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요한복음 2015년 요19강(16:1-3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15-09-13 13:43

본문

2015년 요한복음 제 19 강 
말씀 | 요한복음 16:1-33
요절 | 요한복음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오늘 말씀은 고난과 성령이라는 주제로 전개됩니다. 예수님이 떠나고 제자들 홀로 세상에서 사명과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근심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고난을 감당할 힘을 주시고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시며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령은 제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에 대해서 깊이 알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고 나서 제자들이 겪을 고난을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 고난은 출교와 순교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을 고난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말씀하지 아니하십니다. 제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들이 받을 복과 상급을 말씀하는 대신에 그들이 받을 핍박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헛된 기대를 하지 않고 마음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들을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핍박자들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제자들을 핍박한다는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열심은 기독교를 없애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다메섹까지 가서 신자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쳐 놓고자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핍박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순교하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받으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의 범위는 로마를 넘어 스페인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역전승의 명수이십니다.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고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며 우리의 실수까지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난다고 하자 근심이 가득한 제자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밝히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제자들은 예수님이 안 가시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가시는 것이 유익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보다 보혜사가 그들에게 오시는 것이 유익인데, 보혜사는 예수님이 가셔야 오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시공간을 넘어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2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변질되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도와주는 조력자, 상담자, 위로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므로 제자들을 돕고 힘을 주십니다. 책망이란 ‘폭로하다’, ‘바로잡다’, ‘고발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표준새번역은 ‘세상의 잘못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준다’로 번역했습니다. 성령은 세상을 향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잘못된 것을 꾸짖고 바로잡아 주십니다.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데, 제자들은 세상을 미워하면 안 되고 세상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데, 보혜사가 끝까지 그 일을 도우십니다. 

