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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27강(22:1-14) 잔치에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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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4회 작성일 14-09-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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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제 27 강
말씀 | 마태복음 22:1-14
요절 | 마태복음 22:4

  잔치에 오소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천국 잔치에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사 그의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을 잔치에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응함으로 천국 잔치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습니다. 이 임금은 백성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성군이요 어떤 원수에게도 패해 본 적이 없는 강력한 군주였습니다. 그의 영토는 온 땅을 덮을 만큼 넓었고 평화가 지속되었습니다. 임금에게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워서 최고의 교육을 시켰습니다. 아들은 장성하여 이 나라를 이끌어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덕과 지혜와 용기를 갖추었습니다. 외교를 위해서 4개 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왕도를 몸에 익혀서 누구나 그 앞에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교육에 힘을 써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이라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사랑이 많은 황태자였습니다. 황태자는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부감도 자기 맘대로 고르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황태자비는 무엇보다 믿음이 좋고 덕이 있는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얼굴이 예쁘고 집안 배경이 좋아도 믿음이 좋지 않으면 간택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황태자를 가장 잘 동역할 수 있는 여인이 간택되었습니다. 

  혼인 잔치가 벌어질 장소는 정원이 아름다운 가을 궁전으로 정하였습니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나무들과 사과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등이 시냇물 좌우에 탐스러운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꽃사슴과 공작새는 풀밭에서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장식되어 있고 광장의 요소요소에는 뷔페식으로 각종 요리가 준비되었습니다. 가지각색의 음료수들과 포도주들이 준비되었고, 송아지, 양 바비큐와 진기한 궁중 요리가 침샘과 코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결혼식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발레단과 오케스트라 단, 세계적인 테너 가수들과 싸이와 같은 가수들, 한류 스타들도 초청하였습니다. 또 축포와 불꽃놀이, 근위병들의 멋진 퍼레이드가 피로연으로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전부터 세계 각국에 축하 사절단과 국내의 모든 귀빈들에게 초청장을 발부하였습니다. 황태자의 결혼식 날은 특별 대사면이 단행되어 모든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방송팀들은 혼인 잔치를 전세계에 생중계 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임금이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백성들과 함께 왕자의 혼인을 기뻐하고 축하하기를 원했습니다. 임금의 땅에서 그들이 먹고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잔치에 초대해 주시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왕국에 사는 자의 혜택에 대한 감사를 이번 기회에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임금께 감사를 표하는 것은 선물보다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그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면 기쁨이 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잔치에 초청해 주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이 세상에서의 삶은 경쟁이 심하고 직장에서 일을 많이 시키다 보니 피곤합니다. 돈 벌어 먹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삶의 질도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많은 축제를 만들어서 위로를 받고 쉼을 얻고자 합니다. 올해 6월에는 월드컵 축제가 있었고 얼마 전에는 추석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홍대 축제가 있었고, 금요일인 19일부터는 인천 아시안 게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잔치를 벌여서 즐거움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기대했던 것처럼 큰 기쁨과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국 잔치로 초청해 주십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이미 왕의 정중한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오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왕은 무슨 결례가 있었는가 보다 생각하고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정중하게 초청했습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왕은 인내심과 포용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왕은 자존심을 꺾고 좀 더 격이 높은 종들을 보내어 그들이 올 수 있도록 설득했습니다. 사실 왕명을 거스린 그들을 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날에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덕이 될 게 없었습니다. 왕은 겸손하게 종들을 다시 보내서 정중하게 초청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왕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면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유럽 수양회에서는 좋은 음식과 잠자리가 최상이었다고 합니다. 그 좋은 환경에서 참석자들은 깊은 쉼과 영혼의 만족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천국은 어떠할까요? 천국은 회복된 에덴 동산이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계시록 21:1-5절에 보면 천국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그렇습니다. 천국은 단장한 신부처럼 가장 아름답고 청순할 것입니다. 썩는 것, 쇠하는 것이 없고 대신에 생명이 약동하고 늘 푸르를 것입니다. 생명의 강이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에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영혼의 갈급함이 없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충만히 마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인해서 누리게 될 축복들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됩니다. 그가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충만한 생명과 평강과 기쁨과 만족을 주십니다. 참된 자유와 의와 공평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채 20대의 청춘처럼 모두가 건강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여 사랑이 넘치고 겸손하고 친절하고 온유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얼굴과 몸은 빛이 나고 영화로울 것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협력하며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말씀이 풍성한 곳입니다. 오늘날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의 기갈이 들려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영혼의 양식인 말씀이 풍성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과 같이 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은 놀랍도록 창조적이고 원숙하게 발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만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만유의 회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명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입니다. 그곳은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입니다.

