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강 2012년 신년1강(민13:1-14;25) 약속의 땅을 정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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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신년 말씀 1강
말씀 : 민수기 13:1-14:25
요절 : 민수기 13:2
약속의 땅을 정탐하라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2년이 시작되는 첫날에 예배를 드리며 한 해를 출발하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해를 선물로 주시며 역사의 발자취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입니다. 시대가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 정탐하라(13:1-25)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1년 1개월 후 시내산에서 전쟁에 나갈만한 백성의 수를 계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출애굽하고 2년간 준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간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바란 광야로 인도하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하시지만 상황을 모르고 전술전략도 없이 무작정 일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사실 성경의 후기 전쟁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탐하게 하시고 전술을 지시해 주시고 이를 순종해 승리한 기록이 많습니다. 적정을 정탐하는 것은 군사작전의 기본입니다. 손자병법의 모공편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번 지며,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매번 반드시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가질 때 진정으로 적을 알고 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거듭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2, 14:16,23,30, 15;2).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 땅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정복전쟁에 임하도록 격려하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내면서 “담대하라(20)”한마디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면서 믿음으로 그 땅을 밟고 오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정탐 명령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땅을 바라보고 정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땅을 믿음으로 밟고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그 땅은 우상숭배하는 강력한 원수들과 타락한 세속문화로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소유함으로 그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세상은 전쟁 중에 있고 이 전쟁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정복해야 할 땅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캠퍼스입니다. 가정과 직장도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우리는 지난 25년간 홍익대학 개척 역사를 해왔습니다. 여기서 서강대, 명지대, 육사, 영남대 개척을 했고 세계 12개국에 76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사역의 성장이 둔화되고 제자양성도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캠퍼스에는 성경 선생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캠퍼스는 과거에는 이념이 지배하던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개인주의가 지배합니다. 학생들은 반값등록금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서 염려가 많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염려해봤자 다 소용이 없다며 장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외롭게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게임이나 컴퓨터 하고만 살고 있습니다. 가정 문제, 정욕문제, 열등감 등등으로 인해 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캠퍼스는 인재들의 저수지입니다. 4년마다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대학생들은 기성세대보다 순수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도와서 영적 지도자로 세우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을 들어 약속의 땅을 새로운 믿음으로 바라보고 개척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내적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땅은 영적성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주시고 우리 생애에 모든 것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죄악된 본성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 안에서 땅에 속한 지체가 죽을 때 우리는 새 사람, 영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 위하여 때로는 자신과 피 흘리는 영적 투쟁이 필요합니다(골3:5). 땅에 속한 지체가 죽는 순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교만, 자기 영광, 정욕 등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들을 뽑아내려면 포클레인과 다이너마이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말씀의 포클레인으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서 죄악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회개할 때 성령께서 그 능력의 다이너마이트로 그 죄의 뿌리를 날려 버리시고 겸손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영의 사람,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될 때 주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 충만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요10:10).
13:4-15절에 정탐꾼으로 뽑힌 열두 두령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들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책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선택을 받은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은혜를 호세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과 순종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2. 정탐보고(13:26-14:11)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남북으로 2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땅을 정탐하고 포도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왔습니다. 이를 본 백성들이 “와 저 왕 포도 알 좀 봐, 골프 공 만해!”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군중들 가운데 환성과 박수가 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아낙 자손은 XXXL 사이즈 옷을 입는 거인 족이었습니다. 후에 소년 다윗과 싸운 골리앗도 해안 지대로 쫓겨 간 아낙 자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동요하자 갈렙이 앞에 나서 그들을 안돈시키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 그러나 그와 함께 갔던 다른 열 두령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2,33).” 여기서 악평했다는 것은 거짓으로 위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그 땅이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면 그 땅 거민들이 모두 죽었던지 살아 있어도 비실비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는 것도 과장입니다. 열 두령이 자기들을 메뚜기 같다는 것은 또 뭡니까? 열 두령들은 무서운 적들 앞에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다가 잡혀 먹히는 자신들을 상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의 생각과 말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갈렙, 여호수아 그리고 열 두령은 같이 출애굽했고, 같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품과 인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왜 열 두령은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영성을 소유할 수 없었을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1절에서 말한 바 신령한 세계로 나가는 사람과 육신에 속한 상태로 남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영적 성장을 결정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배우며 성장합니다. 반면 사람 앞에 살고 모든 일을 인간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열 두령이 단지 육신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견고한 성들과 부유하고 건장하고 잘 무장된 강력한 적들은 크게 보였습니다. 한편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인해 왜소하고 약하게 된 자신들의 신체조건과 무장도 없고 훈련도 안 된 자신들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포자기하였고 자신들을 변명하기 위해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갈렙은 다른 열 두령이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그 땅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땅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들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고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본사상, 개인주의, 상대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영적 소원이 없는 세대들에게 전도하는 것부터 제자양성까지 우리 힘으로는 마치 거인족들과 싸우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자신은 왜소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십니다. 우리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점점 커지게 되고 모든 문제들이 작아지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우리가 능히 이기고 정복하리라.”는 용기와 확신을 주십니다.
