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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강 내 증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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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45회 작성일 16-03-26 21:17

본문

2016년 사도행전 제 1 강
말씀 | 사도행전 1:1-26
요절 | 사도행전 1:8
 내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죄사함과 하나님 나라의 산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있는 기독신앙의 핵심가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우리의 목적지로 주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그것을 지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이 갖고 있는 지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도행전을 사도들의 행적으로만 배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받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과 영원한 가치인 하나님 나라의 일로서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행전 말씀이 복음서를 배우는 것보다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만난 그 이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고 때문에 매우 실제적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사도행전 말씀을 잘 배워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받은 자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축복된 삶을 배우고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행1:1-3
1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데오빌로입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그는 누가복음의 수신자인 데오빌로와 동일인인 것으로 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특히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상에 사십일 간 자신을 나타내시며 사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 전에도 사도들에게 많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이해할려면 누가복음24장을 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4:25-27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여인들과 사도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던 두 명의 제자가 자신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가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에 그에게 말씀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통해 말씀을 배우고 나니 마음이 뜨거워지고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눅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은 바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예수님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열렸고 그전에 보이지 않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말씀에 근거해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깨달으려면 반드시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대충하면 안되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때 영적인 눈이 열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눅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곧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두 번째 하나님 나라의 일인데 이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도행전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성공의 복음, 복받는 복음이 아닙니다. 회개의 복음입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역하고 떠난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오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았습니까? 이 복음을 믿고 있나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 여러분의 삶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번째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사도와 함께 모이셨을 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럼 지금 남아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이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땅에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것입니까?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첫째로 우리에게 권능을 주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믿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말씀을 배웠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나 인지력으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배움이 짧든지 길든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권능의 역사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권능은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그런 권능도 있지만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큰 권능의 역사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이성 속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밝혀 주시고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의 조명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을 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해서 우리는 무슨 기적이나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적이나 표적을 행하시는 목적도 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기적을 체험하고도 불신에 빠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과 400대 1의 싸움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젖은 장작 더미를 태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도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이세벨은 더 살기등등해서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 앞에 불신과 절망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제 저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이제 족하니 저를 좀 죽여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하소연을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런 그에게 네 가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불과 바람과 지진 그리고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과 바람과 지진 가운데는 계시지 않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불을 내리는 기적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야 자신부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하신다고요? 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이 권능으로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방언이나 무슨 신비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고도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은 무엇보다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믿음이 있다면 이미 성령께서 내 안에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게 하신 그 분이 계시기에 우리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매순간마다 그 분을 기뻐하고 그 분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를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하나님이 일이 첫째는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게 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를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우리는 전도를 하려면 특별한 은사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말재주가 좋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려면 두렵고 말도 잘 안나오고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통해 성령께서 전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 분의 도구로 혹은 통로로 순종하여 내려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은 내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전15:10)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제자를 삼는 일이 실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한다고 하는 모든 헌신은 하나님 나라의 일과는 무관한 일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과는 무관한 자신의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이 임하시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증인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조차도 그 분께 맡기고 다만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신을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데 구지 우리를 증인이 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는 미련한 방법인 듯 하지만 실상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서 인격적으로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이 세상을 향해 지금도 변함없이 일하고 계신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이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행전1:8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 복음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시려는 것입니까? 이는 이사야서 2:3 말씀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는 말씀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온 유대와 사미리아와 땅 끝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나간다고 해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행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세상으로 먼저 나가시면 안됩니다. 세상에 나가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십시오. 먼저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도록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채우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시인하는 믿음의 능력을 주셨고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 그 복음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증인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나 여러분이나 알고 보면 우리는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증인의 삶을 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 시대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삼으신 이유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나와 함께 일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오늘 이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삶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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