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20mt20(13:1-23) 네 종류의 밭의 비유
페이지 정보

본문
2020년 마태복음 제 20 강
말씀 | 마태복음 13:1-23
요절 | 마태복음 13:23
네 종류의 밭의 비유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말씀이 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씨는 대부분 작고 까맣고 못생겼습니다. 대부분 껍질 속에 싸여 있어 얼른 보면 하찮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씨 안에는 놀라운 유전인자가 접혀져서 보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씨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씨는 밭에 심기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말씀 안에도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내 안에 심기면 나를 변화시키고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한 천국 비밀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말씀이지만 듣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들기 때문에 예수님은 집에서 나가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 들자 예수님은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밭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상태를 나타냅니다. 씨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무한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씨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첫째, 길 가와 같은 마음. 19절을 보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악한 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습니다. 악한 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다 아는 이야기라며 무시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라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를 듣고 너무 쉽고 다 아는 이야기라며 흘려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일 년에 한번 씩 공부하다보니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의해서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말씀을 반복하면 타성에 젖어버리고 형식적이 되기 쉽습니다. 말씀에 대한 기본 상식이 많아 자기에게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하고 가르치고자만 하면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세상 일로 분주하여 말씀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산만하게 만들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립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길가와 같이 딱딱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우리는 회개의 쟁기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호세아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타성에 젖어서 안일해진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빼앗고자 하는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 20,21절을 보십시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의 특징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잠시 인내하다가 넘어집니다. 그 이유는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자라려면 마음 속의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돌들이 무엇일까요?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소시민적인 돌이 있습니다.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신앙 생활하는 적당주의 돌이 있습니다. 이런 돌들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말씀공부는 좋아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은 부담스러워 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말씀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면 교회를 떠나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돌들이 있기 때문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받으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환난은 “압박한다”는 말에서 나왔고, 핍박은 “추격한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게 되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위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우리를 잡아먹고자 하는 사탄의 공격이 있습니다. 이때 믿음의 뿌리가 없는 자는 넘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는 자는 환난이나 핍박을 통하여 더 깊이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오래된 죄악들, 불신, 이기주의, 인본주의, 게으름, 안일 등 내 속에 있는 돌들을 회개함으로 제하고 예수님께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6,7a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뿌리를 내리는 것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개인 신앙을 갖는 것이요, 또한 사명을 기초로 분명한 부르심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 신앙과 사명에 대한 부르심은 바늘과 실과 같이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개인 신앙과 사명에 대한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면 이를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이 없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열매 맺는 생활을 합니다.
셋째,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 22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인 소원이 있고 말씀대로 살고자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하는 생활도 합니다.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유하게 살고, 잔재미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영적 소원과 세상 욕망이 마음 속에서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싸움을 합니다. 그로 인해서 말씀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순간적인 쾌락과 잔재미의 유혹 때문에 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합니다. 유튜브, 게임, 웹툰 등 정욕에 빠져서 힘을 소진합니다. 이런 죄악들이 나를 찌르고 꼼짝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염려의 가시에 찔리면, 염려로 인해서 힘이 없고, 신앙생활의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주님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해야 합니다.
