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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강 2011신년2강(빌2:1-31)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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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781회 작성일 11-01-0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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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년말씀 제 2 강                                               
말씀 빌립보서 2:1-30       
요절 빌립보서 2:5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새해가 되어 우리는 연요절을 쓰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떤 점에서 더 성숙해야 하는지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으라는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자기 비움을 깊이 배우는 가운데 동역을 잘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의류도매업을 하는 루디아 사장님이 사도 바울을 만나서 개척된 교회입니다. 루디아 사장님은 성격 유형이 주도형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도권을 가지고 개척 역사를 이끌면서 빠른 시간 내에 빌립보 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자매님들의 영향력도 매우 컸을 것입니다. 4장에 보면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갈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이러한 갈등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다툼은 이기적인 야심이고 허영은 헛된 자부심입니다.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속교만이나 자기 의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나 권위를 우습게 여깁니다. 교회 내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하고 욕심으로 교권을 잡고자 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깁니다. 한국 장로교가 180개 교단으로 분열된 것은 바로 교권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자기 유익을 위한 생각이 다툼을 일으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립보 교회에는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여러 사람들이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연주할 때 한 지휘자를 따라서 움직입니다. 지휘자는 다양한 악기들의 음이 조화를 이루어 천상의 음악 소리를 들려주고자 지휘를 합니다. 때로는 이 소리를 낮추고 저 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모두가 큰 소리를 내게도 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지휘자에 따라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격이 다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가진 장점을 가지고 형제들의 약점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을 하도록 요구하기보다 장점을 잘 살려 주다보면 즐겁게 동역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첫째,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야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사사건건 우열을 가리고자 합니다. 논쟁을 하다가 밀리면 너 몇 살이야 하고 따집니다. 유교에 삼강오륜이 있는데 오륜에 나오는 장유유서(長幼有序)에 기초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른과 아이에게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찬물도 순서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어른을 존중하는 마음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볼 때 나보다 나이가 어리든, 상대방의 지위가 어떻든 어떤 사람 앞에서도 우리는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울 점을 찾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모임은 참으로 은혜롭고 기쁨이 충만한 모임이 됩니다. 우리가 이 마음으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배울 때 정말 많이 성장할 수 있겠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배울 수 있습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동역할 수 있습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은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기 앞가림을 잘 해야 남에게 부담이나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자기의 일을 돌아보아야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이란 다른 사람의 관심사입니다. 일이 어려우면 자기만 돌아보기 쉽습니다. 내 문제가 절실할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의 일이 더 절실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때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머리가 어디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눈이 길을 찾고 발은 몸을 멀리 이동하게 하고 발이 피곤할 때 손이 발을 주물러 주고 씻어 주어서 피곤하지 않게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눈이 보고 코가 냄새를 맡으면 손이 입 속에 음식물을 넣어 줍니다. 건강한 몸은 이와 같이 유기적으로 남을 돌아보는 일을 합니다.

  저 형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적절히 반응한다면 우리 모임은 훨씬 더 부드럽고 건강해지고 풍성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형제에게 전화 한 번 해 주고 대화를 하며 교제를 나누어야겠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때 섬길 일이 보입니다. 내 문제를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설령 내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다 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문제를 내 놓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때 사랑이 자라게 됩니다. 진실한 대화를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는 충고하려는 마음과 선입견입니다.
 
셋째,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자기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마음을 비우시오. 자주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채우기 위해서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가을바람에 나무가 잎을 비우지 않으면 겨울에 쌓이는 눈을 감당하지 못해서 나뭇가지가 부러집니다. 움켜쥔 손에는 무엇을 더 담아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권리를 비워야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당연한 영광과 권리와 통치를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런 권리를 포기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사람의 형체를 입으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한계와 제한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는 배고프셨고, 오래 걸으면 피곤하였고, 슬픔을 느끼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셨습니다(고후8:9).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고 죄없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를 대속할 수 있는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때 할 수 있으면 지지 않고자 했습니다. 십자가를 짐으로 인해 따르게 되는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권리를 포기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비우고 자기 의를 비우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신데 종과 같이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셨습니다. 무시도 받으시고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체휼하셨습니다. 우리와 공감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정한 정도까지만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부활로 높이셨습니다. 그 후에 하늘로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일체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다시 오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를 비우고 자기 권리를 포기한 사람들을 친히 채우시고 보상해 주십니다. 자기를 낮춘 사람들을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지극히 크고 놀라운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영광을 누리면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에 목을 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높이고 낮추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주권자이고 통치자이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백배나 갚아주시고 영생을 받게 하십니다(막10:30).

  우리는 어떤 권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작은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가 자리에 앉을 수 있지만 더 어려운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부터 말입니다. 센터에서 섬김을 받을 수 있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새벽에 잠을 편히 자고 여유있게 직장에 갈 수 있는 권리가 내게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센터에 나와서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훈련하지 않으면 몸에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막에서 맛있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과 나누기 위해서 참는 것, 형제를 위해서 내가 먹을 수 있지만 남겨두는 것도 권리 포기입니다. 목자님들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쉴 권리가 있지만, 쉴 권리를 포기하고 동역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설거지나 집안 청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은 얼마나 청결하고 동역이 잘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에게 권리 포기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또 권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의가 될 수 없습니다. 한번 했으니 다 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권리 포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일만 달란트 되는 죄 값을 탕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형제의 죄를 보고 일백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해 주어야 합니다. 형제로 인해서 내가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에게서 사과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내가 깊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당하는 아픔과 손해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예외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용서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마27:39-43)”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그 권리를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목자생활이 때로는 이 세상에서 열매 없이, 보상이 없이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상을 받을 권리를 포기하고 양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섬겨야 합니다. 곰같이 묵묵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은 다른 선교단체와 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자비량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깁니다. 이로 인해서 당하는 어려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권리 포기는 내면을 더욱 강하게 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합니다. 지원을 받으면 보고하는 일에 시달리는데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소신껏 일하면서 제자들을 키웁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자기의 권리를 포기했습니까? 그도 어려울 때는 교회의 지원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하였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3-35).”

넷째,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미 시작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결과를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구원받은 자의 삶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과 시비가 있으면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시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원망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소진하는 대신에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사랑의 열매를 맺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생활을 계속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드리고자 합니다. 양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자 합니다. 그는 결국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목자의 기쁨은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양들을 섬기는 데서 옵니다.

  그런 대표적인 예로서 사도 바울이 있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유일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가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였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 바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 역사를 섬기다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병든 것을 빌립보 형제들이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는 동역자들에게 자기로 인해서 근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썼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자 깊은 배려를 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또 바울을 긍휼히 여기사 그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고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양들과 동역자들을 섬기기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기를 힘써야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자세, 권리를 포기하는 생활, 마지막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올 한 해 예수님의 겸손과 자기 비움, 권리 포기를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구체적으로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 어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자 하십니까? 권리 포기를 하는 가운데 정말 기쁨이 충만하고 내면이 더욱 강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올 한 해 우리의 삶 가운데 자신을 더욱 온전히 드러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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