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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강 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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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누가
댓글 0건 조회 46회 작성일 16-04-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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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부활절 특강 2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49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지난 주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모두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부활의 소망을 넘치게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날은 화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시신은 항공기 폭발로 인해서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애아로 태어나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경우를 생각할 때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부활의 몸은 어떻게 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죽은 사람이 부활할 때 입게 될 몸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합니까? 36-38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바울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리석은 자여”라며 돌직구를 날립니다. 왜냐하면 씨가 뿌려져 죽어야 살아나고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씨가 뿌려져 땅에 묻히면 배젖이 죽는 것이고 배아는 살아서 거기서 싹이 나옵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썩고 사라지지만 영혼은 위로 올라갑니다. 그 영혼은 불멸이고 그 영혼이 부활할 때 몸을 입게 됩니다. 사람이 뿌리는 것은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지만 하나님은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십니다. 씨나 알맹이를 보면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적으로 볼품이 없습니다. 그것이 심겨져 죽고 다시 살아나는 모습은 새로운 형체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현재 생명을 씨앗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 생명을 몸으로 볼 것인가, 씨앗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을 씨로 본다면 잘 썩고 잘 죽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씨앗의 존재목적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고 잘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잘 죽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씨앗의 주된 관심사는 씨앗으로 멋있게 꾸미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죽어서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 자신을 최종적인 몸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때 우리는 죽기를 싫어합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이 자신의 몸을 더욱 아끼고 가꾸고자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 땅의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죽기를 싫어하고 낮아지고 무시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섬기기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그 이면을 보면 현재의 자신을 씨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사나와진 것입니까? 우리 자신을 씨로 보지 않고 최종적인 몸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현재 우리의 몸은 최종적인 몸이 아니라 씨입니다. 씨는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후에 영광스러운 형체를 덧입게 됩니다. 꽃씨나 무슨 열매의 씨와 그것이 죽고 얻게 되는 형체를 비교해 보면 상상할 수 없는 형상임을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의 몸은 보잘 것 없는 씨이며 이 씨가 땅에 묻혀 죽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모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 씨앗임을 영접하고 이 땅에서는 잘 죽으므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육체, 짐승의 육체, 새의 육체, 물고기의 육체가 다 다릅니다. 새는 하늘을 날기에 적합한 육체를 가졌습니다. 그 뼈는 속이 비어 있고 가볍습니다. 물고기는 부레와 지느러미가 있고 몸이 유선형을 하고 있어서 물속에서 자유롭게 얼마든지 오랫동안 헤엄을 치며 돌아다닙니다. 땅에 속한 형체가 있듯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해의 강렬함, 달의 그윽함, 별들의 영롱함이 다릅니다. 이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논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비슷한 모습의 씨를 뿌리지만 하나님이 각 종자마다 다양한 형체를 주시듯이, 하늘과 땅에 속한 형체들이 다 다르고 그 영광들이 다르듯이, 하나님은 그처럼 부활의 몸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떠한 것일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42-44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앞에서는 씨를 뿌린다는 단어를 썼고 여기서는 심는다는 말을 썼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씨와 같이 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현재 삶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든지 이 세상의 것들을 즐길 자유가 있고 또 그런 기회가 있으나 이런 것들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죽는 것, 이것은 손해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날마다 죽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썩지 않을 존재, 영광스러운 몸, 강한 존재, 신령한 몸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몸을 사리고 죽지 않고자 발버둥치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이 땅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기저기 고장이 납니다. 결국 우리 몸은 원치 않지만 병이 생기고 죽어서 땅에 묻히고 썩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는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얻게 될 몸은 강하고 영광스럽고 신령합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영원한 청춘으로서 영원히 변함없는 천사와 같이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첫 사람 아담은 생령(living being)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life giving Spirit)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함으로 생명에서 끊어진 자 즉 죽은 영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담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 되십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생명을 덧입게 되면 땅에 속한 형상을 벗어버리고 하늘에 속한 형상을 덧입게 됩니다. 48,49절을 보십시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하늘에 속한 예수님처럼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지금 혈과 육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살려면 혈과 육인 우리 몸은 신령한 몸을 입어야 합니다. 우주에 가서 살려면 현재의 몸으로는 어렵습니다. 우주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냥 올라가면 기압차이 때문에 온 몸이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우주복을 입어야 하는데 이소연씨가 입은 특수복장이 5억원짜리였습니다. 그옷을 입어도 단 2시간 우주탐험을 하고 빨리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우주공간에 올라가도 거기에 맞는 옷을 입듯이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거기에 맞는 옷을 주님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는 우주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그 나라는 영원토록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부활체도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변화된 몸만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형상으로 변화되는 시점이 언제인지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51, 5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질 때에 살아 있던 성도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될 것입니다. 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바울은 53절에서 부활의 몸을 입게 될 이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한 확신을 말씀합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이 약하고 욕된 썩을 몸은 반드시 강하고 영광스러운 신령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이 소망을 가슴 깊이 간직한다면 정말 이 세상의 삶은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54,55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 때에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괴물과 같습니다. 그 어떤 대단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권세 앞에서는 벌벌 떱니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비참하게 그 권세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결국은 죽음에 삼킨바가 됩니다. 그러나 부활의 그날에는 사망이 부활의 승리에 삼킨바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57, 58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첫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소망과 쾌락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부활의 믿음과 소망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둘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될 것입니다. 한번 뿐인 인생과 젊음인데 이렇게 희생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부활의 영원한 미래가 있기에 우리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헛되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의 수고만이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부활의 믿음으로 더욱 예수님을 가까이 하며 주의 일에 힘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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