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라기 2 강 언약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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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라기 제 2 강
말씀 | 말라기 2:1-16
요절 | 말라기 2:5
언약을 지키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지난 주 말씀을 간단히 돌아보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이에 대답으로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감정으로 이해하면 큰 일 납니다. 이는 내가 야곱은 선택하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의 사랑은 선택한 사랑이요 그 사랑에는 결코 후회함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왜 내 삶이 이런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나 같이 형편없는 죄인을 선택하신 사랑이요 날 선택하신 그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 JBF 친구들이 날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하신 사랑이요 그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공경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난 주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그들의 예배를 보시고 성전 문을 닫아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이 보다 심각한 말씀을 합니다.
말라기 2: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거룩한 예배를 종교적 거래로 전락시켜 버린 당시 제사장들에게 그만 격렬하게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똥과 같이 되게 하셔서 수치를 당하고 버림을 당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심각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정도 심각하게 말씀하셨으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끝장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전쟁과도 같은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말라기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내십니다. ‘만군의’라는 말은 본래 군사용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앞에 ‘만군의’라는 말은 전쟁을 선포하실 때 사용하시는 수식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전쟁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배역하고 멸시한 그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전쟁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임재범의 “너를 위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 말이 이렇습니다. “날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이 너란 걸 알아, 나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 테지만,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 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임재범 씨의 노랫말처럼 사람 간에 사랑은 전쟁 같은 사랑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사랑도 전쟁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끝 부분이 좀 서글픈 내용입니다.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래서 너에게서 떠나 줄꺼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고 헤어지는 것이 전쟁 같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 그가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그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는 사랑입니다. 2:4절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께서 앞에서 성전문을 닫아 버리겠다 너희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하신 사랑이요 언약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과의 전쟁같은 사랑을 하시지만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레위와 세운 언약은 무엇입니까? 레위는 본래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의 아들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세째 아들입니다. 그도 아버지 야곱을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레아의 소생 중에 딸 디니가 있었는데 그녀가 세겜성에 놀러갔다가 그만 강간을 당합니다. 그때 그녀의 친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 사람들과 거짓으로 화친조약을 맺고 그 성에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하게 한 후에 칼로 그들을 모두 멸절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야곱은 그들을 저주합니다.
창49: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런데 이렇게 저주를 받은 레위지파가 어떻게 제사장 지파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니까?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산아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하며 우상숭배를 합니다. 이를 본 모세는 본노하여 그들을 심판하는데 그때 모세 편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한 사람들이 바로 레위사람들입니다. 그때 모세는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들을 축복합니다. 민수기25장을 보면 우상숭배를 한 후에 모압여인과 음행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레위지파인 비느하스가 일어나 심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셨고 이 일이 있은 후에 레위후손을 구별하여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레위와 세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멸시한 레위 제사장들에게 “성전 문을 닫겠다.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하실만큼 그들의 죄악에 분노하셨지만 한편으로 그들과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떠나 하나님에게 돌아올 소망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문을 닫고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해서라도 그들을 깨끗케 한 후에 회복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때론 하나님이 우리의 문을 닫으시고 시험에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항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소망에 눈이 먼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하기 위해 때론 전쟁같은 사랑을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레위의 언약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레위의 언약을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설령 우리의 인생이 똥이 된 것 같은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전쟁 같은 그 분의 사랑이 날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강의 복이 더할 것입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하나님과 레위의 언약 안에서 죄인인 날 용서하시고 이 세상에 제사장 지파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소망을 깨닫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분의 편에 서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라기 시대 많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어릴 적 믿음으로 결혼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는 성적인 타락의 문제라기보다는 여호와 신앙이 무너지고 그들의 마음에 맘몬신이 자리잡게 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재단이 버림받은 아내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같이 버림받은 아내들의 눈물을 보시고 울음과 탄식을 들으시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시겠습니까? 그로인해 마음이 상하신 하나님은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말2:13)
하나님은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금 결혼의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깨뜨린 결혼언약을 다시금 회복하도록 도우십니다.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여기서 언약은 구속적 차원의 언약이 아니라 결혼언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결혼언약은 이것입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결혼은 다른 누가 아닌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렇기에 하나님은 결혼을 기뻐하십니다. 특히 믿음의 결혼을 기뻐하십니다.
