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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5년 요21강(18:1-40) 진리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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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8회 작성일 15-09-27 14:05

본문

2015년 요한복음 제 21 강
말씀 | 요한복음 18:1-40
요절 | 요한복음 18:37

진리의 왕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오늘 우리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물러나버렸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성경에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 즉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았습니다. 유다는 600명의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시고 체포당하셨습니다. 그는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게 넘겨지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되물으셨습니다. 빌라도와 인격적인 대화를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회피하였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대신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세우실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투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청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상에 그 나라를 세우고자 했다면 그는 갈릴리 어부들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함께 일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신분이나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거친 갈릴리 어부들이나 소외받던 세리들, 창기들, 평범한 죄인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에 세워지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은 마구간이 아니라 왕궁에서 태어나셨을 것이며 나귀를 타고 입성하지 않고 전차나 말을 타고 그 성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땅에도 있었지만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법을 뒤엎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의 법은 세상의 법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살인하지 말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것이니라.”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나라를 세우려 하셨다면 제자들을 무장을 시키고 군사훈련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고 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빌라도와 헤롯의 영역 밖이고, 황제의 영역 밖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권력이 손 댈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슬픔도, 눈물도, 애곡하는 것, 사망도 없습니다. 세상의 정치권력이나 폭력이 아무리 믿는 자들을 괴롭히고 쫓아와도 그 나라의 입구까지 밖에는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빌라도 앞에서 두려움 없이 그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결국 그의 나라를 위한 일이므로 그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빌라도의 이해에 더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나라는 무력과 돈의 힘으로 사람을 모으고 권력을 잡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통치되는 나라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여론으로, 힘으로, 돈으로 통치자를 뽑고 법으로 다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의로 통치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이 땅에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거듭나서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무리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이 교회는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3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왕이시고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신데 진리를 위하여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말씀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우리는 나 자신을 바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내가 죄인 인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야 할 절망적인 존재임을 발견하고 구원을 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알려 주시고 이를 회복하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의 왕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진리를 증언하고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인생의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이후 하나님을 떠나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추하고 더럽고 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떠난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참된 진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과 불의와 부정부패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세상에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지만 모든 영광과 특권을 버리고 자신을 희생하여 거짓과 불의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증거하고자 하시는 진리는 과연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진리는 ‘알레세이아’인데 이것은 덮은 것을 제거하고, 사실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거짓된 것과 상반되는 것으로 참된 것입니다. 즉 진리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우리는 무엇이 참된가를 묻는 것입니다.  진리는 “없지 아니하고 있되 참으로 있는 것” 즉 실재하는 것에 대한 탐구입니다. 실재하는 것 즉 있음은 없음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없음에서 있음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로서 무와 유를 아우르시면서 초월하십니다. 그는 이 세상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셨고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존재의 역동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이 존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라는 물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같은 뿌리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까?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있음과 없음, 무지와 앎의 관계를 푸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가치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는 사람에게 참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2를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합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란 어떻게 진리로 드러납니까? 진리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방식과 결과로 드러납니다. 인간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부과되는 것은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랑은 그 진정성을 위해 당연히 역동성을 지녀야 하는데 그 역동성은 철저히 자유에 바탕 해야 합니다. 결혼 관계는 결혼 예식과 함께 그 결혼 관계의 파기 가능성 즉 이혼 가능성을 전제해야만 진정한 결혼관계입니다. 만일 이혼 가능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 결혼관계는 건강하고 진정한 관계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혼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결혼 관계를 계속하는 것은 아내를 사랑하고자, 또는 남편을 사랑하고자 오늘도 새롭게 결단하는 역동적 자유를 구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이혼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님이 맺어주신 결혼 관계의 지속에 대한 결단이 초점일 뿐 이혼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반드시 더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가 자유인이지만 사랑해서 스스로 종이 될 때 그는 성숙한 자유인입니다. 진리는 도대체 왜 진리입니까?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따라서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무지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모든 우상숭배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조상신을 섬기고 각종 귀신을 섬기다가 매이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사도 아무 때가 갈 수 없고 시집 장가도 날을 잡아서 가고 무엇을 하고자할 때 점쟁이의 말을 듣고 사주팔자를 보면서 운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심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 죄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정죄와 죽음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까? 그녀를 죽이고자 돌을 들고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돌을 내려놓고 하나 둘 마지막에는 예수님 외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그 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여인을 정죄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여인을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그 진리는 예수님의 인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심으로 그 나라를 세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증거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진리로 살아난 자들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의가 강 같이 흐르는 나라입니다. 진리는 사람에게 영생을 주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줍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오신 진리 자체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절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과거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도 진리 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의 왕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에 대해서 증언하러 오셨다는 것을 말씀 하신 뒤 계속하여 빌라도에게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를 영접함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가 되도록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소원이 없고 경솔했습니다.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간절한 초청을 묵살하고 조소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처럼 진리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 합니다. 진리에 대해 이야기 하면 “진리는 무슨 얼어 죽을 진리, 진리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리대신 먹고  즐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진리보다는 취직자리가 더 소중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 물었지만 그 대답을 듣지 않고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대로 판결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선고했습니다. 그에게 진리가 없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며 모순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진리가 없는 자는 사람에게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종노릇합니다. 진리가 없을 때 그는 어둠에 거했습니다. 진리의 빛이 없으므로 참을 구별하지 못하고 방향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로마로 소환되었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진리를 알지만 따르지 못한 사람이 또 베드로입니다. 16절에 보면 베드로는 체포되신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갔습니다. 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25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었습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베드로에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는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습니다. 이렇게 그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때 찬 공기를 가르며 곧 닭이 “꼬끼오”하고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했습니다. 그가 진리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자기 확신에 기초해서 말하고 행동했을 때 그는 죄를 짓고 죽음의 세력에 붙잡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알았지만 따르지 않을 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베드로답게 처신하지 못하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들었지만 베드로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는 죄를 짓고 자신이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실패를 통해 깨달은 것이 무엇일까요?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심령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의 연약함을 지적하실 때 자기를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섭섭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를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계시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부인할 것도 아시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실패를 통해 베드로의 의와 교만을 완전히 깨시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품고 섬기는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후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는 기도하는 종이 되어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자가 이제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담대히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후에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수님처럼 담대히 십자가에 순교를 당하는 위대한 진리의 증거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의 심문과 빌라도의 심문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시인하셨습니다. 그는 진리를 위해 살았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과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죽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되신 주님께로 인도하시고 그 안에서 생명과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 진리 되신 예수님을 일생 배우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진리를 증거 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증거를 통해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우리도 홍대 와 세계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또 가족과 친지, 이웃들에게 진리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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