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9 신년 1강(요 17:1-26)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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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 제 1 강
말씀 | 요한복음 17:1-26
요절 | 요한복음 17:21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018 한해가 저물고 2019년 새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예수님의 소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과 그 이후에 올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는 예수님의 이 기도 위에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새 해를 위한 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1-5).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 다락방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예수님은 이제 수 시간 후에 체포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십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조금도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에게 나아가 고백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여기서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처음부터 이때를 향하여 움직여 오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그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자신을 영화롭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존재를 높이고 빛내는 것입니다. 4절을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하라고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만물을 통해서 그 권능과 신성을 드러내시고 또한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모든 날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셨습니다(히1:1,2).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 1:3).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요 14:10).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그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도 심판의 부활로 영원히 삽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더 알아감에 따라 더욱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요 10:10).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더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더욱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이 또 무엇입니까? 메시야로서 구속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는 것까지 연결되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관점으로 십자가 사건을 보셨기 때문에 십자가 죽음 앞에서 아들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열 두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고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상과 같이 아버지를 세상에 나타내는 일, 구속 역사를 이루는 일,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온 마음을 다해 감당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시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고 오직 조용하게 맡은 바 일을 해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하나님이 하라고 주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삶이 귀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 6절부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6).” 여기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열 두 제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택하여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도록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고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은 두 인격이지만 완전히 하나이십니다. 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오묘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과 변화된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함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신자들의 변화된 삶과 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을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므로 이후로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들을 보전하사 어떻게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개성이나 성격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귀의 역사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마귀는 신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불신하게 만들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식게 만듭니다. 분열시키고 무너지게 합니다. 사탄은 중간에 말을 살짝 비틀어 우리 사이에 관계가 갈라지게 합니다. 예를 들어 ‘희망 의상실’은 ‘희망의 상실’, ‘서울시장애인 복지관’은 ‘서울시장 애인 복지관’, ‘서울시 체육회’를 잘 못 옮기면 ‘서울시체 육회’가 됩니다. 제자들은 모두 각자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의 생각과 욕심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서로 크고자 경쟁했습니다. 각자 자기 일에 빠져서 서로 돌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제자들 상호 간에 사랑이 식고 하나가 되지 못하면, 세상에서 받는 박해와 시련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합심하여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없습니다. 우주적인 교회가 아니라 자기 교회, 자기 역사만을 이루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의 간절한 바램이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힘써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살게 되면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딤후 3:12). 이는 근본적으로 세상이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런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다보면 그들의 마음을 맞추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주시길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세상에 살되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주시길 기도하십니다(15).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의 풍조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진리로 거룩하게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그릇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축약하면 율법, 더 축약하면 십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즉 우리가 사랑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목상의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영적인 성장을 멈출까요? 왜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고 열매가 없을까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 3:17). 사람은 배우는 동안은 늙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실천함으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신자들을 위한 기도(20-26). 20절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될 신자들 곧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들에 대한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신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도제목은 그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한 가지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인격체의 특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은사가 다릅니다. 모양도 성격도 다릅니다. 세상에 쌍둥이라도 똑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중심적입니다. 어떤 두 목회자가 언쟁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다투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목회가자 말합니다. ‘자, 이제 그만 둡시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시오! 나는 주의 길을 가겠소!’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의 인생목적이 같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주시오 살아계신 단 한분의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신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 자기 욕심, 야심, 자기 영광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겸손히 낮아져 상대방을 섬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모든 심판권을 다 아들에게 맡기심으로 사람들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하셨습니다(요 5:22,23). 아버지도 아들을 섬기심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겸손히 낮아져 상대방을 섬기고, 상대방을 높이고자 할 때 하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러면 나는 뭐지? 나만 손해보고, 희생하고, 낮아지고,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한계에 다다를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그걸로 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고자 하는 자에게 명예와 존귀와 각종 은혜를 풍성히 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 때 기꺼이 낮아져 다른 사람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악기를 연주합니다. 모두 다 바이올린만 연주한다면 풍성한 화음을 낼 수 없습니다. 작은 북만 연주한다면 청중들은 금방 지루해 할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 외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면서 아름답고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도 모두 개성과 은사가 다릅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휘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본질적인 것이 같으면 비본질적인 것이 조금 달라도 서로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모임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습니다. 내부의 형제들과 사소한 문제로 갈등한다면 그런 일에 힘을 다 소진하고 정작 우리의 적과 싸울 때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마음으로 동역을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 되기 어려운 그 한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될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1b을 보십시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전도는 말로 하는 것도 있지만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이 이 공동체에 담기고 싶어 합니다.
