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년 성탄2강(눅1:26-56) 영원한 왕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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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탄 제 2 강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3
영원한 왕 예수님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오늘 말씀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면서 그가 잉태하게 될 아기가 누구인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왕으로 야곱의 집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개인이나 국가는 사랑과 공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는 무궁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그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의 왕권을 회복하십니까? 그것이 복음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렀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의 혈통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는 친구들에게 요셉 자랑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요셉을 알아갈수록 어쩜 그렇게 착하고 자신에게 딱 맞는 배필인지 모르겠다며 즐거워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신혼집을 꾸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찾아온 천사는 무슨 말을 했습니까? 28,2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인사 치고는 참 이상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호의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보다 더 이쁘거나 더 똑똑하거나 더 경건하게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잘 알았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아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녀를 택하신 것입니다. 은혜는 죄악 된 우리를 일방적으로 구원해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써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마리아도 죄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마리아를 신적인 위치로 높여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육신을 입으신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는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여자의 가장 큰 특권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가 낳을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따라서 어머니가 조명을 받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로 인해서 환영을 받습니다. 신사임당은 율곡을 둔 이유로 5만원권 초상화에 실렸습니다. 마리아가 낳게 될 아들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를 낳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낳게 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그 이름 그대로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빈곤, 질병, 불평등, 부정, 간음, 살인, 전쟁, 불의 등등 많은 문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죄의식, 수치, 불안, 두려움, 자기 합리화, 도피 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저주를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 죄는 성장하여 가인은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노아 때에는 모든 사람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했을 때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십자가에서 박살내시고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입니다(마26:2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요3:16).
둘째, 예수님은 위대하십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사회적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동일한 위치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제자들이 금하자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선생들과 달리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즐거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기를 비어 종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의 본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섬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는 무리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하신 그 위대한 용서를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자신이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놀라운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는 이적과 권세를 행하셨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중풍병자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지 사흘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거라사 군대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성난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의 가장 큰 이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의 부활로서 죽음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위대함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예수님이 이루신 업적과 영향력에 비할 수 있을까요? 인류역사 속에서 혁신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사람도 있습니다. 위대한 혁명가, 사상가,정치가, 과학자, 의사, 사업가, 예술가 등등. 그러나 누구도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업적에 비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단의 권세를 파하시고 인류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복락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A.D와 B.C.를 나누시며 인류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들의 모든 위대함을 다 합쳐 놓아도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컬어진다는 뜻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보고 그의 인격을 보고 그렇게 부른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인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일컫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인간과 차별화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셋째,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32b, 33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야곱의 집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이라고 할 때 지렁이 같은 야곱, 세속적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야곱의 집은 욕심이 많고 속이고 냄새를 풍기는 집입니다. 야곱의 집은 형편없는 집입니다. 그 집 사람들은 사납고 배려가 없는데 자부심은 매우 큽니다. 지금 우리 시대 신자들은 자기중심성과 욕심이 많은 것, 속이는 것, 음란한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신실하지 않은 것 등으로 인해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서로 잘 한다면 다스리는 지도자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이 교회를 다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다스려주십니다. 우리가 왕좌를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다스리고자 할 때 다툼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높이고자 할 때 교회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도록 영적 지도자는 자기를 비우고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와 그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그 나라는 팽창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여섯 남자를 번갈아 가면서 왕으로 모시고 충성하고자 했으나 외로움과 상처만 받았습니다. 내면의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말라갔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왕으로 영접하였을 때 마음에 기쁨의 생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세리 삭개오는 돈을 왕으로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쌓을수록 마음은 인색해지고 차가와졌습니다. 그는 외로웠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였을 때 그는 탐심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나누어 주고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부요를 얻게 되었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라사 광인은 귀신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자기 몸을 자해하며 벌거벗은 몸으로 이산 저산으로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거사라 지방에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4층에 난방이 며칠 째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세 번씩 불렀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 사모님이 저에게 난방 필터를 교체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오늘 아침 왕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사용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난방 필터를 청소하는 방법이 나와 있었습니다. 난방 필터를 빼보니 그곳에 누런 물질이 가득하였습니다. 물로 그것을 씻어내고 다시 보일러를 가동시키니 방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보일러를 사용설명서에 기초해서 다스렸듯이 우리의 마음은 인생 사용 설명서인 성경을 봄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끼여 있는 죄의 오물들을 예수님의 물과 피로 씻어내고 깨끗하게 할 때 마음에 온기가 돌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고자 결심하고 큰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공감,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역사를 본받는 가운데 참된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떻게 아이를 갖는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처녀가 남자 없이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을 때 마리아는 아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천사는 ‘한다면 하는 것이지 무슨 말이 많냐’고 묻는 마리아를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마리아에게 믿음을 갖도록 증거를 알려 주었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는 불임이었던 엘리사벳이 임신한 증거를 마리아가 눈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 가까운 사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믿음의 증거를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매주 소감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불가능한 상황일지라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며 순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 보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을 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믿음의 여인임을 말해 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요셉의 아내, 부모님의 딸 이전에 주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빨리 일어나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을 때에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마리아를 격려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그리고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며 마리아의 믿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듣자 마리아의 마음에서 구름이 싹 걷혔습니다. 엘리사벳은 역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처녀가 애를 배었으니 큰일 났구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 말하며 걱정했을 텐데 엘리사벳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녀뻘 되는 어린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서 믿음의 말이 나왔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말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보게 하고 낙담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용기를 줍니다. 엘리사벳 사모님은 마리아의 좋은 카운슬러요 멘토요 목자였습니다.
