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오뎃사 선교보고(오뎃사 이요한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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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ESSAUBF개척역사보고
부활의 주님이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허무주의자를 캠퍼스의 목자로
저는 1959,1,2 충남 공주에서 전주 이씨 집안의 3남3녀중 장남 이며 종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버스운전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당시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저는 영어에 항상 만점을 받으며 장차 외교관이 되겠다는 분명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3때 아버지가 운전도중 뇌졸증 으로 쓰러지신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저는 심각한 정신적, 경제적 타격과 함께 방황의 사춘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공주고 에 입학 했을 때 우리가정 은 병든 아버지, 한숨 쉬는 어머니, 찢어지는 가난으로 어둠 그 자체 였습니다.
고1 봄 어느 수학시간에 우리는 2차함수 방정식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X 값이 무한히 커지면Y값도 무한히 커진다» 는 선생님의 말속에서 갑자기 무한대 라는 단어가 저를 압도 하였습니다. 무한대 밖은 무엇인가? 영원이란 무었인가? 나는 무엇인가? 저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 과 직면 하였습니다. 나도 순간 없어지는 무의미 였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허무라는 깊은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것도, 숨쉬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다 무의미 하였습니다. 제가 이 생각에 몰두 하면서 600명중 2% 안에 있던 저의 성적은 갑자기 570등밖으로 떨어지고, 부모님이 소환되고 , 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집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집에 오니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이 불쌍하여 미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허무는 큰 세력 이 되어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자주 술을 마시고 발광을 하였습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가 뜨면서 저도 차라리 육사에 가서 육체적인 군인이 되어 허무도 잊고 출세도 하리라 는 생각 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습니다
1976 육사 에 합격 하였고 면장님이 아버님께 인사를 하러 오고 제게 출세의 길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입대 를 하고 신체검사를 하는 동안 혈압에 이상이 생겨 퇴교자의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죽어도 가기 싫었던 공주사대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저를 더욱 운명주의자 로 만들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저는 다시 고개를 드는 허무 떄문에 더 심한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면 나의 내면문제를 잠시 잊을 까 하여 여학생을 찾아 다녔으나 한명의 여자 친구도 못 얻고 결국은 술잔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술은 제게 위궤양 과 기관지염 만성비염 등 여러 가지를 선물 하였습니다. 교수도 책도 술도 아무것도 허무라는 죽음의병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연극서클에 가입하여 F학점을 2개씩 받아가며 연극에 몰두했고, 여러 공연 을 하였으나 이것도 저의 허무를 가중시킬 뿐 이었습니다.
대학에 온지 2년도 안되어 저는 허무, 운명, 정욕, 위궤양, 기관지염, 열등감 으로 인해 폐인처럼 되었습니다 . 친구들은 저 의 속도 모르고 저를 알코올로 가는 자동차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때 제 내면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 무덤과 같이 어두웠습니다. 제가 기타를 치며 백팔번뇌 라는 노래를 부르면 주의 모든 사람들이 그 강한 죽음권세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때 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분 이 계셨습니다.< 승주형제님 ! 성경공부 합시다>. 우남식 목자님 이셨습니다. 1년을 줄다리기하였읍니다. 그래도 포기치 않는 그의 인내와 웃음에 제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1978년 가을 저의 방황이 극에 달했을 때 드디어 처음 성경공부가 이루어 졌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 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제가 태초에 라는 한 단어 만을 공부 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이미 저의 마음가운데 들어와 계셨습니다. 그렇게 저를 죽이던 허무 가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의 만남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를 밝히 보여주고, 제 인생의 마디마디 가 운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창1장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부활의빛이 제 마음에 들어와 저를 새로운 소망과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12장2절은 아브라함을 부르는 말씀일 뿐 아니라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이었습니다. «너는 세계 캠퍼스 의 복의 근원이 될찌라». 