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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마30강(25:1-30) 착하고 충성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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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14-10-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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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30 강
말씀 | 마태복음 25:1-30
요절 | 마태복음 25:21

착하고 충성된 종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오늘 말씀은 깨어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인 비유를 통해서 가르쳐 줍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입니다.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를 잘 파악하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깨어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슬기롭지만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미련하고 어리석습니다. 또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장사를 잘 하여 유익을 남겨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떻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 처녀의 비유(1-13). 예수님의 재림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등만 달랑 들고 다니는 처녀들은 맵시도 나고 발랄했을 것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등과 함께 기름통을 들고 다니는 것은 거추장스러웠을 것입니다. 어깨가 좋지 않은 처녀들에게는 무겁기도 했을 것입니다. 기름통을 준비해 간 처녀들은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볍게 신랑을 맞으러 가는 다섯 처녀들에게 조롱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은 그들이 기대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왔습니다. 보통 여섯시면 도착해야 하는데 자정이 넘고 새벽녘이 되어 도착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열 처녀들이 다 졸며 잤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가지고 피곤함을 극복하기가 다 어려웠습니다. 오늘날이야 휴대폰이 있어서 어디쯤 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는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이 다 어려웠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려야 했습니다. 열 처녀들은 목이 빠지게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맥이 풀리고 지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처녀들은 신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 중에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사람도 있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미련한 신자들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마음에 끌리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갑니다. 같은 신자이지만 그들은 자아 만족, 자아 성취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반면에 슬기로운 신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어딘지 고생스럽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슬기로운 신자들은 마음이 늘 하나님을 향해 있고 깨어 기도를 합니다. 그들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슬기로운 신자들은 주님이 더디 오시는 이유는 죄인들을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마음을 알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인내심을 가지고 감당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올 것을 알기에 항상 깨어 있습니다. 

  6-9절을 보십시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밤중에 신랑을 맞이하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등불이 없이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신랑을 모시고 신부 집으로 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또 신부 집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기름이 필요합니다. 등불을 들고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춤을 추며 즐기는 순서가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미련한 자들에게 기름을 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냉정하고 의리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맞이하고자 할 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비유에서 기름은 무엇을 비유할까요? 등은 신앙생활에서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것을 말한다면 기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것을 말합니다. 기름은 아주 구체적으로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신다는 약속이 2천년이 지났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을 늦추고 계십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등처럼 예수님에게 대한 사랑과 믿음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할 때 예수님의 재림만 늦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을 제자로 세우는 것, 가정 복음화, 믿음의 결혼 등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에게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름이 더욱 필요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각자의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름은 남의 것을 빌려서 쓸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준비한 기름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버틸 수 없습니다. 개인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끝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는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으면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차에 가스를 채워 놓으면 급하게 차를 쓸 때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과 기도로 준비된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 밤에 올지라도 당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쿵하고 닫혔습니다. 한번 닫힌 천국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버스가 지나간 다음에 손을 들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이 열려 있을 동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문이 닫힌다는 것은 구원의 기회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재림하는 그 날에는 황급하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구원의 문이 열려있을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언제 우리 인생의 문이 닫힐지 모릅니다. 우리가 제한된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소리쳤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주여 주여 불러도 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여기에서 알지 못한다는 동사는 완료형동사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주님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럴 듯 했지만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명목상 신자들이었습니다. 겉모양은 신자와 같았지만 거듭나지 않았고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의롭게 되지 않았습니다. 실제적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죄사함이 무엇인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의 기쁨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몸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들 마음에는 성령이 없었습니다.

