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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6년 행3강(3:1-26) 그 이름을 믿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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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7회 작성일 16-04-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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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3강
말씀 | 사도행전 3:1-26
요절 | 사도행전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날 때부터 못 걷게 된 사람을 일으킨 표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10). 이 표적을 통해서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임을 드러냈습니다. 베드로는 놀라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11-26).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이릅니다. 예수의 이름 권세가 어떠한가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가 맨숭맨숭한 상태로 있지 말고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밤이고 낮이고 누워있는 사람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1-10). 베드로와 요한이 구시 즉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경쟁관계에서 찰떡궁합을 이루며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합심해서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규칙적이고 습관적으로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정해진 시간뿐 아니라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엡6:18).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행2:41).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악한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베드로와 요한처럼 힘 있게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와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습니다. 미문은 성전의 동쪽 문으로 세계 최고의 품질인 고린도 황동으로 건축되어 높이 23m의 위용을 자랑하며 금을 입힌 것보다 더 화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과 대조적으로 한 사람이 성전 문에 앉아서 구걸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있지만 하나님에게 기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예배다운 예배를 드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진정한 기쁨을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저자 누가는 성전의 무력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성전에 계시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불구자는 죄인 취급을 받아서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거지에게 성전은 일터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꽃다운 20을 지나 40이 되도록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긍휼과 믿음으로 이 사람에게 주목했습니다. 지금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지만 기도하러 올라가는 중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 한 사람에게 주목한 것입니다. 성령의 특별하신 감동을 받아 누구도 주목하거나 말을 걸어주지 않던 이 사람에게 주목했습니다.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사람도 성령이 역사하시면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탈북자들에게 주목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장애인을 주목합니다. 우리는 청년 대학생들을 주목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도 지나치기 쉽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을 주목하고 섬기는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주지 않을까 혹시 배추 잎사귀 같은 만원 권, 아니면 신사임당 이모가 있는 오만원 권을 기대하면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얻을까? 우리에게는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 돈, 좋은 학점, 취업, 친구, 결혼, 집 등도 필요합니다. 복음 역사를 섬기려고 해도 돈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양들에게 밥도 사 먹여야 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돈이 들어갑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고기를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식으로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의 만나를 내려 먹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만나를 먹이심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할 때, 우리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았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무기력하게 게임이나 하고 스마트 폰을 붙잡고 즐기며 현실 도피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입을 크게 벌려 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신령하고 영원한 복을 알지 못했고 그것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얻고자 이 자리에 나아왔습니까? 먹고 입는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를 바랍니다. 썩을 양식 대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꿈조차 꾸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영생을 비롯해서 정말로 우리에게 귀중한 것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베드로가 없는 은과 금만 생각했다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없는 것을 바라보기보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란 무슨 뜻입니까? 이름은 성경과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예수님의 변화시키는 능력,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위선에 대한 증오, 우리가 자신처럼 거룩해 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소망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우주 창조와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대한 모든 지식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임재와 그의 권능과 예수님이 살아서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자기 혼자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서, 자기 곁에서 함께 행동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명령했습니다. 그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의 이름으로 간청할 수 있는 권세를 위임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모든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또 우리는 사탄과 그의 계획과 모든 사악한 궤계를 꾸짖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요,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요, 이것이 우리의 승리인 것입니다.

  은과 금은 사실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그를 온전하게 하는 데는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은과 금이 있다할지라도 그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은과 금 즉 취직을 원합니다. 취직을 통해서 자립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은과 금이 없는 것으로 인해서 궁색해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힘을 얻어 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이런 문제 앞에서 누구의 죄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자신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할 것을 허락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5,17,18).” 이 말씀을 믿은 베드로가 그 사람에게 명령하고 나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른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앉아만 있던 사람이 일어났을 때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뗄 때마다 흥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건물인 성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성전 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었습니다. 성전은 건물이나 건물 안에 있는 제도나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 권세로 일합니다. 모든 백성이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그가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몸과 마음이 병들어 제대로 걷지 못하던 사람이 놀랍게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평생을 선교사로 산 스탠리 존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69세 때 중풍에 걸려서 보스턴 병원에 입원하고 5개월 동안 있는 동안 「디바인 예스(Divine Yes)」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예”하는 것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도 간호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아침에 나를 보러 올 때 ‘굿모닝’ 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해 주겠어요? 간호사는 황당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환자의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스탠리 선교사의 병실로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결국 스탠리 선교사는 연로하여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측을 뒤엎고 5개월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건강하게 살면서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동경 UBF 박에스라, 박에스더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박에스더 선교사님은 첫째 아이를 한국에서 출산하고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두고 온 고모리 목자가 아버지 핍박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산후조리를 충분히 못한 바람에 디스크에 걸려 30분도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는 일본에서 박사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선교지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남았습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던 중 바로 오늘 말씀 사도행전 3:6절 말씀이 일용할 양식으로 나왔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면서 허리 디스크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믿으면 지금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동경대학에 다니는 나오미 자매를 힘써 도왔습니다. 동경대학에 다니는 자매님이니 얼마나 교만하겠습니까? 한국 사람을 인정이나 하겠습니까? 또 그 자매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복음의 능력을 믿고 인내하며 도왔을 때 마침내 그녀가 변화되어서 목자가 되었습니다. 남산센타 출신의 최요셉 선교사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최요셉 선교사는 게이오대학에서 북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후쿠오카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두 사람이 후쿠오카 대학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믿음의 역사입니다.

  둘째, 회개하고 숨통을 확 트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여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에게 향한 시선을 그리스도께 돌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자부하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그의 종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를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셨고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신 그 분을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재판장인 빌라도가 예수님은 죄가 없음을 알고 놓아주기로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예수님은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생명의 주를 죽인 중한 대역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6절을 보십시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그 이름에 이런 능력이 있는 이유는 그 이름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살아계시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은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안다고 합니다. 그들이 죄 없이 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들이 참으로 무서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 없이 함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 없이 함을 받는다는 것은  죄를 경감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죄에 대한 기록을 지우는 것을 말합니다. 칠판에서 분필 자국을 지우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처럼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생명의 주를 죽인 죄를 비롯해서 그들이 저질렀던 모든 죄의 기록들을 깨끗하게 지워주십니다. 지금까지 내가 지은 죄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그 분량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목록을 완전히 없애고 지워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새롭게 되는 날이 이릅니다. 새롭게 된다는 말은 숨이 제대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상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숨을 못 쉬는 이유는 폐가 경직될 때, 폐가 섬유화 되어 꽈리가 공기를 빨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과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로 인해서 폐가 경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할 때 마음이 신선해 집니다. 마음이 뻥 뚫립니다. 마음에 탄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상쾌하게 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맨숭맨숭한 마음이 새로워지고 활력을 얻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은 성도들은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기쁨, 새로운 열매를 경험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믿고 일어나 걷게 된 사람처럼 우리도 그 이름을 믿고 구원을 받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이 상쾌하게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에 세계 선교보고 대회에 500명 이상의 선교사님들이 들어옵니다. 이 분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세계 각지에서 이루신 일들을 보고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이 분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영광을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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