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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14년 헌금특강: 유형별 헌금의 의미와 자세(요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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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14-11-10 15:22

본문

2014년 헌금특강
말씀 : 마태복음 6:19-34
요절 : 마태복음 6:19,20
유형별 헌금의 의미와 자세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늘 주일 말씀은 헌금특강입니다. 우리는 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등 여러 종류의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고 또 그에 따른 약속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헌금에 대해 공부하고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이번주 하나님께서 헌금에 대해 공부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드리고 있는 헌금의 영적인 의미와 축복을 깨닫고 바르게 헌금을 드려서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헌금에 대해 배우기에 앞서 헌금생활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본문말씀에 기초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헌금생활은 우리의 보화를 하늘에 쌓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6:19절을 보면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이 땅의 보물은 좀이나 동록이 해하거나 도둑이 구멍을 뚫고 훔쳐 갈 수 있습니다. 죽으면 다 남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모든 것은 하늘에 쌓입니다. 그 헌신 가운데 헌금도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헌금생활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둘째로 헌금생활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고백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많은 사람이 돈을 하나님과 같이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장기만 파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팔고 영혼도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헌금을 한다는 것은 최소한 우리는 돈을 섬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헌금은 우리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헌금생활은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33절을 보면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좀처럼 변화되지 않은 죄성이입니다. 그것은 항상 내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과 그의 나라는 다음이고 내가 복 받고 행복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헌금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먼저임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결단하고 하나님께 드리면 물질의 복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헌금생활은 우리가 정함이 없는 물질이 아닌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유형별 헌금의 의미와 자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헌금의 의미와 축복을 깨닫고 우리 안에 헌금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십일조 헌금. 십일조 헌금은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드리는 헌금입니다. 레위기 27:30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의 십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의 십을 대표해서 십의 일을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일조는 십의 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사실 십의 십을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십일조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일조를 드릴 때 십의 십이라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면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십일조 헌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말라기3: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라 보라”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까지 십일조 헌금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일조 헌금을 할 때 우리가 자신과 물질을 주인삼는 우상숭배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십일조를 할 때 그냥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축복을 믿음으로 들여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상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첫째로 먼저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것을 쓰는 것이 바른 십일조생활입니다. 많이 버는 분들이나 적게 버는 분들이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쓸 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가 쓸 것을 먼저 쓰게 되면 내가 쓸 것도 부족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범하기 쉽니다. 어떻게 십일조를 드린다 해도 이는 하나님을 남은 찌꺼기로 대우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십일조는 먼저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정확히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소득이 많든지 적든지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퇴직금이나 부동산 양도소득, 사업소득에 대한 십일조는 금액이 클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 한 구석에 아까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명하시대로 정확히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보너스나 이자소득과 같이 작은 소득도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첫 열매. 첫 열매란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 가축의 경우에는 첫 새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니 헌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출13:2) 십일조가 십의 십을 대표하듯이 첫 열매는 그 후에 맺힐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그렇기에 첫 열매를 드린 것은 모든 열매를 드린 것과도 같습니다. 십일조는 열매를 얻을 때마다 드리는 반면 첫 열매는 단 한번만 드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첫 열매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드리도록 하셨습니다.(출23:19) 이는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과 더불어 하나님이 주실 열매를 바라보며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첫 열매를 드린 자를 더 풍성한 열매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첫 열매는 비난 물질만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 첫 자녀, 마음의 첫 자리, 물질을 쓸 때도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모든 것이 첫 열매의 신앙입니다. 최초로 첫 열매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아벨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셨다고 합니다.(히11:4) 이는 그의 예물이 피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양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양의 첫 새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예물로써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고 하나님은 이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추수감사 예배를 드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첫 추수감사 예배가 바로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수확한 첫 열매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이처럼 첫 열매는 하나님께 최고의 것, 최상의 것,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첫 열매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에게 첫 열매는 첫 월급입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할 때 말고 정식 직장을 얻었을 때의 첫 월급입니다. 우리는 첫 월급으로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특히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과 고마우신 분들에게 선물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도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첫 열매는 평생에 한번 드리는 헌금입니다. 그렇기에 한번 놓치면 평생 드릴 수 없는 헌금입니다. 첫 월급을 통해 하고 싶은 게 많겠지만 우리는 이를 부인하고 첫 열매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 있고 더 많은 열매로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첫 열매를 드릴 때 믿음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셋째, 주일헌금. 출애굽기와 신명기 말씀을 보면 제사나 절기를 맞아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출23:14,신16:16) 이는 하나님께서 예물을 좋아하시거나 예물이 필요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예배자의 마음을 준비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님께 빈손으로 나오는 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빈손으로 나왔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난해서, 번거로워서, 잊어버려서, 아까워서, 이번 한 번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등등..,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마음은 무성의하고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성의를 갖고 예배에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주일예배를 참석할 때마다 드리는 주일헌금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작은 예물에 담아 드리는 “성의헌금”이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예배를 드릴 때마다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드리는 방법은 교회마다 다양합니다. 