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마33강(22:1-14)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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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33 강
말씀 | 마태복음 22:1-14
요절 | 마태복음 22:2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교회는 이 땅 위에 펼쳐지는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의 모습이 천국의 비유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형제자매들과 교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서로 사랑하며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천국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힘써 초청하고 왕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어떤 임금과 같다는 표현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천국의 속성이 임금 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혼인 잔치의 풍성함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이를 포도주로 만들어 축복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모습이 나옵니다. (계19:1-10). 하나님 나라는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혼인 잔치의 신부는 누구일까요? 교회 구성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신부이면서 동시에 그 혼인 잔치의 축하객입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일주일 동안 결혼식 축하 잔치를 벌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준비한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평소 유대인들의 삶은 고된 노동과 율법의 짐으로 인해서 힘들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초청하시고 인생의 고된 짐을 벗고 즐겁게 잔치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또는 요회 모임에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고 친히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온유와 친절과 평화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생명의 충만함과 기쁨을 누릴 때 자연히 이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임금은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습니다.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지은 모든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나그네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그 사람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또 점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천국에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계21:4). 수정같이 맑은 생명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가 달마다 열립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약제로 쓰입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비교하거나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분이나 능력의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13:4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천국 잔치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 잔치에 관심이 없었고, 참석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벗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일년 전에 잔치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이 혼인잔치 며칠 전에 오기를 거부하면 왕은 얼마나 김이 빠지겠습니까? 그들이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오기를 거부한 것은 그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이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임금의 초청을 거절했을 때, 보통 임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괘씸하게 생각해서 당장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은 오래 참으시며 넓은 아량과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자 다른 종들을 보내어서 정중하게 초청합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여기에는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혼인 잔치보다 무엇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그들은 돈 버는 일, 자기 사업을 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천국 잔치에 초청을 하면 이유를 대면서 거절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고, 팀플을 하고,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하고, 먹고 사는데 바빠서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더 깨끗하게 된 다음에 가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정리할 것을 마치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도 먹고 살아가는 일,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일 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로 인해 염려하기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지금 나오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거절만 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초청을 하면 “꺼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지나치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복음 역사를 섬기려면 이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블루, 외로움, 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대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제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또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영생이 있고, 참된 만족과 평안, 쉼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는 격주로 참석하는 스탭 목자 말씀 공부가 즐겁습니다. 동역자들과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고, 식사도 제공해 주고, 어려운 일, 슬픈 일도 나누고 기쁜 일도 나눕니다. 말씀과 교제 속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의 말씀 공부와 요회 모임 속에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삶은 힘들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임금은 자기가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인 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의 초청을 거부한 것만으로도 진노를 살 말한 일인데, 임금이 보낸 사신들까지 모욕하고 죽였으니 하나님이 이렇게 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천국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AD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불타 없어집니다. 보통 로마는 다른 나라를 점령하면 백성들을 그대로 두고 조공을 받던지 자치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 이름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그들을 추방하여 세계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죄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불성실함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늘 위기를 맞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거나 연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우리가 나가야 할 네거리는 어디일까요? 네거리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일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부랑자들 등 대부분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네거리’는 세계 각국을 가리키며,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 만민을 지칭합니다. 임금은 이런 자들이라도 모두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함으로서 구원의 복이 이방인들과 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방황하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임금은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차서 잔치가 성대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캠퍼스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 말씀 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사랑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이들을 초청하기 전에 먼저 전도대상자를 정하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를 초청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를 도울 지혜를 구하십시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학생이건 직장이건, 외국인도 모두 초청했습니다. 그리하여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도 12월부터 있는 ‘생명의 삶’ 말씀공부에 내가 먼저 등록을 하고 양들을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돕기를 기도합니다.