이때부터 제 인생 의 목적은 세계선교 가 되고, 저는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대학 3학년때 저는 자기 열심과 사명감으로 주님의 일을 섬기다가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저는 1979년 해병대에 입대 하였습니다. 기습특공대로 배치되어 거친 훈련 을 받다 보니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광주사태 등 한국에 소용돌이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저를 군대에 감추시고 철저한 순종훈련을 시키셨습니다. 82년 제대 후 하나님은 저을 마가복음 말씀으로 부르시고 공주사대 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15절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으로 예수님이 제 주인이 되시고 저의 삶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83년 여름 제가 졸업을 앞두었을 때 공주엔 이미 25명의 제자들이 새 인생을 살고 있었고, 집에선 부모 형제가 다 제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발령이 났을 때, 저는 제가 교사가 아니라 공주의 목자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저의결단을 아시고 부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지고, 서울에서 고려대를 다니던 남동생은 많은 고생을 했고, 공주 사대부고를 다니던 여동생은 학교를 떠나 공순이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뒤에 영광이 있음을 믿었지만 그 아픔은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제가 살고, 부모형제가 구원을 얻고, 공주 사대가 사는 길이었으므로 믿음으로 결단을 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통해 공주사대에 새 역사를 창조 하셨습니다. 운명과 허무에 빠졌던 자 들이 거듭나서 미국 일본 독일 호주 CIS 중국 등 전세계에 선교사로 파송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답고 믿음 있는 구은혜 목자 와 가정을 이루어주셨고 교회가 성장하여 큰 건물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린 제가 복음역사를 감당하기엔 하나님의 훈련이 필요 하였습니다. 1994년 하나님 은 저를 우크라이나 의 선교사 로 보내셨습니다.
2,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1995년 2월 저는 하리코프 대학 에 심방 갔다가 역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어 아무 설명 없이 4시간 이상 감금 당하고 구타 당하고 모든 것을 뺏긴 후에 길거리로 내던져 졌습니다. 이곳은 경찰이 강도보다 더 무서운 사회였습니다. 저는 권총을 준비하여 저를 밟고 구타했던 4명의경찰을 찾아 서 차례로 쏘는 꿈을 꾸었습니다. 가난은 참을수 있으나 불법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보따리를 쌌습니다. 그때 강도 들에게 맞으며 사형당하시면서도 그들 위해 기도하신 주님의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 저는 이 백성 을 사랑할 수 없으나 사랑의 복음을 전함으로 복수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1995년 5월 저희 가정 은 흑해의 항구도시 오데사 로 왔습니다. 이곳에 20개가 넘은 대학이 있습니다. 저희는 망가진 캠퍼스와 망가진 기숙사 를 코를 막아가며 심방 다녔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거짓말과 정욕으로 폐허가 된 건물보다도 훨씬 더 망가져 있었습니다. 제가 할수있는 것은 소비에트의 어둠이 주는 절망과 싸우며 끝까지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히나님 은 저도 모르는 사이 제게 주신 약속을 하나하나 이루셨습니다.
첫째, 언어정복과 제자양성:
1995년 5월 러시아어를 공부한지 5개월만에 저는 노어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역자 와 유치원에 다니던 딸 외에는 들어주는 자가 없었지만 계속 노어 메시지를 쓰는 가운데 3년이 지나자 양들이 공감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 메시지를 완성하고 목자들에게 보내어 교정된 메시지를 받고 매일 메세지 내용을 보충합니다. 그랬을때 주님께서 제게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지금은 복음의 핵심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기까지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자에게 언어의 장벽을 없애주시는 분이십니다
1996년가을 하나님은 7명의 신선한 신입생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중 사샤 게루스 와 보봐 자다로즈니 형제가 저와 창세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저의 노어를 교정해주면서 끝까지 완주 하였읍니다. 이둘은 처음 주일 예배후 지금까지 한번도 예배를 거르지않은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적 결혼관을 단순히 영접하고 학생시절 4년을 온전히 주님께 드렸읍니다. 이들이 저의 메세지 를 들어준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할 뿐입니다. 그후 하나님은 여러 기도의어미를키우셨읍니다. 마샤 자매는 첫날 자기는 어릴적 부터 교회에 다니며 구원받은 자라고 소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에스겔 37:4 너희 마른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말씀앞에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된후 충성스런 개척 동역자가 되었읍니다 . 