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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마 31강(26:1-30) 언약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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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1회 작성일 14-10-19 13:22

본문

2014 마태복음 31강
말씀 | 마태복음 26:1-30
요절 | 마태복음 26:28

언약의 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우리가 계약을 하기 위해 도장을 찍을 때 인주 색깔은 붉습니다.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약을 파기하면 죽음을 각오하라는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옛날 성경은 대개 붉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하면서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시고 살을 상징하는 빵을 뗍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이 흘리신 언약의 피가 의미하는 바를 깊이 생각하며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설교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에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번 유월절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말씀들이 성취되는 감격적인 날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짐승으로 대신해 왔던 제사가 그치고 단번에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죄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죄와 사탄으로 인한 결박이 풀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때를 위해서 오셨고 일생 준비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을 했습니다. 그들은 민란이 날까 두려워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무교절이라고 하는 7일간의 추수 축제 절기와 연이어 있기 때문에 8일간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유대인들까지 다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이때 백성들에게 인기가 좋은 예수님을 체포한다면 거대한 군중 폭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봉기로 인해 로마의 심기를 건드리면 자신들에게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무리가 빠져나간 명절 이후에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유다의 배반으로 인해서 갑자기 예수님이 체포되고 유월절에 맞추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다른 시간을 계획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과 섭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이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언약하신 대로 예수님을 바로 그 날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 화목제물로 희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주권자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온갖 꾀를 다 내어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지만 결국 인간의 뜻은 무산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시간 계획표를 따라서 이루어집니다. 시간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시간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이 시간을 영원으로 돌리실 분도 하나님이시십니다. 이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전개하던 중에 저자 마태는 갑자기 한 여인의 등장을 기록함으로 드라마틱한 전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는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옥합을 팍 깨뜨려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향유 한 옥합은 노동자의 일 년치 품삯에 해당이 됩니다.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을 300만원으로 잡으면 3600만원입니다. 이는 이 여자의 결혼 자금에 해당이 되는 목돈이었습니다. 그녀의 진심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여자는 자신의 결혼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결단을 한 것입니다.