  이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맛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인해서 거듭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더럽고 추한 죄악들이 사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덧입게 됩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고 일생토록 감당할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간에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으로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천국 잔치에 초청하시는 것은 백성들과 어찌하든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원하시는 왕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왕은 그들이 와서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이 가득한 채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종들이 와서 가슴 아픈 보고를 하였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그들이 왕이 보낸 종을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곤장을 맞을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황태자의 결혼식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그들은 왕의 아들이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청한 것을 간섭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 바빴습니다. 그들은 자기 왕국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욕심으로 인해서 자기 왕국을 만드는 일에 바빴습니다. 죄인들은 너무 인격적으로 대해주면 방자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주인 행세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임금의 왕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기 분수를 알았다면 스케줄을 조정하고서라도 왕의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참석합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사업에 매우 바쁩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완악해지고 있습니다. 잘살게 될수록 영적인 소원은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즐길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하나님의 일에는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다스리는 왕이 있다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며 자기 좋을 대로 생활합니다. 특히 마음대로 죄를 짓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서 죄의식이 들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부정을 합니다. 이들의 태도를 보면 갈수록 심하게 거절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잔치에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다음에는 왕의 초청을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종들을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왕이 보낸 종들이 충성된 마음으로 끈질기게 그들을 초청하자 그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의 삶에 간섭하는 것 같고 사업에 손해를 끼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왕을 대적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작게 시작된 그들의 교만과 이기심이 나중에는 포악으로 변해서 살인을 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임금은 그들에게 무한정 인내하지 않았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임금님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했습니다. 악인들에게 임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고 오래 참으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까불면 안 됩니다. 그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조금만 인식을 갖고 있다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게 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천국 잔치에 초청을 받았으나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요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의가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천국의 잔치를 누리도록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서 초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도리어 죽였습니다. 그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아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거절할 때 축복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임금님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종들로 하여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네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이 사람이면 올까, 아니 저 사람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고르지 말고, 계산하지 말고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 열심을 내서 사람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잔치 시간이 지나가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은혜의 때에, 전도의 문이 열려 있을 때에 열심히 초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가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거두지 않으면 다른 단체를 통해서 거두실 것입니다. 구원 역사는 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 의해서 구원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거리 길에 나아가서 사람들을 초청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10). 여기서 악한 자나 선한 자는 인간 편에서 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선한 자나 악한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죄인들에게 주님은 손을 내미십니다.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지금은 구원받을 때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지금 이 나라에서 선인이나 악인이나 가리지 않고 데리고 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7,28절에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의를 갖지 않고 겸손하게 응답하는 자, 소원을 간직한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천국을 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자들을 불러서라도 결국은 채우시고 당신의 혼인잔치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편으로 사단과의 싸움입니다. 영적인 전투입니다. 복음 전도를 할 때 인격적으로 해야 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인격적이면 죄악에 잠긴 사람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절대 좋은 마음씨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한 목자님은 수양회에 가지 않고자 했는데 목자님들이 이 사람 저 사람 달라붙어서 초청하는 바람에 마지못해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고 지금은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목욕탕에 갔다가 복음을 전해 듣고 구원을 받고 목자가 된 분도 있습니다. 저도 목자님의 강권에 못 이겨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놀라운 은혜를 받고 일생 목자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임금은 잔치 자리에 손님들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임금은 그에게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물었습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본래 결혼식장 입구에서 예복을 주는데 이것을 받고 입은 후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것이 왕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입던 옷이 더 좋다고 여겼던지 예복 입기를 거절했습니다. 자기 스타일대로 천국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옷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마치 아담이 범죄하고 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기를 가렸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의는 쉽게 시들어 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수치가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양의 가죽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옷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만들어진 의의 옷이 필요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은혜를 입을 사람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게 됩니다(마7:21). 우리가 예수님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자기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죄악 된 자기, 옛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옷, 의로운 옷, 사랑의 옷, 은혜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의 초청을 받고 은혜로 택함을 받아 천국의 잔치에 참예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증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복, 곧 믿음의 옷, 순종의 옷을 입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옷, 순종의 옷을 입은 자들은 현재적으로 내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마지막에 완전한 천국 잔치에 참예하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천국 잔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준비하고 초청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천국 잔치와 같은 수양회를 준비해 보면 가장 은혜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수양회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을 찾아서 감당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 된 우리는 네거리 길에 나아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초청하여 하나님 나라 잔치의 빈 자리를 채워야겠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초청할 때 그 기쁨은 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한 잔치의 참가자들이 아니라 정성껏 준비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천국의 기쁨을 더욱 풍성히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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