졸업후 모세목자와 가정교회를 이루고 오데사 개척역사에 믿음의 예로서 지금까지 쓰임받고 있습니다. 아브람 바실렌코, 게루스마태, 다비드 목자들도 소련사람들이 상상할수도 없던 믿음의 결혼을 하고 목자 가정을 이루었읍니다. 하나님은 오대사에 11개의 가정교회를 세우시고 죄악된 이시대를 깨우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드니프로 에 아브라함, 사라 바실렌코 목자를, 필리핀에 트호릭 마르크 목자를 , 이한나 목자를 프랑크푸르트에 선교사로 보내셨습니다. 2007년 개척 12년만에 리더들이 믿음으로 기숙사 근처에 좋은 바이블하우스를 구입하였고 실질적인 주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를 축복하사 다섯 요회와 60명의 주일예베, 15명의 어린이예배를 이루시고 이번 성탄엔 130 명이 모여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둘째:물질자립
처음에 저는 동생의 도움으로 중고자동차 수입을 하였으나 3억의 빚을 지고 실패했습니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하였으나 잘 안되고 저는 영적으로 피폐해져 갔습니다. 저는 사업에 은사가 없음을 깨닫고 복음역사만을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교지 에서 한끼도 굶지 않게 하시고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목자의 길을 가면서 가장 고생을 많이했던 제 동생은 저를 주의 종으로 인정하고 선교 초기부터 저를 지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사 지역교회에 충성스런 제자가 되게 하시고 큰 선박회사에 주인이 되게 하사 저의 빚을 탕감해줄 뿐 아니라 저를 충분히 지원하는 공급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제가 목자가 될 때 우리 집 은 망할 것처럼 보였으나 부활의 주님은 제가 할 수 없을 만큼 저희 가정 을 축복하시고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의 딸 한나는 개척 첫날부터 20년동안 피아노로 예배 와 특송, 합창들은 맡았고 많은 양 들을 섬긴 진정한 개척자 입니다. 그리고 현지에 평범한 학교를 다녔지만 오데사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에서 의사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난5월18-21일 3박4일동안 오대사근교 사나토리아 코블리바에서 수양회을 가졌읍니다.
2달전부터 요회별,팀별로 특송과 합창을 준비하며 기도모임을 가졌읍니다.
수양회주제는"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었읍니다.
1강..요1:1-1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 게나디 목자
2강.막2:1-17; 예수님은 죄인에게 새 인생을 주십니다.- 어거스틴
3강: 눅23: 아버지여 저희죄을 사하여 주옵소서 - 마태
4강:요20:나의주 나의하나님.- 뾰트르
5강:막13: 인자가 오는것을 보리라.- 알료샤
6강:계1장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모세
7강 :.시1편 :복있는 사람 - 다비드
7명의 말씀강사(가정교회목자들)들은 본문을 모두 암송하고 메세지 를 한달전 준비하여 묵상하므로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였습니다. 참석자들 모두가 기쁨과 감격함으로 부활의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였고, 가장큰 은혜는 2-3 년동안 훈련받은 11명의 제자들이 목자로 부루심을 영접하고 안수를 받은것임니다' 이들이 새세대의 학생목자로 잘 성장하도록 기도합니다
2년전 부터 말씀공부한 박 디마 형제는 그 아내와 두 아들 (유리 , 슬라빅) 까지 와서 말씀공부 를 하고있읍니다. 이 가정이 수양회에 UBF 티셔츠 단체로 선물하여서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나의주 나의하나님. 이구호가 매번 광고 시간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백을 받아주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는 허물과 실수가 많은 자 입니다. 오데사 복음역사는 동역자들의 헌신과 한국 UBF의 기도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이 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감당하기위해 이르크츠크, 바우만, 페름, 상페테르부르크 UBF 개척선교사님들과 와 오데사 지역 목사들과 매주 말씀공부를 하며 섬기고 있읍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일 의100분의일 도 드러내지 못합니다. 주님의 역사를 다 증거하기엔 제게 시간이 부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하사 오대사를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도시로 바꾸사 세계선교에 귀하게 써주시길 기도합니다. 허무와 정욕으로 죽었던 자를 우크라이나 의 선교사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허무주의자를 캠퍼스의 목자로
저는 1959,1,2 충남 공주에서 전주 이씨 집안의 3남3녀중 장남 이며 종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버스운전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당시 유치원에 다닐 정도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저는 영어에 항상 만점을 받으며 장차 외교관이 되겠다는 분명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3때 아버지가 운전도중 뇌졸증 으로 쓰러지신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저는 심각한 정신적, 경제적 타격과 함께 방황의 사춘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공주고 에 입학 했을 때 우리가정 은 병든 아버지, 한숨 쉬는 어머니, 찢어지는 가난으로 어둠 그 자체 였습니다.
