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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04년 누가복음 제 15 강(눅8:1-21)/씨 뿌리는 자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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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2,621회 작성일 04-12-14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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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누가복음 제 15 강                                                       
말씀 / 누가복음 8:1-21
요절 / 누가복음 8:15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네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교제를 나누고,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려면 이러한 것들이 골고루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그런 자들이 모여서 교회 공동체가 형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유기적인 공동체를 통해서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또 교회 공동체가 메신저 역할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나누게 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제자 생활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제거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은 복음 역사를 섬긴 여인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과 악귀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 때 병들고 귀신들린 여인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본래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죄악된 생활에 빠진 나머지 종국에는 일곱 귀신에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심히 파괴적이고 자학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추한 모습으로 그 몸과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사 고쳐주셨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안나는 헤롯궁의 재무장관 부인으로서 상류사회의 사치스럽고 부패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한 삶은 그녀를 심히 병들게 했고 지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소망을 찾게 되었습니다. 또 수산나와 다른 자매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병이 나음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을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당시 여인들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낮았습니다. 그러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여인들을 매우 귀한 위치에 놓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규칙적인 식사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곳저곳 여행을 하며 사역을 섬기는데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여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했습니다. 당시 여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 일행을 섬겼을 때 거기에는 많은 숨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진심을 예수님께 드리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로 능히 섬기도록 도우셨습니다. 이 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여 예수님 일행이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따라 다니며 진심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들은 기도로 섬기고, 아픈 자들을 간호해 주고, 위로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항상 그들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뻗쳐 있었습니다. 또한 늘 배고픈 제자들을 위하여 식사도 대접하고 세탁도 해 주었습니다. 이 적은 수의 변화된 여인들은 새로운 역사와 시대를 탄생시키는데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믿음있는 기도의 여인들은 항상 크리스챤 공동체의 생명과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동교 센타의 사모님들과 자매 목자님들은 이 여인들과 같은 충성스러운 기도와 섬김의 여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분들의 헌신과 충성스러운 기도를 이제까지 귀하게 쓰시고 계십니다.

  4절을 보면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천재이셨습니다. 예수님 말씀 중 1/3이 비유였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4:34).” 비유는 훌륭한 의사소통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그 주제였습니다. 복음서의 비유는 듣는 자들이 스스로 결단케 합니다. 자신이나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시켜 이해하게 하고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 비유로 가르치심으로서 바리새인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귀를 귀울여서 말씀을 잘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우리도 이 시간 헛 생각을 다 버리고 귀를 기울여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비유 말씀을 들읍시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이 새들이 먹어 버렸습니다. 새들은 150m 상공에서도 작은 씨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좋다고 합니다. 먹이를 찾아 헤매던 주린 새들이 길가에 떨어진 씨를 보고 ‘웬 떡인고’하고 먹어 버렸습니다. 또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은 외쳐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8).” 누구든지 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들을 귀’란 말씀을 깨닫는 ‘마음의 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음의 귀’는 말씀에 대한 자세에 따라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 같은 말씀을 같은 공간에서 가르쳤는데 어떤 사람은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졸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나를 ‘감동시켜봐’라는 태도로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마치셨을 때 제자들은 이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들을 귀’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연관시켜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다 파헤쳐지지 않는 보물섬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보물을 캐내려면 자기가 모른다는 겸손한 생각을 가지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천년 전의 배경과 현재 우리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를 살피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11)” 씨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고 생명 있는 말씀이며 죽은 영혼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씨는 아름다운 나무와 꽃과 풍성한 열매를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12).” 길은 본래 좋은 땅과 부드러운 흙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다님으로 굳어진 땅입니다. 세상에는 그 마음이 길가와 같이 굳어져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문화를 따라 살아야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말씀을 따르는 생활은 전혀 비실제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전해주면 “그렇게 세상을 살다가는 굶어죽기 딱 맞다”고 하면서 배척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항시 바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습니다. 또한 교만한 사람은 마음이 매우 딱딱하여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습니다. 마귀는 미혹의 영으로서 세상의 인본주의적인 학문이나 철학으로 말씀을 거부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들은 말씀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마귀는 불신을 심고 생명의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특히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는 모든 권위를 부정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시켜 버리고 해체시켜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기 안 먹힙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는 것은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이 말씀을 빼앗아 가므로 한 말씀이라도 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격적으로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이들이 마음을 열고 말씀을 믿어 버리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롬10:17)”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8,9).”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마귀의 희생 제물이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둘째,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13).” 이런 사람의 특징은 상당히 감정적입니다. 말씀을 스폰지같이 받아들이고 뜨거워지지만 또 쉽게 냉랭해 집니다. 말씀을 듣고 기쁨에 차 있다가도 가족이나 친구의 한마디 말에 곧 의심을 하고 얼굴이 시커멓게 됩니다. 감정적인 사람은 기분이 나쁠 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의 문제는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데 있습니다. 바위 위에는 흙이 얇게 덮여 있습니다. 따뜻하기 때문에 곧 씨가 나오나 바위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가 돋으면 습기가 없어 말라 버립니다. 곧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올 때는 배반하는 자입니다. 햇빛은 식물이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환난과 핍박도 신앙 성장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을 통해서 자기가 깨어지고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고 말씀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말씀을 묵상하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돌밭과 같은 사람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아니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일대일 공부를 통해 메시지를 기쁨으로 받습니다. 이들은 말씀 자체가 재미도 있고 지식욕도 채워주기 때문에 좋아하지만 시험이 올 때 멈추게 됩니다. 영적 투쟁은 마음의 밭을 깊이 가는 작업입니다. 영적 투쟁을 통해서 자기 안에 있는 바위와 같은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하여 좋은 마음 밭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바위는 무엇입니까? 악한 습관, 게으름, 신앙생활을 자기 유익을 따라서 하는 태도 등 환난을 통해서 이런 바위가 깨져야 합니다. 그런데 밀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협하고 주저주저하고 결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기심으로 인해서 믿음을 배반하기 쉽습니다. 가룟 유다가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진리를 깨닫고 확신해야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며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단3:16-18).

