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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6년 행15강(16:1-40)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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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1회 작성일 16-07-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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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도행전 15 강
말씀 | 사도행전 16:1-40
요절 | 사도행전 16:9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우리는 때로 하고자 하는 일들이 막히고 진전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낙망하고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사 가는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길을 걷지만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부르는 양들의 음성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 인생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바울이 환상을 보다(1-10).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러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전한 복음의 열매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거짓 없는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딤후1:5).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볼 때 그의 어머니는 유대 전통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서 디모데가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고전4:17). 바울이 1년만에 그곳에 도착해보니 디모데는 믿음이 많이 성장해 있었습니다(2). 바울은 그를 자신의 동역자로 삼고 2차 전도여행을 하고자 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 마가 요한이 담당했던 역할을 맡기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디모데의 나이를 약 21세로 추정합니다(Lenski).

  바울은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들이 전도여행 때 방문할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알고 그를 할례를 행하지 아니한 이방인 취급을 하게 되면 그 문제로 다투다가 복음을 전할 기회를 잃어버리기 쉬웠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 총회에서 할례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없음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또 할례와 구원은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바울 자신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을 상대로 전도할 때 유대인인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 더 낫다고 전략적인 판단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0-22) 우리도 양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구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라면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 일행은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교회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비두니아는 소아시아 북쪽입니다. 바울 일행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자 하나 성령께서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애를 쓸수록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 있던 안질이 재발했거나 간질이 발작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거나 아니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이나 두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살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사역을 주관하고 계신 분이 예수의 영 곧 성령님이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북동쪽 비두니아로 가는 길이 막혔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소아시아 서쪽 끝에 위치한 드로아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자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습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나타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청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입니다. 찬란했던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곳도 쇠퇴하여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경륜을 따라 유럽 땅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잠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유럽은 로마가 닦아 놓은 대로와 헬라어로 통일이 되어서 복음이 빠르게 전파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되면 저돌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70년대 동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이를 막으시고 서독과 미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당시 로마와 같은 미국의 영향력을 통해서 세계 선교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캠퍼스 선교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학이 많은 나라들에 더 많은 선교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허바울 마리아 목자님은 박사 후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프랑스 개척 역사에 일꾼이 필요함을 아시고 이들을 파리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프랑스에서 도움이 필요한 양들이 그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많은 교회 중 특별히 UBF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캠퍼스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마게도냐 사람과 같습니다. 장래의 소망이 없고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합니다. 졸업을 하기가 두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위로부터 오는 평강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목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부르심을 인정하고 홍대와 전 세계 캠퍼스 양들에게 나아가 생명을 걸고 사랑하며 구원해야 합니다. 이번에 수양회에 참석하지 못한 양들과 일대일을 회복하며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다(11-15).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에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 그 곳 백성들은 로마 시민들로서 투표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로마법의 적용을 받고 세금 면제 같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이 성에서 수일을 유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때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마음을 여셨다는 표현을 볼 때 사람이 자기 스스로 복음을 영접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복음을 영접하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시는 자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 말씀을 전하면서도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이 심기는 것도 은혜입니다. 말씀이 심겨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 회개하고 구원을 받습니다. 루디아가 회심한 이후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집에는 아이와 하인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들도 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루디아는 매우 적극적인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바울 일행을 청하여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강권을 볼 때 루디아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큰 구원의 감격을 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디아의 따뜻한 대접을 통해 사도 일행은 큰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을 세우심으로 개척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어렵지만 한 사람이 견고하게 설 때 그를 기초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해갑니다. 학생 역사도 주인의식이 있는 한 명을 세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핵심이 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주변에 친구들이 모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세우시고 열 두 제자를 팀으로 묶어 제자 양성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회목자들을 중심으로 제자양성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 요회가 하나의 가정 교회로써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성장해 나갑니다. 우리 각 요회가 학생 제자 양성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제자를 얻어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에 대한 소망을 넘치게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간수의 회심(16-40).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 여종은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점이 용하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점을 치러왔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이 같이 여러 날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심히 괴로웠습니다. 심히 괴로웠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귀신이 그 여종을 사로잡고 있고 그런 불쌍한 종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악한 주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귀신 들린 여종의 모호하면서도 달갑지 않은 칭찬을 받음으로써 바울 일행의 복음 전파가 귀신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것은 복음 전파에 심각한 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돌이켜 그 귀신에게 명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니 그 여종은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고소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무리가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상관들은 바울 일행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간수는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습니다. 차꼬는 두 개의 긴 나무토막에 구멍 두 개를 뚫고 거기에 두 발목을 고정시킨 다음 쇠로 된 자물쇠로 채우는 형구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중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많은 매를 맞은 뒤 차꼬를 차고 깊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곳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결과적으로 심한 매를 맞고 중죄인 신세가 되다니, 얼마나 낙심하기 쉬웠겠습니까? 장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 시달렸을 수도 있습니다. 대개 이런 순간에는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하던지 침묵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말을 한다면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때 두 사도는 무엇을 했습니까?