가시떨기 밭의 또 다른 특징은 재물의 유혹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겨납니다. 오늘날은 젊은이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해서 재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욕망의 늪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재물의 유혹은 고생하고 싶지 않고 편히 살고 싶은 마음에서 생깁니다. 사람이 재물의 유혹의 가시에 찔리게 되면 영적 소원이 사라지고 사명의 십자가가 부담스럽게 됩니다. 그리고 인색한 마음이 생겨 자기 것을 꾸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6:9-10은 말씀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혼합주의 신앙으로 인해서 멸망하였습니다. 가시떨기는 가지치기를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시떨기와 잡초의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내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재물, 쾌락, 이기적인 욕망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은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깁니다. 마치 잡초가 심지도 않았는데 생기고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더 우쭉우쭉 자라나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마음에 쉽게 자라나는 염려의 잡초, 재물의 유혹의 가시를 즉시 뽑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려면 잡초를 뽑아내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 합니다. 잡초와 가시떨기를 뽑는 수고를 할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 23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피상적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듣는 것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영어로는 “understand”로서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깨닫는다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쉬니에이스’인데 분사, 현재, 능동으로서 지금 역동적으로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듣고 이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깨닫다'는 단어가 무려 5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 줍니다.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지적 인지와 아울러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이해해서 아는 경우도 있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거나, 실천할 때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이해와 순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선형으로 깊어져갑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할 때 말씀이 내 안에서 세력을 얻어 내 안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열매맺는 생활을 하게 해 줍니다. 마음 밭이 좋은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여 주야로 말씀을 묵상합니다. 이때 말씀으로 마음이 풍성해지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아름다운 내면의 열매를 맺게 되면 자연히 외적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결국 말씀으로 인해 그 내면에 천국을 맛보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촌부들로서 한 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욕심과 인간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삶을 살았을 때 사도들이 되어서 사도행전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여서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시간을 주셨습니다. 또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로 열매를 맺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와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저의 일대일 목자님이셨던 김이삭 선교사님은 어머니로부터 “내가 왜 널 낳았는지 모르겠다. 산에서 호랭이가 내려와서 확 물어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운명적이고 슬펐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우철이라는 UBF 친구가 그를 창세기 성경학교에 초청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마음이 냉냉했지만 창세기 1:31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한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혀 말씀의 기초가 없었지만 그 한 말씀이 마음에 떨어지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는 정말 살고 싶었지만 살 힘이 없었는데 이 말씀이 그에게 살 힘을 주었습니다. 힘이 없다가 갑자기 새 힘이 생겼습니다. 이 새 힘으로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이듬해에 고시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목자로 살면서 헌신하다가, 검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 선교사로 나아가서 미국 지성인들을 제자 삼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각자가 마음 밭을 갈아엎고 한 말씀을 깊이 영접함으로 백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13:1-23
요절 | 마태복음 13:23
네 종류의 밭의 비유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비유에서 말씀이 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씨는 대부분 작고 까맣고 못생겼습니다. 대부분 껍질 속에 싸여 있어 얼른 보면 하찮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씨 안에는 놀라운 유전인자가 접혀져서 보관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씨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씨는 밭에 심기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말씀 안에도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내 안에 심기면 나를 변화시키고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한 천국 비밀을 소유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말씀이지만 듣는 사람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신앙생활의 비결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들기 때문에 예수님은 집에서 나가 바닷가에 앉으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 들자 예수님은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밭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상태를 나타냅니다. 씨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무한한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씨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첫째, 길 가와 같은 마음. 19절을 보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악한 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습니다. 악한 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다 아는 이야기라며 무시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라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를 듣고 너무 쉽고 다 아는 이야기라며 흘려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일 년에 한번 씩 공부하다보니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의해서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말씀을 반복하면 타성에 젖어버리고 형식적이 되기 쉽습니다. 말씀에 대한 기본 상식이 많아 자기에게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하고 가르치고자만 하면 말씀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때로는 세상 일로 분주하여 말씀을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산만하게 만들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립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길가와 같이 딱딱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우리는 회개의 쟁기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호세아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타성에 젖어서 안일해진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빼앗고자 하는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말씀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 20,21절을 보십시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의 특징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잠시 인내하다가 넘어집니다. 그 이유는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자라려면 마음 속의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돌들이 무엇일까요?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소시민적인 돌이 있습니다.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신앙 생활하는 적당주의 돌이 있습니다. 이런 돌들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말씀공부는 좋아하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은 부담스러워 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말씀이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면 교회를 떠나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돌들이 있기 때문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받으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환난은 “압박한다”는 말에서 나왔고, 핍박은 “추격한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게 되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주위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우리를 잡아먹고자 하는 사탄의 공격이 있습니다. 이때 믿음의 뿌리가 없는 자는 넘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는 자는 환난이나 핍박을 통하여 더 깊이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오래된 죄악들, 불신, 이기주의, 인본주의, 게으름, 안일 등 내 속에 있는 돌들을 회개함으로 제하고 예수님께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5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6,7a에서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뿌리를 내리는 것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는 개인 신앙을 갖는 것이요, 또한 사명을 기초로 분명한 부르심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 신앙과 사명에 대한 부르심은 바늘과 실과 같이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개인 신앙과 사명에 대한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면 이를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이 없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열매 맺는 생활을 합니다.