둘째로, 바위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씀에 뿌리를 내리도록 여러 모로 훈련하셨습니다. 폭풍우 훈련을 통해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22-25). 목자 훈련을 통해서 이기심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의 내면성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9:13). 전도 훈련을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령과 싸워 이기도록 훈련하셨습니다(9:2). 자기 야망과 세상 소망과 이기심의 바위를 깨어내도록도전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이들은 본래 세속적인 욕망에 가득 찬 쓸모없는 사람들이었으나 이러한 신앙 훈련을 받았을 때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큰 일을 하고자 한다면 신앙 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훈련없이 휼륭한 군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신앙 훈련없이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하는 자를 훈련한다고 하셨습니다(히12:6). 순종, 희생, 겸손, 절제, 영성 등의 신앙 훈련없이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습니다. 훈련이 없는 신앙인은 온실 신앙, 분위기 신앙인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의 요셉이나 다윗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훈련을 10년 이상 깊이 받고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셋째, 가시밭과 같은 마음 밭(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14)” 이는 기본적으로 씨가 자랄 수 있는 좋은 마음 밭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시떨기가 섞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의 씨가 자라지만 가시떨기도 함께 자랍니다. 가시는 더 무성하고 억셉니다. 가시의 뿌리는 엄청난 세력으로 양분을 빨아들입니다. 가시떨기의 기운에 막혀서 나무가 자라서 열매 맺을 힘이 없습니다. 영적인 소원도 있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열매가 없는 사람은 거의 가시떨기로 인해 기운이 막힌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세 가지 가시를 지적하셨습니다.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첫째로, 세상 염려. 신자들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대의 대세를 따라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 때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면 염려가 들어와 마음을 갉아먹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 복음 역사를 섬기기 위해서 시간을 드리면 다른 사람에게 뒤쳐질까 하는 염려, 물질을 드리는데 너무 드리면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먹고 사는 염려, 하루라도 쉬는 것이 염려가 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염려, 부모님을 어떻게 봉양할 것인가에 대한 염려, 빚 염려 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5). 바울 사도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빌 4: 6).

둘째로, 재리 유혹.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돈이면 피상적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하나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가시밭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재리의 가시에 심령이 막혀서 열매 맺지 못하는 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자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돈을 벌고자 욕심을 부릴 때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칩니다. 한 목자님은 일에 대한 욕심을 회개하고 토요일에 쉬면서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자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자님의 결단을 축복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육신의 쾌락도 신앙의 심각한 방해물입니다. 육신의 모든 즐거움이 악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정당한 즐거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즐거움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한계 안에서 절제 있게 누려야 합니다. 욕심이란 채워도 채워도 만족할 줄 모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영적으로 기운이 막혀 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열매도 갖고 싶고 세상의 것도 다 갖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보화를 사자니 자기 소유가 아깝고, 소유를 지키자니 그 보화가 너무 아깝습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데 계약만 해 놓고 결단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소욕의 사람은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매일 회개하고 결단하고 마음에서 가시떨기를 뽑아내야 합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딤전5:6).”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면 교육과 훈련에다 영적인 생활을 통해서 스피릿이 충만해야 합니다. 가지를 치고 한 가지 일에 집중을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 밭(15). 15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좋은 땅’이란 땅이 굳어 있지 않고 아주 부드럽습니다. 바위 돌이나 가시떨기가 제거된 부드러운 땅을 말합니다. 기름진 옥토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까?
  먼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하고 겸손한 심령의 소유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이들은 말씀을 그대로 듣고 영접합니다. 다음으로 말씀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것은 그 말씀을 간직하고 생활에 적용하여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인내로 결실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실천하는 것이 어려움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계속적 실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때로 시험거리도 있고 고난과 핍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아는 자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바로 아는 자는 인내하며 그 말씀을 붙들고 실천할 것입니다.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소망 가운데 씨를 뿌리고 인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말하며 떠나갔을 때, 베드로는 주께 고백하기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했습니다(요 6:68). 우리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을 실천할 때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인내할 때 결국에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때 어느 정도 열매를 맺게 됩니까? 8절을 볼 때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했습니다. 열매를 맺는 씨는 한 번에 백배를 맺습니다. 열매 맺는 한 알의 밀이 뿌려진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우리가 맺히는 열매는 소극적으로는 예수님의 내면성을 덧입어 좋은 영향력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전도와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을 맺을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진정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을 때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16-18절에서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이 세상에 대해서 할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주님은 복음의 빛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의 큰 비밀을 가진 우리는 말씀의 등불을 숨기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18절에서 예수님은 거듭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듣는가 삼가라고 하십니다. 삼간다는 것은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더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히2:1).” 우리가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세속으로 떠내려가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음을 화합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됩니다. 

  19-2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가족으로 영접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지킬 때 영적인 가족 공동체 즉 교회를 형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는데 여러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풍성할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을 소망합시다.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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