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mt24(16:13-28) 주는 그리스도(나에녹)
페이지 정보

본문
주는 그리스도
(부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마16:13-28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고백은 4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에만 나오지 않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마가나 누가와 다르게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고 기록하고 있고 4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교회’ 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과 ‘교회’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시는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아들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람들에게로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잘 나타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과 그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왜 죄 없는 자가 망하는가? 하나님께 악을 행했기 때문에 벌 받는 것이라고 욥에게 당장 죄를 회개하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악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욥의 친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나, 욥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갚으시는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인보응보의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 따라 움직이고 결정 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할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참 모습을 나타내고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한 17:6)”
16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조상의 역사 속에서 한때 존재했던 분으로 끝나 있었습니다. 유대사회는 전통과 성전, 율법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처럼 박제된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꿰찬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아를 돌보지 않고 과부의 가산을 탐하며 음란하였습니다. 심지어 성전에서 매매하고 돈을 바꾸고 비둘기 파는 장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실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베드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 지금 베드로와 이스라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존재 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란 ‘지금 일하시는 분’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일하십니다. 전통과 성전, 율법에 갇혀서 맹인의 인도함 받는 이스라엘백성에게 말씀의 빛을 비추셔서 하나님을 제대로 볼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NIV 영어성경에 ‘알게 한다’ 가 ‘know’ 가 아니라 ‘reveal’ 로 되어 있습니다. ‘reveal’ 은 ‘드러내다’, ‘비밀을 드러내 밝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 보이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잘 가르쳐서 베드로가 알고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지금 일하고 계심을 잘 아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고자 베드로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많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조급하거나 초조해 하지도 않으셨고,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베드로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이 반석’ 은 베드로가 말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바로 이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위에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교회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을 믿고서 온유하게 살고자 하고, 온유한 사람이 누리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을 따라 자신이 화평하고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왜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은 곧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 썩어가는 세상을 살리고 어둠에 있는 세상을 밝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임을 통하여 세상을 비추고 바꾸고자 하십니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18)”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의논하여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니, 그 세워지고 무너짐이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의논하여 세우고, 무너뜨리는 모임이 아닙니다. 사회의 일반 모임들은 사람들이 세우고 사람들이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회는 그런 모임이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란 하데스(Hades)로, 하데스에는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어둠의 권세요, 땅의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는 교회와 음부의 권세 간에 ‘큰 싸움’ 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지만 세우지 못하게 하고 깨뜨리고 망가뜨리려는 강력한 세력이 있고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 때로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음부의 권세는 교회의 머리인 예수님이 실패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도록,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자기를 구원하도록 하여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이 실패하도록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합니다. 방금 전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를 동원하여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도록 공격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십자가를 피하도록 항변합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자공동체를 교회로 세워지지 못하도록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31).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 말씀은 음부의 권세가 아무리 이기려고 애를 쓰고 별수를 다 써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고난가운데 있을 때 희롱은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분노가 터질 수밖에 없도록 자극합니다.
그래서 환난과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비웃음과 조롱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사람이 자다가도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게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써서 몇 배로 되갚도록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가운데 있을 때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과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은 이 모든 희롱을 견디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창조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욕가운데 있었지만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를 구원하는데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을 이기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였지만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 삼일에 살아나심으로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행2:32)’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 곧 다른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에 대해서는 음부, 하데스의 권세가 당연히 이깁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의 교회가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처음에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고자 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생각 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의 뜻을 알고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임이 커지다 보면 천하가 귀하지 한 영혼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내어줄 마음조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관심이 한 사람 에게서 눈에 보이는 역사로 바뀌게 됩니다. 숫자를 세고 크기를 키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판단, 결정을 앞세우게 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덮어버립니다. 겉모양은 크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없고 허약합니다. 결국 교회는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그런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쉽게 이깁니다. 그런 교회는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무너져야 마땅합니다.
