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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gen22(37,38장)/꿈꾸는 요셉(이예레미야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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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3,759회 작성일 05-08-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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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창세기 22 강
말씀 / 창세기 37:1-38:30
요절 / 창세기 37:9
꿈꾸는 요셉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9)

우리는 어린 아이에게 “너는 장차 꿈이 뭐냐?”라고 묻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답을 통해 그 아이의 성향을 알고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사람은 꿈을 꾼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됩니다. 그런데 진짜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따라서 꿈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자와 같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요셉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꿈으로 가득 차기를 기도합니다.

I. 꿈꾸는 자 요셉 (37:1-11)

요셉의 이야기는 그가 열일곱 살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아버지 야곱은 네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야곱은 다른 열 한 명의 아들들보다 요셉을 훨씬 더 사랑했습니다. 야곱의 요셉에 대한 사랑은 아마 라헬이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기 때문에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35:16-20) 요셉은 많은 이복형제들로 복잡하게 얽힌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의로운 소년으로 자라났습니다. 37:2을 보면 요셉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아버지의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때마다 양을 방치하고 동네 처녀들과 놀러 다니고 때로는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양을 몰래 팔아먹었습니다. 요셉은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일렀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가시 돋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야곱은 요셉에 대한 사랑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요셉에게는 최고급 명품을 입히고, 형들에게는 중국산 짝퉁을 사다가 입혔습니다. 식사할 때도 항상 옆에 두고 맛있는 음식만 골라 주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복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고자질쟁이’ 라고 욕하면서 ‘두고 보자’ 하며 이를 갈았고 매사에 왕따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혼자서도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형들은 더욱 화가 났습니다.

어느 날 요셉은 형들에게 어젯밤 자신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6,7) 형들이 참다못해 한마디씩 하였습니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8) 요셉의 꿈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또 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9) 이 꿈은 한 수 더하여 요셉의 형제들만이 아니라 요셉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요셉에게 절한다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왕과 같은 지도자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꿈은 요셉을 사로잡았고 그 인생을 인도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는 그를 더욱 시기하여 죽도록 미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 야곱은 그의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이삭과 야곱에게도 주셨습니다. 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꿈을 주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꿈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꿈을 주셨고, 사도 바울을 부르실 때는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축복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삽니다. 그 꿈이 삶에 끊임없는 추진력을 불어 넣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강한 생명력이 있어서 그 인생에 박진감이 넘칩니다. 꿈꾸는 자는 현실이 좀 어렵더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현실의 상황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뛰어넘습니다. 자신의 온 인생과 온 힘을 쏟아 부으며 꿈이 성취 될 때까지 매진하게 됩니다. 반대로 꿈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영육 간에 별로 바랄 것이 없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힘들게 살아도 무엇을 위해 고생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한숨과 불평이 절로 나오며, 혼돈과 방황 끝에 무기력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어야 합니다.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 모두를 던져 넣어도 아깝지 않을 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먼저 우리 각자에게는 개인적인 꿈이 있습니다. 선한 목자로서의 꿈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꿈이 있습니다. 직장과 학교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꿈이 있습니다. 결혼의 꿈이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소박한 꿈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꿈은 사망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영생을 얻으며, 우리 몸이 변화되어 해 같이 빛나고,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 앞에 서는 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하는 꿈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꿈에 사로 잡혀 예수님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 천하만민이 구원을 얻는 꿈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UBF에 주신 꿈은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입니다. 우리에게는 2007년까지 배가의 역사를 이루는 꿈이 있고, 2041년까지 233개국에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동교센터에 주신 꿈은 10년 내에 학생이 학사의 4배가 되는 꿈입니다. 학사님들은 자신의 좌우와 앞뒤에 학생들이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보이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 꿈을 끝까지 붙잡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준비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 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습니다. 꿈을 꾸지 않거나 꿈을 포기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끝까지 붙들어야겠습니다. 꿈의 성취를 체험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목자님은 “규환 형제는 교수목자가 되면 좋겠네” 말씀하셨습니다. 대학원 때, 지도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너희는 외국에 나가서 교수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꿈을 꾸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주신 꿈을 친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서, 저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개척자로 나아가는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새로운 꿈을 주십니다. 이는 제가 캠퍼스를 마음에 품고 목자의 심정이 가득 차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꿈입니다. 150 명의 양 떼 앞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꿈입니다. 무엇보다 해 같이 빛나는 신령한 몸을 입고 저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을 만나는 꿈입니다. 제가 이러한 꿈들에 사로잡히고 그 꿈들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매일매일을 전력을 다해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꿈꾸는 자의 생활 (37:12-36)

