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년 성탄 1강(눅1:5-25)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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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성탄 1 강
말씀 | 누가복음 1:5-25
요절 | 누가복음 1:16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는지,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감당할 사명은 무엇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서 존귀한 집안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의인이었다고 해서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늘 한결같이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전심으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아들을 탐내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고,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을 미리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색이 목자인데 평생 양이 없는 목자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수 있을까요? 열매 문제에 매일 때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가 없으니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늘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도 인생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는 많아졌습니다. 요즈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합니다. 딩크족은 결혼할 때부터 자식을 낳지 않고자 서약을 합니다. 평소에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습니다. 단점은 늙어서 외로움이 크고 부성애 혹은 모성애를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어렵지만 기쁨을 줍니다. 자녀를 갖고자 하는데 자식이 생기지 않는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관악1부 이바울 목자님의 아들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이노아 선교사님은 20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들은 자녀가 없고 양이 없는 분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24반열이 있는데 각 반열에 900명가량, 총 2만 명이 있었습니다. 각 반열대로 1년에 두 번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였습니다. 성소에서 분향하는 것은 예배의식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직분이었습니다. 분향하는 직분에 제비 뽑히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직무를 다할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가 분향하는 일에 제비를 뽑힌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진 일입니다. 분향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를 상징합니다.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가랴가 기도할 때에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5:16)고 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your prayer has been heard).” 사가랴의 기도가 어떠했기에 하나님께 들려졌을까요? 하나님의 관심사와 사가랴의 관심사가 일치했습니다. 사가랴는 불의한 헤롯이 다스리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도록 기도했습니다. 타락한 정치세계,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자기의 죄로 알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지키지 않는 양들로 인해서 슬퍼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가정사를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가랴의 기도는 자기에게 아들을 달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고자 준비하고 있는데 누가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할 때 그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사가랴는 자기와 같이 메말라가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의 기도를 듣고 너무나 반가우셨습니다. 시대적인 요구에 맞는 기도는 하나님께 들려집니다.
그가 드린 정확한 기도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이 간절했음은 분명합니다. ‘간구’라는 ‘데에시스’는 일반적인 기도를 나타내는 ‘프로슈케’와 달리 특별한 제목을 놓고 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잊혀졌다고 생각하며 울며 간구하는 한나의 간구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과부의 한 맺힌 기도 비유를 볼 때 강청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나이 많도록 아이가 없는 아픔이 있었겠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눈물의 기도를 드리게 하였을 것 입니다. 이를 통해서 엘리사벳은 더 성령 충만한 가운데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열매가 없을지라도 변함없이 주님께 간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때가 되면 믿음의 인물들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가랴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그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기 훨씬 전부터 우리를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최고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먼저 좋은 것을 받을 그릇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은 그냥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구속사에 획을 긋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제자들이 많지 않을지라도 포기치 않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영적인 거목을 반드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의 태어남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요한의 탄생은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됩니다. 성경 역사 속에 큰 인물이 많이 있지만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가 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큰 자입니다. 예수님도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7:28). 그는 또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는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것입니다. 시대의 죄악된 문화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큰 일을 감당할 자들을 순결하고 성령의 충만한 사람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신약교회가 탄생하고 사도들이 세계선교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위로부터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셔서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할 때 권능을 받았습니다(행1:8). 오늘날 이 시대에도 우리가 순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이 할 위대한 일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신자나 세상 사람이나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데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불신자를 돌이키는 것보다 네 배나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할까요? 세례 요한의 말씀 선포는 영적인 전쟁터와 방불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그의 말은 매우 거칠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3:7,8).” 그러면서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도록 촉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영성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어떤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가 위선을 회개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늘 우리 마음에 있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자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아버지를 많이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공급자이십니다. 아버지가 나를 먹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주조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았다면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언가를 공급해 주시니 우리는 받고 짐을 내려놓고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 공급을 받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나 양들에게 많이 요구하기보다 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엘리야의 영성은 기도의 영성이었습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시대의 죄악과 싸워서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목숨을 건 기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했을 때 그 시대를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던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회개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여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나누고 낮아지고 자기를 비우는 가운데 마음으로부터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는 그들이 기다렸던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오랫 동안 아들을 주시도록 기도했지만 막상 기도가 응답되자 자신의 현실을 보고 불신의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기도하던 일들이 현실이 될 때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가랴가 불신의 말을 내 뱉자 천사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의인이었지만 불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훈련으로 벙어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불신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아들을 낳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믿지 아니하였을지라도 때가 되매 그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근신하였습니다. 불신의 말, 인간적인 말은 입 밖에라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해서 강권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가 정하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인류 구속 역사의 스케줄은 하나님이 직접 이루어나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가 나와서 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환상을 본 줄 알았습니다. 사가랴는 말을 못하였지만 자기가 맡은 직분에 끝까지 충성을 다였습니다. 그는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말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엘리사벳은 한 여인으로서 잉태를 못함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여인의 슬픔과 수치를 외면하지 않고 돌아 보셨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겸손히 기도하고 인내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있는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시고 영광을 받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누가복음 1:5-25
