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6년 행6강(5:17-6:7) 이 생명의말씀을 다 말하라(이디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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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사도행전 6 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라
말씀: 사도행전 4:32-5:42
요절: 사도행전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베드로의 오순절 부활메시지를 통해 초대 교회가 탄생되고 복음역사는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런 교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내적 외적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로 다시 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인 사도들을 공격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꺾고자 하는 사단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런 사단의 공격에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역사에 더욱 더 자신을 헌신적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친히 보살피시고 그들을 감옥에서 건져내사 생명의 복음을 다 전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시기와 핍박을 극복하고 하나님편에 굳게 설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히 허락하여 주시고 그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가 이 세대가운데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 전하라(5:17-42)
17,1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흥황이 일어나자 사단이 본격적으로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르므로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권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과거 사도들은 배움이 없는 보통사람들로 여기고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무시하며 인정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후 사도들이 외국어 방언으로 말씀을 전하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등 하나님의 말씀역사를 능력있게 이루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기심이 극에 달아올랐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 기뻐하며 그 성령의 역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시기심으로 배알이 꼴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극도의 시기심으로 사도들을 잡아 가둠으로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목자격인 사도들을 잡아가둠으로 양들이 모두 흩어지게 하고자 하는 사단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19절, 20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감옥은 세상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튼튼한 창살과 높은 벽, 또 떡대좋은 감시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권세잡은 자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렇게 감옥에 갇힌 사도들은 더 이상 말씀을 전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초대교회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옥도 하나님의 사자에게는 썩은 동아줄과 같았습니다. 주의 사자는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감옥에 갇힌 사도들에게 쑥~ 다가가서 그들 모두를 모으고 또 아무 거리낌없이 그들을 쑥~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도록 응원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면 우리를 방해하는 사단의 공격은 하나님이 친히 막아주시고, 지켜주시고, 또 위험에서 끌어내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당신의 종들을 절대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23절에 보면 옥문은 굳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은 문에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이 무리를 지어 감옥을 빠져나가는데도 감옥의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건물 어디가 부서진대도 없고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고 이해 못할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자 편에서 이것은 누워서 떡먹기 기술이었습니다. 세상 감옥은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감옥에서 사도들을 끌어내신 후 하나님의 사자는 사도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주의 사자는 사도들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때가되면 부를 테니 집에 가서 숨으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현재 사단의 본거지가 된 성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받는 핍박에 굴하여 위축되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시기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성전에 담대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2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사도들에게 말한 생명의 말씀(The full message of this new life)은 무엇일까요?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것은 생명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었고, 자기들의 전통과 관습이었습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이 죽음과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려주는 몽학선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주의 사자가 말한 생명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30-32절에서 사도들은 공회에서도 이 생명의 복음을 분명히 전하였습니다. 다 같이 이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생명의 말씀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끝납니다. 생명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시기심과 죄악으로 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믿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가 섬기던 하나님이 그 예수를 죽음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스라엘의 악함을 드러내고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로 회개토록하사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그의 오른손으로 높이사 온 세상의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증언한 이 모든 말은 진실에 근거한 사실적인 증언이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 하며 직접 그들의 귀로 들었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심과 죽으심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후에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지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40일간이나 같이 거하며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월적인 부활의 능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바꿀 수 없는 산 증거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증거가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바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내기로 약속하신 성령님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는 자들과 같이 모여 합심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각자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받은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무엇보다 먼저 사도인 자신들을 먼저 살렸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모두 도망다니고 숨어다니던 