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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mt25(17:1-20)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윤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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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0-09-13 20:22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25 강
말씀 / 마태복음 17:1-20
요절 / 마태복음 17:5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마 17:5)”

1.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예수님은 엿새 후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2절을 봅시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2) 해 같이 빛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빛은 어두움을 비춥니다. 어두움을 몰아내고 모든 것을 빛 앞에 드러냅니다. 해는 차가운 것을 녹이고 따뜻하게 합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키워냅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런 빛이요 생명이 되심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예수님의 가르침도 땅에 묻히고 끝나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시고 해같이 빛나십니다. 사람의 어두움에 빛을 비춥니다. 차갑고 생명이 없는 곳에 따뜻함과 생명을 줍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을 튼튼하게 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무엇이 사람을 어둡게 합니까? 염려, 걱정, 근심, 두려움이 어둡게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 염려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이 빛이 됩니다. 이 말씀을 받은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이기보다 정말 해야 할일을 하게 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죄가 사람을 어둡게 합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고, 많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권세가 죄인들의 인생을 밝고 힘 있게 비추었습니다.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고난받고 죽임 당해도, 사람들이 어떻게 대접하더라도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사람들의 빛이요 생명이 되십니다.

2.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4)
베드로는 여기 있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여기"는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는 곳,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는 그 곳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하였습니다. 초막은 이동식 성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을 할 때 성막을 지었고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해같이 빛나는 예수님이 거하시는 그 초막은 기존의 성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성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지지한다면, 이스라엘 중 아무도 예수님을 반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요, 죽임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도 자신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고, 높임받고 인정받기를 바랬습니다.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신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린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더러움이 있는 데, 손만 씻고 마음은 씻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를 기점으로 예수님을 통한 새로운 법,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새로운 율법을 세우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이 원하시면 저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버려지고 죽임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아직 말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5)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 내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내 기뻐하는 자가 있다.’ 예수님을 주목하여 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하시고, 모든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버림받고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왜냐, 그 안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기뻐하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내 말이니까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말씀 잘 듣고 많이 배우라고 늘상 하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듣지 않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네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그 말이 곧 내 말이다. 그러니 잘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한다는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인데 어떻게 사람에 의해 고난받고 죽임당하는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로들은 전통, 대제사장은 성전, 서기관은 율법, 유대 사회의 세 기둥입니다. 그들에게 버림받는 다는 것은 유대 사회에 발도 못붙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철저히 버림받고 죽임당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됩니까?

첫째, 하나님은 예수님이 장로들, 대제사장들.서기관들과 타협하지 않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타협했더라면, 그들에게 고난받지도 죽임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자기의 것을 가르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난 받고 죽임당하셨다는 것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으셨다는 것이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셨다는 말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맞서 자기의 가르침을 지키셨습니다. 떡 먹을 때 손을 왜 안씻냐고 할 때 예수님은 너희의 더러운 마음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제자들을 정죄할때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좀 알라고 하셨습니다.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무리 앞에서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죄 사함에 맞서서 자신의 죄 사함을 지키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사람에게 고난받고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의 지지를 받았다면,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실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셨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상, 예수님의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베드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23, 24, 36)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니 사람이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예수님께로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3:38)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죄사함를 주시는 새로운 성전이 되셨고 해같이 빛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8) 모세도 엘리야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목수의 아들 예수님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 한편에 그들을 두렵게 하던 장로들, 대제사장, 서기관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구나. 사람에게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깨닫는 순간 사람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결국 사라집니다.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제 사람의 지원, 사람의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귀를 기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길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거기에 빛이 있습니다.

3.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17:9-20).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17)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 중에 계시지 않으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그 세대 사람들이 믿음이 없고 패역하다, 뒤틀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점에서 믿음이 없고 뒤틀려 있습니까? 여전히 사람의 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임당하시는 일 안에 하나님의 일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임당하신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는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는 사람이 크게 보이고 예수님은 작아보였습니다.

“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한 가지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버림받고 죽임 당하신다 해도 여전히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임 당하시지만 다시 살아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은 많은 사람이 따르고 인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정하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예수님을 싫어하고 버리고 죽인다 해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자들 마음 가운데 산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고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의 산이 있습니다. 그 산에 가리워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제자의 길도 버림받고 죽어야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죽을 맛이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한가지 믿음이 있으면 이 산도 옮겨집니다. 내 마음과 시선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집니다. 이 모든 일을 사람의 일로만 여기면 어두움이 그들을 덮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 버림당함,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면, 그들 마음에 빛이 비칩니다.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밝게 빛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버림받고 죽임당할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주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는 일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를 받아들이면 내 안에 예수님이 해 같이 빛나고 생명의 빛을 비추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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