새해 우리가 하나 되기에 힘쓰는 가운데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이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요회와 팀에서 하나 되기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 사명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17:1-26
요절 | 요한복음 17:21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018 한해가 저물고 2019년 새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예수님의 소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과 그 이후에 올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는 예수님의 이 기도 위에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새 해를 위한 내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1-5).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 다락방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예수님은 이제 수 시간 후에 체포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십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조금도 없습니다. 가장 심각한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에게 나아가 고백하십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여기서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처음부터 이때를 향하여 움직여 오셨습니다. 이제 드디어 그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보십니까?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자신을 영화롭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존재를 높이고 빛내는 것입니다. 4절을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하라고 주신 일이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만물을 통해서 그 권능과 신성을 드러내시고 또한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모든 날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셨습니다(히1:1,2).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 1:3).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요 14:10).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그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도 심판의 부활로 영원히 삽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생은 예수님을 더 알아감에 따라 더욱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요 10:10).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더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더욱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이 또 무엇입니까? 메시야로서 구속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을 통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는 것까지 연결되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관점으로 십자가 사건을 보셨기 때문에 십자가 죽음 앞에서 아들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가 되는 열 두 제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고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상과 같이 아버지를 세상에 나타내는 일, 구속 역사를 이루는 일,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일을 온 마음을 다해 감당하시고 이루셨습니다. 시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고 오직 조용하게 맡은 바 일을 해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말하든 하나님이 하라고 주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삶이 귀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낭비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 6절부터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6).” 여기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열 두 제자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택하여 세우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도록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알고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은 두 인격이지만 완전히 하나이십니다. 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오묘한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과 변화된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함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신자들의 변화된 삶과 증거를 통해서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세상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을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므로 이후로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들을 보전하사 어떻게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1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들이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개성이나 성격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귀의 역사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입니다. 마귀는 신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게 만듭니다. 불신하게 만들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식게 만듭니다. 분열시키고 무너지게 합니다. 사탄은 중간에 말을 살짝 비틀어 우리 사이에 관계가 갈라지게 합니다. 예를 들어 ‘희망 의상실’은 ‘희망의 상실’, ‘서울시장애인 복지관’은 ‘서울시장 애인 복지관’, ‘서울시 체육회’를 잘 못 옮기면 ‘서울시체 육회’가 됩니다. 제자들은 모두 각자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의 생각과 욕심이 있습니다. 사사건건 서로 크고자 경쟁했습니다. 각자 자기 일에 빠져서 서로 돌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떠나게 됩니다. 이렇게 제자들 상호 간에 사랑이 식고 하나가 되지 못하면, 세상에서 받는 박해와 시련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합심하여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없습니다. 우주적인 교회가 아니라 자기 교회, 자기 역사만을 이루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의 간절한 바램이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힘써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세상에서 말씀을 따라 살게 되면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딤후 3:12). 이는 근본적으로 세상이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런 세상에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벧전 2:21).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다보면 그들의 마음을 맞추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주시길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세상에 살되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주시길 기도하십니다(15).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의 풍조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십니까? 진리로 거룩하게 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그릇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축약하면 율법, 더 축약하면 십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즉 우리가 사랑함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목상의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영적인 성장을 멈출까요? 왜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고 열매가 없을까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 3:17). 사람은 배우는 동안은 늙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실천함으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신자들을 위한 기도(20-26). 20절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믿게 될 신자들 곧 우리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들에 대한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신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기도제목은 그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른 한 가지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독립적인 인격체입니다. 인격체의 특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성이 다르고 은사가 다릅니다. 모양도 성격도 다릅니다. 세상에 쌍둥이라도 똑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중심적입니다. 어떤 두 목회자가 언쟁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다투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목회가자 말합니다. ‘자, 이제 그만 둡시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시오! 나는 주의 길을 가겠소!’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의 인생목적이 같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주시오 살아계신 단 한분의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신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 자기 욕심, 야심, 자기 영광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겸손히 낮아져 상대방을 섬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모든 심판권을 다 아들에게 맡기심으로 사람들이 아들을 공경하도록 하셨습니다(요 5:22,23). 아버지도 아들을 섬기심으로 하나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겸손히 낮아져 상대방을 섬기고, 상대방을 높이고자 할 때 하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럴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러면 나는 뭐지? 나만 손해보고, 희생하고, 낮아지고,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 나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한계에 다다를 때 불평하고 원망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그걸로 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고자 하는 자에게 명예와 존귀와 각종 은혜를 풍성히 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 때 기꺼이 낮아져 다른 사람을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악기를 연주합니다. 모두 다 바이올린만 연주한다면 풍성한 화음을 낼 수 없습니다. 작은 북만 연주한다면 청중들은 금방 지루해 할 것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 외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면서 아름답고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도 모두 개성과 은사가 다릅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휘자가 누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본질적인 것이 같으면 비본질적인 것이 조금 달라도 서로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모임 내부에 있지 않고 외부에 있습니다. 내부의 형제들과 사소한 문제로 갈등한다면 그런 일에 힘을 다 소진하고 정작 우리의 적과 싸울 때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마음으로 동역을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 되기 어려운 그 한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하나가 될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1b을 보십시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전도는 말로 하는 것도 있지만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이 이 공동체에 담기고 싶어 합니다.
새해 우리가 하나 되기에 힘쓰는 가운데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의 가정이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요회와 팀에서 하나 되기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캠퍼스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 사명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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