열 두령의 두려움에 찬 보고를 들은 백성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했습니다. 하나님의 불기둥이 비춰주는 불빛 아래서 200만명이 앉아 곡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신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1-3).” 이는 그들을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배은망덕한 죄악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잊더라도 구원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심지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정만 보장된다면 옛 노예생활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 등 영적축복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 축복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영적축복의 의미를 알 때 기꺼이 희생할 수 있고 모든 어려움을 감사함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와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없는 백성들은 급기야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반역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회중 앞에 엎드렸습니다(4,5). 그들은 백성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믿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믿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며 두려워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온 회중에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7-9).” 고대에는 옷이 귀했습니다. 따라서 옷을 북 찢는 것은 큰 슬픔과 의분을 나타내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모세의 수종자인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갈렙을 동조하지 않고 이때 나선 것은 갈렙의 말에 신뢰성을 더하게 하려한 사려 깊은 행동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것과 출애굽 할 것, 가나안으로 귀환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 15:7-21).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에게 이 약속을 확언하셨고 수백년 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곧 100%의 신뢰입니다. 70%, 90%, 99%신뢰까지도 믿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100%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가 주님의 이 약속을 100% 신뢰할 때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그 땅의 강한 거민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면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고 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 단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과 목자의 심정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는 홍익대학 복음화를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그들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먹이라는 말은 밥, 고기, 과일 등 음식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에는 그 땅의 거민들이 맛있는 불고기나 피자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식욕, 정복욕,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땅 거민들을 먹이로 본 것은 그들의 보호자인 우상들, 잡귀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모두 도망갔고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하신 주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합니다(행1:8). 이들이 성령 충만했던 것은 믿음으로 사탄이 주는 두려움과 의심의 화살을 막고 깨뜨린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에서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두려움과 의심의 독화살을 우리 마음에 쏘아댑니다. 이 독화살에 맞게 되면 의욕과 기력을 잃고 소극적이 되고, 부정적이 됩니다. 패배감과 슬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항상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깨어 기도함으로 사탄과의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캠퍼스와 양들 안에 역사하는 잡귀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도망갑니다. 에베소서 6:16,17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사탄을 물리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욕과 비전에 불타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하나님을 불신하고 약속의 땅을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불신은 실패와 수치와 멸망으로 인도하는 패망의 길이요 믿음은 승리와 영광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역사가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담대한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 두신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3. 징계와 축복(14:12-25)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4:11)”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했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했고 매일 하나님의 이적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하늘에서 내려준 양식인 만나를 먹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회중을 멸하고 모세를 일으켜 새 백성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그의 백성을 사하여 주셨던 것과 같이 큰 권능으로 사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12-19). 모세의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주님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 우리에게 목자로서 어떻게 양을 섬기고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은 약속의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20-23).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돌이켜 20세 이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모두가 죽기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긴 장례행렬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들은 영적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생을 육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에 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고자하는 영적 세계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 세계로 나아가는 영적인 도전과 전투를 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하고도 충만한 삶, 영을 따라 사는 새 사람, 영원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이 갔던 땅은 예루살렘 남방의 헤브론 산지였습니다. 그 땅의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며 그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을 기뻐하시고 그를 그가 보았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며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But because my servant Caleb has a different spirit and follows me wholeheartedly.”로 번역했습니다. 갈렙은 다른 백성들과는 다른 마음(spirit)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스피릿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를 온전히 좇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은 빈 것을 100% 가득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렙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으로 채운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것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헌신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갈렙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신6:5).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셨고 그 안에 계시기를 기뻐하셨으며 그와 그 자손을 축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2:12절에는 여호수아도 갈렙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말씀합니다. 후에 갈렙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대로 85세의 나이에 아낙 자손을 쳐서 정복하고 헤브론 산지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새 세대의 지도자가 되어 자신이 보았고 들어가리라고 믿었던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온전히 좇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자손을 축복해 주십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성숙의 세계로, 영의 인도함을 받는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믿음의 공동체와 캠퍼스 영혼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힘을 씁시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좇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민수기 13:1-14:25
요절 : 민수기 13:2