야곱은 요셉을 무척 사랑했지만 그를 온실의 화초처럼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할 일을 주어 그를 적절히 훈련했습니다.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 야곱의 양떼를 칠 때에 야곱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이에 요셉은 헤브론 골짜기를 떠나 세겜으로 갔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대략 70킬로미터인데, 요셉은 그 먼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겜에서 형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은 광야였고, 도적과 맹수들이 언제 덮쳐 올지 모르는 곳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적당히 찾다가 못 찾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면서 들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물으니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서도 북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더 가는 곳입니다. 요셉은 거기까지 가서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아버지의 명령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처럼 되는 꿈을 꾸었지만, 아버지의 작은 심부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성실하였고 현재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꿈을 가진 자의 일상 생활입니다. 우리가 현재 주어진 일에 충성될 때, 하나님께서는 이를 쓰셔서 우리의 꿈을 이루십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은 학자로서의 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승리하려면 업무에 성실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어야 합니다. 목자로서 꿈이 있는 사람은 양을 만나러 캠퍼스에 올라 가야 합니다. 선교 비전이 있으면 어학을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자립할 것인지 정보를 수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몽상가를 쓰실 수 없으십니다. 이상은 하늘을 날아도 발은 땅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현재 주신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일을 충성되게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요셉은 멀리서 형들을 보고는 너무 기뻐하면서 형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18-20) 그들은 다가오는 요셉을 멀리서 보고는, 그를 죽이고자 하는 끔찍하고 잔인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음모의 발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셉이 들려준 꿈 이야기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가진 꿈을 미워하고 짓밟아 죽여 없애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꿈이 있으면 언제나 그 꿈을 미워하여 죽이려는 자들이 있음을 배웁니다.

형들은 요셉이 도착하자 요셉을 붙잡아 채색 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요셉은 울며 애걸했지만 무정한 형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는 태연히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25) 이를 본 유다는 요셉을 죽이기 보다는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자는 제안을 했고, 형제들은 이를 좋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은 이십 개에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거기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왕과 같은 지도자가 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로 전개 되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꿈을 주신 자들을 고난의 학교에 입학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에서 학년이 높아지면 고난도 깊어집니다. 하지만 졸업식에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실로 요셉의 시련은 꿈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이 만약 헤브론에서 아버지 야곱과 함께 계속 살았다면 그는 잘해야 아버지 야곱의 계승자가 되어 형들을 피해 따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당시 최강국이었던 애굽으로 보내심으로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꿈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고난의 학교에 입학하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 학교의 졸업생이십니다. 꿈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의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야겠습니다. 오직 고난을 감당함으로 꿈을 이루어야겠습니다.

시기심으로 동생을 팔아버린 형들은 요셉의 채색 옷을 취하여 염소의 피에 적시고 아버지께로 가져갔습니다. 야곱은 이를 보고 악한 짐승이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했습니다. 그의 모든 자녀들이 와서 위로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죄는 아버지 야곱에게 가슴을 찢는 슬픔을 가져다 주었고, 그들 자신들도 양심의 가책 가운데 살게 했습니다.

III. 유다와 다말 (38장)

저자는 잠시 요셉의 이야기를 접고 유다에게 있었던 한 가지 사건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요셉의 일로 죄의식에 눌려 아버지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았지만, 아들 둘을 잃고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 보냅니다. 유다는 곧 아내까지 잃은 후,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쌍둥이를 얻게 됩니다. 열매 없는 인생 살기를 거부한 며느리 다말의 진심을 이해한 유다는 마음을 돌이키고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 야곱의 집으로 돌아 옵니다. 이 사건은 매우 수치스러운 사건이기 때문에 그냥 빼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이 기록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메시야의 조상이 요셉이 아니라 유다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첫째 아들이 아니라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요셉을 시기한 형제중의 하나였고, 요셉을 팔아 넘긴 인신매매의 주모자였습니다. 이제 며느리와의 수치스러운 사건까지 생각할 때, 그는 여러모로 메시야의 조상으로서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유다가 회개하도록 도우셨고 그가 신실하게 회개하였을 때, 그를 메시야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꿈을 가진 자는 현재의 일에 충성해야 하고 반드시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야 함을 보았습니다. 우리 각자가 위대한 꿈에 사로 잡혀서 인생을 투자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꿈의 성취를 체험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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