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018 막 24강(13:1-37) 인자가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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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마가복음 제24강 (여름수양회 강의)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인자가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기독교 역사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1-13) 종말의 징조, 둘째,(14-37)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기독교역사 가운데서 어느 시점에 있는가를 알고, 분명한 재림신앙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가장 힘써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종말의 징조(1-1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였습니다. 제자 중 한명이 예수님께 와서 놀라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성전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시골사람들이 볼 때 성전은 너무나 화려하고 웅장해 보였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한 것으로서, 8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려 AD64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입구에는 40척의 웅장한 기둥들이 서 있었고, 성전의 기초석은 길이가 12m, 폭이 6m, 높이가 4m나 되고, 성전벽은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지붕과 건물 정면은 금을 입혔으므로 햇빛이 반사될 때면 성전이 거대한 황금처럼 빛났습니다.
제가 얼마전 부산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해운대 왼쪽으로 동백섬을 지나고 보면 마린시티라고 해서 70~8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들이 10개정도가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해변가에 있는 이 건물들은 야경도 홍콩만큼 아름답습니다. 저는(서울촌놈) 가까이서 이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의 외관에 감탄하며 연신 올려다 보았습니다. 또 올해 봄에는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직접 그 앞에서 보았을 때 그 높고 거대한 건물의 위용에 정말 놀랐습니다. 여의도 63빌딩의 두배입니다. 그렇게 높고 웅장한 건물을 지은 인간의 능력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은 당황스럽게도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성전을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모습만을 보았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내부에 만연되어 있는 영적부패와 타락상을 보시고 필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보셨습니다. 당시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은 권위적이고 형식적이었으며 물질을 탐하였습니다. 장사꾼들과 협착하여 멀리서 온 순례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제물의 값을 몇 배나 받아 돈을 챙겼습니다. 성전은 강도의 굴혈과 같이 되었고 성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은 겉모습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면의 진실함과 믿음에 있습니다. 겉모습이 초라하고 허름해도 그곳에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과 예배가 있으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고 판단하시며 심판할 것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날 화려해 보이는 첨단문화들은 인간세상에 무엇이든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런 것들이 아무리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아도 사실 현대문명 속은 심히 죄로 부패해 있습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더 편리해져 가고 있지만 그로인해 지나칠 정도로 성적타락이 극심해졌고 우리 삶속에 깊이 뿌리 내렸습니다. 인간은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만들어지면 이를 배경으로 더 즐기고자 하고 더 타락합니다. 인간성과 사랑은 메말라가고 교만해져 갑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의 힘과 지혜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라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13절에서는 세상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조용히 어떤 심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 사상에 의하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그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종말의 징조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 유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언제나 세상에 심한 환난이 있을 때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사이비 이단들이 많이 일어나 믿는 자들을 유혹합니다. 오늘날도 자칭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자칭 재림주라 하는 자들이 20명이 넘습니다. 통일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JMS, 안상홍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영생교, 구원파, 최근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 등 많은 이단종파들이 기독교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둘째, 말세의 징조로서 재난이 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인류역사 속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말세의 징조로서의 전쟁은 더 규모가 크고 더 잦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1,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인간은 무서운 전쟁을 전세계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전쟁, 이란이라크전쟁, 걸프전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에서의 민족간의 내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 21세기에 와서 과거보다도 갑자기 전쟁의 발생빈도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2001년 민간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을 들이받게 한 9.11 테러사건은 생각할수록 충격적입니다. 최근에는 IS등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테러는 세계를 경악하게 하며 불안하게 하였고, 특히 유럽에서는 테러가 일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데 사실 그것이 말세의 모습입니다.
또한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진은 역사적으로 어쩌다 한번씩 발생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큰 강도를 동반하면서 발생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지진으로는 1556년에 중국 산시성에서 일어났던 지진으로서 83만명이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최근으로는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상황을 직접 우리가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서 강진 발생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해변도시들을 덮치며 집과 자동차 등 서있는 모든 것들을 밀고 지나갔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지진안전지역이라던 한국에서마저 집기가 떨어지고 건물이 금이 가고 부서지는 규모 5.0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기상청 관측 지진 발생 차트를 보면, 1990년 국내 지진 발생수 15회, 2000년 29회, 2010년 42회, 2017년 223회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근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노력의 한계를 초월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잘못도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무자비와 무관심, 이기주의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아프리카의 경우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인해 식량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피해가 더 심하게 발생합니다. 전 세계 60억 인구 중 8억 4천만명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매년 1천만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1990년대 대기근으로 약 300만명이 아사했다고 합니다.
