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히브리서 특강1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믿음" 히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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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히브리서 특강1 (JBF)
말씀 / 히브리서 11:1-16
요절 / 열왕기상 11:1,2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길 원합니다. 왜 성공하길 원할까요? 성공해야 행복하고 성공해야 위대한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성공일까요? 물론 이런 것들도 성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아닙니다. 이러한 왜냐하면 이러한 성공은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성공은 무엇입니까? 오늘부터 3주간에 걸쳐 배우게 될 히브리서 11장에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성공은 무엇입니까? 2절을 봅시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서 선진들은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누가 인정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이것뿐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오직 단 하나 ‘믿음’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왜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선행도 아니고 업적도 아니고 오직 믿음만이 유일한 성공일까요? 이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1절을 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선진들의 믿음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정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말씀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이루어진 것입니까?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루어진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바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고 그래서 분명한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라는 것들이 내 안에서 혹은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희망, 하나님으로부터 온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둘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 속담에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근거를 갖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그 근거를 우리는 ‘증거’라고 합니다. 경찰관이 어떤 사람을 살인범으로 체포했다고 합시다. 경찰관은 어떻게 살인범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수집한 증거 때문입니다. 가령 범인의 지문이 묻은 칼이나 범행 장소 근처에서 찍힌 cctv 영상과 같은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창세기 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만일 성경에 이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 과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수백억년 전에 우주가 우연히 탄생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도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1: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때 성경에 나오는 홍수심판과 홍해를 가른 사가 갈라지는 사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과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들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조신앙은 모든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리의 믿음은 뿌리 깊은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매순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선하실 계획 가운데 내 삶을 창조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진들은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아벨의 믿음, 4절을 봅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사함입니다. 죄사함을 위해선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아벨은 제사의 본질을 알고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과의 경쟁심 때문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그의 마음에 시기심이 일어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벨은 그렇게 이 땅에서 아주 짧은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릴 믿음의 제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벨과 같이 매주 믿음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에녹의 믿음, 5절을 봅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성경에는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분들이 세 분이 나옵니다. 그들은 에녹과 엘리야와 예수님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옮겨지기 전에 많은 고난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삶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런 상을 받은 이유는 그가 이 일을 간절히 바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에녹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이 살던 시대는 사람들이 포악하고 죄가 관영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볼 때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의 악함을 바라볼 때,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형편을 볼 때 우리는 낙심하며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역사상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히틀러에 의해 6백만명이 학살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 계신지 불신하며 하나님을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동란과 좌익과 우익간의 갈등을 겪으며 수많은 분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역사의 비극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에서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에녹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또 찾았습니다. 에녹이 바랐던 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이 땅에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가 왜 이 상을 그토록 간절히 바랬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그의 믿음을 기뻐하셨고 그의 믿음대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십니다.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가 받은 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큰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상은 바로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바로 알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길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의 삶을 섭리하고 계심을 믿고 일생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순종했습니다. 당시 그가 살던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 그는 그곳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음으로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미지의 땅을 향해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순종하여 도착한 땅에는 그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에게 속았다고 난리를 치며 그 땅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을 믿고 그곳에서 나그네로 살면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만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통해 뭇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허다한 후손을 주시겠다고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기까지 아브라함에게는 딸자식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던 해에 그를 찾아오셔서 명년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막 밖에서 이 말씀을 들은 사라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녀는 단산한 자신이 아들을 낳을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라는 그때 회개하고 미쁘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는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미쁘시다는 것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일생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그것을 멀리서 환영하며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죽은 그 순간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정한 소망이 이 땅이 있지 않고 영원한 본향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불꽃같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위대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생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히브리서 11:1-16
요절 / 열왕기상 11:1,2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길 원합니다. 왜 성공하길 원할까요? 성공해야 행복하고 성공해야 위대한 삶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공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성공일까요? 물론 이런 것들도 성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아닙니다. 이러한 왜냐하면 이러한 성공은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성공은 무엇입니까? 오늘부터 3주간에 걸쳐 배우게 될 히브리서 11장에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성공은 무엇입니까? 2절을 봅시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서 선진들은 성공적인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누가 인정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은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성공의 기준은 이것뿐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오직 단 하나 ‘믿음’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왜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선행도 아니고 업적도 아니고 오직 믿음만이 유일한 성공일까요? 이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1절을 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선진들의 믿음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정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말씀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이루어진 것입니까?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까?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루어진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바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졌고 그래서 분명한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라는 것들이 내 안에서 혹은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희망, 하나님으로부터 온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
둘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 속담에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보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만한 근거를 갖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그 근거를 우리는 ‘증거’라고 합니다. 경찰관이 어떤 사람을 살인범으로 체포했다고 합시다. 경찰관은 어떻게 살인범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수집한 증거 때문입니다. 가령 범인의 지문이 묻은 칼이나 범행 장소 근처에서 찍힌 cctv 영상과 같은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창세기 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만일 성경에 이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주 과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수백억년 전에 우주가 우연히 탄생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도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1: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진리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을 때 성경에 나오는 홍수심판과 홍해를 가른 사가 갈라지는 사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과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들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조신앙은 모든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분명하면 우리의 믿음은 뿌리 깊은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매순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선하실 계획 가운데 내 삶을 창조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선진들은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아벨의 믿음, 4절을 봅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사함입니다. 죄사함을 위해선 희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아벨은 제사의 본질을 알고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과의 경쟁심 때문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그의 마음에 시기심이 일어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아벨은 그렇게 이 땅에서 아주 짧은 삶을 살다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드릴 믿음의 제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벨과 같이 매주 믿음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에녹의 믿음, 5절을 봅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성경에는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분들이 세 분이 나옵니다. 그들은 에녹과 엘리야와 예수님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옮겨지기 전에 많은 고난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삶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런 상을 받은 이유는 그가 이 일을 간절히 바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에녹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이 살던 시대는 사람들이 포악하고 죄가 관영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것을 볼 때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의 악함을 바라볼 때, 나아지지 않는 우리의 형편을 볼 때 우리는 낙심하며 믿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역사상 많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히틀러에 의해 6백만명이 학살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었는지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 계신지 불신하며 하나님을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동란과 좌익과 우익간의 갈등을 겪으며 수많은 분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역사의 비극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에서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에녹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또 찾았습니다. 에녹이 바랐던 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이 땅에서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가 왜 이 상을 그토록 간절히 바랬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그의 믿음을 기뻐하셨고 그의 믿음대로 축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십니다. 우리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가 받은 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큰 상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상은 바로 바로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바로 알고 그의 사랑 안에 거하길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의 삶을 섭리하고 계심을 믿고 일생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순종했습니다. 당시 그가 살던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 그는 그곳에서 우상을 만들어 팔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음으로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미지의 땅을 향해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순종하여 도착한 땅에는 그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에게 속았다고 난리를 치며 그 땅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을 믿고 그곳에서 나그네로 살면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만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를 통해 뭇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알 같이 허다한 후손을 주시겠다고 한번도 아니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기까지 아브라함에게는 딸자식 하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가 되던 해에 그를 찾아오셔서 명년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막 밖에서 이 말씀을 들은 사라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녀는 단산한 자신이 아들을 낳을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라는 그때 회개하고 미쁘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는 진정한 기쁨의 웃음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미쁘시다는 것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일생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그것을 멀리서 환영하며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죽은 그 순간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진정한 소망이 이 땅이 있지 않고 영원한 본향에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불꽃같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진정으로 성공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위대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생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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