약속의 땅을 정탐하라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2년이 시작되는 첫날에 예배를 드리며 한 해를 출발하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해를 선물로 주시며 역사의 발자취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입니다. 시대가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 정탐하라(13:1-25)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1년 1개월 후 시내산에서 전쟁에 나갈만한 백성의 수를 계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출애굽하고 2년간 준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간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용서하시며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바란 광야로 인도하시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기를 원하시지만 상황을 모르고 전술전략도 없이 무작정 일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사실 성경의 후기 전쟁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정탐하게 하시고 전술을 지시해 주시고 이를 순종해 승리한 기록이 많습니다. 적정을 정탐하는 것은 군사작전의 기본입니다. 손자병법의 모공편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번 지며,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매번 반드시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가질 때 진정으로 적을 알고 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거듭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3:2, 14:16,23,30, 15;2).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그 땅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땅을 온전히 차지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고 정복전쟁에 임하도록 격려하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내면서 “담대하라(20)”한마디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기면서 믿음으로 그 땅을 밟고 오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정탐 명령은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7).”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땅을 바라보고 정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땅을 믿음으로 밟고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그 땅은 우상숭배하는 강력한 원수들과 타락한 세속문화로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소유함으로 그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세상은 전쟁 중에 있고 이 전쟁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정복해야 할 땅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가 사역하고 있는 캠퍼스입니다. 가정과 직장도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우리는 지난 25년간 홍익대학 개척 역사를 해왔습니다. 여기서 서강대, 명지대, 육사, 영남대 개척을 했고 세계 12개국에 76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사역의 성장이 둔화되고 제자양성도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캠퍼스에는 성경 선생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캠퍼스는 과거에는 이념이 지배하던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개인주의가 지배합니다. 학생들은 반값등록금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서 염려가 많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염려해봤자 다 소용이 없다며 장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인간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외롭게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게임이나 컴퓨터 하고만 살고 있습니다. 가정 문제, 정욕문제, 열등감 등등으로 인해 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캠퍼스는 인재들의 저수지입니다. 4년마다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대학생들은 기성세대보다 순수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도와서 영적 지도자로 세우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을 들어 약속의 땅을 새로운 믿음으로 바라보고 개척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내적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땅은 영적성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주시고 우리 생애에 모든 것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죄악된 본성과 끊임없는 전쟁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 안에서 땅에 속한 지체가 죽을 때 우리는 새 사람, 영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기 위하여 때로는 자신과 피 흘리는 영적 투쟁이 필요합니다(골3:5). 땅에 속한 지체가 죽는 순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교만, 자기 영광, 정욕 등은 뿌리가 깊습니다. 이들을 뽑아내려면 포클레인과 다이너마이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말씀의 포클레인으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서 죄악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회개할 때 성령께서 그 능력의 다이너마이트로 그 죄의 뿌리를 날려 버리시고 겸손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영의 사람,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 될 때 주님께서 신자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 충만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요10:10).
13:4-15절에 정탐꾼으로 뽑힌 열두 두령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들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책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선택을 받은 것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은혜를 호세아와 갈렙과 같이 믿음과 순종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2. 정탐보고(13:26-14:11)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남북으로 20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땅을 정탐하고 포도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왔습니다. 이를 본 백성들이 “와 저 왕 포도 알 좀 봐, 골프 공 만해!”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군중들 가운데 환성과 박수가 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습니다. 아낙 자손은 XXXL 사이즈 옷을 입는 거인 족이었습니다. 후에 소년 다윗과 싸운 골리앗도 해안 지대로 쫓겨 간 아낙 자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동요하자 갈렙이 앞에 나서 그들을 안돈시키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30).” 그러나 그와 함께 갔던 다른 열 두령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2,33).” 여기서 악평했다는 것은 거짓으로 위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그 땅이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면 그 땅 거민들이 모두 죽었던지 살아 있어도 비실비실해야 할 것입니다. 또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라는 것도 과장입니다. 열 두령이 자기들을 메뚜기 같다는 것은 또 뭡니까? 열 두령들은 무서운 적들 앞에서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다가 잡혀 먹히는 자신들을 상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의 생각과 말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갈렙, 여호수아 그리고 열 두령은 같이 출애굽했고, 같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품과 인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왜 열 두령은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영성을 소유할 수 없었을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3:1절에서 말한 바 신령한 세계로 나가는 사람과 육신에 속한 상태로 남이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영적 성장을 결정할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앞에 사는 사람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배우며 성장합니다. 반면 사람 앞에 살고 모든 일을 인간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열 두령이 단지 육신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견고한 성들과 부유하고 건장하고 잘 무장된 강력한 적들은 크게 보였습니다. 한편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인해 왜소하고 약하게 된 자신들의 신체조건과 무장도 없고 훈련도 안 된 자신들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포자기하였고 자신들을 변명하기 위해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 갈렙은 다른 열 두령이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그 땅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 땅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들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고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본사상, 개인주의, 상대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영적 소원이 없는 세대들에게 전도하는 것부터 제자양성까지 우리 힘으로는 마치 거인족들과 싸우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자신은 왜소하게 느낍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십니다. 우리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에 점점 커지게 되고 모든 문제들이 작아지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주신 땅을 바라보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우리가 능히 이기고 정복하리라.”는 용기와 확신을 주십니다.