고1 봄 어느 수학시간에 우리는 2차함수 방정식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X 값이 무한히 커지면Y값도 무한히 커진다» 는 선생님의 말속에서 갑자기 무한대 라는 단어가 저를 압도 하였습니다. 무한대 밖은 무엇인가? 영원이란 무었인가? 나는 무엇인가? 저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무의미 하다는 사실 과 직면 하였습니다. 나도 순간 없어지는 무의미 였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허무라는 깊은 늪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사는 것도, 숨쉬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다 무의미 하였습니다. 제가 이 생각에 몰두 하면서 600명중 2% 안에 있던 저의 성적은 갑자기 570등밖으로 떨어지고, 부모님이 소환되고 , 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집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집에 오니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이 불쌍하여 미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허무는 큰 세력 이 되어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자주 술을 마시고 발광을 하였습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가 뜨면서 저도 차라리 육사에 가서 육체적인 군인이 되어 허무도 잊고 출세도 하리라 는 생각 을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습니다
1976 육사 에 합격 하였고 면장님이 아버님께 인사를 하러 오고 제게 출세의 길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가입대 를 하고 신체검사를 하는 동안 혈압에 이상이 생겨 퇴교자의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죽어도 가기 싫었던 공주사대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저를 더욱 운명주의자 로 만들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저는 다시 고개를 드는 허무 떄문에 더 심한 방황을 하게 되었습니다.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면 나의 내면문제를 잠시 잊을 까 하여 여학생을 찾아 다녔으나 한명의 여자 친구도 못 얻고 결국은 술잔과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술은 제게 위궤양 과 기관지염 만성비염 등 여러 가지를 선물 하였습니다. 교수도 책도 술도 아무것도 허무라는 죽음의병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연극서클에 가입하여 F학점을 2개씩 받아가며 연극에 몰두했고, 여러 공연 을 하였으나 이것도 저의 허무를 가중시킬 뿐 이었습니다.
대학에 온지 2년도 안되어 저는 허무, 운명, 정욕, 위궤양, 기관지염, 열등감 으로 인해 폐인처럼 되었습니다 . 친구들은 저 의 속도 모르고 저를 알코올로 가는 자동차라고 불러 주었습니다. 그때 제 내면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 무덤과 같이 어두웠습니다. 제가 기타를 치며 백팔번뇌 라는 노래를 부르면 주의 모든 사람들이 그 강한 죽음권세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때 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분 이 계셨습니다.< 승주형제님 ! 성경공부 합시다>. 우남식 목자님 이셨습니다. 1년을 줄다리기하였읍니다. 그래도 포기치 않는 그의 인내와 웃음에 제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1978년 가을 저의 방황이 극에 달했을 때 드디어 처음 성경공부가 이루어 졌습니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 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제가 태초에 라는 한 단어 만을 공부 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이미 저의 마음가운데 들어와 계셨습니다. 그렇게 저를 죽이던 허무 가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과 의 만남은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를 밝히 보여주고, 제 인생의 마디마디 가 운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창1장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부활의빛이 제 마음에 들어와 저를 새로운 소망과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12장2절은 아브라함을 부르는 말씀일 뿐 아니라 저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이었습니다. «너는 세계 캠퍼스 의 복의 근원이 될찌라». 이때부터 제 인생 의 목적은 세계선교 가 되고, 저는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대학 3학년때 저는 자기 열심과 사명감으로 주님의 일을 섬기다가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저는 1979년 해병대에 입대 하였습니다. 