제자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기는커녕 자신 안에 있는 죄 문제, 누가 크냐는 죄 문제에 넘어져 힘들어하던 제자들이 이제는 성령의 능력안에서 하나가되어 서로 가장 귀하게 여기는동역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행하시던 일을 동일하게 행하는 자들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그 무식하고 무능했던 제자들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바로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생명의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주의 사자가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고 그들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성전에서, 또 공회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42절 말씀은 그들이 전한 생명 복음이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전한 생명의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이 예수님 안에 용서가 있고 죄사함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치유와 고침과 새롭게 됨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우리를 죽음의 권세아래 가두고 노예로 삼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POWER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부활 후에 있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있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복음을 가진 자, 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가졌어도 이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자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가졌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짐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가장 부유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부러워 하는 것은아직 우리안에 차지 않은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빈 공간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이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며, 이 예수님으로 인해 받는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외국에 있든지 또 세상 어디에 있든지 이 생명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산 증인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사도들안에 이 생명의 말씀이 있었을 때 감옥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협박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채찍에 맞아 몸이 아픈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들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으로 여기며 기뻐하였습니다. 공회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매를 맞을 때 서로 더 맞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나를 한 대 더 때려주시오’ 그들은 과거 세상적으로 더 큰 자가 되고자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나를 더 때려주세요. 나를 더 험한 곳으로 보내주시고, 내게 더 어려운 시험을 주세요’ 나를 신앙학교의 대학생으로 취급해 주세요. 초등학생처럼 쉬운 과제 내지 말아주세요.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문제를 내면 자존심 상할 것입니다. 해병대출신 군인을 방위취급하고 은퇴한 늙은이 취급하여 수위만 보라고 하면 아마 자존심 무지무지 상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들은 자신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 채찍까지 맞은 것이 그들의 신앙이 더 인정받는 것처럼 여겨져 도리어 기뻐하였습니다. 그 채찍에 맞음으로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과 예수님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겪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사도들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이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된 자는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 가집니다. 율법이 아니요, 강요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동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생명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이 세상에서 애매하게 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자가 아니었다면 협박도 받을 필요 없고, 짤릴 위험도 없으며, 왕따가 될 위험도 없을 것입니다. 신자가 아니라면 괜히 맞을 일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가슴에 품고 계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이 있다면, 여러분 !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당신이 예수님의 이름을 갖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II.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리라(6:1-7)
6장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초대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교회 내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일을 보고서 사도들이 제자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3,4절) 교회 신도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교회가 사회에 봉사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봉사하여 덕을 끼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service 사업이 교회의 주된 업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선포되고 전해지는 곳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감옥에서 이끌어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런데 만일 사도들이 이 생명의 말씀을 말하지 않으면 생명의 말씀은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으로 섬기는 일에 힘쓰리라.” 그것이 사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들을 세상 권세아래 있는 감옥에 가두어 놓고 협박하고 핍박하고 때리는 세상 권세자와 이 핍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배웠습니다. 사도들은 갖은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여 기도와 말씀전하는 일에 전무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을 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역사는 흥왕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디에 가야하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도 알려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세상 권세와 죄의 세력앞에 굴복하여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실패와 죄의 감옥안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요? 쓴 눈물을 삼키며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앉아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 옆에서 서서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들려주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의 음성을, 생명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위치, 어떤 상황에 처했건 당신의 구세주,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 ! 그 분을 의지하여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한걸음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들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 구원의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저는 세상 죄아래 운명주의와 허무주의의 족쇄에 채이고 감옥에 빠진 죄의 포로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제 자신도 모른 채 제게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예수쟁이라고 경계하고 무시하며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제게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반발하였고, 심지어는 침까지 뱉으며 꺼지라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 교회가 감당치 못한 죄인중의 괴수였습니다. 