셋째, 말세의 징조로서 신자들에게 핍박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신자들이 왜 핍박을 당하게 될까요? 이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다르니까 따돌림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신자들을 광신자로 치부하면서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움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서 교회를 흩으시고 복음을 확산시키셨습니다.
넷째,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먼저 만국복음전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은 다른 어떤 긴급한 일보다도 만국복음전파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메시야가 날뛰고, 전쟁과 천재지변과 핍박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도리어 복음전파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할일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타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쏟아지는 일감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인정받아야 합니다. 국가적으로는 불경기를 극복하고 계속 경제발전을 하여 민주복지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이루어져야 할일이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역사를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런 타이틀도 없이 복음을 전할 때 미물이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 창조의 주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물거품같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상역사가 아닙니다. 세상 역사의 이면에서 주류로 흐르고 있는 만국복음전파와 인류구속역사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주류가 아닙니다. 우리가 좀 못 살고 어려워도 세상만민을 구원하는 역사속에 쓰임받는다면 그것이 주류에 속한 삶이요, 성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사고 자녀교육 잘 시키고 건강하게 평안한 노후를 갖고,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잘 즐기다가 오래 살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나이스한 삶을 살았다해도 결국은 때가 되면 늙고 쇠약해져서 허무한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찍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해보았던 솔로몬왕은 인생말년에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고 권면하면서 전도서 기록을 마쳤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실하며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각자마다 심각한 인생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몰라 죄와 심판과 영원한 멸망의 운명아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헛된 세상 것들에 매진하며 육신의 본성에 따라 죄의 열매를 맺으며 고통스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해준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때 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살게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복음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를 통해서 만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분명히 심고 세상적인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성경말씀과 예수님에 대해 몰랐던 저는 세상과 죄에 대해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죄의 유혹과 육신의 본성에 따라 무질서하게 살았습니다. 형의 계속되는 대입실패와 어머니의 교통사고, 아버지 술중독문제와 뇌졸중 등으로 혼돈스럽고 불안했습니다. 자의식과 죄의식, 대인공포증, 불안과 강박증세로 고통하다가 몸과 마음이 굳고 항상 누워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말은 거의 없고 행동은 매우 느렸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낫게 해 보시려고 병원과 기도원 등 사방으로 데리고 가셨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3년간을 휴학한 후 다시 복학하면서 UBF모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장막에서 거하게 되었는데, 기도와 말씀이 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하시는 목자님들이 있는 영적인 환경에 거하게 되면서 얼음과 같이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억누르던 세력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한번에 몸이 확 풀려버렸습니다.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낫게 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이후 말씀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예수님과 십자가복음을 알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임한 말씀의 은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14-27)
14절부터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세상의 종말과 함께 엮어서 예언하십니다. 그 징조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가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우상이나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예배 받으셔야할 성전의 자리에 가증한 우상이 서고 이방인들이 짓밟는 신성모독이 일어납니다. 이때 산으로 도망치라고 하십니다. 지붕을 수리하던 중이었다면 집에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고 바로 도망가야 합니다. 밭에 있는 자는 벗어놓은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도 말고 급히 도망가야 합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30년이 조금 지나 성취되었습니다. AD70년 로마황제의 아들 티투스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 때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에 피난들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할 것이고 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군은 장기간 포위작전에 들어갔고, 식량은 바닥이 났습니다. 유대인들은 굶주림과 로마군대의 공격으로 무참히 죽어갔습니다. 로마군은 멸망의 가증한 황제초상과 독수리 형상을 가지고 들어 왔고 성전에 로마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성전은 로마군의 발아래 짓밟혔고, 방화로 불탔습니다. 당시 약 110만명이 학살되고, 9만7천명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신자들은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재빨리 산으로 도망하여 다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성전이 불타서 돌틈사이로 녹아들어간 금을 캐내기 위해 또는 돌 사이에 숨겨놓은 금을 얻기 위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다 무너뜨려 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와 같이 장차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대환란은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시면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면서 영적 혼란이 가중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할 것 입니다.
