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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9강(11;27-12:20)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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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19-05-19 13:59

본문

2019년 창세기 제 9 강 
말씀 | 창세기 11:27-12:20
요절 | 창세기 12:2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소망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람을 부르심으로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 시간 아브람에게 두신 하나님의 소망과 비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를 부르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시는 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가라(11:27-12:1)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습니다. 하란은 롯을 낳고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결혼을 했는데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습니다.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12:1). 아브람은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하란에서 머뭇거리자 다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갈대아 우르와 하란은 모두 달의 신을 섬기는 중요한 제의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서 데라의 가족은 달의 신을 섬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곳에 3천 가지의 우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런 좋지 못한 영향력에서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문법적으로 본동사 “하게 하다”, “그로 큰 민족을 이루다”, “축복하다”, “저주하다”, “복을 얻다” 이 모두가 1절의 “가라”는 명령형에 종속됩니다.  즉 내가 너에게 ~을 축복하게 하도록 가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아갈 때에 인간적인 정을 끊는 아픔과 안정된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이 따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험이 없이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하려면 죄악 된 생활, 세속적인 분위기에서 떠나야 합니다. 좋지 못한 친구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인본주의, 물질주의 가치관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악된 생활에서 떠나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2,3)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지금 자식하나 없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꿈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같은 역사를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마음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고자 수고하였지만 피라미 한 마리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시고 두 배 가득 고기를 잡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시고 합당한 비전과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 편에서 보면 너무나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나의 현재 형편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큰 민족을 이룬다는 말씀은 사래의 불임과 대조를 이룹니다. 사래의 불임은 아브람이 후손을 갖는데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장애물을 넘어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또한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육신의 자녀를 많이 주시겠다는 그 이상의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큰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인구와 큰 영토와 정신적 기개 즉 스피릿이 필요합니다. 이 민족은 인종, 영토,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사는 백성을 의미합니다(창18:19). 출애굽기 19:5,6에서는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표현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8,9). 다니엘서에 보면 세상 나라를 짐승에 비유했습니다. 그 만큼 세상 나라는 크고 힘이 있는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조공을 받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힘을 자랑합니다. 칼과 창을 믿고 그것으로 영토를 넓히고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우신 큰 나라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법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탐내지 말라는 여호와의 계명을 따라 힘이 있어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힘을 다른 나라를 돕는데 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통해서 세우실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의 힘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합니다. 궁극적으로 큰 민족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분을 예배하며 그 분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지금 무명의 사람이지만 믿음의 조상이요 여러 민족의 아비가 되어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위대한 존재로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람을 알게 되고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에는 장수, 부, 평화, 풍작 그리고 많은 자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공이나 행운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구약 성경에서는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이 될지라.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아브람의 현재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를 복덩이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과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를 복덩어리로 삼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샘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에나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복은 궁극적으로 죄로 말미암은 저주와 심판 가운데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은 그의 최고의 축복입니다. 복된 소식이란 우리 영혼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복음이 널리 전파될 때 복을 받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당시 모든 왕들의 소원이었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의 은혜 가운데 왕 노릇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의 표본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그 사람도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게 되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 편에 서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중심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 한 사람을 통해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귀히 여기고 그의 믿음을 본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아브람과 같이 믿음으로 살 때 아브람에게 임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롬4:12,23). 또한 이 말씀은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저주를 받은 것같이,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축복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씨에서 온 인류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은혜와 믿음을 통해 복을 받는 삶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시는 목적은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 개개인이 아브람으로 인하여 복을 약속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주요 집단이 그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그의 자손에게 호의적인 집단들은 번영하지만 그들을 대적하는 집단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은 창15:5과 22장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계시가 다윗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다가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 때문에 모든 민족을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과 영벌의 기준이 되십니다.

  셋째, 아브람의 순종(4)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참으로 단순한 사람입니다. 날을 정하고 이사를 떠나면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이사짐을 꾸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아브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떠나고자 할 때 이웃들의 만류도 많았을 것입니다. “너 제 정신이냐?” 하면서 핀잔 주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가족의 정을 끊는 아픔을 감당하며 떠난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인생 길의 빛이요 등불로 삼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말씀이 그의 행동 기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나그네 인생 길에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그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1).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지만 조금도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보배로운 약속의 말씀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되 늘 분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뱀은 하와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다가가 미혹을 하였고 타락을 시켰습니다.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지만 나중에는 많은 아내들의 말을 듣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후손 때에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도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계2:24).” 우리가 사탄의 깊은 것을 알기 어렵습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탄은 “깊은 것”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사상을 가지고 우리를 신령한 말씀으로 여기게 하여 미혹합니다.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 미혹을 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딤후 2:15). 이단들이 우리를 미혹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사흘을 하루 네 시간씩 6개월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말씀의 능력을 덧입어야겠습니다. 악한 자들이 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약해졌기 때문에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말씀 속에서 더욱 강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아브람이 거주한 땅에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에게 주시리라 기대한 땅에 이미 자리를 잡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았을 때 마음에 혼란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나님은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가나안 땅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라가 죽었을 때 막벨라 굴을 샀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땅은 그의 자손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고 나서 돌아와 차지할 땅입니다. 약 600년 뒤에나 있을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멀리 보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13:4에서도 애굽에서 돌아온 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롯이 떠난 후 하나님께서 위로와 비전을 주실 때에도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범사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람은 환경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에 거하는데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비는 오지 않고 풀은 자라지 않고 풀이 없자 양들은 죽어나갔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 기근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하는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가 자기 경험과 생각대로 일을 했는데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애굽에 이르러 아내가 너무 아리따워 그들이 아내를 취하고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게 할까하는 염려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사래에게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래는 이런 못난 남편을 타박하지 아니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이르자 애굽 사람들이 사래의 미모에 반하였습니다.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래를 바로의 궁으로 끌어들여 바로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습니다. 물질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아내가 없는 텅 빈 방에서 아브람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강대국의 왕 바로에게 찍소리를 하지 못하고 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곤경에 처한 아브람을 어떻게 구해주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렸습니다. 갑자기 그들의 피부에 종기가 나고 큰 병이 생겨서 사래로 인해 사단이 난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서 따졌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의 허물과 실수를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에 따라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지금 아브람의 믿음은 이제 막 싹이 나는 어린 상태입니다. 그 믿음에 상처를 입기가 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사래의 위기는 약속의 자식에 대한 위기입니다. 약속된 자식의 통로가 될 아내 사래를 바로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아브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언약이 훼손될 위기에 닥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 사래를 보호하시고 바로로부터 많은 가축과 노비를 얻어서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바로는 사람들에 아브람과 그 일행을 건드리지 말도록 명하였습니다. 아브람은 무사히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인간의 허물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아브람으로부터 믿음의 새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람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그를 보호하시고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브람에게 주신 복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복을 나누어 주는 복덩어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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