기습특공대로 배치되어 거친 훈련 을 받다 보니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광주사태 등 한국에 소용돌이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저를 군대에 감추시고 철저한 순종훈련을 시키셨습니다. 82년 제대 후 하나님은 저을 마가복음 말씀으로 부르시고 공주사대 의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15절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씀으로 예수님이 제 주인이 되시고 저의 삶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83년 여름 제가 졸업을 앞두었을 때 공주엔 이미 25명의 제자들이 새 인생을 살고 있었고, 집에선 부모 형제가 다 제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발령이 났을 때, 저는 제가 교사가 아니라 공주의 목자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저의결단을 아시고 부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지고, 서울에서 고려대를 다니던 남동생은 많은 고생을 했고, 공주 사대부고를 다니던 여동생은 학교를 떠나 공순이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뒤에 영광이 있음을 믿었지만 그 아픔은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길만이 제가 살고, 부모형제가 구원을 얻고, 공주 사대가 사는 길이었으므로 믿음으로 결단을 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통해 공주사대에 새 역사를 창조 하셨습니다. 운명과 허무에 빠졌던 자 들이 거듭나서 미국 일본 독일 호주 CIS 중국 등 전세계에 선교사로 파송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답고 믿음 있는 구은혜 목자 와 가정을 이루어주셨고 교회가 성장하여 큰 건물도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린 제가 복음역사를 감당하기엔 하나님의 훈련이 필요 하였습니다. 1994년 하나님 은 저를 우크라이나 의 선교사 로 보내셨습니다.
2,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1995년 2월 저는 하리코프 대학 에 심방 갔다가 역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어 아무 설명 없이 4시간 이상 감금 당하고 구타 당하고 모든 것을 뺏긴 후에 길거리로 내던져 졌습니다. 이곳은 경찰이 강도보다 더 무서운 사회였습니다. 저는 권총을 준비하여 저를 밟고 구타했던 4명의경찰을 찾아 서 차례로 쏘는 꿈을 꾸었습니다. 가난은 참을수 있으나 불법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보따리를 쌌습니다. 그때 강도 들에게 맞으며 사형당하시면서도 그들 위해 기도하신 주님의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 저는 이 백성 을 사랑할 수 없으나 사랑의 복음을 전함으로 복수 하기로 결심 했습니다. 1995년 5월 저희 가정 은 흑해의 항구도시 오데사 로 왔습니다. 이곳에 20개가 넘은 대학이 있습니다. 저희는 망가진 캠퍼스와 망가진 기숙사 를 코를 막아가며 심방 다녔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거짓말과 정욕으로 폐허가 된 건물보다도 훨씬 더 망가져 있었습니다. 제가 할수있는 것은 소비에트의 어둠이 주는 절망과 싸우며 끝까지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는 것 뿐 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히나님 은 저도 모르는 사이 제게 주신 약속을 하나하나 이루셨습니다.
첫째, 언어정복과 제자양성:
1995년 5월 러시아어를 공부한지 5개월만에 저는 노어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역자 와 유치원에 다니던 딸 외에는 들어주는 자가 없었지만 계속 노어 메시지를 쓰는 가운데 3년이 지나자 양들이 공감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 메시지를 완성하고 목자들에게 보내어 교정된 메시지를 받고 매일 메세지 내용을 보충합니다. 그랬을때 주님께서 제게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지금은 복음의 핵심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기까지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자에게 언어의 장벽을 없애주시는 분이십니다
1996년가을 하나님은 7명의 신선한 신입생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중 사샤 게루스 와 보봐 자다로즈니 형제가 저와 창세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저의 노어를 교정해주면서 끝까지 완주 하였읍니다. 이둘은 처음 주일 예배후 지금까지 한번도 예배를 거르지않은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적 결혼관을 단순히 영접하고 학생시절 4년을 온전히 주님께 드렸읍니다. 이들이 저의 메세지 를 들어준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할 뿐입니다. 그후 하나님은 여러 기도의어미를키우셨읍니다. 마샤 자매는 첫날 자기는 어릴적 부터 교회에 다니며 구원받은 자라고 소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에스겔 37:4 너희 마른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말씀앞에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된후 충성스런 개척 동역자가 되었읍니다 . 