  먼저 그는 죄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보통 죄는 해악을 끼치거나 불법을 행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을 생각합니다. 거짓말, 도둑질, 간음, 살인 등. 물론 죄가 맞습니다. 그러나 보혜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3:16)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을 제외하고 죄를 논의하는 것은 죄의 잔가지를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거절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근본적인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멸시입니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주셨는데 그는 자유의지를 오용함으로 거절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자 하니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둘째, 의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다 자기 의가 있습니다.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자기 의가 있지요? 어떤 사람은 횡단보도를 바로 건넌다는 의, 길에 휴지 안 버린 자기 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십시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는 아버지와의 옳고 바른 관계성입니다. 아버지께로 가지 못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인이 아버지께로 갈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인정하시는 유일한 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고서만이 아버지께로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죄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죄함을 빌라도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에게 죄가 있었다면 주님은 부활하여 하나님께로 가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고 그의 의로우심을 확신하게 합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 하나님 앞에 이를 수 없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 돌아가 승리와 영광 얻으신 그리스도가 진정한 의가 되십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의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데 이는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임금이 심판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임금이 승리의 개선가를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임금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 임금은 죽음의 권세를 가진 사탄으로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죽음의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탄을 정복하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죄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죄를 심판하시고 사탄을 정복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모든 원수를 진멸하실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불의가 득세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선을 행하는 사람,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임금을 심판하셨습니다.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요? 그런데 보혜사는 세상 임금이 심판 받았음을 깨우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체계는 죄를 낳고 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음을 성령께서는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살 때 의와 진리의 길을 가게 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을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보혜사 성령께서는 세상에 대해서는 검사, 판사의 역할을 하신다면 제자들에 대해서는 목자, 인도자의 역할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도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하는 이유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진리란 예수님 말씀과 관련된 것입니다(12). 이제까지 주신 말씀과 주고자 하시나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어 주지 못하신 말씀들입니다. 성령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라 하셨고(14:6), 아버지 말씀이 진리라 하셨으므로(17:17),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을 주시고 순종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 죄 가운데 방황하다 죽게 됩니다(8:21).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8:32). 제자들이 박해 속에 실족하지 않으려면 진리에 굳게 서서 진리를 증거해야 하는데, 성령께서 이 일을 행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진리가 없거나 흐릿하면 분별력, 판단력이 흐릿해져 헛생각을 하고, 어두운 생각에 시달립니다. 죄의 유혹에 빠지거나 인생의 방향을 정하거나, 사람 돕는 문제 앞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내 힘과 의지로 진리의 길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로 인도 받아야 하고 예수님은 진리의 성령을 인도자로 보내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주신 가장 축복된 선물입니다. 나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귀 기울이며 성령께 순종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진리의 길을 갈 힘을 주십니다. 성령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듣는 것 말하는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겸손한 마음에 임하십니다(13). 또한 그는 장래 일을 제자들에게 알리십니다. 장래 일은 곧 다가오는 일들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 당시 곧 다가올 일은 죽음과 부활, 승귀를 통한 하나님의 일인데 성령께서 구속 역사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는 뜻입니다. 장래 일이란 시간적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의미입니다. 마치 선지자, 예언자가 미래 일을 말하는 자라기보다 과거, 현재, 미래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는 사람인 것처럼 성령은 과거, 현재, 미래 속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려 주십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예언자를 찾거나 점을 보러 갑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고 미래에 대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하셨습니다(행 2:17).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믿음으로 도전하고 모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져가 알리십니다. 지금 제자들은 진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보혜사, 진리의 영이 오셔서 그들 안에 거하고 함께 하시며 모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예수님이 얼마나 영광스런 분인지 평생 알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깨달으며 성장하고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세상의 미움과 박해가 있지만 이런 내적 성장과 열매 맺는 기쁨이 있다면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시는지 알쏭달쏭하기만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올 성령강림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해산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눈물 흘리는 시간은 ‘조금 있으면’의 시간입니다. 참고 인내하고 기다릴 때 성령의 오심을 경험하고 생명 탄생의 기쁨이 가득할 때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혼란스러울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구하는 것을 받게 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은 기도 충만, 응답 충만, 기쁨 충만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는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안다고 말하며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감격적인 순간에 예수님은 김빠지는 말씀을 하십니다. 32a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들이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질 것을 아십니다. 자신은 혼자 남게 될 것입니다. 외롭습니다. 신임하는 제자 중 하나는 자신을 밀고하러 떠났고, 하나는 곧 부인할 것이고, 다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며 호산나를 외치던 이들, 떡을 먹고 배불러 좋아하던 이들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섭고 잔인한 로마 군대와 비난하고 저주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반대편에서 욕하고 증오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물론 군중 속에서는 실낱 같으나마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다 돌아선 사람들입니다. 그를 향하여 실망의 빛을 얼굴에 드리우고 원망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실망하지 아니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32b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외로움 속에서 주님은 믿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함께 하는 이가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요1:2절에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8:16절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떠나간 다음에도 하나님은 주님과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어도 될 이는, 아무도 없이 떠나간 다음에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자기가 신임하던 이들이 떠나기도 합니다. 자기를 지지하고 후원하던 이들이 떠난 다음 얼마나 외로운지 모릅니다. 광야에 버려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그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주님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도 찾아오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실패를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고기를 잡지 못해서 낙심하고 있을 때입니다. 여느 때 같으면 가족들이 나왔을 것이고, 구경꾼도 있을 것이고 경매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기를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아침에 조용히 찾아오신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해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연약하여 주님을 나중에 부인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힘없이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스승이신 예수님을 배신한 부도덕한 제자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던지고는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운 아침에도 주님은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불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일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혼자 남는다고 슬퍼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가 주시는 위로로 고난을 감당하십니다. 더 나아가 연약한 제자들을 격려하고 붙잡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에 실패한 다음에도 주님은 오십니다. 누가 뭐라해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락방에서 사랑의 말씀, 진리의 말씀, 소망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박해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을 죽음으로, 사랑으로 이기십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때문에 환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평안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랑으로 세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해서 제자들을 연단하시고 크게 쓰실 그릇으로 빚으십니다.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더 나아가 환난 당하는 자들의 위로자가 됩니다. 문제는 환난을 당할 때 낙심해버리고 슬픈 마음으로 요동하고 함부로 살게 되면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서 환난을 잘 대처할 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교회사를 연구해 보면 핍박 속에서 교회는 건강해지고 성장해왔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가을에 외로움을 타는 우리에게 주님은 늘 함께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36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798 요한복음 이엘리야 118 09-27
797 요한복음 이엘리야 105 09-20
열람중 요한복음 이엘리야 99 09-13
795 요한복음 이엘리야 127 09-06
794 요한복음 이엘리야 103 08-30
793 요한복음 이엘리야 92 08-23
792 요한복음 이엘리야 95 08-16
791 요한복음 이엘리야 99 08-09
790 요한복음 이엘리야 109 08-02
789 요한복음 임요한(종수) 82 07-19
788 요한복음 이엘리야 98 07-12
787 요한복음 이엘리야 93 07-05
786 요한복음 이엘리야 105 06-28
785 요한복음 이엘리야 99 06-21
784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20 06-1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