24, 25절은 대환란 후 우주에 대이변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우주의 질서가 새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존의 질서가 깨어집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때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다가 너무 무서워 기절하게 됩니다. 그때는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26, 2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해와 달도 빛을 잃은 캄캄한 어둠의 휘장이 걷히고 하늘로부터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며, 유대땅 한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만왕의 왕으로서,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천사들을 보내어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으시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 때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살아남은 자도 부활의 새 몸을 입고 홀연히 변화하게 됩니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이지선씨는 그 날에 다시 아름다운 새 몸을 받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맞아주시며, 안아 주십니다. 못자국난 손으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무섭게 무너져 내리던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교체가 됩니다. 그 곳은 이제 다시 죄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 주님과 부활한 성도들이 영원히 함께하며 천국축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주님을 믿고 끌까지 충성한 우리들에게 구원과 감격과 큰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28-37절에서는 종말을 대비하는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아는 것처럼, 종말의 징조가 나타나면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징조를 깨닫고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처럼 이스라엘국가가 2천년만에 회복된 것은 종말이 가까운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던 다니엘서 예언대로 교통이 빨라지고 지식이 급증했습니다. 전쟁의 위협과 지진과 기근, 질병, 이단과 적그리스도의 증가, 세계적인 동성애의 확산과 동성간의 결혼인정 확산(미국과 독일은 작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캐나다,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현재 25개국에서 합법화함), 서구권의 기독교의 몰락(영국의 경우 50년전에는 신자가 90%였는데, 지금은 3~4%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매우 위기의식이 듭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절을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라고 말씀했는데, 꼭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가 예수님이 문앞에 가까이 와 있는 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쇠하여지고 노년의 징조를 보이면서 주님께 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날들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 깨어 있어야 합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종말의 징조를 통해서 재림이 가까운 때라는 것은 알 수 있겠지만, 재림하시는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34-37) 우리가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여기에 우리 마음이 가 있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또한 가정과 사회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권한과 사무에 최선을 다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열매를 맺는 것 또한 깨어 있는 삶입니다. 내게 맡기신 양들과 교회에서 맡은 일들, 학업과 업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35,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이는 언제 주인이 올지 모르니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후 2천년동안 예수님이 곧 오신다, 곧 오신다 이야기했고 이단들도 많이 써먹어서 사람들이 면역이 되어서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이 땅이 살기 좋아져서 다시 오시든지 말든지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전해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하며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림하실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하며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으며, 재림하실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입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놓치게 되면, 영적긴장이 사라지고 잠들기 쉽습니다. 자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면 업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들게 되면 그 정도로 둔하고 무감각해집니다. 영적으로 잠들면 찬양을 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졸립니다. 잠들면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민감성도 둔해져서 죄를 짓고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자발성과 민첩성을 상실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어떻게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돌아보십시오! 기도하지 않는 하루는 누수가 많은 하루입니다. 죄와 짜증과 인간갈등에 시달리느라, 우선순위없이 허둥대느라, 뭔가 바쁘게 보낸것 같긴 한데 돌아보면 뭘 했는지 모를 멍한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시는지,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핵심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내가 피할 것,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넘어져도 십자가를 붙들고 금새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뚫고 지나갈 담대함을 얻습니다. 기도하면 맡겨진 권한과 사무에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도하면 깨어있게 됩니다.