  이 비유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과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얄팍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느 때에 주님이 오실지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믿음과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도 헌신도 떨어진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깨어서 일용할 양식을 먹고 기도에 힘쓰며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시대를 분별하며 깨어 행동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달란트 비유(14-30).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을 5만원으로 잡으면 한 달란트는 30억원입니다. 즉 종들에게 각자 재능에 맞게 30억, 60억, 150억원을 맡긴 것입니다. 이 정도의 돈이면 사업을 하기에 충분한 액수입니다. 주인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종들은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충분한 재능과 능력과 시간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장사하여 주님을 위하여 유익을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 주인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돈은 그냥 쌓아두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가만히 두면 물가상승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투자를 해야 돈이 굴러가고 눈덩이 굴리듯이 굴러가면서 돈이 붙는 것입니다. 물론 투자를 하다가 돈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또 언제 투자해하는지도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장사를 하려고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주인에게 달란트를 왜 받았는지, 주인은 그 달란트는 왜 나에게 주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충성된 종들은 주인을 사랑해서 달란트를 사용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달란트를 사용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일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일하는 의미를 찾게 되니 열정도 생겼습니다. 지혜도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도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재능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때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칭찬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을 했습니다. 결산을 했다는 것은 목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신 후 우리 각 사람을 불러 회계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자의 인생을 결산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능력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결산을 하여 얼마를 남기고 얼마가 부족한지를 알아야 지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평가를 할 수 있고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이 생깁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해마다 연요절을 씁니다. 그리고 새해의 방향과 기도제목을 잡습니다. 이런 삶이 쌓이면 한 해 한 해가 충실하고 미래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돈 많이 벌어줘서 고맙다, 너 밖에 없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점을 칭찬했습니다. 착하다’는 것은 ‘주인의 말을 잘 들었다’는 뜻입니다. ‘충성되다’는 것은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주인이 맡긴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인에 대한 감사와 사랑, 신뢰에 기초해서 일을 했습니다. 자신과 같이 부족한 종에게 많은 재능을 주어서 일하게 하신 은혜가 감사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고 나서 칭찬을 받으면 살맛이 납니다. 직장에서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해서 인정을 받아도 때로는 배신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은 최고의 상급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큽니다. 종은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생각이지만 주인은 큰 일을 맡기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주인이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칭찬하였는데 ‘적은 일’은 ‘앞으로 맡게 될 일에 비해 작다’는 의미입니다. 주인은 적은 일에 충성한 그에게 많은 것을 맡깁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디테일한 부분에서 강하다고 합니다. 대충하는 법이 없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면서 제품이 아니라 명품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여 유익을 남긴 종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합니다. 멀리서 돌아온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잔치에 초대되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종이 주인의 마음에 동참한 것이 더 기쁜 것입니다. 주인은 두 달란트 받은 종을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것밖에 못하는지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고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요구합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동일하게 축복했습니다. 그도 적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우리는 가정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는지에 관심을 갖기보다 한 사람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섬겼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캠퍼스에 올라가면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에게만 다가가서 전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충실하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40절에서도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내게 맡겨 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새벽 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섬기는 것, 한 팀의 일대일에 목숨을 거는 것, 예배를 드릴 때에 마음을 다하는 것, 작은 일이지만 마음을 다해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쌓이면 큰 차이가 납니다. 또 사람들은 큰일보다 작은 일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큰일만을 생각하면서 적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을 맡겨 놓아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적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은 적은 일에 충성한 종들에게 많은 일을 맡깁니다.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까? 적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기쁨이 삶 가운데 넘쳐날 것입니다.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결산할 차례가 왔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변명을 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여기서 ‘굳은 사람’이란 ‘아주 인색한 사람, 사납고 혹독한 사람’을 말합니다. 종은 주인이 심지도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을 두려워했습니다. 주인이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면서 자신에게는 한 달란트 밖에 주지 않는다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유익을 남겨봤자 다 주인 것이지 나에게 돌아올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사업을 해서 실패하면 잃은 것까지도 다 물어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책임을 주인에게 돌렸습니다. 주인 때문에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 대해 크게 오해하였습니다. 주인과의 관계가 비뚤어져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당신의 달란트, 당신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주인이 맡겨준 일을 자신의 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인과 신뢰의 관계성이 없을 때 달란트를 맡은 자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두었습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책망했습니다. 주인이 어찌하든 이윤을 남기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 달란트를 은행에 맡기고 이자라도 받아 왔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종은 주인을 마음으로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며 심판하셨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달란트가 다릅니다. 우리는 가정환경, 재능, 맡기신 직분과 사역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의식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꾸 비교하면 자신의 것이 더 작아 보입니다. ‘왜 이것 밖에 주시지 않았는가?’, ‘이것 가지고 무엇을 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것들이 나의 능력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충성되어 여겨 일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생각할 때 열심을 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재능을 아시고 꼭 알맞게 맡기셨습니다. 또 내가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일할 때 기이한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것도 큰 은혜인데 사명까지 주시니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우리가 일생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적은 일에 충성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캠으로 구직 광고를 낸 페이크 실험이 있습니다. 엉뚱한 면접관의 말에 이 면접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무보수로 앉지도 못하고 자지고 않고 동료들을 상상 이상으로 도와야 하며 쉬는 날도 없고 동료들이 밥을 다 먹고 나서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지치기 때문에 강한 체력이 요구되는 ‘관리부장’을 뽑는 면접입니다. 게다가 의학, 경제 등 각 분야별로 학위가 있어야 할 정도로 박학다식해야 합니다.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비인간적이며 합법적인 일이 아니라고 의심하지만 면접관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면접관의 의외의 대답에 면접 참가자들은 모두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면접관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관리부장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엄마’입니다. 목자도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품고 영혼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일들을 섬기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엄마와 같은 목자,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여 결실을 많이 맺을 수 있는 기쁨 충만한 가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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