우리처럼 예배시간에 헌금바구니를 돌리는 교회도 있고 예배당 입구에 헌금함을 두고 예배시간에 헌금을 하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주일헌금의 의미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 우리의 마음을 성의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있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일헌금은 예배 전에 준비하고 이왕이면 한 주간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적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마음의 예배를 드리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면 주일헌금을 얼마나 드려야할까요? 주일예배에 드리는 헌금의 액수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성경도 액수를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주신대로 그 마음에 정한대로 드리면 됩니다.(신16:17,고후9:7) 우리가 예배 전에 주일헌금을 준비하는 거룩한 습관을 만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넷째, 감사헌금. 시편50편을 보며 시인은 하나님을 심판장으로, 그의 백성을 제사를 위하여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시50:5,6) 그런데 본 시편을 보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제사를 책망하십니다. 이는 그들의 제물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제사에“감사”가 빠졌기 때문입니다.(시50:8,14,15) 세상만물과 생축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제물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 마음이 바로 “감사의 마음”입니다. 시편50:23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로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의 마음은 없이 예물만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형식적인 제사를 받으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감사를 잃어버릴 때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이 형식적이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여러 일들을 섬깁니다. 말씀, 기도, 찬양, 헌금 그리고 사모님들과 자매들은 열심히 식사를 준비합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감사의 마음이 없이 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런 일들을 그냥 일로써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도덕적으로 타락에 빠집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 결과 예배를 드리고도 마음이 허전하니까 죄를 짓고 세상의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는 우리의 삶을 죄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이 복되고 풍성하게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매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을 투명인간으로 취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신자가 감사를 잃어버리면 불신자나 다름없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상실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 문제인가를 깨닫고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것과 감사헌금은 별개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21절에“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예물로써 표현해야 합니다. 바로 이를 위해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감사헌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매주 주일헌금을 “감사헌금”이란 명목으로 드리고 특별히 감사할 일들이 있을 때 “특별감사헌금”을 드립니다. 결혼할 때, 아기가 태어났을 때, 취업했을 때, 승진했을 때, 우수논문에 뽑혔을 때, 죄 문제를 해결 받았을 때,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 말씀의 종으로 택함을 받았을 때 등등...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렇게 감사헌금을 통해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유형의 헌금이 있지만 감사헌금만이 갖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가장 자발적인 헌금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주일헌금은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 의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헌금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헌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만이 드릴 수 있는 헌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는 가장 순수한 동기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헌금입니다. 둘째로 영원성이 있는 헌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도 헌금을 할까요? 사도요한은 환상을 통해 천상의 예배를 보았는데 그 예배 가운데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아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계4:9) 우리는 이를 통해 예배가 영원하듯이 감사도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때는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닐지라도 분명 예배 가운데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감사헌금은 영원성이란 특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섯째. 선교헌금. 이는 선교역사를 감당하는 선교사와 선교역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헌금입니다. 우리는 빌립보서에서 선교헌금의 모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감옥에서 옥고를 치루고 있는 선교사 바울을 돕기 위해 여러 번 헌금을 보냈고 빌립보서를 쓸 당시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헌금을 보냈습니다. 빌립보서는 그것에 대한 답례로 바울에 의해 쓰여진 서신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 빌립보 교회에 선교헌금의 영적인 의미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첫째로 선교헌금은 선교사들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빌4:10-14)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서 선교헌금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는 그가 궁핍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정 기뻐한 이유는 선교헌금을 통해 빌립보 성도들이 그를 얼마나 생각하는지와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선교사 바울은 큰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둘째는 선교헌금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입니다.(빌4:15-18)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향기로운 냄새는 대개 제물을 온전히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인 경우가 많은데 그때 향기로운 제물은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인간적인 유익이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순전히 선교사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마음으로 드려진 선교헌금은 바로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선교헌금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교헌금에는 여러 영적인 유익이 따릅니다. 첫째는 선교헌금을 통해 선교사와 후원자의 관계가 아주 각별해집니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된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들도 가난했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이 받는 고난을 생각하며 그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선교헌금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시기를 위해 믿음으로 축복해주었습니다.(빌4:19) 그들은 선교헌금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각별한 관계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선교헌금을 통해 후원자는 선교역사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가 선교사로 나가지는 못합니다. 또한 모두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선교의 전방으로 나가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후방에서 그들을 지원해줄 후원자들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선교현장에서 직접 헌신하고 후원자들은 선교헌금과 기도로써 선교역사에 간접적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질 때 선교역사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 센터는 1987년 종로에서 나와 신수, 화랑, 명지, 영남 등 4개 국내지부를 개척하고 11개국에 76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저희는 현재 영남센타와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매월 정기적으로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고 선교사님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그들의 필요를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돕기에는 현재 우리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계속하여 선교사님들을 파송하고 파송된 선교사님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목자님들의 직장과 손대는 모든 일마다 넘치게 축복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섯째, 구제헌금. 이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드리는 목적헌금입니다. 고린도후서에 구제헌금의 모범적인 사례가 나옵니다.