37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깨어 있으라"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친히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새로 저의 Life를 돌아보면서 한 때 종말론에 심취해서 살았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1990년대경 국내에 한창 종말론이 붐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말론 집회에도 참석하고 종말에 관련된 서적들도 보며 종말이 곧 온다는 사실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라는 단체는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미선교회의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켜서 TV방송에서도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종말에 관련된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때 신자들이 공중으로 들림받고 이 땅에는 대환란이 임하게 되는 것을 소재로 한 ‘휴거’라는 영화가 있었고, 또 요한계시록의 일곱재앙을 소재로 한 ‘세븐사인’이라는 영화기 있었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당시 내적으로 쇠약해져 있고 혼란스러웠던 저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진짜같아 보였고 태초로부터 6천년이 되는 서기 2000년때가 세상의 종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무지했던 때라 친구의 소개로 구원파교회의 집회에 두세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말론과 구원파의 영향으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빨리 구원받고 대환란을 피해야 한다는 갈급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다미선교회가 주장했던 1992년 10월 28일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해당 목사는 사기죄로 감옥에 갔습니다. 이후 2000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혹당하기 쉬었던 저를 지켜주시고 UBF모임으로 인도하사 인격적으로 성경말씀과 예수님을 알아가며 참된 진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현 세상이 과학문명의 발달로 좀 더 편리해 지고 살기 좋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월드컵 축제도 성황리에 잘 치루어지며 세계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열림으로 북핵문제도 이제 평화롭게 해결이 되고 한반도에 머지않아 평화통일도 이루어 질 것으로 보였습니다. 세상은 별탈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자들과 같이 세상의 겉모습만 보고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기독교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줄 몰랐습니다.
제가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깨어 있으라” 말씀을 기억하며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분별하며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가운데 복음전파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종말을 대비할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제까지 예수님은 세상종말의 징조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주의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기독교 역사관을 배웠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성경의 예언에 따라 종말의 때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반드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복음을 만국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열심히 일대일로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침으로 제자양성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이 사모되고 기다려지는 삶, 주님께 드릴 열매가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가복음 13:1-37
요절 / 마가복음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인자가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마가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가 예언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기독교 역사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1-13) 종말의 징조, 둘째,(14-37)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기독교역사 가운데서 어느 시점에 있는가를 알고, 분명한 재림신앙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가장 힘써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종말의 징조(1-13)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였습니다. 제자 중 한명이 예수님께 와서 놀라는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제자들은 성전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시골사람들이 볼 때 성전은 너무나 화려하고 웅장해 보였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한 것으로서, 8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려 AD64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입구에는 40척의 웅장한 기둥들이 서 있었고, 성전의 기초석은 길이가 12m, 폭이 6m, 높이가 4m나 되고, 성전벽은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지붕과 건물 정면은 금을 입혔으므로 햇빛이 반사될 때면 성전이 거대한 황금처럼 빛났습니다.
제가 얼마전 부산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해운대 왼쪽으로 동백섬을 지나고 보면 마린시티라고 해서 70~8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들이 10개정도가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모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해변가에 있는 이 건물들은 야경도 홍콩만큼 아름답습니다. 저는(서울촌놈) 가까이서 이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의 외관에 감탄하며 연신 올려다 보았습니다. 또 올해 봄에는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직접 그 앞에서 보았을 때 그 높고 거대한 건물의 위용에 정말 놀랐습니다. 여의도 63빌딩의 두배입니다. 그렇게 높고 웅장한 건물을 지은 인간의 능력에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은 당황스럽게도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성전을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모습만을 보았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 내부에 만연되어 있는 영적부패와 타락상을 보시고 필경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보셨습니다. 당시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은 권위적이고 형식적이었으며 물질을 탐하였습니다. 장사꾼들과 협착하여 멀리서 온 순례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제물의 값을 몇 배나 받아 돈을 챙겼습니다. 성전은 강도의 굴혈과 같이 되었고 성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은 겉모습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면의 진실함과 믿음에 있습니다. 겉모습이 초라하고 허름해도 그곳에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과 예배가 있으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고 판단하시며 심판할 것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날 화려해 보이는 첨단문화들은 인간세상에 무엇이든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런 것들이 아무리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아도 사실 현대문명 속은 심히 죄로 부패해 있습니다. 인터넷과 무선통신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더 편리해져 가고 있지만 그로인해 지나칠 정도로 성적타락이 극심해졌고 우리 삶속에 깊이 뿌리 내렸습니다. 인간은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만들어지면 이를 배경으로 더 즐기고자 하고 더 타락합니다. 인간성과 사랑은 메말라가고 교만해져 갑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의 힘과 지혜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라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13절에서는 세상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조용히 어떤 심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 사상에 의하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그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종말의 징조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 거짓 메시야가 나타나 유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언제나 세상에 심한 환난이 있을 때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사이비 이단들이 많이 일어나 믿는 자들을 유혹합니다. 오늘날도 자칭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도 자칭 재림주라 하는 자들이 20명이 넘습니다. 통일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JMS, 안상홍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영생교, 구원파, 최근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 등 많은 이단종파들이 기독교보다 더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둘째, 말세의 징조로서 재난이 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은 인류역사 속에 항상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말세의 징조로서의 전쟁은 더 규모가 크고 더 잦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1,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인간은 무서운 전쟁을 전세계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전쟁, 이란이라크전쟁, 걸프전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아프리카에서의 민족간의 내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 21세기에 와서 과거보다도 갑자기 전쟁의 발생빈도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2001년 민간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을 들이받게 한 9.11 테러사건은 생각할수록 충격적입니다. 최근에는 IS등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테러는 세계를 경악하게 하며 불안하게 하였고, 특히 유럽에서는 테러가 일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데 사실 그것이 말세의 모습입니다.
