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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서 2017년 벧후 2강(2:1-22)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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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17-02-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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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베드로후서 제 2 강
말씀 | 베드로후서 2:1-22
요절 | 베드로후서 2:1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라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우리가 역사를 쓸 때 배울 만한 교훈, 아름다운 이야기, 본이 되는 것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악한 것, 나쁜 것에 대해서는 되도록 피합니다. 그러나 그런 악한 것도 때로 기록되는 이유는 후대들에게 경계를 삼기 위함입니다. 오늘 거짓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속성과 정체를 분명히 알아야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받게 될 비참한 최후를 알 때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거짓 선생들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 수 있도록 힘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무슨 일을 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은 거짓 선생들이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교회에 끌어들입니다. 그들의 이단적인 사상과 교리로 인해서 자기들만 망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망하게 합니다. 기독교 유사 종교와 이단들이 창궐한 오늘날 이들을 분별하고 걸러내는 것이 바른 진리를 지키는 길입니다. 위조지폐 감별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면 배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들이 많은 시간을 위조지폐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데 실제 그들은 정상적인 지폐를 연구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것이 위조지폐를 분별해 내는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른 복음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쏟기를 기도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예수님의 구속의 완전함을 부인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실패하셨다고 주장하거나 부활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가르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구주 되심을 부인하고 자기들이 따르는 교주를 하나님의 위치에 놓거나 성령의 위치에 놓습니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합니다. 그들은 복음 진리를 듣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왜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를 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자기들의 주인이신데 왜 그를 부인할까요? 그들의 이전 주인은 누구입니까? 마귀가 그들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호색, 탐심,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한 생활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이 옛날 주인에서 벗어나서 새 주인에게 왔는데 왜 새 주인을 부인하고 옛 생활로 돌아갈까요? 그들이 볼 때 새 주인의 모습이 어떠할까요? 새로운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더러운 삶을 떠나 거룩한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자기중심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주님을 사랑함으로 양을 쳐야 하는데 주님께 대한 사랑은 잃어버리고 의무감으로 양을 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목자 생활이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헌신을 해도 열매가 잘 맺히지 않으면 내가 헛수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주님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절제하고 영적인 투쟁을 하기보다 본성대로 사는 것이 자유로와 보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인해 갈등을 하다가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하고 옛 주인에게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19절을 보면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옛 생활이 자유로운 삶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육신의 본성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기의 한계를 알고 그 질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새가 하나님이 주신 하늘을 버리고 물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면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땅에서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올라온다면 짐승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악된 욕심을 부인하지 않으면 옛 생활을 사모하며 거룩한 삶을 부담스러하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떠나 육신적인 삶, 이기적인 삶을 따르고자 하기에 갈등을 느끼며 힘들어 합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죄에 대해서 예민해집니다. 깨끗한 물과 공기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깨끗한 삶 속에서 사람은 건강한 관계를 누리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가 알 때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거룩한 삶에 기쁨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삶 속에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거룩한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과 복을 부어주십니다.
   
  거짓 선생들은 왜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자기들의 교주를 높이는 것일까요? 첫째는 호색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호색이란 육감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정욕을 따라서 살고 규모가 없고 절제를 하지 못하고 감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정말 감각적인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성경을 공부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렵습니다. 감각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이 이것을 절제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니 미움을 받습니다. 이성과 감정이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이루어야 소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분별하고 주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생활에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들이 성적방종에 빠질 때 그들이 믿는 진리의 도는 세상에서 비방과 모독을 받게 됩니다. 요즘 툭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영적 지도자들의 온갖 성적범죄들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도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책망을 듣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애하고 불륜을 미화시키는 드라마와 세상 풍조 속에서 같이 떠내려가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청년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이번 전국 연합 학생 수양회에서 청년들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교제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여러 가지 장기 자랑을 준비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많이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거짓 선생들은 물질적인 이득을 추구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선생들은 양들을 늑탈하는 이리요 삯꾼목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탐심으로서 지어낸 말을 가지고 양들에게서 물질적 이득을 삼고자 합니다. 많은 이단들이 이처럼 온갖 거짓 교리와 이론을 꾸며내어 신도들로부터 돈을 뽑아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파는 생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500원 짜리를 만원씩 팔기도 합니다. 교주가 찍은 사진을 5백만원에 팔기도 하고 여러 모양으로 장사를 합니다. 박태선은 신앙촌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고 많은 이단들이 기업을 일으켜 운영하고 있습니다. 때로 이단의 세력들이 가진 기업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운영이 되고 이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볼 때 사회가 더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대양 사건이나 세월호 사고로 인해서 우리는 이를 두 눈을 뜨고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습니다. 범죄한 천사들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타락한 사탄과 그 추종자들을 뜻합니다(유1:6, 사14:12-14). 사탄은 심판 날까지 무저갱에 던져져 있으며(계20:1-3), 마침내는 유황 못에 던져져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됩니다(계20:10).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시행된 대표적인 예는 노아 시대의 죄악에 대한 것입니다. 노아 홍수 전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게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사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위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제시된 심판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특징은 동성애였습니다. 오늘날도 동성애가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실 때 하늘에서 불과 유황을 내려 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으로 삼으셨습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의 타락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의로웠습니다. 그는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그는 정말 간신히 불 심판 가운데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십니다.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철저히 형벌하십니다.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합니다. 그들은 하늘 무서운 줄을 알지 못하고 교만한 말을 쏟아냅니다.