마음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걷힌 마리아 입에서 찬양이 터졌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격하였습니다. 구주를 세상에 보내시는데 어떻게 나 같은 시골 처녀를 택하여 주셨을까?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자인 것도 아니고 아무 잘난 것 없는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영광스런 은혜를 주셨을까 생각할 때 감사와 찬양이 터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 나고 능력이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같이 보잘 것 없고 허물진 자를 택하여 구원 역사에 써 주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더라면 죄 가운데 살다가 비참하게 사라질 죄인이었는데 이처럼 말씀을 전하는 목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목자의 직분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시를 끝까지 들어보겠습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비천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택하여 성모가 되게 하신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긍휼하심을 베푸시는 의로우신 주권자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내리치시지만,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배불리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언약하신 대로 영원히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다가오고 자신의 배도 불러왔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세상의 권세와 나라들은 불완전하고 사라지지만 예수님의 다스리심은 영원하며 그 나라는 무궁합니다. 이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그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오 영원히 다스려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겸손히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왕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3
영원한 왕 예수님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오늘 말씀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면서 그가 잉태하게 될 아기가 누구인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왕으로 야곱의 집을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개인이나 국가는 사랑과 공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는 무궁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그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그의 왕권을 회복하십니까? 그것이 복음서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렀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의 혈통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는 친구들에게 요셉 자랑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요셉을 알아갈수록 어쩜 그렇게 착하고 자신에게 딱 맞는 배필인지 모르겠다며 즐거워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신혼집을 꾸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찾아온 천사는 무슨 말을 했습니까? 28,2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인사 치고는 참 이상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호의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보다 더 이쁘거나 더 똑똑하거나 더 경건하게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잘 알았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아무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녀를 택하신 것입니다. 은혜는 죄악 된 우리를 일방적으로 구원해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써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마리아도 죄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마리아를 신적인 위치로 높여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육신을 입으신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는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여자의 가장 큰 특권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가 낳을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따라서 어머니가 조명을 받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로 인해서 환영을 받습니다. 신사임당은 율곡을 둔 이유로 5만원권 초상화에 실렸습니다. 마리아가 낳게 될 아들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를 낳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낳게 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그 이름 그대로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빈곤, 질병, 불평등, 부정, 간음, 살인, 전쟁, 불의 등등 많은 문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의 뿌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게 된 것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죄의식, 수치, 불안, 두려움, 자기 합리화, 도피 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저주를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 죄는 성장하여 가인은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노아 때에는 모든 사람이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했을 때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십자가에서 박살내시고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언약의 피입니다(마26:2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요3:16).