교회 친구들은 고사하고 심지어 목사님들도 저의 독기어린 말에 눈물을 떨구고 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저를 위해 불개미 정신과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무장된 UBF 목자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다른 사람과 같이 자존심이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상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철없는 죄인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끝도 없는 거절과 바람맞힘을 당하면서도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저를 구원할 수 없었고, 수십 년간이나 몸담았던 학교도, 세상의 교육도 저를 구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귀한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저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귀하신 UBF 선배 목자님들을 통해서 제가 생명의 말씀 앞에 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정죄치 않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셨고 나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멸시와 저주의 십자가에 높이 달려 손과 발에 못 박혀 피 흘리시며 ‘아버지여, 강호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 죄인을 위해 그렇게 두 팔 힘껏 벌려 ‘내가 이만큼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죄사함과 용서가 있고 치료와 치유(healing) 역사가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다는 이 생명의 말씀들이 제게 전해졌을 때 저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죄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 난 후 그 은혜에 감사하며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러 나갔습니다. 우리 귀하신 허한나 사모님과 함께 캠퍼스를 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였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고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으나 저희 하루하루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나 힘이 되었습니다. 양들이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가 제 자신에게 너무나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때마다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졸업시 이사야 49장 6절 말씀,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시고 선교사로 살도록 방향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보내시고 지난 20년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밤늦게까지 외국인 혼자 캠퍼스를 방황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이런 저런 깡패들도 만나고 강도들도 만나, 위험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건져내주셨습니다. 제가 강도를 6번 당했는데 모두 퇴근 후 캠퍼스 가기위해 떠난 길이나 아니면, 캠퍼스에서 양들을 심방하다가, 또는 센터에서 역사를 섬기다가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힘들게 여겨지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제 안에 생명이 있음에 감사하고 또 저를 사랑하사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또 체험한 것에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떻게 그 위험한 고비들을 그렇게 빠져나갔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정말 주의 사자를 저를 데리고 벽을 쓱~ 통과하는 것처럼 때마다 위험한 고비들을 쓱~ 넘기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저희 동역자와 세 자녀들까지 완벽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콩글리쉬로 전하는 복음이었지만, 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생명의 능력이 있어 이 말씀들로 양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슬픔과 운명주의, 정욕에 종이 되어 거짓 소망을 품고 심판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이 목자가 되어 희생하며 생명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전하는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항상 은혜충만, 성령충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단은 수시로 저를 공격하며 넘어뜨리고자 하였고, 죄의 감옥, 삶의 감옥에 넣어두고 하여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늘 생명의 말씀으로 제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습니다. 2006년 대사관을 그만두고 잠시 한국에 왔다가 다시 나이지리아 들어갔을 때는 두려움이 더 심해졌습니다. 비자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당당한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나이지리아에 들어갔다가 나이지리아의 매서운 맛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경찰에 별 트집을 다 잡혀 제가 갖고 있던 돈과 차를 다 빼앗기기를 여러 번 당하자 더 이상 길거리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길거리에 경찰들이 서있는 것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벌벌 떨렸었습니다. 당장 비자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가 눈앞에 시급하니 역사를 섬길 힘도, 여력도 없었습니다. 사단은 이런 문제로 저의 손발을 묶어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자기 일에 매여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양들 제자 삼는 역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껏 수고해서 섬기고 나면 양들이 단물만 쏙 빼먹고 결국 UBF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이들을 붙잡을 여력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적 역사에서 진이 다 빠지게 한 후 사단은 이런 제게 힘든 하나님의 역사대신 세상 재미를 즐기도록 부추겼습니다. 세상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인터넷에 빠지게 만들고 음란죄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하고서는 이제는 너같은 놈은 선교사도 아니고 목자도 아니니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자격도 없고 말씀을 전할 자격도 없다는 수없는 정죄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윤안드레 선교사님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가시며 빈자리에 풀타임목자로 세운 듀크목자를 도와 야바텍 역사를 잘 동역해야 했으나, 저는 이를 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사단이 주는 정죄의 화살과 하나님앞에 쓸모없는 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책감과 운명주의 감옥에 가두고 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슬피울며 있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선교지, 심지어 UBF에서 조차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선교지 나이지리아에서 지부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냥 평신도 동역자로서 평생 거하며 살며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자비량으로 거친 나이지리아의 생활을 이어가며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듦같이 세월이 흘러 몸은 늙어가고 영혼은 말라가고 있는 것을 느끼며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너무 힘들어져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41:9절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제게 당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제가 두려움에 떨 때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말씀으로 저를 굳건히 세워주셨습니다.