요절 | 누가복음 1:16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세례 요한이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는지,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감당할 사명은 무엇인지,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서 존귀한 집안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의인이었다고 해서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늘 한결같이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전심으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갖지 못했는데 아들을 탐내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고,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복을 미리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색이 목자인데 평생 양이 없는 목자로 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 수 있을까요? 열매 문제에 매일 때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가 없으니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들 안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늘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도 인생 문제는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는 많아졌습니다. 요즈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합니다. 딩크족은 결혼할 때부터 자식을 낳지 않고자 서약을 합니다. 평소에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고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습니다. 단점은 늙어서 외로움이 크고 부성애 혹은 모성애를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이 어렵지만 기쁨을 줍니다. 자녀를 갖고자 하는데 자식이 생기지 않는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관악1부 이바울 목자님의 아들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이노아 선교사님은 20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들은 자녀가 없고 양이 없는 분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24반열이 있는데 각 반열에 900명가량, 총 2만 명이 있었습니다. 각 반열대로 1년에 두 번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였습니다. 성소에서 분향하는 것은 예배의식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직분이었습니다. 분향하는 직분에 제비 뽑히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아픔 속에서도 묵묵히 직무를 다할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가 분향하는 일에 제비를 뽑힌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되어진 일입니다. 분향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를 상징합니다.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가랴가 기도할 때에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약5:16)고 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your prayer has been heard).” 사가랴의 기도가 어떠했기에 하나님께 들려졌을까요? 하나님의 관심사와 사가랴의 관심사가 일치했습니다. 사가랴는 불의한 헤롯이 다스리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도록 기도했습니다. 타락한 정치세계,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자기의 죄로 알고 회개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지키지 않는 양들로 인해서 슬퍼하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가정사를 위해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가랴의 기도는 자기에게 아들을 달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고자 준비하고 있는데 누가 그리스도를 보내달라고 할 때 그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사가랴는 자기와 같이 메말라가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의 기도를 듣고 너무나 반가우셨습니다. 시대적인 요구에 맞는 기도는 하나님께 들려집니다.
그가 드린 정확한 기도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이 간절했음은 분명합니다. ‘간구’라는 ‘데에시스’는 일반적인 기도를 나타내는 ‘프로슈케’와 달리 특별한 제목을 놓고 하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심정으로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잊혀졌다고 생각하며 울며 간구하는 한나의 간구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과부의 한 맺힌 기도 비유를 볼 때 강청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나이 많도록 아이가 없는 아픔이 있었겠지만 그 아픔이 오히려 엘리사벳으로 하여금 눈물의 기도를 드리게 하였을 것 입니다. 이를 통해서 엘리사벳은 더 성령 충만한 가운데 준비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열매가 없을지라도 변함없이 주님께 간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때가 되면 믿음의 인물들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가랴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셔서 그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기 훨씬 전부터 우리를 위한 준비를 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최고의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먼저 좋은 것을 받을 그릇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엘리사벳이 낳은 아들은 그냥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구속사에 획을 긋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제자들이 많지 않을지라도 포기치 않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영적인 거목을 반드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의 태어남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요한의 탄생은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됩니다. 성경 역사 속에 큰 인물이 많이 있지만 세례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가 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큰 자입니다. 예수님도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7:28). 그는 또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는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것입니다. 시대의 죄악된 문화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큰 일을 감당할 자들을 순결하고 성령의 충만한 사람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신약교회가 탄생하고 사도들이 세계선교 사명을 감당하고자 할 때 위로부터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하셔서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할 때 권능을 받았습니다(행1:8). 오늘날 이 시대에도 우리가 순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위대한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이 할 위대한 일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신자나 세상 사람이나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데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불신자를 돌이키는 것보다 네 배나 더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할까요? 세례 요한의 말씀 선포는 영적인 전쟁터와 방불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그의 말은 매우 거칠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눅3:7,8).” 그러면서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도록 촉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영성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어떤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가 위선을 회개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늘 우리 마음에 있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자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아버지를 많이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공급자이십니다. 아버지가 나를 먹일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주조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하지 않았다면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언가를 공급해 주시니 우리는 받고 짐을 내려놓고 주님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께 공급을 받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고 있는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이나 양들에게 많이 요구하기보다 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엘리야의 영성은 기도의 영성이었습니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시대의 죄악과 싸워서 시대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목숨을 건 기도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충만했을 때 그 시대를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던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대적인 회개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여 세속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나누고 낮아지고 자기를 비우는 가운데 마음으로부터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는 그들이 기다렸던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말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오랫 동안 아들을 주시도록 기도했지만 막상 기도가 응답되자 자신의 현실을 보고 불신의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기도하던 일들이 현실이 될 때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가랴가 불신의 말을 내 뱉자 천사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였습니다. 사가랴는 의인이었지만 불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훈련으로 벙어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의 불신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아들을 낳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믿지 아니하였을지라도 때가 되매 그 말씀대로 이루셨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근신하였습니다. 불신의 말, 인간적인 말은 입 밖에라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해서 강권적으로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가 정하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인류 구속 역사의 스케줄은 하나님이 직접 이루어나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가 나와서 말을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환상을 본 줄 알았습니다. 사가랴는 말을 못하였지만 자기가 맡은 직분에 끝까지 충성을 다였습니다. 그는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말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엘리사벳은 한 여인으로서 잉태를 못함으로 오랜 세월 동안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여인의 슬픔과 수치를 외면하지 않고 돌아 보셨습니다. 그녀가 말없이 겸손히 기도하고 인내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잔이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있는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시고 영광을 받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 각자의 인생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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