졸업후 모세목자와 가정교회를 이루고 오데사 개척역사에 믿음의 예로서 지금까지 쓰임받고 있습니다. 아브람 바실렌코, 게루스마태, 다비드 목자들도 소련사람들이 상상할수도 없던 믿음의 결혼을 하고 목자 가정을 이루었읍니다. 하나님은 오대사에 11개의 가정교회를 세우시고 죄악된 이시대를 깨우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드니프로 에 아브라함, 사라 바실렌코 목자를, 필리핀에 트호릭 마르크 목자를 , 이한나 목자를 프랑크푸르트에 선교사로 보내셨습니다. 2007년 개척 12년만에 리더들이 믿음으로 기숙사 근처에 좋은 바이블하우스를 구입하였고 실질적인 주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저희를 축복하사 다섯 요회와 60명의 주일예베, 15명의 어린이예배를 이루시고 이번 성탄엔 130 명이 모여서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둘째:물질자립
처음에 저는 동생의 도움으로 중고자동차 수입을 하였으나 3억의 빚을 지고 실패했습니다.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하였으나 잘 안되고 저는 영적으로 피폐해져 갔습니다. 저는 사업에 은사가 없음을 깨닫고 복음역사만을 섬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교지 에서 한끼도 굶지 않게 하시고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목자의 길을 가면서 가장 고생을 많이했던 제 동생은 저를 주의 종으로 인정하고 선교 초기부터 저를 지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사 지역교회에 충성스런 제자가 되게 하시고 큰 선박회사에 주인이 되게 하사 저의 빚을 탕감해줄 뿐 아니라 저를 충분히 지원하는 공급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제가 목자가 될 때 우리 집 은 망할 것처럼 보였으나 부활의 주님은 제가 할 수 없을 만큼 저희 가정 을 축복하시고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한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의 딸 한나는 개척 첫날부터 20년동안 피아노로 예배 와 특송, 합창들은 맡았고 많은 양 들을 섬긴 진정한 개척자 입니다. 그리고 현지에 평범한 학교를 다녔지만 오데사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독일에서 의사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난5월18-21일 3박4일동안 오대사근교 사나토리아 코블리바에서 수양회을 가졌읍니다.
2달전부터 요회별,팀별로 특송과 합창을 준비하며 기도모임을 가졌읍니다.
수양회주제는"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었읍니다.
1강..요1:1-1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 게나디 목자
2강.막2:1-17; 예수님은 죄인에게 새 인생을 주십니다.- 어거스틴
3강: 눅23: 아버지여 저희죄을 사하여 주옵소서 - 마태
4강:요20:나의주 나의하나님.- 뾰트르
5강:막13: 인자가 오는것을 보리라.- 알료샤
6강:계1장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모세
7강 :.시1편 :복있는 사람 - 다비드
7명의 말씀강사(가정교회목자들)들은 본문을 모두 암송하고 메세지 를 한달전 준비하여 묵상하므로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였습니다. 참석자들 모두가 기쁨과 감격함으로 부활의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였고, 가장큰 은혜는 2-3 년동안 훈련받은 11명의 제자들이 목자로 부루심을 영접하고 안수를 받은것임니다' 이들이 새세대의 학생목자로 잘 성장하도록 기도합니다
2년전 부터 말씀공부한 박 디마 형제는 그 아내와 두 아들 (유리 , 슬라빅) 까지 와서 말씀공부 를 하고있읍니다. 이 가정이 수양회에 UBF 티셔츠 단체로 선물하여서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나의주 나의하나님. 이구호가 매번 광고 시간의 인사말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백을 받아주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는 허물과 실수가 많은 자 입니다. 오데사 복음역사는 동역자들의 헌신과 한국 UBF의 기도로 이루어졌음을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주님이 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감당하기위해 이르크츠크, 바우만, 페름, 상페테르부르크 UBF 개척선교사님들과 와 오데사 지역 목사들과 매주 말씀공부를 하며 섬기고 있읍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일 의100분의일 도 드러내지 못합니다. 주님의 역사를 다 증거하기엔 제게 시간이 부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항상 함께하사 오대사를 제사장나라요 거룩한 도시로 바꾸사 세계선교에 귀하게 써주시길 기도합니다. 허무와 정욕으로 죽었던 자를 우크라이나 의 선교사로 삼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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