홍다니엘, 수산나 선교사가정과 말씀공부를 이루고 센타 리더들과 말씀공부를 이루게 도와주셨고 이를 통해 야바텍 역사에 힘들어졌던 리더들과 양들이 힘을얻고 일어서며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역사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살아서 역사하며 힘들고 어려웠던 각자의 문제를 넘어 하나 둘씩 말씀앞에서 강건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명의 말씀을 제게 주심으로 저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또 야바텍 센타 영혼들을 먹이는데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사야 49:5,6절 말씀 중 ‘네가 나의 종이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라는 말씀을 영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20년동안 가족 구원 역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지파들도 돌아오게 하지 못하는 그런 자가 무슨 이방인의 빛이 되는가하는 사단의 고소에 자주 시달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그 말씀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 안드레아 목자님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제자훈련을 받고 귀하신 나에녹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교회를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동생 강명이도 예수님을 만나 6년동안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축복해주셨었습니다. 그후 힘들어져 신앙은 접었으나 하나님께서 그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이번 주에 저희 숙소에 방문한 막내동생 강문이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강문이는 저도다 더 심산 ANTI-CHRISTIAN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라면 두팔벌려 막으시던 아버지께서 이제는 같이 기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어머니 안에 이루어진 생명의 말씀 역사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는 8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반신불수가 되셨고 간혹 치매증상이 있으십니다.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던 둘째동생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저희 가정이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가 매인 몸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어머니 영혼 구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께 성경을 읽어드리고 말씀을 전하면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쏙쏙 받아 먹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이제 조용히 같이 따라 부르십니다. 이제는 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도 하십니다. 이제 어머니는 저나 안나동역자가 오면 천사같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십니다. 웃는 모습이 꼭 소녀 같습니다. 70살이 넘은 소녀를 본적이 있습니까? 얼굴도 마음도 소녀와 같이 예쁘신 그분이 바로 우리 어머님이십니다. ^^ 저는 우리 어머니가 남은 여생 저의 가족과 센터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는 꿈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저의 길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제게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처럼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가서 서라고 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온전히 다 전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갈급한 영혼에게 찾아가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이 치유받고, 죄와 운명가운데 매여 있던 영혼들이 속박에서 풀려나고, 한숨과 슬픔가운데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과 감사가 넘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은 어디든지, 하나님이 만나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당신의 생명구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벌하시거나 멸망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평생 죄 값을 받게 하는 것도 원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을 치유하시고 죄사함을 주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길 원하십니다. 또 받은 생명의 말씀을 힘써 다른 이에게도 전파하며 그 생명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우리도 기도와 말씀을 사랑하며 어디에 있든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라
말씀: 사도행전 4:32-5:42
요절: 사도행전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베드로의 오순절 부활메시지를 통해 초대 교회가 탄생되고 복음역사는 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런 교회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내적 외적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종교지도자들의 시기로 다시 옥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는 교회 지도자들인 사도들을 공격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꺾고자 하는 사단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런 사단의 공격에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역사에 더욱 더 자신을 헌신적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감옥에 갇힌 사도들을 친히 보살피시고 그들을 감옥에서 건져내사 생명의 복음을 다 전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사단의 시기와 핍박을 극복하고 하나님편에 굳게 설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하나님의 성령을 충만히 허락하여 주시고 그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가 이 세대가운데 온전히 드러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 전하라(5:17-42)
17,1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하나님의 역사가 흥황이 일어나자 사단이 본격적으로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르므로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권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과거 사도들은 배움이 없는 보통사람들로 여기고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을 무시하며 인정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후 사도들이 외국어 방언으로 말씀을 전하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는 등 하나님의 말씀역사를 능력있게 이루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기심이 극에 달아올랐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 기뻐하며 그 성령의 역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다른 사람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시기심으로 배알이 꼴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극도의 시기심으로 사도들을 잡아 가둠으로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초대교회 목자격인 사도들을 잡아가둠으로 양들이 모두 흩어지게 하고자 하는 사단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19절, 20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사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끌어내어 주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감옥은 세상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튼튼한 창살과 높은 벽, 또 떡대좋은 감시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권세잡은 자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렇게 감옥에 갇힌 사도들은 더 이상 말씀을 전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초대교회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될 위기에 놓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옥도 하나님의 사자에게는 썩은 동아줄과 같았습니다. 