(고후8,9장) 예루살렘 성도들은 극심한 기근으로 인하여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마게도냐 성도들이 그들을 돕기 위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구제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들도 극한 가난이 있었지만 복음을 전해준 보답이요 성도를 섬기는 일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넘치는 헌금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마게도냐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하였고 그들의 헌금에 대해 이는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린 것이라고(고후8:5) 그들을 격려하며 구제헌금의 영적인 의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구제헌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고후8:8)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요일3:17)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모른 척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구제헌금은 이웃 사랑에 대한 진실함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둘째로 평균케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고후8:13) 구제헌금은 유여한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채우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궁핍한 자와 그보다 여유 있는 자가 평균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가난하게 되신 예수님을 본받는 의미가 있습니다.(고후10:9) 예수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입니다.(고후8:9) 우리는 구제헌금을 통해 우리를 부요케 하신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구제헌금은 예수님을 배우고 그와 연합할 수 있는 은혜의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제헌금에 따르는 축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며 모든 은혜를 더해 주시고(고후9:6-11) 그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잠24:11,12)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눅6:38) 이처럼 구제헌금은 신구약을 관통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들이 넘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제헌금을 할 때 인색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되겠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는 매년 연말에 구제헌금으로 보배합을 약정하여 북한과 아프리카의 식량지원과 유진벨 재단을 통해 북한 어린이와 결핵환자를 돕는 선한 사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수해와 지진의 피해를 입은 태국과 터어키에, 2012년에는 우간다 베데스다 클리닉센터 건립을 위해, 2013년에는 필리핀 태풍피해 난민을 위해 구제헌금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0:42) 우리가 이처럼 복된 일에 때마다 즐겁게 동참하여 넘치는 구제역사를 섬길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일곱째, 건축헌금. 이는 교회를 건축하거나 유지보수를 위해 드리는 목적헌금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성막을 짓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예물을 가져오라 하시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드리는 것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출25:1-8) 이에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들이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옷이나 예물들을 드려서 성막을 지었습니다. 학개서를 보면 성전은 다 쓰러져 가는데 자기 집을 사고 낙타를 사고 집안을 장식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엄히 책망하시며 성전을 재건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1:4), “너희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1:8) 우리는 이를 통해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며 성전에 대해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자기 백성들에게 예물을 드려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공동체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성전, 진정한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건물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면 건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동체를 담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이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의 역사를 동역하여 섬깁니다. 하나님은 그 장소를, 그 터전을 다른 누가 아닌 스스로의 헌신으로 마련토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에 헌신할 뿐 아니라 하나님 역사에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헌금만이 갖는 특징이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첫째로 건축헌금은 다른 헌금에 비해서 큰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우리 안에 공동체 의식과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건축헌금은 우리에게 큰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건축헌금은 다음 세대를 위한 헌신입니다. 우리는 5년 전에 건축을 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대부분 30~40대이고 아이들은 10대이거나 10대미만입니다. 이곳에서 우리 학생들과 2세들이 주님의 제자로, 헌신자로 성장하여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건축역사는 공동체의 비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는 학개서 말씀을 통해 이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축복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보이는 건물이 아닌, 보이지 않는 건물을 세우는데 힘을 쓰고자 하는 영적인 비전가운데 건축을 했습니다.(학2:9) 올해 저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대출금을 모두 갚았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의 헌신을 넘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을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와 홍대 땅을 젖히고 세계 캠퍼스를 젖히는 말씀의 시온으로 삼아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상으로 우리가 드리고 있는 헌금의 유형과 영적인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헌금특강을 다 듣고 나서 “헌금의 종류가 이렇게 많구나. 신앙생활도 돈이 있어야 하나?” 하는 염려가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헌금은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헌금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들이 가끔 돈이 없을 때 헌금을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인 제게는 매우 자연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들이 “우리 아버지는 돈도 없고 달라고 해도 주시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제게 참으로 민망하고 황당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는 제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데 하물며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헌금 때문에 근심하는 것을 보시면 참으로 민망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헌금을 드리고자 결단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야곱의 서원입니다. 그는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중에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때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며 집에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20년 후에 거부가 되어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우리 목자님 중에도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한 목자님은 실수로 연봉을 십분의 일로 나눠서 월 십일조를 약정했습니다. 원래는 열둘로 나눠야 맞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를 알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약정한 것이니 이행해야 한다며 약정한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그는 생각지도 못하던 진급을 하여 그의 연봉은 그가 약정한 십일조대로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부호 석유왕 록펠러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는데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했습니다. 그 때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습니다.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록펠러가 대 부호가 된 것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틴루터는 사람의 회심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그리고 지갑의 회심입니다. 머리로 회심하는 것은 쉽지만 가슴으로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지갑의 회심은 실천을 뜻합니다. 가슴으로 믿는다 해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루터는 먼저 복음을 머리로 알고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 다음에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심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을 모으고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실천의 단계까지 가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헌금생활은 회심한 자의 징표이며 진정한 회심의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은혜의 수단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이제까지 헌금을 해 왔지만 오늘 헌금특강을 통해 배운 대로 헌금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헌금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더 풍성케 되고 물질생활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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