혼인잔치 비유에는 종들의 역할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의 충성심이 없었다면 혼인 잔치는 성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청을 많이 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과 모욕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종들은 임금의 명령에 순종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초청했습니다. 종들이 이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임금을 사랑했고 혼인 잔치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임금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며 팔자를 고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충성된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얻도록 돕고자 하는 목자님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사랑과 기쁨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예복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혼인 예식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특별한 차림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물며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혼인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합당한 예복을 입었습니다. 우리도 결혼식을 할 때 친척들에게 예복을 입고 오도록 예단비를 건네줍니다. 왕의 잔치에 올 때 왕이 이런 예복을 준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복을 입지 않았을까요? 평소에 입던 자기 옷을 벗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 행위의 옷을 벗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임금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예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옷입니다. 의의 옷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진실하게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의의 옷 곧 구원의 예복을 입혀주십니다. 의의 옷을 입으면 과거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 전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다 덮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은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려면 먼저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예복은 또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옷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들어왔으나 진실한 회개를 통한 거듭남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구원 받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마음에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은 강렬한 소원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살다보면 자연히 선한 행실을 익히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선한 행실이 없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그는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집니다. 그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본문에서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두 종류입니다. 첫 번째는 초청을 받았지만 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초청에는 응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고 천국 잔치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서 스스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네거리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초청을 받고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참석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지만, 그 초청에 응답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응답을 해도 천국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은 사람은 더더욱 적습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이상에서 ‘권위’를 묻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두 몫을 받을 만큼 특별한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먼저 주인의 포도원을 맡아서 일하게 된 농부들입니다. 그들은 주인이 포도원을 맡기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무관심하고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31),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들(43), 자격이 없지만 초청에 응답하고 예복을 입은 새로운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가 적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작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문을 열어서 모든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풍성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들,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포도원에서 일하면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초청할 때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곳에서 깨끗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으며 그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12월부터 있을 생명의 삶 공부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구원의 은혜와 거듭남의 감격을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22:1-14
요절 | 마태복음 22:2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교회는 이 땅 위에 펼쳐지는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의 모습이 천국의 비유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형제자매들과 교회 생활을 하는 가운데 서로 사랑하며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천국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힘써 초청하고 왕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어떤 임금과 같다는 표현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천국의 속성이 임금 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혼인 잔치의 풍성함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이를 포도주로 만들어 축복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모습이 나옵니다. (계19:1-10). 하나님 나라는 혼인 잔치와 같습니다. 혼인 잔치의 신부는 누구일까요? 교회 구성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신부이면서 동시에 그 혼인 잔치의 축하객입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일주일 동안 결혼식 축하 잔치를 벌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준비한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것이나 슬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평소 유대인들의 삶은 고된 노동과 율법의 짐으로 인해서 힘들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초청하시고 인생의 고된 짐을 벗고 즐겁게 잔치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또는 요회 모임에서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천국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고 친히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온유와 친절과 평화를 맛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생명의 충만함과 기쁨을 누릴 때 자연히 이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임금은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습니다.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지은 모든 죄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며, 나그네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그 사람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또 점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천국에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계21:4). 수정같이 맑은 생명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가 달마다 열립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약제로 쓰입니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비교하거나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분이나 능력의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됩니다(13:4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천국 잔치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국 잔치에 관심이 없었고, 참석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율법의 무거운 멍에를 벗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일년 전에 잔치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이 혼인잔치 며칠 전에 오기를 거부하면 왕은 얼마나 김이 빠지겠습니까? 그들이 황태자의 혼인잔치에 오기를 거부한 것은 그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이르라고 했습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임금의 초청을 거절했을 때, 보통 임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괘씸하게 생각해서 당장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은 오래 참으시며 넓은 아량과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한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자 다른 종들을 보내어서 정중하게 초청합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여기에는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혼인 잔치보다 무엇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그들은 돈 버는 일, 자기 사업을 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돈이 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천국 잔치에 초청을 하면 이유를 대면서 거절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고, 팀플을 하고,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하고, 먹고 사는데 바빠서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더 깨끗하게 된 다음에 가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정리할 것을 마치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도 먹고 살아가는 일,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 자식을 낳고 키우는 일, 친구들과 어울려서 노는 일 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로 인해 염려하기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지금이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지금 나오세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복음 역사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거절만 하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초청을 하면 “꺼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지나치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코로나 19로 인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어제나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복음 역사를 섬기려면 이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복음을 듣고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블루, 외로움, 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대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제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있을까요? 