둘째, 예수님은 위대하십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사회적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동일한 위치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제자들이 금하자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선생들과 달리 권세가 있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즐거이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기를 비어 종의 몸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의 본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섬김, 자신을 저주하고 욕하는 무리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하신 그 위대한 용서를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자신이 친히 본을 보이심으로 놀라운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는 이적과 권세를 행하셨습니다. 그는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중풍병자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지 사흘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거라사 군대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셨습니다. 성난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잔잔케 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의 가장 큰 이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으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의 부활로서 죽음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위대함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예수님이 이루신 업적과 영향력에 비할 수 있을까요? 인류역사 속에서 혁신적인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사람도 있습니다. 위대한 혁명가, 사상가,정치가, 과학자, 의사, 사업가, 예술가 등등. 그러나 누구도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업적에 비할 수 없습니다. 죄와 사단의 권세를 파하시고 인류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복락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A.D와 B.C.를 나누시며 인류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들의 모든 위대함을 다 합쳐 놓아도 예수님의 위대하심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컬어진다는 뜻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보고 그의 인격을 보고 그렇게 부른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인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일컫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인간과 차별화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셋째,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32b, 33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야곱의 집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이라고 할 때 지렁이 같은 야곱, 세속적이라는 뜻이 강합니다. 야곱의 집은 욕심이 많고 속이고 냄새를 풍기는 집입니다. 야곱의 집은 형편없는 집입니다. 그 집 사람들은 사납고 배려가 없는데 자부심은 매우 큽니다. 지금 우리 시대 신자들은 자기중심성과 욕심이 많은 것, 속이는 것, 음란한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신실하지 않은 것 등으로 인해서 욕을 먹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서로 잘 한다면 다스리는 지도자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셔서 이 교회를 다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다스려주십니다. 우리가 왕좌를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다스리고자 할 때 다툼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사람을 높이고자 할 때 교회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도록 영적 지도자는 자기를 비우고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와 그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그 나라는 팽창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여섯 남자를 번갈아 가면서 왕으로 모시고 충성하고자 했으나 외로움과 상처만 받았습니다. 내면의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말라갔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왕으로 영접하였을 때 마음에 기쁨의 생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세리 삭개오는 돈을 왕으로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쌓을수록 마음은 인색해지고 차가와졌습니다. 그는 외로웠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였을 때 그는 탐심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나누어 주고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부요를 얻게 되었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라사 광인은 귀신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자기 몸을 자해하며 벌거벗은 몸으로 이산 저산으로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거사라 지방에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4층에 난방이 며칠 째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사를 세 번씩 불렀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 사모님이 저에게 난방 필터를 교체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오늘 아침 왕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사용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난방 필터를 청소하는 방법이 나와 있었습니다. 난방 필터를 빼보니 그곳에 누런 물질이 가득하였습니다. 물로 그것을 씻어내고 다시 보일러를 가동시키니 방이 따뜻해졌습니다. 제가 보일러를 사용설명서에 기초해서 다스렸듯이 우리의 마음은 인생 사용 설명서인 성경을 봄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끼여 있는 죄의 오물들을 예수님의 물과 피로 씻어내고 깨끗하게 할 때 마음에 온기가 돌고 기쁨이 찾아옵니다. 성탄절은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고자 결심하고 큰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공감,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역사를 본받는 가운데 참된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떻게 아이를 갖는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처녀가 남자 없이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을 때 마리아는 아이를 잉태하게 됩니다. 천사는 ‘한다면 하는 것이지 무슨 말이 많냐’고 묻는 마리아를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마리아에게 믿음을 갖도록 증거를 알려 주었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는 불임이었던 엘리사벳이 임신한 증거를 마리아가 눈으로 보도록 함으로써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 가까운 사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믿음의 증거를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매주 소감을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불가능한 상황일지라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며 순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 보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을 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믿음의 여인임을 말해 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요셉의 아내, 부모님의 딸 이전에 주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길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빨리 일어나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을 때에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마리아를 격려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그리고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며 마리아의 믿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듣자 마리아의 마음에서 구름이 싹 걷혔습니다. 엘리사벳은 역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처녀가 애를 배었으니 큰일 났구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 말하며 걱정했을 텐데 엘리사벳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손녀뻘 되는 어린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믿음의 사람에게서 믿음의 말이 나왔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그 사람의 말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말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보게 하고 낙담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용기를 줍니다. 엘리사벳 사모님은 마리아의 좋은 카운슬러요 멘토요 목자였습니다.
마음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걷힌 마리아 입에서 찬양이 터졌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격하였습니다. 구주를 세상에 보내시는데 어떻게 나 같은 시골 처녀를 택하여 주셨을까?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자인 것도 아니고 아무 잘난 것 없는 나에게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영광스런 은혜를 주셨을까 생각할 때 감사와 찬양이 터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잘 나고 능력이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같이 보잘 것 없고 허물진 자를 택하여 구원 역사에 써 주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었더라면 죄 가운데 살다가 비참하게 사라질 죄인이었는데 이처럼 말씀을 전하는 목자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목자의 직분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마리아의 찬양시를 끝까지 들어보겠습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비천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택하여 성모가 되게 하신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긍휼하심을 베푸시는 의로우신 주권자이십니다.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내리치시지만,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배불리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언약하신 대로 영원히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리아는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이 해산달이 다가오고 자신의 배도 불러왔습니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세상의 권세와 나라들은 불완전하고 사라지지만 예수님의 다스리심은 영원하며 그 나라는 무궁합니다. 이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그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오 영원히 다스려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겸손히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왕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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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다운로드 | DATE : 2014-12-14 16: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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