열 두령의 두려움에 찬 보고를 들은 백성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했습니다. 하나님의 불기둥이 비춰주는 불빛 아래서 200만명이 앉아 곡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신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1-3).” 이는 그들을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배은망덕한 죄악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잊더라도 구원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심지어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정만 보장된다면 옛 노예생활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 등 영적축복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영적 축복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영적축복의 의미를 알 때 기꺼이 희생할 수 있고 모든 어려움을 감사함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와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없는 백성들은 급기야 한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반역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회중 앞에 엎드렸습니다(4,5). 그들은 백성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을 믿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믿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며 두려워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온 회중에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7-9).” 고대에는 옷이 귀했습니다. 따라서 옷을 북 찢는 것은 큰 슬픔과 의분을 나타내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모세의 수종자인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갈렙을 동조하지 않고 이때 나선 것은 갈렙의 말에 신뢰성을 더하게 하려한 사려 깊은 행동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정복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것과 출애굽 할 것, 가나안으로 귀환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 15:7-21).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에게 이 약속을 확언하셨고 수백년 후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출 3:8).”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곧 100%의 신뢰입니다. 70%, 90%, 99%신뢰까지도 믿음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100%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우리가 주님의 이 약속을 100% 신뢰할 때 어떤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그 땅의 강한 거민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면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고 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약속을 받기 위해서 단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과 목자의 심정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는 홍익대학 복음화를 위해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그들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먹이라는 말은 밥, 고기, 과일 등 음식을 가리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눈에는 그 땅의 거민들이 맛있는 불고기나 피자같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식욕, 정복욕,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땅 거민들을 먹이로 본 것은 그들의 보호자인 우상들, 잡귀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모두 도망갔고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하신 주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합니다(행1:8). 이들이 성령 충만했던 것은 믿음으로 사탄이 주는 두려움과 의심의 화살을 막고 깨뜨린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기 위해서는 먼저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에서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두려움과 의심의 독화살을 우리 마음에 쏘아댑니다. 이 독화살에 맞게 되면 의욕과 기력을 잃고 소극적이 되고, 부정적이 됩니다. 패배감과 슬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항상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깨어 기도함으로 사탄과의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캠퍼스와 양들 안에 역사하는 잡귀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도망갑니다. 에베소서 6:16,17절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사탄을 물리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욕과 비전에 불타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하나님을 불신하고 약속의 땅을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불신은 실패와 수치와 멸망으로 인도하는 패망의 길이요 믿음은 승리와 영광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역사가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담대한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고 우리를 통해 두신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3. 징계와 축복(14:12-25)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4:11)”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했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했고 매일 하나님의 이적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하늘에서 내려준 양식인 만나를 먹었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회중을 멸하고 모세를 일으켜 새 백성을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때까지 그의 백성을 사하여 주셨던 것과 같이 큰 권능으로 사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12-19). 모세의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주님의 기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또 우리에게 목자로서 어떻게 양을 섬기고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은 약속의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20-23).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돌이켜 20세 이상으로 하나님을 원망한 모두가 죽기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긴 장례행렬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들은 영적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생을 육신적인 삶을 살다가 죽는 사람에 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고자하는 영적 세계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 세계로 나아가는 영적인 도전과 전투를 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하고도 충만한 삶, 영을 따라 사는 새 사람, 영원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이 갔던 땅은 예루살렘 남방의 헤브론 산지였습니다. 그 땅의 성읍들은 크고 견고하며 그곳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렙을 기뻐하시고 그를 그가 보았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이며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But because my servant Caleb has a different spirit and follows me wholeheartedly.”로 번역했습니다. 갈렙은 다른 백성들과는 다른 마음(spirit)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스피릿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가 “나를 온전히 좇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온전히”라는 말은 빈 것을 100% 가득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갈렙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으로 채운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것이 그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헌신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갈렙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신6:5).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셨고 그 안에 계시기를 기뻐하셨으며 그와 그 자손을 축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2:12절에는 여호수아도 갈렙과 같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말씀합니다. 후에 갈렙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대로 85세의 나이에 아낙 자손을 쳐서 정복하고 헤브론 산지를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새 세대의 지도자가 되어 자신이 보았고 들어가리라고 믿었던 땅을 정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온전히 좇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자손을 축복해 주십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 성숙의 세계로, 영의 인도함을 받는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주신 가정과 믿음의 공동체와 캠퍼스 영혼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힘을 씁시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좇는 한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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