또한 처처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진은 역사적으로 어쩌다 한번씩 발생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큰 강도를 동반하면서 발생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지진으로는 1556년에 중국 산시성에서 일어났던 지진으로서 83만명이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최근으로는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상황을 직접 우리가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서 강진 발생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해변도시들을 덮치며 집과 자동차 등 서있는 모든 것들을 밀고 지나갔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 지진안전지역이라던 한국에서마저 집기가 떨어지고 건물이 금이 가고 부서지는 규모 5.0이상의 강진이 발생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기상청 관측 지진 발생 차트를 보면, 1990년 국내 지진 발생수 15회, 2000년 29회, 2010년 42회, 2017년 223회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기근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노력의 한계를 초월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잘못도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무자비와 무관심, 이기주의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아프리카의 경우 끊이지 않는 내전으로 인해 식량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피해가 더 심하게 발생합니다. 전 세계 60억 인구 중 8억 4천만명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매년 1천만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1990년대 대기근으로 약 300만명이 아사했다고 합니다.
셋째, 말세의 징조로서 신자들에게 핍박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신자들이 왜 핍박을 당하게 될까요? 이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다르니까 따돌림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신자들을 광신자로 치부하면서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어려움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해서 교회를 흩으시고 복음을 확산시키셨습니다.
넷째, 세상의 종말이 있기 전에 먼저 만국복음전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 말씀은 다른 어떤 긴급한 일보다도 만국복음전파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거짓 메시야가 날뛰고, 전쟁과 천재지변과 핍박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도리어 복음전파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할일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금을 타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쏟아지는 일감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인정받아야 합니다. 국가적으로는 불경기를 극복하고 계속 경제발전을 하여 민주복지국가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평화통일을 이루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이루어져야 할일이 만국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류역사를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런 타이틀도 없이 복음을 전할 때 미물이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 창조의 주역이라는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물거품같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상역사가 아닙니다. 세상 역사의 이면에서 주류로 흐르고 있는 만국복음전파와 인류구속역사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주류가 아닙니다. 우리가 좀 못 살고 어려워도 세상만민을 구원하는 역사속에 쓰임받는다면 그것이 주류에 속한 삶이요, 성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사고 자녀교육 잘 시키고 건강하게 평안한 노후를 갖고,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잘 즐기다가 오래 살 것인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나이스한 삶을 살았다해도 결국은 때가 되면 늙고 쇠약해져서 허무한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찍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해보았던 솔로몬왕은 인생말년에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고 권면하면서 전도서 기록을 마쳤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때가 되면 하나님 앞에서 결산할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실하며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각자마다 심각한 인생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몰라 죄와 심판과 영원한 멸망의 운명아래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헛된 세상 것들에 매진하며 육신의 본성에 따라 죄의 열매를 맺으며 고통스런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해준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때 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풍성한 생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살게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밝고 행복하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복음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을 받아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를 통해서 만민을 구원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분명히 심고 세상적인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성경말씀과 예수님에 대해 몰랐던 저는 세상과 죄에 대해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죄의 유혹과 육신의 본성에 따라 무질서하게 살았습니다. 형의 계속되는 대입실패와 어머니의 교통사고, 아버지 술중독문제와 뇌졸중 등으로 혼돈스럽고 불안했습니다. 자의식과 죄의식, 대인공포증, 불안과 강박증세로 고통하다가 몸과 마음이 굳고 항상 누워있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말은 거의 없고 행동은 매우 느렸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낫게 해 보시려고 병원과 기도원 등 사방으로 데리고 가셨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학시절 3년간을 휴학한 후 다시 복학하면서 UBF모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장막에서 거하게 되었는데, 기도와 말씀이 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하시는 목자님들이 있는 영적인 환경에 거하게 되면서 얼음과 같이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억누르던 세력들이 하나둘 떠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한번에 몸이 확 풀려버렸습니다.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 다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낫게 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이후 말씀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고 예수님과 십자가복음을 알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임한 말씀의 은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14-27)