주의 사자는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감옥에 갇힌 사도들에게 쑥~ 다가가서 그들 모두를 모으고 또 아무 거리낌없이 그들을 쑥~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하도록 응원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볼 때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면 우리를 방해하는 사단의 공격은 하나님이 친히 막아주시고, 지켜주시고, 또 위험에서 끌어내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당신의 종들을 절대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23절에 보면 옥문은 굳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은 문에 서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이 무리를 지어 감옥을 빠져나가는데도 감옥의 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건물 어디가 부서진대도 없고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고 이해 못할 일이지만, 하나님의 사자 편에서 이것은 누워서 떡먹기 기술이었습니다. 세상 감옥은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감옥에서 사도들을 끌어내신 후 하나님의 사자는 사도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주의 사자는 사도들에게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때가되면 부를 테니 집에 가서 숨으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현재 사단의 본거지가 된 성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 받는 핍박에 굴하여 위축되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시기하는 종교지도자들이 세력을 잡고 있는 성전에 담대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2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의 사자가 사도들에게 말한 생명의 말씀(The full message of this new life)은 무엇일까요? 당시 종교지도자들도 성경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것은 생명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이었고, 자기들의 전통과 관습이었습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이 죽음과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려주는 몽학선생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주의 사자가 말한 생명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30-32절에서 사도들은 공회에서도 이 생명의 복음을 분명히 전하였습니다. 다 같이 이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생명의 말씀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으로 끝납니다. 생명의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의 시기심과 죄악으로 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믿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가 섬기던 하나님이 그 예수를 죽음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이스라엘의 악함을 드러내고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로 회개토록하사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그의 오른손으로 높이사 온 세상의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증언한 이 모든 말은 진실에 근거한 사실적인 증언이었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 하며 직접 그들의 귀로 들었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심과 죽으심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후에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는지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40일간이나 같이 거하며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월적인 부활의 능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바꿀 수 없는 산 증거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증거가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바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내기로 약속하신 성령님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제자들에게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는 자들과 같이 모여 합심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각자 성령 체험을 하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받은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무엇보다 먼저 사도인 자신들을 먼저 살렸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고 모두 도망다니고 숨어다니던 제자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였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기는커녕 자신 안에 있는 죄 문제, 누가 크냐는 죄 문제에 넘어져 힘들어하던 제자들이 이제는 성령의 능력안에서 하나가되어 서로 가장 귀하게 여기는동역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행하시던 일을 동일하게 행하는 자들로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생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그 무식하고 무능했던 제자들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바로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의 능력이었습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생명의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주의 사자가 그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고 그들은 오늘 본문에서처럼 성전에서, 또 공회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42절 말씀은 그들이 전한 생명 복음이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전한 생명의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이 예수님 안에 용서가 있고 죄사함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치유와 고침과 새롭게 됨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우리를 죽음의 권세아래 가두고 노예로 삼는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POWER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부활 후에 있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 있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안에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복음을 가진 자, 이 예수님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가졌어도 이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자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가졌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짐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가장 부유한 자가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부러워 하는 것은아직 우리안에 차지 않은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빈 공간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이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며,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하며, 이 예수님으로 인해 받는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외국에 있든지 또 세상 어디에 있든지 이 생명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산 증인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사도들안에 이 생명의 말씀이 있었을 때 감옥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위협과 협박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채찍에 맞아 몸이 아픈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들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으로 여기며 기뻐하였습니다. 공회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매를 맞을 때 서로 더 맞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나를 한 대 더 때려주시오’ 그들은 과거 세상적으로 더 큰 자가 되고자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더 큰 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나를 더 때려주세요. 나를 더 험한 곳으로 보내주시고, 내게 더 어려운 시험을 주세요’ 나를 신앙학교의 대학생으로 취급해 주세요. 초등학생처럼 쉬운 과제 내지 말아주세요.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문제를 내면 자존심 상할 것입니다. 해병대출신 군인을 방위취급하고 은퇴한 늙은이 취급하여 수위만 보라고 하면 아마 자존심 무지무지 상할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들은 자신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 채찍까지 맞은 것이 그들의 신앙이 더 인정받는 것처럼 여겨져 도리어 기뻐하였습니다. 