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베드로서 2017년 벧전6강(4:12-5:14)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17-01-29 13:31

본문

2016년 베드로전서 제 6 강 
말씀 | 베드로전서 4:12-5:14
요절 | 베드로전서 5:3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도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는 베드로의 권면을 들었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 어린 양들이 실족하기 쉽습니다. 목자는 자기의 믿음을 지키면서 양들을 돌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목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나이다 고백하는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난 가운데서 도망가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는 양을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이 목자의 소리를 듣고 따라온다는 말씀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일생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를 배웠고 이제 자신이 떠나갈 때가 되자 교회의 리더들에게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우리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는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불 시험의 형태로 옵니다. 불 시험은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과 고난입니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생각과 행동을 마비시킬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불청객을 맞이하듯 맞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믿음의 길을 떠나도록 하는 유혹이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끝까지 가도록 실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목자로서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는데 고난은 끝까지 목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믿음을 연단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려고 하십니다. 과거에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재수가 없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나와 같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다니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부활의 영광,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셔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고난을 견딘 신자들에게도 큰 영광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바라보면 현재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우리 신자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을 배우고 따르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세상에서 죄로 인해서 생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스럽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이전에는 고난에 대한 철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으신다고 하면 귀를 막고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또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예수님을 책망하며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 성령 충만을 받고 신앙이 성숙해져서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도요 제자로 인정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기뻐했습니다. 고난을 회피하면 사람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강해집니다. 성숙해집니다. 순수해집니다. 겸손해집니다.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는 복음을 전하다가 치욕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회식 자리에서 술을 먹지 않는다고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믿음으로 살면서 가족들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여러 모양으로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치욕을 당하면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 고난을 받는 종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돌보시며 부끄럽지 않게 하십니다. 신자들이 평안한 때보다 고난의 때에 주님과 더 친밀함을 누리며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시편들은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읊어졌습니다. 다윗은 고난이 지나고 평안의 때에 하나님의 영의 임재 보다는 게으름을 피우며 안일을 즐기다가 죄에 넘어졌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6). 우리는 고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고난을 통해서 이 땅에서 심판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신자들을 극심한 고난으로 먼저 심판하시고 그 다음에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과 죄인들은 설 곳이 없습니다. 그들은 최후 심판을 받고 불과 유향의 타는 못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해야 합니다. 신자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죄에서 떠나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자신들을 미워하고 핍박한다고 같이 악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또한 고난의 때에 힘들다고 함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의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을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핍박자들은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지옥에 던져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5장에서는 장로들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 어떤 자세로 하라고 권면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장로들은 연장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의미하기보다는 교회 내의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교회는 연륜과 경험에 근거해서 교회를 책임 맡고 인도할 사람을 뽑았는데 그들이 장로들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본문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양을 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양을 어떻게 먹여야 합니까?

  첫째,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목자는 하나님의 양을 칠 때에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마지못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양을 친다면 양이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또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위신을 생각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목자가 마음을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양이 냄새를 맡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양을 치되 자원함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의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할 때 우리는 자원함으로 양을 칠 수 있습니다. 

  목자 생활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누가 이런 고난의 길을 자원함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때문에 목자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저도 사실 목자로서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허무와 죄 가운데서 방황하다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죄 사함을 받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나서 이 직분이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자 먹고 입을 것만 있으면 일생 주님을 섬기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을 목자로 부르시고 이날까지 충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따라서 목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첫 사랑을 기억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고 목자 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까지 섬길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금이나 은보다 사람을 얻는 일에 자신을 드린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드려서 사람을 얻는 것이야 말로 값진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다루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양 치는 일을 자원함으로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기꺼이 해야 합니다. 반대는 더러운 이득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이득은 좋지 않은 수입을 의미합니다. 장로는 교회의 물질을 다루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목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 박윤선 목사님은 “밥벌이를 위해 목회하지 말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목자도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한 목적으로 양을 치면 참된 목양을 할 수 없습니다. 목양은 기꺼이, 즐거움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종교 사업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영성이 흐려지고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합니다. 헌금을 강요하는 목사들로 인해서 상처 받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위해서 목양을 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사랑받기 위해 계속 양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목자 생활은 사실 물질을 희생하면서 양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셨는데 나는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셋째,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는 양에게 주장하는 자세입니다. 주장하는 자세란 강제로 지배하거나 굴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목자가 섬기기보다 영적 권위에 의지해서 명령하게 되면 눈 앞에서는 잘 따라오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서는 반발이 자라게 됩니다. 목자는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삶을 통해서 이끌어야 합니다. 양은 목자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양들은 목자의 말보다 그가 행동하는 대로 따라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주장하고 요구하기보다 먼저 본을 보이면 양들도 보는 대로 따라옵니다. 본을 보이려면 모범이 되어야 하고, 앞서 가야 합니다.

  나도 부족한데, 어떻게 양들의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앞서 가시는 참된 목자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4)”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배우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믿음, 사랑, 겸손, 섬김, 기도, 고난, 죽으심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을 본받고자 노력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그러면서 양들에게 이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따를 때 믿음에서, 기도 생활에서, 언어생활에서, 거룩함에서, 섬기는 생활에서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본을 보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본을 보이는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저에게 겸손의 본을 보이신 마더 배리 선교사님, 전요한 목자님, 희생의 본이 되어 주신 김이삭 선교사님, 충성의 본이 되어 주신 김아브라함 선교사님, 말씀 사랑의 본이 되어 주신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 사랑의 본이 되어 주신 많은 선배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로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귀하신 목자님, 선교사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삶입니다.

  이런 목자 생활에 어떤 약속이 있습니까? 놀라운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목자 생활을 할 때 힘든 현실만 보지 말고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충성스럽게 양을 친 사람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리더가 있으려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자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젊은이들은 이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변화의 주체가 되고 때로는 혁명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편 기성세대에 대해서 혈기를 부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질서를 지키면서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그래야 동역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섬기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아지셨지만, 하나님은 그를 가장 높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겸손한 자들을 높이실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염려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이 됩니다. 신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고난의 때에 염려는 더 많을 것입니다. 배척을 받고 미움을 받고 있는데 먹고 살 수 있을까? 지금도 힘든 데 더 큰 고난이 찾아오면 어떡하나? 사실 염려는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런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있는 자녀들을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근신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 절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때에 힘들다고 무분별하게 살면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누이게 합니다. 염려하다가 믿음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은 마귀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고난은 나만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에 처해 있음을 알고 힘써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잠깐입니다. 우리는 동굴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 이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당시 신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이 길어도 결국에는 잠깐 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박해 속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터를 견고하게 하셔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 우리를 강하게 하실 하나님을 믿어야겠습니다.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11).”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자로 부르시고 양을 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첫 사랑을 굳게 붙들고 우리에게 맡기신 양들을 자원함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새 학기에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생명 구원 역사를 바라보며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엘리사, 나의 베드로, 나의 디모데를 세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양을 치는 가운데 선한 목자 예수님을 깊이 배우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건 1 페이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