  중국 후한 말기에 예형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나 오만한 성격이 문제였습니다. 그는 조조 진영에 들어가 조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넓다는데 어찌 이곳에는 인재가 하나도 없습니까?” 조조가 심기가 불편해서 자기 휘하에 있는 문신과 무신들이 이 시대의 영웅들이라고 하자 예형은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정욱은 수문장 노릇이 알맞고, 곽가는 글이나 몇 줄 읽는 것이 전부며, 장료는 마소나 기르는 마부이고, 악진은 조서 읽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술통이나 밥주머니 라고 불러도 될 만한 자들입니다.” 조조는 그를 죽이고 싶었으나 천하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그를 형주로 보냈습니다. 형주에 도착한 예형은 거기서도 독설을 퍼붓고 이를 참지 못한 유표는 그를 강하 태수 황조에게 보냈습니다. 예형은 황조에게도 심한 독설을 퍼부었는데 이를 참지 못한 황조는 그 자리에서 예형을 끌어내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과거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셨듯이 오늘 불의한 자들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교만하고 불의한 자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들은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십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합니다. 그들은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불의의 삯을 사랑하며 불법의 길을 갔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거짓 선생들의 실제 삶의 특징은 두 가지인데 바로 성적 탐닉과 재물에 대한 탐심입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거짓 교사들의 실제 삶의 열매가 이런 것들입니다. 재물을 착취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은밀한 성적 쾌락을 탐하는 삶을 살다가 자신들도 망하고 그를 따르는 자들도 망하게 합니다. 오늘날 양들을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지 않고 욕심과 탐심으로 또 음란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내 속에 깃 드는 그런 죄들을 때마다 살피고 회개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거짓 선생들은 허망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입니다. 겉 모습은 무언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용이 없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를 때 자유를 준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육체의 욕망과 정욕에 진 자들이기에 멸망할 자들입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것은 방종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욕대로 사는 삶을 통해서 참 자유를 줄 것 같은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십니다(요8:32,36 갈5:1). 사탄은 우리 마음에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삶이 자유를 줄 것 같이 유혹하지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죄의 종이 되는 것이며 멸망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맛보며 누려야 합니다.

  만일 신자가 다시 죄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은 처음보다 심하게 됩니다.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낫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게 되면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려와 거하므로 그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됩니다. 돼지를 씻어서 호텔에 두면 그 호텔을 다시 지저분하게 만들고 거기서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 다시 타락하여 죄를 짓고 즐기며 주님을 버리게 되면 돼지만도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조심해야 할, 우리를 유혹하는 거짓선생 이단사상들은 무엇입니까? 요즘 극성을 부리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특히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등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이단들도 문제이지만 더욱 광범위하게 우리의 신앙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것은 세속적인 신앙, 번영주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유명 교회 지도자들의 성스캔들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고, 신자들의 거룩성과 영성은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극도의 물질주의, 음란의 문화와 가치관,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상과 가르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속지 맙시다. 예수님을 앎으로 죄의 더러움을 피했던 우리가 다시금 죄에 얽매이고 지는 삶으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 선생으로서 거짓교사와 이단의 가르침들에 미혹되지 않도록 깨어서 살피고 바른 신앙과 말씀으로 양무리를 잘 이끌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 속에 ‘거짓 교사’들의 삶의 모습이나 동기 같은 영적 불순물들이 없는지 자신을 늘 성찰하고 살펴야 합니다. 특히 재물의 유혹과 음란한 행실, 안목의 정욕에 빠지지 않고 깨끗한 삶을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거짓 선생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진리의 말씀에 착념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자유를 줍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에 따르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서 경건한 즐거움을 누리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풍성한 성도의 교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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