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사도행전 5강.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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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사도행전 제 5 강
말씀 | 사도행전 4:32–5:16
요절 | 사도행전 4:32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지난 주 말씀에서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협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며 담대하게 핍박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적인 핍박을 극복하자 교회는 내적인 문제와 도전에 직면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시험을 분별하고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교회. 32절.초대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신자들이 헌금을 하여 형제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발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33-35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것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부활 신앙은 막연한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신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넘어 있는 놀라운 세계를 믿었고 소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마음에 죽음을 뛰어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소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이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 장례식 때 드린 감사헌금 봉투가 있습니다. “순교의 두 아들이나 주신 감사의 봉헌금, 일만환. 순교 2자의 부 손양원.” 이 일만환의 돈이 오늘날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 되는 물질입니다. 목사님이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을까요? 손 목사님의 누나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는데 조카, 동인, 동신 미국 유학 보낼 때 쓰라고 돈을 부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냈으니, 그 물질을 몽땅 헌금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부활을 확실히 믿고 천국소망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이 땅의 물질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물과 자식과 자기의 생명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구브로에서 난 바나바라는 사람은 밭을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모범을 보이고 영향력이 좋았습니다. 바나바의 믿음과 헌신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동시에 이를 시기하는 사탄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둘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됨.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았습니다. 바나바의 선행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자 이것이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소에 잘 가 보지 않던 땅을 팔았습니다. 갑자기 그 동네에 개발 붐이 불어서 지가가 매우 높게 뛰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손에 들어오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 드리자니 아까웠습니다. 하나님께 다 드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사는가 염려와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소유를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 아내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말했습니다. 3,4절.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3,4).” 아나니아는 땅을 팔던 말던 자기의 자유인데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그가 돈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유를 팔고 거기서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 놓았습니다. 다 바쳤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속이고 뒤로는 자신의 것을 챙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탄생한 교회가 거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보배피로 죄를 씻김 받고 성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의 탐심과 거짓으로 인해서 교회는 더럽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약한 자는 약한 자답게 없는 자는 없는 자답게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각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탄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한 공동체인데 서로를 속이고 거짓으로 더럽게 되면 오래 가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나니아의 문제를 강하게 다루십니다. 우리 안에도 아나니아와 같은 이중적인 죄, 외식의 죄, 거짓의 죄, 탐심의 죄가 있는지 살펴보고 힘써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3:16-18a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요, 진리의 영입니다. 반면에 사탄은 거짓의 영이요, 속이는 영입니다. 사탄은 항상 거짓과 속임수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 쯤 지나서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물었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그녀는 “예 이것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심히 상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그러자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였습니다. 이 집안은 하루 아침에 줄초상이 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친히 주인이 되어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구약 교회에서도 엘리 제사장 가족이 하나님의 제물을 훔치고 하나님을 경홀히 대했을 때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가 거짓되지 않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셋째, 확장되어 가는 교회 사역.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한 거짓과 속임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를 놀랍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사역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예수님 사역의 계승자들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2-14).” 사람들은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언덕 위의 도시와 같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자들과 감히 상종하지는 못하지만 칭송하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신자로써 사는 것이 어렵지만 존경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실제적인 부활신앙, 하나님 나라 소망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거짓과 외식과 사람 앞에서 사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실제적인 부활신앙을 허락하셔서 세상과 구별된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사도행전 4:32–5:16
요절 | 사도행전 4:32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지난 주 말씀에서 종교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협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며 담대하게 핍박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적인 핍박을 극복하자 교회는 내적인 문제와 도전에 직면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였습니까?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시험을 분별하고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교회. 32절.초대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아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산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신자들이 헌금을 하여 형제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발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33-35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것은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부활 신앙은 막연한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으신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넘어 있는 놀라운 세계를 믿었고 소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마음에 죽음을 뛰어 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충만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재물이 많다고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 소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이 충만할 때 가능합니다.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 장례식 때 드린 감사헌금 봉투가 있습니다. “순교의 두 아들이나 주신 감사의 봉헌금, 일만환. 순교 2자의 부 손양원.” 이 일만환의 돈이 오늘날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로 환산하면 수천만 원 되는 물질입니다. 목사님이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을까요? 손 목사님의 누나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는데 조카, 동인, 동신 미국 유학 보낼 때 쓰라고 돈을 부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두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보냈으니, 그 물질을 몽땅 헌금한 것입니다. 손 목사님은 부활을 확실히 믿고 천국소망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이 땅의 물질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재물과 자식과 자기의 생명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구브로에서 난 바나바라는 사람은 밭을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삶에서 모범을 보이고 영향력이 좋았습니다. 바나바의 믿음과 헌신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동시에 이를 시기하는 사탄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둘째,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됨.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았습니다. 바나바의 선행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자 이것이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소에 잘 가 보지 않던 땅을 팔았습니다. 갑자기 그 동네에 개발 붐이 불어서 지가가 매우 높게 뛰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손에 들어오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 드리자니 아까웠습니다. 하나님께 다 드리고 나면 나는 어떻게 사는가 염려와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소유를 판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그 아내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말했습니다. 3,4절.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3,4).” 아나니아는 땅을 팔던 말던 자기의 자유인데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그가 돈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소유를 팔고 거기서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 놓았습니다. 다 바쳤다고 말하는데 하나님을 속이고 뒤로는 자신의 것을 챙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막 탄생한 교회가 거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보배피로 죄를 씻김 받고 성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의 탐심과 거짓으로 인해서 교회는 더럽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된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약한 자는 약한 자답게 없는 자는 없는 자답게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각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탄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한 공동체인데 서로를 속이고 거짓으로 더럽게 되면 오래 가지 못하고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아나니아의 문제를 강하게 다루십니다. 우리 안에도 아나니아와 같은 이중적인 죄, 외식의 죄, 거짓의 죄, 탐심의 죄가 있는지 살펴보고 힘써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전서 3:16-18a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요, 진리의 영입니다. 반면에 사탄은 거짓의 영이요, 속이는 영입니다. 사탄은 항상 거짓과 속임수로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세 시간 쯤 지나서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물었습니다.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그녀는 “예 이것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심히 상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그러자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였습니다. 이 집안은 하루 아침에 줄초상이 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친히 주인이 되어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구약 교회에서도 엘리 제사장 가족이 하나님의 제물을 훔치고 하나님을 경홀히 대했을 때 온 가족이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가 거짓되지 않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셋째, 확장되어 가는 교회 사역.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한 거짓과 속임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를 놀랍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들의 손을 통해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갈릴리 초기 사역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예수님 사역의 계승자들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2-14).” 사람들은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께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언덕 위의 도시와 같이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그 공동체에 들어가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자들과 감히 상종하지는 못하지만 칭송하였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신자로써 사는 것이 어렵지만 존경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실제적인 부활신앙, 하나님 나라 소망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거짓과 외식과 사람 앞에서 사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 학생들에게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실제적인 부활신앙을 허락하셔서 세상과 구별된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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