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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16년 말4강(3:13-4:6)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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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6회 작성일 16-03-13 09:15

본문

2016년 말라기 제 4 강 
말씀 | 말라기 3:13-4:6
요절 | 말라기 4:2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우리는 지난 주 십일조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유익을 바라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으로 사는데도 현실이 어려울 때 신앙생활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라는 불평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런 상황에 처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들이 징계를 받지 않고 잘 나가는 것을 볼 때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따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대답을 하십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 회의에 빠져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섬겨봐야 아무런 보상도 해 주시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기복신앙에 빠진 사람들은 신자들이 어렵게 사는 것은 잘 못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적으로도 성공하고 건강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윤리가 없어집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이 무엇인들 이용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가치관으로 인해서 기독교가 샤머니즘화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지금 한국 교회의 병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이 말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현상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비싼 과외를 받으며 선행 학습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앞서 나가고 이들이 부를 대물림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국회의원의 자녀들이 부모의 권력을 이용해서 취직을 하고, 관직에 등용되는 현실, 기득권층의 횡포, 각종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볼 때 땀 흘려 일할 의욕이 사라져버립니다.

  이렇게 가치관이 헷갈리는 시대, 신앙에 대한 냉소주의가 퍼져가고 있는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살기 힘든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고 계신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를 위하여 무엇을 하십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피차에 무슨 말을 했을까요?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에 욥과 같은 말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3).”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나님은 현실이 어려운 가운데서 믿음으로 사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구별하시며 특별한 대우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행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고 나서 열 두명의 리더를 가나안 땅에 보내어 정탐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열 명은 불신에 가득한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 이로 인해 온 회중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고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민수기 14:28절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다 광야에서 멸절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우리가 말을 내뱉는 대로 뇌가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의 말, 원망하는 말,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말을 하는 대신에 믿음의 말, 희망적인 말,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듣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그들의 이름을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공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용광로에 타버릴 한 낱 지푸라기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념책에 기록된 사람들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그들을 아끼십니다(17). 부모가 아들을 아끼는 마음은 참으로 큽니다. 하물며 부모를 아끼는 아들을 그 부모가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겠습니까? 자기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복 주시되 생명을 길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구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날에 양과 염소, 곡식과 가라지, 의인과 악인, 소자 하나를 돌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분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렇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어떤 은혜가 임합니까? 4:1,2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용광로 불과 같은 심판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의로운 해가 비추어 그들을 살릴 것입니다. 그들이 의를 행한 결과가 아니라 의가 해처럼 그들을 덮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의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만나 정죄하는 대신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심으로 구원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자를 만나 죄를 짓고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목이 타들어가던 이 여인을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물 좀 달라” 말씀하시고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물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구원의 빛, 치료의 광선을 비추어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믿음을 주시고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의롭게 될 수도 없고 의로운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해를 비추어 주실 때 그 힘을 덧입어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복음의 빛, 성령의 능력은 우울증, 공황장애, 동성애, 자살충동, 두려움, 걱정, 근심, 스마트 폰 중독 등 각종 질병을 치료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대적했던 사람들의 입을 닫으십니다.

  이와 같이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임 받고 회복된 사람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기쁨으로 뛰놀게 됩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는 아무도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는 송아지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병이 치료된 사람들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기쁨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기뻐했을 때와 같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외양간에서 나오는 송아지와 같이 기뻐 뛰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감격이 얼마나 큰가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자기 세계, 죄의식, 과거의 상처, 분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에 갇혀서 빠져 나오질 못합니다. 그러나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실 때 송아지와 같이 뛰게 됩니다. 저도 허무와 죄의식으로 인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에 복음의 빛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충만함을 덧입고 기쁨으로 사명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빛, 성령의 빛이 임할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쁨과 자유와 활력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악인을 밟을 것입니다. 악인은 의인의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이 됩니다. 의인에게 승리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지금은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것 같지만 주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실 때 악인들은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이 되고 의인들이 왕적 지위를 탈환하게 되고 영광을 얻게 됩니다.

  가치관이 전도되어 혼란스럽고 미래가 불투명할 때 자행자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호렙은 시내산의 옛 이름입니다. 언약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례와 법도, 언약을 기억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주신 말씀을 기초로 볼 때 하나님께서 심판의 때에 악인을 징계하시고 의인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다시 언약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관계를 회복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엘리야는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가지고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눅1:17). 그가 와서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세례요한이 와서 행할 일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 전한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돌이키는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돌이켜 회개할 때 구원이 임하고 축복이 임합니다. 돌이켜 회개할 때 파괴된 관계성이 회복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지 아니하는 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요? 가정에서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밖으로 겉 돌면 아이들이 버릇이 없어집니다. 또 자녀들이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켜야 합니다. 자녀들이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공경하기 어렵습니다.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면 패륜아들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을 통해서 경건한 자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경건한 자손은 부모의 신앙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교만과 완악함 속에서 끝까지 제 갈 길로 가고자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용광로 불에 지푸라기처럼 뿌리와 가지가 다 타질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새 언약의 주인공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원이 임하고 그런 자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기뻐 뛰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는 경고로 끝나지만 신약은 공의로운 해가 되시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복음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전 세계에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태양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의롭다 하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말라기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짙었습니다. 그런 어두움을 지나 주님이 오셨고 세상은 큰 빛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풍성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때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본을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와 같이 기뻐 뛰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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