14절부터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세상의 종말과 함께 엮어서 예언하십니다. 그 징조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예수님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가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우상이나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만이 예배 받으셔야할 성전의 자리에 가증한 우상이 서고 이방인들이 짓밟는 신성모독이 일어납니다. 이때 산으로 도망치라고 하십니다. 지붕을 수리하던 중이었다면 집에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고 바로 도망가야 합니다. 밭에 있는 자는 벗어놓은 겉옷을 가지러 돌이키지도 말고 급히 도망가야 합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30년이 조금 지나 성취되었습니다. AD70년 로마황제의 아들 티투스가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 때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에 피난들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할 것이고 이 전쟁에 개입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마군은 장기간 포위작전에 들어갔고, 식량은 바닥이 났습니다. 유대인들은 굶주림과 로마군대의 공격으로 무참히 죽어갔습니다. 로마군은 멸망의 가증한 황제초상과 독수리 형상을 가지고 들어 왔고 성전에 로마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성전은 로마군의 발아래 짓밟혔고, 방화로 불탔습니다. 당시 약 110만명이 학살되고, 9만7천명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신자들은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재빨리 산으로 도망하여 다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성전이 불타서 돌틈사이로 녹아들어간 금을 캐내기 위해 또는 돌 사이에 숨겨놓은 금을 얻기 위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다 무너뜨려 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와 같이 장차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도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세상 종말에 이루어질 대환란은 전무후무한 대환란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않으시면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면서 영적 혼란이 가중됩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할 것 입니다.
24, 25절은 대환란 후 우주에 대이변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우주의 질서가 새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존의 질서가 깨어집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때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다가 너무 무서워 기절하게 됩니다. 그때는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26, 2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해와 달도 빛을 잃은 캄캄한 어둠의 휘장이 걷히고 하늘로부터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나팔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며, 유대땅 한 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큰 권능과 영광 가운데 만왕의 왕으로서,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천사들을 보내어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으시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 때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합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살아남은 자도 부활의 새 몸을 입고 홀연히 변화하게 됩니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은 이지선씨는 그 날에 다시 아름다운 새 몸을 받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맞아주시며, 안아 주십니다. 못자국난 손으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무섭게 무너져 내리던 하늘과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교체가 됩니다. 그 곳은 이제 다시 죄와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 주님과 부활한 성도들이 영원히 함께하며 천국축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은 주님을 믿고 끌까지 충성한 우리들에게 구원과 감격과 큰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28-37절에서는 종말을 대비하는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아는 것처럼, 종말의 징조가 나타나면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징조를 깨닫고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처럼 이스라엘국가가 2천년만에 회복된 것은 종말이 가까운 증거입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했던 다니엘서 예언대로 교통이 빨라지고 지식이 급증했습니다. 전쟁의 위협과 지진과 기근, 질병, 이단과 적그리스도의 증가, 세계적인 동성애의 확산과 동성간의 결혼인정 확산(미국과 독일은 작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으며, 캐나다,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현재 25개국에서 합법화함), 서구권의 기독교의 몰락(영국의 경우 50년전에는 신자가 90%였는데, 지금은 3~4%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매우 위기의식이 듭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절을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라고 말씀했는데, 꼭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가 예수님이 문앞에 가까이 와 있는 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쇠하여지고 노년의 징조를 보이면서 주님께 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날들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예수님께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첫째, 깨어 있어야 합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종말의 징조를 통해서 재림이 가까운 때라는 것은 알 수 있겠지만, 재림하시는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작정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둘째,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34-37) 우리가 영혼구원에 최선을 다하는 것, 여기에 우리 마음이 가 있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또한 가정과 사회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권한과 사무에 최선을 다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열매를 맺는 것 또한 깨어 있는 삶입니다. 