또 예수님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영생이 있고, 참된 만족과 평안, 쉼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저는 격주로 참석하는 스탭 목자 말씀 공부가 즐겁습니다. 동역자들과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고, 식사도 제공해 주고, 어려운 일, 슬픈 일도 나누고 기쁜 일도 나눕니다. 말씀과 교제 속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의 말씀 공부와 요회 모임 속에서 이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삶은 힘들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임금은 자기가 보낸 종들을 모욕하고 죽인 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의 초청을 거부한 것만으로도 진노를 살 말한 일인데, 임금이 보낸 사신들까지 모욕하고 죽였으니 하나님이 이렇게 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천국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AD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성이 완전히 불타 없어집니다. 보통 로마는 다른 나라를 점령하면 백성들을 그대로 두고 조공을 받던지 자치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 이름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그들을 추방하여 세계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죄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불성실함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늘 위기를 맞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거나 연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우리가 나가야 할 네거리는 어디일까요? 네거리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할 일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 죄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들, 가난한 부랑자들 등 대부분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네거리’는 세계 각국을 가리키며,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 만민을 지칭합니다. 임금은 이런 자들이라도 모두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함으로서 구원의 복이 이방인들과 죄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구원의 문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 방황하던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씀합니다. 임금은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차서 잔치가 성대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캠퍼스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온라인 말씀 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사랑과 섬김이 필요한 사람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이들을 초청하기 전에 먼저 전도대상자를 정하고 매일 아침과 저녁에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를 초청할 기회를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를 도울 지혜를 구하십시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잔치에 초청했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학생이건 직장이건, 외국인도 모두 초청했습니다. 그리하여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했습니다. 우리도 12월부터 있는 ‘생명의 삶’ 말씀공부에 내가 먼저 등록을 하고 양들을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돕기를 기도합니다.
혼인잔치 비유에는 종들의 역할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의 충성심이 없었다면 혼인 잔치는 성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초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청을 많이 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과 모욕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종들은 임금의 명령에 순종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초청했습니다. 종들이 이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임금을 사랑했고 혼인 잔치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를 바라는 임금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국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며 팔자를 고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충성된 종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얻도록 돕고자 하는 목자님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사랑과 기쁨을 넘치도록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임금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예복은 무엇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혼인 예식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특별한 차림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하물며 임금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혼인 예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합당한 예복을 입었습니다. 우리도 결혼식을 할 때 친척들에게 예복을 입고 오도록 예단비를 건네줍니다. 왕의 잔치에 올 때 왕이 이런 예복을 준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예복을 입지 않았을까요? 평소에 입던 자기 옷을 벗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 행위의 옷을 벗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임금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예복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옷입니다. 의의 옷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진실하게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의의 옷 곧 구원의 예복을 입혀주십니다. 의의 옷을 입으면 과거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 전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다 덮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은 정결함을 상징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려면 먼저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흰 눈처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예복은 또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옷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들어왔으나 진실한 회개를 통한 거듭남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구원 받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의 은혜에 기초해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자기의 욕심대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마음에 주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은 강렬한 소원을 주시고 능력도 주십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살다보면 자연히 선한 행실을 익히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선한 행실이 없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그는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집니다. 그는 지옥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될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본문에서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두 종류입니다. 첫 번째는 초청을 받았지만 오기를 거절한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초청에는 응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고 천국 잔치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서 스스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네거리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거절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초청을 받고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잔치에 참석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지만, 그 초청에 응답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응답을 해도 천국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은 사람은 더더욱 적습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이상에서 ‘권위’를 묻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두 몫을 받을 만큼 특별한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먼저 주인의 포도원을 맡아서 일하게 된 농부들입니다. 그들은 주인이 포도원을 맡기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했습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지만 무관심하고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31),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들(43), 자격이 없지만 초청에 응답하고 예복을 입은 새로운 사람들이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가 적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작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인간의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국 문을 열어서 모든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풍성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들,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포도원에서 일하면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초청할 때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천국 잔치에 참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곳에서 깨끗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으며 그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12월부터 있을 생명의 삶 공부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구원의 은혜와 거듭남의 감격을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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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 다운로드 | DATE : 2020-11-08 13: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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