  여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머리에서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향유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분개했습니다. 그들은 여인에게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라며 쓸데없이 낭비한다는 투였습니다. 유월절에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관습이 있었고 제자들도 이 일에 동참해야 했는데 항상 돈이 부족했습니다. 이 귀한 향유를 자신들에게 주었다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요긴하게 쓰였을텐데 아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실용적인 생각으로 볼 때 여인은 바보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은 무엇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여자가 한 일을 내게 좋은 일, 아름다운 일이라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인의 행동이 어떤 점에서 아름다운 일입니까? 쏟아 부은 향유가 명품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을 쏟아 부은 여인의 행동 속에 담겨있는 동기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예수님을 향한 마음은 순전했고, 예수님에게 대한 사랑은 불꽃처럼 타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여인의 순수하고 불꽃같은 사랑을 아름답게 여기셨습니다. 이는 그 여인을 아름답게 하고 그 인생을 빛나게 하고 복된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이 여인의 헌신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고 영화롭게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제자들의 말처럼 여인은 향유를 허비한 것이 맞습니다. 그 비싼 향유, 많은 돈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을 자신의 장사를 준비하는 헌신으로 소중하게 받아주셨습니다. 그녀의 낭비 같은 헌신을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고 사용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에게 하는 행동이 여인과 같습니다. 우리는 때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캠퍼스를 한 시간 정도 돌아도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겠다는 양을 만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대일 양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히 보면 실패가 두려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 일에 바쁜 것이 더 인생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헌신과 눈물과 사랑을 좋은 일로 받아 주시고 인정해 주십니다.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부어진 시간과 물질, 청춘은 하나도 허비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 드린 것은 그 어느 것도 허비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두 예수님이 받아 주시고 귀히 사용해 주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축복대로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과 사랑은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곳마다 말해지고 기억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속적인 욕심으로 갈등하며 방황하던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청춘과 물질과 시간을 드려 생명의 꽃이 피어나게 했습니다. 만일 여인이 그 옥합을 예수님에게 드리지 않고 다른 데 드렸다면 잠시 누린 쾌락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이 그것을 예수님에게 바쳤을 때 예수님은 그것을 생명책에 기록해주셨습니다. 그 헌신의 향기와 영향력이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영원히 기억되도록 축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생명의 복음역사는 바로 이처럼 옥합을 깨뜨려 쏟아 붓고 뜨겁고도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곳에서 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황아브라함 선교사님은 은행원으로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멕시코 선교사로 나아가셨습니다. 두 아이들을 남겨두고 황사라 선교사님과 먼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캠퍼스에 나아가 전도하고 일대일을 하고 밤에 자립을 위해서 일을 하였습니다. 물질 자립을 위해 이 분들은 시외로 나가 텐트를 치고 며칠을 장사를 하곤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일대일 약속을 위해 4-5 시간 운전을 하고 강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밤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2년 후에 두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아이들은 1:1에 혼을 빼고 있는 엄마에게 밥 달라 졸라 대고, 둘째 아이는 오줌을 싸고 하여 온 바지가 흠뻑 허리까지 젖어 있곤 하였습니다. 한번은 캠퍼스에서 돌아오니 큰 아이 세한이가 계단에서 넘어져 앞 이빨이 다 깨지고 피로 범벅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헌신은 당시에는 힘든 것이었지만 돌아보니 아름다운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희생과 헌신을 주님께서 쓰시고 축복하셔서 멕시코 우남 센터는 150명 예배와 14개 지부 개척과 16명의 선교사 파송을 이루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복음 신앙을 배운 멕시코 리더들은 남미 각 나라로 개척 선교사로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깨뜨려 드린 옥합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헌신은 우리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행복하게 하며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고 영원한 구속 역사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남겨두는 옥합은 실망과 상처와 허무를 안겨다줍니다. 혹 기쁨과 만족을 줄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잠시요 곧 풀의 꽃처럼 사라지고 시들어집니다. 자신을 위해서 산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삼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다고 하는 말씀을 듣자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꿩 대신 닭이라고 예수님을 팔아서라도 자기의 잇속을 챙기고자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로 은 삼십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가 회개하지 않고 돈을 사랑했을 때 마귀가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회개해야 할 것을 회개치 않을 때 죄의 종, 마귀의 종이 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짓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회개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자기를 속이고 예수님을 속였습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시며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유다는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이 말을 듣고 유다는 나갔습니다. 때는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유다의 배반 때문이 아니라 기록된 대로 가시는 것입니다. 유다의 배반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의 경륜을 따라 예수님은 가셔야 할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회개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리며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신의 탐심과 죄로 인해서 사탄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유다가 나가고 나서 유월절 만찬은 계속되었습니다. 만찬석 상에는 양고기, 쓴 나물, 무교병, 포도주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은 떡을 가시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셨습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요한복음 6:51절에는 이 떡의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떡은 우리의 생명에 필요한 양식입니다. 우리가 튼튼한 몸과 건강을 유지하며 밝고 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양식을 공급받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튼튼하고 건강하며 밝고 활기찬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떡을 받아먹는 자마다 죽음에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고 살아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살을 어떻게 먹습니까? 이는 성만찬 예식을 행함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념하면서 그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포도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 곧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의 피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후에 시내산 아래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면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것입니다(출19:5,6). 그들은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24:3) 말하며 약속을 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에게 드리고 제물의 피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언약의 조건과 의무를 받아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리며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8) 이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의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영적인 간음을 행하고 그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연약함과 악함으로는 언약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짐승의 피로서 세운 언약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없었고 그들의 죄악을 치료하고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같이 돌비에 새기는 언약이 아니라 사람의 심비에 기록하는 언약입니다. 짐승의 피로써 세우는 언약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로 세우시는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바로 옛 언약을 폐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새 언약의 피 입니다. 옛 언약 시대에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성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위기 17: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피는 죄를 속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짐승의 피를 흘려 죄를 속해야 했습니다. 피로써 모든 것이 정결케 되었는데 이는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9:22). 짐승의 피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 대속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온전하지 못하여 죄를 범할 때마다 번거롭게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이는 장차 올 것의 그림자에 불과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들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합니다. 우리의 병든 영혼과 마음은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만이 치료되고 건강하게 회복이 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그와 연합을 이루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아가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승리와 아버지의 나라에서 맞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를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확신시키십니다. 이제 다가올 몇 시간은 명백한 패배로 보이겠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바로 성령의 권능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복음의 놀라운 전파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포도주를 금하겠다는 예수님의 맹세는 전통적인 유월절 절차에 따라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을 암송한 후 네 번째 잔을 마시기 직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네 번째 잔을 미래에 마실 것을 기약하며 보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도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의 새 왕국에서 혼인 잔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과 이 예식을 기념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며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기꺼이 또 기쁨으로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자기 의를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놀라운 기쁨과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피의 언약을 맺고 일생 주님께 충성하며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말씀을 배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언약의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예수님을 배워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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