내게 맡기신 양들과 교회에서 맡은 일들, 학업과 업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35, 3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이는 언제 주인이 올지 모르니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후 2천년동안 예수님이 곧 오신다, 곧 오신다 이야기했고 이단들도 많이 써먹어서 사람들이 면역이 되어서 반응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이 땅이 살기 좋아져서 다시 오시든지 말든지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전해보면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하며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재림하실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하며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있으며, 재림하실 것을 확실히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입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놓치게 되면, 영적긴장이 사라지고 잠들기 쉽습니다. 자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면 업어가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들게 되면 그 정도로 둔하고 무감각해집니다. 영적으로 잠들면 찬양을 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졸립니다. 잠들면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민감성도 둔해져서 죄를 짓고도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자발성과 민첩성을 상실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어떻게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돌아보십시오! 기도하지 않는 하루는 누수가 많은 하루입니다. 죄와 짜증과 인간갈등에 시달리느라, 우선순위없이 허둥대느라, 뭔가 바쁘게 보낸것 같긴 한데 돌아보면 뭘 했는지 모를 멍한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시는지, 내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핵심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내가 피할 것,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넘어져도 십자가를 붙들고 금새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무슨 일을 만나도 뚫고 지나갈 담대함을 얻습니다. 기도하면 맡겨진 권한과 사무에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기도하면 깨어있게 됩니다.
37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깨어 있으라"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재림하실 예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친히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새로 저의 Life를 돌아보면서 한 때 종말론에 심취해서 살았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1990년대경 국내에 한창 종말론이 붐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말론 집회에도 참석하고 종말에 관련된 서적들도 보며 종말이 곧 온다는 사실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당시 다미선교회라는 단체는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미선교회의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켜서 TV방송에서도 소개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종말에 관련된 영화들이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때 신자들이 공중으로 들림받고 이 땅에는 대환란이 임하게 되는 것을 소재로 한 ‘휴거’라는 영화가 있었고, 또 요한계시록의 일곱재앙을 소재로 한 ‘세븐사인’이라는 영화기 있었습니다. 저도 봤습니다.
당시 내적으로 쇠약해져 있고 혼란스러웠던 저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진짜같아 보였고 태초로부터 6천년이 되는 서기 2000년때가 세상의 종말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무지했던 때라 친구의 소개로 구원파교회의 집회에 두세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말론과 구원파의 영향으로 세상의 종말이 오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빨리 구원받고 대환란을 피해야 한다는 갈급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다미선교회가 주장했던 1992년 10월 28일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해당 목사는 사기죄로 감옥에 갔습니다. 이후 2000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혹당하기 쉬었던 저를 지켜주시고 UBF모임으로 인도하사 인격적으로 성경말씀과 예수님을 알아가며 참된 진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현 세상이 과학문명의 발달로 좀 더 편리해 지고 살기 좋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월드컵 축제도 성황리에 잘 치루어지며 세계인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열림으로 북핵문제도 이제 평화롭게 해결이 되고 한반도에 머지않아 평화통일도 이루어 질 것으로 보였습니다. 세상은 별탈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자들과 같이 세상의 겉모습만 보고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기독교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줄 몰랐습니다.
제가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깨어 있으라” 말씀을 기억하며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분별하며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는 가운데 복음전파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종말을 대비할 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제까지 예수님은 세상종말의 징조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에 대해 주의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한 기독교 역사관을 배웠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성경의 예언에 따라 종말의 때와 예수님의 재림의 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반드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복음을 만국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열심히 일대일로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침으로 제자양성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이 사모되고 기다려지는 삶, 주님께 드릴 열매가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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