그 채찍에 맞음으로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과 예수님이 겪었던 고통을 조금이나마 겪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사도들에게는 너무나 큰 영광이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된 자는 서로의 아픔을 나누어 가집니다. 율법이 아니요, 강요가 아닙니다. 자발적인 동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생명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신자로서 이 세상에서 애매하게 당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자가 아니었다면 협박도 받을 필요 없고, 짤릴 위험도 없으며, 왕따가 될 위험도 없을 것입니다. 신자가 아니라면 괜히 맞을 일도 없고, 손해 볼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가슴에 품고 계신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핍박이 있다면, 여러분 !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당신이 예수님의 이름을 갖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II.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리라(6:1-7)
6장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초대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교회 내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일을 보고서 사도들이 제자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3,4절) 교회 신도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교회가 사회에 봉사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교회가 사회에 봉사하여 덕을 끼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service 사업이 교회의 주된 업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선포되고 전해지는 곳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감옥에서 이끌어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런데 만일 사도들이 이 생명의 말씀을 말하지 않으면 생명의 말씀은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으로 섬기는 일에 힘쓰리라.” 그것이 사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도들을 세상 권세아래 있는 감옥에 가두어 놓고 협박하고 핍박하고 때리는 세상 권세자와 이 핍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을 배웠습니다. 사도들은 갖은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여 기도와 말씀전하는 일에 전무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을 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역사는 흥왕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어디에 가야하고 어디에 있어야 할지도 알려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세상 권세와 죄의 세력앞에 굴복하여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실패와 죄의 감옥안에 앉아 있지는 않는지요? 쓴 눈물을 삼키며 세상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앉아있지는 않는지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 옆에서 서서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들려주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부활의 음성을, 생명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떤 위치, 어떤 상황에 처했건 당신의 구세주,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 ! 그 분을 의지하여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한걸음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말씀을 들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 구원의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저는 세상 죄아래 운명주의와 허무주의의 족쇄에 채이고 감옥에 빠진 죄의 포로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제 자신도 모른 채 제게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예수쟁이라고 경계하고 무시하며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제게 생명의 복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반발하였고, 심지어는 침까지 뱉으며 꺼지라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 교회가 감당치 못한 죄인중의 괴수였습니다. 교회 친구들은 고사하고 심지어 목사님들도 저의 독기어린 말에 눈물을 떨구고 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저를 위해 불개미 정신과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무장된 UBF 목자님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다른 사람과 같이 자존심이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상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철없는 죄인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끝도 없는 거절과 바람맞힘을 당하면서도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저를 구원할 수 없었고, 수십 년간이나 몸담았던 학교도, 세상의 교육도 저를 구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 귀한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저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귀하신 UBF 선배 목자님들을 통해서 제가 생명의 말씀 앞에 나오게 하시고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정죄치 않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셨고 나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멸시와 저주의 십자가에 높이 달려 손과 발에 못 박혀 피 흘리시며 ‘아버지여, 강호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 죄인을 위해 그렇게 두 팔 힘껏 벌려 ‘내가 이만큼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죄사함과 용서가 있고 치료와 치유(healing) 역사가 있고, 구원과 영생이 있다는 이 생명의 말씀들이 제게 전해졌을 때 저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죄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받고 난 후 그 은혜에 감사하며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러 나갔습니다. 우리 귀하신 허한나 사모님과 함께 캠퍼스를 돌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였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고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으나 저희 하루하루는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나 힘이 되었습니다. 양들이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가 제 자신에게 너무나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때마다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졸업시 이사야 49장 6절 말씀,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을 주시고 선교사로 살도록 방향을 주시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보내시고 지난 20년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서 밤늦게까지 외국인 혼자 캠퍼스를 방황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이런 저런 깡패들도 만나고 강도들도 만나, 위험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건져내주셨습니다. 제가 강도를 6번 당했는데 모두 퇴근 후 캠퍼스 가기위해 떠난 길이나 아니면, 캠퍼스에서 양들을 심방하다가, 또는 센터에서 역사를 섬기다가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힘들게 여겨지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제 안에 생명이 있음에 감사하고 또 저를 사랑하사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또 체험한 것에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떻게 그 위험한 고비들을 그렇게 빠져나갔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정말 주의 사자를 저를 데리고 벽을 쓱~ 통과하는 것처럼 때마다 위험한 고비들을 쓱~ 넘기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저희 동역자와 세 자녀들까지 완벽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콩글리쉬로 전하는 복음이었지만, 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생명의 능력이 있어 이 말씀들로 양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슬픔과 운명주의, 정욕에 종이 되어 거짓 소망을 품고 심판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이 목자가 되어 희생하며 생명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전하는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항상 은혜충만, 성령충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단은 수시로 저를 공격하며 넘어뜨리고자 하였고, 죄의 감옥, 삶의 감옥에 넣어두고 하여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늘 생명의 말씀으로 제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셨습니다. 2006년 대사관을 그만두고 잠시 한국에 왔다가 다시 나이지리아 들어갔을 때는 두려움이 더 심해졌습니다. 