셋째, 가시떨기 밭과 같은 마음. 22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영적인 소원이 있고 말씀대로 살고자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하는 생활도 합니다.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유하게 살고, 잔재미를 즐기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영적 소원과 세상 욕망이 마음 속에서 공존하면서 끊임없이 싸움을 합니다. 그로 인해서 말씀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순간적인 쾌락과 잔재미의 유혹 때문에 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합니다. 유튜브, 게임, 웹툰 등 정욕에 빠져서 힘을 소진합니다. 이런 죄악들이 나를 찌르고 꼼짝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염려의 가시에 찔리면, 염려로 인해서 힘이 없고, 신앙생활의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주님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해야 합니다.
가시떨기 밭의 또 다른 특징은 재물의 유혹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겨납니다. 오늘날은 젊은이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해서 재물을 모으고자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욕망의 늪은 끝이 없어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재물의 유혹은 고생하고 싶지 않고 편히 살고 싶은 마음에서 생깁니다. 사람이 재물의 유혹의 가시에 찔리게 되면 영적 소원이 사라지고 사명의 십자가가 부담스럽게 됩니다. 그리고 인색한 마음이 생겨 자기 것을 꾸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6:9-10은 말씀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혼합주의 신앙으로 인해서 멸망하였습니다. 가시떨기는 가지치기를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시떨기와 잡초의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내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재물, 쾌락, 이기적인 욕망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은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깁니다. 마치 잡초가 심지도 않았는데 생기고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더 우쭉우쭉 자라나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마음에 쉽게 자라나는 염려의 잡초, 재물의 유혹의 가시를 즉시 뽑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려면 잡초를 뽑아내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 합니다. 잡초와 가시떨기를 뽑는 수고를 할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 23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피상적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자세로 듣는 것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영어로는 “understand”로서 이해하다는 뜻입니다. 깨닫는다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쉬니에이스’인데 분사, 현재, 능동으로서 지금 역동적으로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듣고 이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는 '깨닫다'는 단어가 무려 5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 줍니다.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지적 인지와 아울러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은 이해해서 아는 경우도 있지만 믿음으로 순종하거나, 실천할 때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이해와 순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선형으로 깊어져갑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순종할 때 말씀이 내 안에서 세력을 얻어 내 안에 역사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열매맺는 생활을 하게 해 줍니다. 마음 밭이 좋은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여 주야로 말씀을 묵상합니다. 이때 말씀으로 마음이 풍성해지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아름다운 내면의 열매를 맺게 되면 자연히 외적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결국 말씀으로 인해 그 내면에 천국을 맛보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촌부들로서 한 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욕심과 인간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삶을 살았을 때 사도들이 되어서 사도행전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하여서 새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시간을 주셨습니다. 또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우리로 열매를 맺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와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저의 일대일 목자님이셨던 김이삭 선교사님은 어머니로부터 “내가 왜 널 낳았는지 모르겠다. 산에서 호랭이가 내려와서 확 물어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운명적이고 슬펐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우철이라는 UBF 친구가 그를 창세기 성경학교에 초청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마음이 냉냉했지만 창세기 1:31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 한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전혀 말씀의 기초가 없었지만 그 한 말씀이 마음에 떨어지자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는 정말 살고 싶었지만 살 힘이 없었는데 이 말씀이 그에게 살 힘을 주었습니다. 힘이 없다가 갑자기 새 힘이 생겼습니다. 이 새 힘으로 열심히 고시공부를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이듬해에 고시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목자로 살면서 헌신하다가, 검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 선교사로 나아가서 미국 지성인들을 제자 삼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각자가 마음 밭을 갈아엎고 한 말씀을 깊이 영접함으로 백배의 결실을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
2020마태복음-20m.hwp (28.5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0-08-16 15:44: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