, 편리한 때든지 불편한 때든지,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든지 안 하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느 때든 그의 역사에 쓰실 수 있습니다.
한 UBF지부의 목자들이 의대생들을 성경공부에 초청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낮 동안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너무 바빠서 말조차 하기를 피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전략을 바꿔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밤 시간에 피싱을 하기로 했습니다. 황금 피싱 시간은 학교 도서관 문을 닫는 밤 11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밤 늦게 캠퍼스에 가서 학생들을 초청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제자들이 자랐고 그들은 의사 선교사들이요 목자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캠퍼스에서 성공적인 복음역사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목자들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썼을 때, 오늘날 이 지부는 한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지부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일방적인 설교나 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자의 섬김을 동반합니다. 사도는 말씀하기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씀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경책하며 경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양들을 돕고 권할 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개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기도를 통해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가 나 있을 때 이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화가 날 때는 기도해야 될 때이지 경책하며 경계해야 할 때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예견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했습니다 (4:3-4). 사도바울이 마치 우리의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경험을 중시하며 도덕은 개인적 선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공허함과 어두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들의 내면을 강건하게 할 수 없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인간적 교훈들을 찾고 받아들입니다. 이 포스트모던 사고는 성경보다도 개인적 체험에 기초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하는 많은 신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단적 교훈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교사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4장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여기서 ‘신중하여’란 온전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취하게 하는 것은 단지 주류나 마약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볼 때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정신을 취하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모든 일에 신중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환경가운데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감당하여 전도자의 일을 하며, 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제자들을 세움으로 우리의 직무를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는 끝까지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전제와 같이 하나님께 부어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전제는 번제에 붓는 포도주로서 그 향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민5:7).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심령 깊은 소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장 7, 8절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사도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안에 슬픔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마라톤 경기를 마치고 금메달 수상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와 같이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마라톤 선수들은 경기 중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만난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그들은 ‘벽’이라고 부릅니다. 그 벽을 극복하는 선수들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군인이나 선수나 궁극적인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바울은 그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계셨기 때문에, 모든 벽들을 극복하고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끝까지 말씀을 전파하며 저희의 직무를 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상 사역 동안 말씀을 전파하시고 하나님의 양떼들을 돌보시며 제자들을 양성하셨던 우리 주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신 그의 지상명령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전파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왕의 말씀을 흐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과 영광과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며 사람들을 구주께 인도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말씀을 전파함으로 바울 사도와 같이 승리에 찬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메시지를 한 유명한 설교자의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Only one life, ‘Twill soon be past (단지 한번 뿐인 삶, 그것은 금방 지나가고);
Only what is done for Christ will last forever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한 것만이 영원히 남으리)
첨부파일
-
data/message1/f375ed57656405f0fcc0f13780752d51.docx (0byte)
12회 다운로드 | DATE : 2013-12-03 07:12: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