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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6년 행24강(25:13-26:32)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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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2회 작성일 16-10-02 14:30

본문

2016 사도행전 24 강
말씀 | 사도행전 25:13-26:32
요절 | 사도행전 26:29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사도 바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그는 왕들과 총독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총독과 왕족들과 높은 사람에게 자신이 결박된 것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죄수인 바울이 그들과 같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와 죽음 권세로 인해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체험한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는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고 권면했습니다. 그는 어떤 점에서 우리가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베스도는 신임 총독입니다.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그의 총독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이사랴에 왔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12장에 나온 헤롯 아그립바1세의 아들인 아그립바 2세입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2세의 누이입니다. 이 여자는 헤롯 빌립과 결혼했지만 헤롯 빌립이 죽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궁전에 기거했습니다. 나중에 버니게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의 아들 티투스의 정부가 됩니다. 두 사람은 로마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서 문안을 갔습니다. 그들이 여러 날을 지내는 중에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과 상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베스도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접견 장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왔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법정에 세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그가 황제에게 상소한 고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나이다. 그에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자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세웠나이다. 그 죄목도 밝히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베스도의 심문 결과는 바울이 무죄였습니다. 그러나 총독은 유대인들의 환심도 사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할 내용을 얻고자 다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억울하게 심문을 받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총독과 왕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자신을 위하여 말하기를 허락하였습니다.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합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하나님이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은 메시아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약속하셨던 메시아 언약이 마침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다윗 왕과 같은 힘으로 이방 민족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죄와 죽음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사실 과거 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유대인들이 잘못된 소망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고관대작들은 소망이 땅에 붙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울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죽은 자를 부활하게 하심을 믿지 못할까요?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세상 것들을 즐기고 싶고 계속 소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천국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죽은 자의 부활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까?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복을 소망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취직을 해서 보통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것 하나도 힘겨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 역사에 쓰임 받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도 정말 부활이 없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망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거나 흔들림이 없이 굳세게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 합니다. 과거 그는 어떤 자였습니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13-15절을 보십시오. “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고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 지극히 크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자기를 박해하는 바울을 무조건 악하게 생각하여 심판하시지 않고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시채를 차 버리면 누가 피해를 봅니까? 바울이 가시채를 차면서 피를 질질 흘리고 악하게 되어 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가 자기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주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서신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3-16).”

  주님은 그를 구원하여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가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16-19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복음을 전해서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믿음을 전파해서 기업을 얻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원색적으로 선포함으로서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이 어둠, 사탄의 권세, 죄 아래 있음을 우회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고 빛으로, 하나님께로, 죄 사함의 세계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절망 가운데서 게임에 중독되어 지내고 있습니다. 장래에 대한 꿈이 없으니 두려움, 술취함, 방탕함 속에서 쾌락으로 도피하며 살고 있습니다. 누가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만이 이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들과 깊이 대화하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인격적으로 회개의 복음을 전합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바울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복음을 힘써 전파했습니다. 사실 회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회개할 때 장래가 보입니다. 회개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목자가 영적인 씨름을 같이 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잘 모릅니다. 또한 알아도 적당히 넘어가고 싶어 하고 그 죄를 직면하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자기의 죄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하게 대합니다. 바울이 끈질기게 회개하도록 도울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오히려 그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추호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지켜 보호해 주셔서 여러 가지 위험과 위기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가 전파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그리스도가 고난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이나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영웅적인 메시야를 기대했고, 헬라인들은 거룩한 신이 육신을 입고 온다는 것을 영접하기 힘들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 나사 빛을 전하셨다는 내용을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이 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때 죽음의 요소들인 절망, 무기력, 무정, 무자비, 허무 등이 물러나고 찬란한 빛이 그 마음에 임합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고난당하신 메시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메시야에 대해서 당당하게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메시지를 다 듣고 나서 베스도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4,25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베스도는 많은 학문이 바울을 미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헬라의 철학적인 사고에 매어 있는 베스도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교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너무 많은 책을 봐서 미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고후5:13절에서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열정 때문에 미칠 정도로 헌신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시대에 복음전도자로 살기 위해서는 복음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확신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의 인본주의 세력, 물질적인 세력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바울은 베스도 총독이 회개를 거절하자 이제는 아그립바 왕에게 전도합니다. 26-28절을 보십시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 아그립바 왕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자 그는 부담을 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적은 말로 자신을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며 그를 무시하고 더 이상 말씀 듣기를 거부합니다. 

  2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결박되었지만 이런 고난 외에는 다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진정한 자유를 맛보기 원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바울의 현재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있고 천국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에 그는 육체적으로 자유로왔지만 내면에 죄로 인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롬7장에서 그는 율법과 죄로 인한 고통으로 죽게 되었다고 장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지금은 생명과 평안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힘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체험한 자유의 복음, 평안의 복음, 부활의 소망과 능력을 체험하길 원합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감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을 심문하는 자들이 높은 지위에 있지만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임을 생각할 때 너무나 안타까워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배척하고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향한 뜨거운 목자의 심정이 가득합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자로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매인 몸이고, 생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내면에 간직한 복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인해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학식과 지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이 소망을 자랑합니다. 이 복음을  위해서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바울의 간증을 듣고 아그립바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면서 서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결론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이는 바울에 대한 세 번째 무죄 판결입니다. 바울은 법적인 죄 때문에 심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서 결박을 당하고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자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에 대해서 할 말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 부활의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죄인이었고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왕에게나 총독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신음하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죄사함의 은혜와 자유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이 시대에 내가 체험한 예수님을 일대일로, 인격적으로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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