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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14년 추수감사절(시107:1-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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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14-11-16 16:52

본문

2014년 추수감사절 특강
말씀 | 시편 107:1-22
요절 | 시편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라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동안 우리와 함께 하시고 많은 복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돌아보고 기억하는 가운데 온전한 감사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할 제목은 무엇입니까?

  첫째, 여호와께 감사하라.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는 불평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좋으면 감사하고 나쁘면 불평합니다. 이것은 본성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된 비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모든 상황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대상은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산천초목을 볼 때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보게 하시고, 아기자기한 산야를 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은 사자보다 산 개가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며 그를 찾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 선한 뜻을 두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는 금요일에 김희아씨의 간증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붉은 반점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고아로 성장했고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루는 손으로 반점을 짓누르며 슬퍼 할 때에 한없이 우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외모지상주의로 인해서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에 있는 붉은 반점으로 인해서 함께 아파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만나자 그녀의 마음의 상처들이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창조하신 선하신 하나님을 슬프게 한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때 자신의 외모로 인해서 하나님을 눈물 흘리게 하지 않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범사에 감사제목을 찾고 감사하는 생활 습관을 갖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예쁜 여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좋은 남편도 만나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버린 부모를 마음으로 용서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필요를 채워주시며 때로는 훈련하시고 때로는 치료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어느 새 마음이 높아져서 감사를 당연시 하고 점차로 잊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죄를 짓고 하나님께 등을 돌려버립니다. 죄로 인해서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릴 때 궁핍해지고 환난을 당합니다. 이상하게 원수들이 생기고 사는 것이 힘겨워집니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에 죄악된 인생을 치료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이렇게 인생들이 축복과 환란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고리를 끊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축복의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받은 복을 나누어 주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눌수록 풍성해지고, 힘써 자신을 드려 사명을 감당하면 죄를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삶이 풍성해집니다. 영향력이 확대됩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인자하시다고 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약을 어겨도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영원히 지키십니다. 그는 우리가 죄의 유혹에 연약한 것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는 죄인들을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가 그를 떠날 때에도 돌아오기까지 오래 오래 참으십니다. 탕자와 같이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허랑방탕하게 되어 돼지 쥐엄열매로 허기를 채우고자 하여도 채울 수 없는 지경이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누렸던 풍성함을 기억하고 제정신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자기 발견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종된 인간들은 그 내면에 만족이 없기 때문에 죄가 주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타락의 끝에 까지 가보고 싶어 합니다. 망가질대로 망가져보기를 원합니다. 죄에 대한 욕망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의 죄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 속에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터진 항아리에 물을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죄의 쾌락에는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다가 죽어야 끝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십니다. 우리가 멸망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량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바라보면 구원의 길을 찾게 됩니다.

  둘째, 구원 받은 것으로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속량은 노예를 값을 치루고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원수는 우리를 노예로 삼기까지, 아니 죽기까지 붙잡아두기를 원합니다. 그 힘은 매우 강하여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원수의 손아귀에서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 신음합니다. 원수는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죄책감으로 인해서 고통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자 하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고 마음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집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얼마나 고통하였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후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인생은 광야 길과 같습니다. 광야 사막 길을 걸어갈 때 특징은 뜨겁고 갈증이 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입니다. 쉽게 지치고 피곤합니다. 길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목적지가 있어도 가는 길을 모를 때 방황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게 됩니다. 시간도 많이 허비하게 됩니다. 젊은이들은 배우는 과정 속에서 또는 졸업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길을 찾아 방황합니다. 방황이 오래 되면 지치게 됩니다.
 
  그러나 방황하며 고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할 때에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야 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주님은 들으시고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거주할 성읍은 방황하는 광야 길과 대조적입니다. 거주할 성읍에 물이 있고 양식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있고 그늘 아래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리고 기쁨의 환호성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습니다. 양을 찾아 캠퍼스를 방황하던 목자에게 거주할 성읍은 말씀을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한 양이 될 수 있습니다. 직장의 힘든 노동에서 고생하는 목자님에게는 일찍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거주할 성읍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자기가 일생 쏟아 부어야 할 일을 발견하는 것이 거주할 성읍이 될 것입니다. 선하시고 그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나아가 부르짖을 때에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정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일들이 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의 힘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 성취되는 기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일을 베푸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지혜와 권능을 행하시며, 그분을 찾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이적을 베푸십니다. 구속받은 모든 사람들의 삶은 이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삶에서 기적을 보고 깨닫는 사람의 입에서는 찬양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합시다. 그는 우리의 삶에 만족을 주시고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늘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한 불신으로 인해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살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생겨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기적입니다.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고 판단과 교만한 말을 쏟아내던 사람이 변화되어 격려와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변화가 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던 사람이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성장이 기적입니다. 자신의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펑펑 쓰던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와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돈과 시간을 아낌없는 드리는 사람이 된 것이 기적입니다.

  또한 우리가 병에 걸렸다가 나음을 받거나 사고를 당하고 나서 회복되면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병에서 나음을 받는 것도 기적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큰 기적입니다. 매일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요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과 보호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평범한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우리 삶에 일어난 기적을 많이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는 그것이 복입니다.
 
  넷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계속해서 앉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그 길을 멈추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살펴보고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길을 열어주십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또는 열릴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무조건 길을 뚫겠다고 벽에다 몸을 부딪치면 자기만 상하게 됩니다. 몸을 부딪쳐도 문에다 부딪쳐야 길이 열립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곤고와 쇠사슬에 매여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고 겸손해져서 주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엎드러져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비참합니다. 혼자서 그 고통을 다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십니다. 그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줄을 끊어 주십니다.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셔서 갇힌 자를 구출해 내십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개입으로 구원을 주십니다.

  죄인들은 미련합니다.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릅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미련한 자는 육신적인 탐욕만을 추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미련해집니다. 그들이 이런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이 심해지면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됩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입니다. 이런 인생들이 구원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어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고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구원이 임합니다. 한 분은 오랫동안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죄 문제로 잠 못 이루며 고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일용할 양식을 매일 빠지지 않고 먹으면서 깊이 회개의 투쟁을 감당했습니다. 그럴 때 그를 억누르던 모든 죄의 짐들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목자님은 장막 화장실에서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엿보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깊은 두려움으로 장막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가 있는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그 얼굴이 생각이 나고 따라다녀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일용할 양식을 묵상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을 난파선에서 보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배가 폭풍으로 난파해서 바울을 포함해서 286명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의 생명을 환난 가운데서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바울에게 로마 복음전파라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받을 때 그는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장막으로 다시 들어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막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린다는 것은 말로써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제물과 행위를 통해 그분을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제를 드리는 것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부르짖을 때에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말씀이 없어 기갈 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때마다 말씀을 보내시어 배부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립시다. 우리가 드릴 감사 예물은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젊음이 될 수도 있고 우리의 삶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감사의 예물을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가정에서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전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증거 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게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끼칩니다. 또한 우리 자신에게는 기쁨이 넘칩니다.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우리를 영원히 사랑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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