이름은 예수님의 교회인데, 내용은 사람의 교회라면, 그런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회는 무너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셔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큰 모임, 큰 건물이 있는 눈에 보이는 교회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 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 두세 사람이 모인 곳도 교회입니다. 한 가정이 한 교회입니다. 심지어 내 한 사람이 작은 교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현재와 앞날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가정의 현재와 앞날을 염려합니다. 혹시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 삶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면 하데스의 권세가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 가정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면, 하데스의 권세가 내 가정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데스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그것이 큰 모임이든, 한 가정이든, 혹은 내 한 사람이든, 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이니 그리스도께서 친히 양육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지키십니다. 그러니 하데스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이 말씀 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는 이기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부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마16:13-28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8)
오늘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고백은 4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에만 나오지 않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마가복음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마가나 누가와 다르게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고 기록하고 있고 4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마태복음에만 ‘교회’ 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 과 ‘교회’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시는 아들이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아들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람들에게로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잘 나타내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과 그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왜 죄 없는 자가 망하는가? 하나님께 악을 행했기 때문에 벌 받는 것이라고 욥에게 당장 죄를 회개하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악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나님께 따집니다. 욥의 친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나, 욥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에는 선으로 악에는 악으로 갚으시는 분으로만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신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고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인보응보의 하나님, 벌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 따라 움직이고 결정 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할수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식으로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참 모습을 나타내고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한 17:6)”
16절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조상의 역사 속에서 한때 존재했던 분으로 끝나 있었습니다. 유대사회는 전통과 성전, 율법의 틀 속에서 하나님을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처럼 박제된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꿰찬 장로,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아를 돌보지 않고 과부의 가산을 탐하며 음란하였습니다. 심지어 성전에서 매매하고 돈을 바꾸고 비둘기 파는 장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실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베드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하나님은 자기들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나님” 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조상의 하나님이 지금 베드로와 이스라엘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존재 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이란 ‘지금 일하시는 분’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일하십니다. 전통과 성전, 율법에 갇혀서 맹인의 인도함 받는 이스라엘백성에게 말씀의 빛을 비추셔서 하나님을 제대로 볼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 NIV 영어성경에 ‘알게 한다’ 가 ‘know’ 가 아니라 ‘reveal’ 로 되어 있습니다. ‘reveal’ 은 ‘드러내다’, ‘비밀을 드러내 밝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 보이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잘 가르쳐서 베드로가 알고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지금 일하고 계심을 잘 아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고자 베드로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많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도록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조급하거나 초조해 하지도 않으셨고,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께서 베드로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이 반석’ 은 베드로가 말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바로 이 말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위에 예수님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교회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을 믿고서 온유하게 살고자 하고, 온유한 사람이 누리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을 따라 자신이 화평하고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하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왜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은 곧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모임이 썩어가는 세상을 살리고 어둠에 있는 세상을 밝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모임을 통하여 세상을 비추고 바꾸고자 하십니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18)”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의논하여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니, 그 세워지고 무너짐이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의논하여 세우고, 무너뜨리는 모임이 아닙니다. 사회의 일반 모임들은 사람들이 세우고 사람들이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회는 그런 모임이 아닙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란 하데스(Hades)로, 하데스에는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어둠의 권세요, 땅의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우고자 하는 교회와 음부의 권세 간에 ‘큰 싸움’ 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지만 세우지 못하게 하고 깨뜨리고 망가뜨리려는 강력한 세력이 있고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 때로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음부의 권세는 교회의 머리인 예수님이 실패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도록,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자기를 구원하도록 하여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이 실패하도록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용합니다. 방금 전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베드로를 동원하여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도록 공격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십자가를 피하도록 항변합니다.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자공동체를 교회로 세워지지 못하도록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다’ 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31).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이 말씀은 음부의 권세가 아무리 이기려고 애를 쓰고 별수를 다 써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고난가운데 있을 때 희롱은 인간의 본성안에 있는 분노가 터질 수밖에 없도록 자극합니다.
그래서 환난과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비웃음과 조롱은 결코 잊혀지지 않고 사람이 자다가도 소리를 치며 벌떡 일어나게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써서 몇 배로 되갚도록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가운데 있을 때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과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였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예수님은 이 모든 희롱을 견디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창조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모욕가운데 있었지만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를 구원하는데 힘을 쓰지 않았습니다. 음부의 권세는 예수님을 이기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였지만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 삼일에 살아나심으로 음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행2:32)’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 곧 다른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에 대해서는 음부, 하데스의 권세가 당연히 이깁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각자의 교회가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처음에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고자 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생각 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의 뜻을 알고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임이 커지다 보면 천하가 귀하지 한 영혼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내어줄 마음조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관심이 한 사람 에게서 눈에 보이는 역사로 바뀌게 됩니다. 숫자를 세고 크기를 키우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사람의 판단, 결정을 앞세우게 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덮어버립니다. 겉모양은 크고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없고 허약합니다. 결국 교회는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게 됩니다. 그런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쉽게 이깁니다. 그런 교회는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무너져야 마땅합니다.
이름은 예수님의 교회인데, 내용은 사람의 교회라면, 그런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회는 무너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셔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라고 하면, 큰 모임, 큰 건물이 있는 눈에 보이는 교회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들’ 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 두세 사람이 모인 곳도 교회입니다. 한 가정이 한 교회입니다. 심지어 내 한 사람이 작은 교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현재와 앞날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가정의 현재와 앞날을 염려합니다. 혹시라도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내 삶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면 하데스의 권세가 나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내 가정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다면, 하데스의 권세가 내 가정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반석”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데스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그것이 큰 모임이든, 한 가정이든, 혹은 내 한 사람이든, 이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이니 그리스도께서 친히 양육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지키십니다. 그러니 하데스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도록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살리심으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 이 말씀 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는 이기지 못합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