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특강 2016년 말2강(2:1-16) 언약을 지키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5회 작성일 16-02-28 09:37

본문

2016년 말라기 제 2 강
말씀 | 말라기 2:1-16
요절 | 말라기 2:5

  언약을 지키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오늘 말씀은 전반부(1-9)는 제사장에게 주는 명령이고 후반부(10-16)는 유다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공통점은 그들이 언약을 깨트리고 지키지 않은 것을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제사장에게 주시는 명령. 하나님은 1:6절에 이어 계속하여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2).”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요즈음 뜨는 말로 경청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그 말씀에 귀 기울여 듣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누가 나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면 어떻습니까? 그가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누가 나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줄 때 자신의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누가 나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줄 때 더 좋은 정보, 고급 정보를 주고 싶습니다. 나의 비밀스런 부분도 함께 나누고 싶어집니다. 그와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깊이 듣는 사람을 이같이 사랑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는 사람이 그를 영화롭게 합니다. 경청은 학습 능력을 높입니다.

  8살의 화학천재, 신희웅 군의 이야기입니다. 놀랍게도 8살 아이가 어려운 고등학교 화학책을 스스로 읽고 원소 주기율표를 다 외웁니다. 집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어려운 화학책이고 장난감과 게임 대신 항상 화학책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조건이 눈에 띄지 않는 가정에서 희웅이의 영재성을 극대화시킨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희웅이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청각장애인입니다. 부모님은 평소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 알아듣기 때문에 대화할 때 상대방의 입모양을 집중해서 쳐다봅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부모의 장애 때문에 성장에 방해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똑똑하게 잘 자라준 희웅이! 희웅이 부모님은 희웅이가 이야기할 때 한 번도 중단시킨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입모양을 유심히 보며 희웅이의 말에 집중해서 들어주면 희웅이는 신이 나서 부모님도 잘 모르는 화학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러기를 1시간. 부모님은 끝까지 희웅이의 이야기를 따뜻한 눈길로 다 듣고 있습니다. 잘 들어주는 것 외에 해줄 것이 없다는 희웅이 부모님! 그들은 제작진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교육방법이 얼마나 부족하며 앞으로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지 알고 싶어서 전문가를 찾습니다. 전문기관의 검사를 받고 놀라운 결과를 받게 된 희웅이 부모님!

  부모양육태도검사에서 어머니는 100점 만점으로 1000명 중에 1명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왔고 아버지는 95점으로 2000명 중에 1명에 해당하는 점수가 나온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경청하는 일 외에 해줄 것이 없다는 부모님의 유일한 방법이 최고의 양육 방법이며 정서적 안정점수, 지지 반응 점수에서 최고점이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장점과 은사를 극대화하는 것은 특별한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과 시간과 재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따뜻한 눈길로 경청하는 것, 이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잘 들을 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귀한 일꾼들이 역량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행하는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을 세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자들은 어떻게 저주하십니까? 3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죄에 대해서 그 자손을 꾸짖으십니다. 자손을 꾸짖는다는 말씀은 그 자손들이 제사장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활하는 데 소산을 거두어 더 이상 제사장 직무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본래 얼굴은 그 사람은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얼굴을 빛나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화장품을 씁니다. 영양크림을 바르고, 오이 팩, 진흙 팩을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과 평강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수양회에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반대로 양식을 먹지 않고 말씀을 거부하며 죄 가운데 거하게 되면 얼굴이 연탄처럼 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제사장의 얼굴에는 절기의 희생 똥을 쳐 바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똥과 함께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수치스럽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저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말씀을 깊이 듣고 마음에 새기며 그를 영화롭게 해야겠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올 때 그 얼굴이 해처럼 빛났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 그 얼굴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모세의 정죄의 직분이 영광스럽지만 그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복음의 제사장의 직분은 의의 직분으로서 더욱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 날을 사모하고 말씀을 깊이 듣고 전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신실하게 공부하고 소감을 쓰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도 영광스럽게 하심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명령을 내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께서 레위와 세운 언약이 항상 있기를 원하십니다.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입니다. 이는 그 약속을 잘 지킬 때 생명과 평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레위언약은 레위 후손들을 구별하여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주신 언약입니다(민25:13). 민수기 25장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청년들이 바알 우상을 섬기며 음행하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 비느하스가 일어나서 분명하게 죄를 징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가 그쳤고, 레위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이 언약에는 특권과 함께 거룩한 의무가 들어 있습니다. 레위 언약을 주신 목적은 그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직분을 감당토록 함이었습니다.