비자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당당한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나이지리아에 들어갔다가 나이지리아의 매서운 맛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길거리에서 경찰에 별 트집을 다 잡혀 제가 갖고 있던 돈과 차를 다 빼앗기기를 여러 번 당하자 더 이상 길거리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길거리에 경찰들이 서있는 것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벌벌 떨렸었습니다. 당장 비자문제와 먹고 사는 문제가 눈앞에 시급하니 역사를 섬길 힘도, 여력도 없었습니다. 사단은 이런 문제로 저의 손발을 묶어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보다 자기 일에 매여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양들 제자 삼는 역사도 쉽지 않았습니다. 기껏 수고해서 섬기고 나면 양들이 단물만 쏙 빼먹고 결국 UBF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이들을 붙잡을 여력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적 역사에서 진이 다 빠지게 한 후 사단은 이런 제게 힘든 하나님의 역사대신 세상 재미를 즐기도록 부추겼습니다. 세상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인터넷에 빠지게 만들고 음란죄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하고서는 이제는 너같은 놈은 선교사도 아니고 목자도 아니니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자격도 없고 말씀을 전할 자격도 없다는 수없는 정죄의 화살을 날렸습니다. 윤안드레 선교사님 가족이 한국으로 들어가시며 빈자리에 풀타임목자로 세운 듀크목자를 도와 야바텍 역사를 잘 동역해야 했으나, 저는 이를 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사단이 주는 정죄의 화살과 하나님앞에 쓸모없는 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자책감과 운명주의 감옥에 가두고 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슬피울며 있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선교지, 심지어 UBF에서 조차도 오려고 하지 않는 선교지 나이지리아에서 지부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냥 평신도 동역자로서 평생 거하며 살며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자비량으로 거친 나이지리아의 생활을 이어가며 풀이 마르고 꽃이 시듦같이 세월이 흘러 몸은 늙어가고 영혼은 말라가고 있는 것을 느끼며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너무 힘들어져 있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 41:9절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제게 당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시고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제가 두려움에 떨 때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말씀으로 저를 굳건히 세워주셨습니다.
홍다니엘, 수산나 선교사가정과 말씀공부를 이루고 센타 리더들과 말씀공부를 이루게 도와주셨고 이를 통해 야바텍 역사에 힘들어졌던 리더들과 양들이 힘을얻고 일어서며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역사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연 살아서 역사하며 힘들고 어려웠던 각자의 문제를 넘어 하나 둘씩 말씀앞에서 강건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명의 말씀을 제게 주심으로 저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또 야바텍 센타 영혼들을 먹이는데도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사야 49:5,6절 말씀 중 ‘네가 나의 종이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라는 말씀을 영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20년동안 가족 구원 역사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지파들도 돌아오게 하지 못하는 그런 자가 무슨 이방인의 빛이 되는가하는 사단의 고소에 자주 시달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제 그 말씀을 이루어 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 안드레아 목자님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제자훈련을 받고 귀하신 나에녹 목자님과 믿음의 가정교회를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동생 강명이도 예수님을 만나 6년동안 진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축복해주셨었습니다. 그후 힘들어져 신앙은 접었으나 하나님께서 그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시고 돌아오게 하실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이번 주에 저희 숙소에 방문한 막내동생 강문이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강문이는 저도다 더 심산 ANTI-CHRISTIAN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라면 두팔벌려 막으시던 아버지께서 이제는 같이 기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어머니 안에 이루어진 생명의 말씀 역사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는 8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반신불수가 되셨고 간혹 치매증상이 있으십니다.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던 둘째동생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저희 가정이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가 매인 몸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어머니 영혼 구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께 성경을 읽어드리고 말씀을 전하면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쏙쏙 받아 먹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이제 조용히 같이 따라 부르십니다. 이제는 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도 하십니다. 이제 어머니는 저나 안나동역자가 오면 천사같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주십니다. 웃는 모습이 꼭 소녀 같습니다. 70살이 넘은 소녀를 본적이 있습니까? 얼굴도 마음도 소녀와 같이 예쁘신 그분이 바로 우리 어머님이십니다. ^^ 저는 우리 어머니가 남은 여생 저의 가족과 센터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되는 꿈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저의 길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제게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처럼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가서 서라고 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온전히 다 전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디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갈급한 영혼에게 찾아가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자 되길 소원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이 치유받고, 죄와 운명가운데 매여 있던 영혼들이 속박에서 풀려나고, 한숨과 슬픔가운데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과 감사가 넘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은 어디든지, 하나님이 만나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당신의 생명구원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죄인들을 벌하시거나 멸망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평생 죄 값을 받게 하는 것도 원치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을 치유하시고 죄사함을 주사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길 원하십니다. 또 받은 생명의 말씀을 힘써 다른 이에게도 전파하며 그 생명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우리도 기도와 말씀을 사랑하며 어디에 있든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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