  2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그들이 한밤중에 어떤 곡조에 어떤 가사로 찬송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찬송은 매우 감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환난 가운데서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넘쳤습니다. 그 소리를 다른 죄수들이 집중해서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간수가 볼 때 비참한 처지에서도 도리어 기도하고 찬송하는 사도들이 신기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 있지만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이런 고난까지도 그리스도를 위해 받아야 할 고난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전에 성도들에게 권면했던 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며 꽃길을 걷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길, 목자의 길은 양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삶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목자들이 당하는 고난이 힘들기 때문에 양치기를 두려워합니다. 영원히 양으로 남아서 목자님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식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듯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이 환난을 태양 빛에 비유했습니다. 식물이 태양 빛을 받아 광합성 작용을 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환난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주님과 양들을 위해 고난을 받을 때 그리스도의 성품에서 닮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는 고난 속에서 감사기도를 드렸고,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풀어졌습니다. 찬송과 기도는 결박을 푸는 힘으로 나타났습니다. 간수는 감옥에 와서 노래하고 찬송하는 사람들을 처음 보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옥문이 열렸는데도 도망도 가지 않았습니다.
 
  간수는 바울의 찬송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들다가 큰 지진과 옥터가 움직이자 깨어났습니다. 그는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물었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 간수에게 구원은 무엇일까요? 로마 감옥에서 생활하면서 죄수들을 다루고 있는데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 죄수들이 도망갈지 몰라 늘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죄수들을 다루다보면 자신도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박효진 장로님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수들을 다루면서 거칠어져서 “지옥에서 온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죄수들을 사랑하고 이들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섬길 수 있었습니다. 로마 사회는 매우 폭력적이고 음란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았을 때 로마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 살면서 이익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일할 수 있을까요? 이익에 대한 소망이 없이도 일할 수 있을까요? 돈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높아지고 돈을 의지합니다. 돈 중심의 사회에서 구원을 받는다면 돈이 있으면서도 돈을 의지하지 않고 겸손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이 쪼그라들지 않고 부요하고 평안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손해를 보면서도 사명인의  길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구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구원은 먹고 사는 염려를 넘어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이 일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주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들은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했습니다(32). 그러자 그 밤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33). 그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했습니다(34).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당한 환난을 통해서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환난은 위장된 축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믿음으로 인내하며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감사 찬송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결박들이 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간수와 그 집에 복음을 전한 사도들은 기꺼이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날이 새자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바울은 순순히 나가지 않았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바울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바울은 자신 뒤에 남겨질 빌립보의 양들을 부당한 핍박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관리들이 직접 와서 자신들을 데리고 나가게 되면 사도 바울이 무죄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고 그것은 곧 빌립보 성도들의 보호막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데살로니가, 아덴, 고린도 등으로 가서 계속 전도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역해야 할 곳과 전도의 방향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깊이 영접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섬길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찬송하고 감사하며 부르신 곳에서 믿음의 역사를 써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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