  그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그들의 조상 레위는 그 언약을 기억하고 경외함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였습니다. 그의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습니다. 화평함과 정직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제사장들은 어떠했습니까? 조상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으며 마음이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옳은 길을 떠난 근본 이유가 무엇입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올바른 제사장의 길은 무엇입니까?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합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니라 율법 곧 말씀의 지식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사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여호와의 사자(messenger of the Lord)로써 말씀의 전파자, 하나님 말씀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마음은 수도관과 같은데 내 심령이 더러워지고 막혀 있으면 말씀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게 됩니다. 말과 삶을 통해서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자가 바로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살아 있을 때에는 백성들을 잘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씀을 버렸을 때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준행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있을 때 무지한 자들을 깨우쳐 주고 영혼을 깨어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 백성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고 큰 나라가 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길을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치우치게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하여금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율법을 행하며 사람 중심으로 치우칠 때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가 도리어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사람의 형편을 봐주고 타협하였을 때 그들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정말 아이러니 합니다. 당시 제사장들이 정직하게 율법을 가르치기보다 형편에 따라서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람 중심입니까? 하나님 중심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공평하게 사람을 대하기보다 사회적인 신분으로, 부귀의 정도로 대우하게 된다면 그 모임은 인간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백성들이 어렵더라도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직장 일이 바쁘고 어려운데 최고의 시간을 주님께 드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피곤해서 안 나오는 것보다 나와서 졸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3장에서 십일조 문제가 나오는 것을 볼 때 당시 사람들이 너무 살기가 어려워서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가운데 행위중심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현재 상황에 매몰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지금 당한 문제 때문에 믿음을 잃고 무기력하게 헤매기 쉽습니다. 아니면 잘 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살기 쉽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현재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와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하나님께 정성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나님은 현재 나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제사장의 의무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둘째, 백성들에게 주시는 명령. 이제부터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백성들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였다는 것은 그들도 언약을 깨뜨렸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거짓되이 행한 것은 배신을 의미합니다. 거짓되이 행한다는 말은 상거래의 속임수나 혼인 관계의 부정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 죄악으로 인해 유다 백성들은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했습니다. 여기서 조상들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이방 민족과 구별하고 거룩한 자기 백성을 삼으신 언약을 의미합니다(출19:5,6).

  그들이 지키지 않은 약속은 무엇입니까? 11-14절에서는 그들이 자기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이방인의 딸과 결혼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그들 중에 이혼을 당한 아내들이 여호와의 제단에 와서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그들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받지도 아니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어찌 자신들의 봉헌물을 받지 아니하심이 어찌됨이니이까 물었습니다. 이는 그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조강지처를 버림으로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할 때 서약을 하였습니다. “신랑 누구누구 형제님은 신부 누구누구 자매님을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아내로 영접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보호하며 섬기고 동역하겠습니까? 아멘(예).” 이처럼 하나님과 여러 증인 앞에서 서약한 것을 깨뜨리는 것은 성결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 경제적 유익을 위해서 그 땅의 유력가 자녀들과 잡혼을 유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순수 신앙이 훼손되고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특별히 구별된 백성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혼의 타락이 결국은 모든 타락의 첫째 고리가 됩니다. 노아 시대, 소돔 고모라 시대, 로마 시대 등 항상 죄악이 관영할 때 성도덕이 무너지고 결혼의 질서가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것은 조상들의 언약에 기초해서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서 구별되지 못하고 동화되어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면 그 언약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며 순종할 때 가정이 화목합니다.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부족한 것 때문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다 잘하면 내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 부족한 점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인데 자꾸 잔소리를 하면 사실 자신을 욕하는 것입니다. 내가 동역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동역을 잘 하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고자 하면 가정이 살고 내가 살고자 하면 가정이 죽습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를 통해서 성경적인 가치관을 분명하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부부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많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남자, 여자 각각 하나만 만드셔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창2:24).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순수 신앙과 결혼의 순결을 지키고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손을 낳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신앙이 변질되지 않고, 결혼의 순결이 지켜지는 가정에서 경건한 자손이 나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한 가정에서 경건한 자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 자손도 어머니를 따라 우상 숭배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령을 지켜 이방 여인의 유혹, 그 아름다운 외모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가 많이 나옵니다. 오늘날 혼인 관계 외에 불륜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혼인 서약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결혼에 관한 언약을 소중히 여기고 가정을 순결하게 지키고 경건한 자손들을 키우는 복을 받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아내를 때리고 옷으로 가리거나, 폭력을 행하여 옷을 입힌 것처럼 만드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같이 아내를 사랑으로 덮어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랑은 반드시 결혼의 서약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은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언약을 지키시는데, 언약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 언약에 주어진 축복도 없어집니다. 언약을 지키지 않을 때 결국 마음대로 살다가 멸망에 이르고 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언약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언약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구별하여 거룩한 백성 삼으신 언약, 말씀을 맡겨 주심으로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토록 하신 귀한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결혼 서약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약을 귀히 여기고 지킴으로 언약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는 언약에 기초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를 그의 제자로 삼으시고 배운 바 말씀을 캠퍼스와 전 세계에 전하는 직분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삶은 우리에게 기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서 증거할 때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우리가 말라기서 말씀과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복음 바이블 까페를 통해서 캠퍼스에 말씀을 증거하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34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828 사도행전 이엘리야 103 04-24
827 사도행전 이엘리야 117 04-17
826 사도행전 이엘리야 115 04-10
825 특강 이엘리야 76 04-03
824 특강 이엘리야 98 03-27
823 사도행전 이엘리야 109 03-20
822 특강 이엘리야 76 03-13
821 특강 이엘리야 96 03-06
열람중 특강 이엘리야 76 02-28
819 특강 이엘리야 84 02-22
818 히브리서 이엘리야 116 02-14
817 히브리서 이엘리야 117 02-07
816 히브리서 이엘리야 110 01-31
815 히브리서 이엘리야 105 01-24
814 히브리서 이엘리야 124 01-1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