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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14년 마22강(17:1-20) 그의 말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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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14-08-1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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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제 22 강 
말씀 | 마태복음 17:1-20
요절 | 마태복음 17:5

그의 말을 들으라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예고를 들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음으로 그 말씀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와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 영광스러운 소망을 간직할 때 우리는 기꺼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고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에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아마 세 제자가 리더로서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들을 먼저 돕고자 세 명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 산은 가이사랴 빌립보와 가까운 헬몬 산으로 추정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평소 모습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사53:2).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셨고 땀과 먼지가 섞여 초췌한 모습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변형되시고 나자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났습니다. 그의 몸이 변화되니 옷도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세상 왕들의 영광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세상 왕들은 대군을 호령하는 영광, 백성들의 환호를 받는 정치적인 영광이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영적인 영광을 발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는 빛 가운데 거하십니다. 디모데전서 6:16절에 보면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자기를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본래 그의 모습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우리의 슬픔과 고난을 체휼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함으로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본래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각각 시내산과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시내산이 곧 호렙산입니다. 그들은 각각 많은 고난과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영광 가운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한 주제는 예수님의 별세였습니다(눅9:3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심한 고난과 배척을 당하고 죽으실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과 만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과 신약의 만남이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영광의 왕이심을 보여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다는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책망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만만히 봤으면 책망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서 그에 대한 경외심이 깊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왕으로 변형되셔서 장차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천국을 다스리실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둘째, 성도들도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고난을 받고 죽음을 경험한 모세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장차 그 분이 다시 오실 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보여줍니다. 한편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살아 있을 성도들이 엘리야처럼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당할 고난과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디모데 선교사님은 허무 가운데 고통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논에 있는데 그 아버지가 낫을 가지고 오더니 네가 예수님을 계속 믿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이때 디모데 선교사님은 심히 두려웠지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목을 내밀면서 죽이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졌다고 하시면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이디모데 선교사는 주와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 나이지리아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한 분은 믿음의 결혼도 하였는데 아버지가 네가 믿음을 버리던지 아내를 버리던지 하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잘 나가던 병원 사업이 망하고 20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었습니다. 서울대에 들어간 딸이 UBF에서 전도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반대했지만 딸은 변함없이 UBF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도 이년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관악 5부에 나와서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지금 건강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고난이 따르지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고난이 있고 저렇게 살아도 인생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미있는 고난을 당해야겠습니다. 또 고난 이후에 있을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영광의 왕 예수님이 다스리실 것과 우리 성도들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당면한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제자 양성에 따르는 고난도 열매 맺는 삶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기꺼이 감당하게 됩니다. 중도에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훈련과 사명이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해병이 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로서 사는 것도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고난에도 기꺼이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장차 우리가 참여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기꺼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자세가 어떠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는 눈앞에 펼쳐진 영광스러운 광경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는 고난 없이 영광만을 받고 싶었습니다. 인간 관계로 인한 갈등으로 고민하지 않고 쉬고 싶었습니다. 산을 내려가면 섬겨야 할 양들과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을 직면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해서 염려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장래를 생각할 때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초막 셋을 짓고 쉬고 싶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영광을 짚으로 만든 초막에 간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도 초막과 같이 잠시 후에는 썩고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광을 영원히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베드로가 헛소리를 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친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아직은 영광  중에서 초막 짓고 살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광을 얻으시기 전에 먼저 버림받으시고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에서 내려가셔야 했고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영광의 미래는 확실하지만 그 영광을 얻기 전에 먼저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산에 오르기 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예고 말씀을 들었을 때 즉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16:22).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어렵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보다 더 나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한참 교만해져서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이렇게 말릴 수 없는 베드로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엄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자기 좋아 하는 말씀만 듣습니다. 축복과 관련된 말씀을 잘 듣지만 고난에 대한 말씀은 잘 듣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말씀은 잘 듣지만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제자로서 주의 말씀을 가감없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잘 돌아보면 정말 주님의 말씀을 잘 안 듣습니다. 말은 많이 하고 자기 생각은 강한데 듣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듣는 것입니다. 내 생각하고 내 주장을 펴기 전에 먼저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매일 양식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연습과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높고 깊기 때문입니다(사 55:9). 상대편의 입장에 서서 들을 때 그를 이해하게 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낮아져서 들을 때 상대편을 이해하고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의 제자 된 우리도 낮아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슬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한국 방한을 보면서 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공항에서 내려 한국에서 가장 작은 기아 소울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진 것은 없지만 큰 차를 타고 자기의 위신을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낮추고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는 가난하고 고난 받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자연스럽게 사는 한 예수님의 제자가 돋보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행보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해지고 마음을 열고 그에게 다가갑니다. 이 한 사람의 복음적인 삶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도 마땅히 예수님과 선진들의 믿음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사랑의 음성으로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었을 때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홀로 남으셔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가 영광스러웠던 변화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때 무리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리며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마음은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습니다. 간질로 인해 발작을 하면 아이는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땅에 엎드러져 뒹굴었습니다. 이 아이가 전철 안에서 뒹굴고, 버스 안에서 뒹굴고, 친척들이 모여 파티를 할 때 뒹굴었습니다. 이 얼마나 난처한 입장이었겠습니까? 때로 아이는 불에도 뛰어들고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혼자서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삶이 너무나 불안하고 힘겨웠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되는 배경에는 그의 생명을 해하려는 귀신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시지 않고 아홉 제자들만 벌레 물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아이를 치료하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런 귀신이 나가지 않는지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 아버지의 마음은 더욱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공격을 받고 무리 가운데 둘러싸여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그 아비의 전후 사정을 듣고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믿음이 없다는 것은 예수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음에도 믿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패역하다는 것은 원래 되어야 하는 모양과 정반대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청개구리 같이 예수님이 명하신 것과 정반대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세대는 그 아이 아버지와 무리들과 서기관 등 그 시대의 사람들 전체를 아우른다고 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제자들에게 이런 책망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셨습니다(10:1). 그들이 부족하지만 오직 예수님을 믿었을 때 주님이 주신 그 권능을 가지고 귀신을 쫓아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믿음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은 과거가 아닙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지금 고쳐야 할 아이를 앞에 두고 믿음이 없었을 때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고 창피를 당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재 믿음 없고 패역한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그들과 함께 계실 수가 없고 곧 하늘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이들에게 온 세상을 맡기고 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고 나서 바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절은 없는데 다른 사본에는 “기도와 믿음이 없으면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겨지게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크기는 작을지라도 생명력이 있는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기도로 표현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기도할 때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믿고 기도할 때 기적도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광에 있다면 속히 내려와서 가난하고 슬퍼하고 고난 가운데 있는 양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은 영광스러운 산 위가 아니라 신음하는 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이방 땅에 나아가서 도움이 필요한 양들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에서 고난을 받으면서 양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어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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