말2: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여기서 그 성결이 각주를 보니 성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소가 어떤 곳입니까? 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 안에 있는 성소가 아닌 바로 가정이 당신이 사랑하시는 그 성소라고 하십니다. 그 성소가 이혼으로 인해 무너지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므로 더럽혀졌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악을 범한 백성들을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말2:12) 하나님은 이렇게 심각하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롬2:13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우리가 결혼식을 할 때 보면 결혼서약을 합니다. 특히 결혼예배에서 목사님이 뭐라고 선포합니까? 나 하나님의 종 누구누구는 “하나님과 여러 증인 앞에서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은 축하하기 위해 가는 것도 있지만 법적인 증인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와 내 아내 사이에 증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결혼을 깨뜨리는 것은 증인되신 하나님께 거짓을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말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고 반대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2: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시고 반대하시는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경건한 결혼생활을 해야 자녀들의 경건한 자가 된다. 캐네디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처럼 명문가문이 된다”는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손의 원문을 보며 “하나님의 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이삭의 씨를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경건한 가정의 회복, 자녀의 회복은 하나님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시대 무너진 가정들, 그로인해 날마다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쏟아 내고 있는 아내들을 보시면서 그들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씨를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의 가정을 봅시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1위 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 자살율이 1위 그리고 이혼율이 1위라고 합니다. 참으로 불명예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이는 우리의 참된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을 바라보고 배우자만을 바라본 결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전쟁같은 사랑을 합니다. 결혼을 하면 살콤한 사랑만 있을 것라는 생각은 현실이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데 부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기고 살면서 우리가 바라봐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시구나 주님만이 나의 참된 신랑, 신부가 되시는 구나” 이를 깨닫고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부부관계에서 이를 연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배울 때 우리의 가정을 경건한 가정으로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가정을 세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후손들도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오늘 말씀과 같이 레위와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회복을 꿈꾸고 소망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경건한 가정을 세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고 일평생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드립니다. 아멘.
말씀 | 말라기 2:1-16
요절 | 말라기 2:5
언약을 지키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지난 주 말씀을 간단히 돌아보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이에 대답으로 하나님은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감정으로 이해하면 큰 일 납니다. 이는 내가 야곱은 선택하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의 사랑은 선택한 사랑이요 그 사랑에는 결코 후회함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왜 내 삶이 이런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나 같이 형편없는 죄인을 선택하신 사랑이요 날 선택하신 그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믿을 때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 JBF 친구들이 날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하신 사랑이요 그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공경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난 주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그들의 예배를 보시고 성전 문을 닫아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이 보다 심각한 말씀을 합니다.
말라기 2:3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하나님은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거룩한 예배를 종교적 거래로 전락시켜 버린 당시 제사장들에게 그만 격렬하게 분노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똥과 같이 되게 하셔서 수치를 당하고 버림을 당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심각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정도 심각하게 말씀하셨으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끝장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전쟁과도 같은 사랑을 선포하십니다.
말라기 2: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내십니다. ‘만군의’라는 말은 본래 군사용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앞에 ‘만군의’라는 말은 전쟁을 선포하실 때 사용하시는 수식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전쟁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신을 배역하고 멸시한 그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의 전쟁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임재범의 “너를 위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 말이 이렇습니다. “날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이 너란 걸 알아, 나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 테지만,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 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임재범 씨의 노랫말처럼 사람 간에 사랑은 전쟁 같은 사랑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비단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사랑도 전쟁 같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끝 부분이 좀 서글픈 내용입니다.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래서 너에게서 떠나 줄꺼야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고 헤어지는 것이 전쟁 같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 그가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그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는 사랑입니다. 2:4절을 다시한번 읽어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께서 앞에서 성전문을 닫아 버리겠다 너희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회복하고자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하신 사랑이요 언약에 기초한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과의 전쟁같은 사랑을 하시지만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레위와 세운 언약은 무엇입니까? 레위는 본래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의 아들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세째 아들입니다. 그도 아버지 야곱을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레아의 소생 중에 딸 디니가 있었는데 그녀가 세겜성에 놀러갔다가 그만 강간을 당합니다. 그때 그녀의 친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성 사람들과 거짓으로 화친조약을 맺고 그 성에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하게 한 후에 칼로 그들을 모두 멸절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야곱은 그들을 저주합니다.
창49: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그런데 이렇게 저주를 받은 레위지파가 어떻게 제사장 지파로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니까?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산아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하며 우상숭배를 합니다. 이를 본 모세는 본노하여 그들을 심판하는데 그때 모세 편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척결한 사람들이 바로 레위사람들입니다. 그때 모세는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들을 축복합니다. 민수기25장을 보면 우상숭배를 한 후에 모압여인과 음행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레위지파인 비느하스가 일어나 심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셨고 이 일이 있은 후에 레위후손을 구별하여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레위와 세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멸시한 레위 제사장들에게 “성전 문을 닫겠다.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하실만큼 그들의 죄악에 분노하셨지만 한편으로 그들과 언약을 기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떠나 하나님에게 돌아올 소망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문을 닫고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해서라도 그들을 깨끗케 한 후에 회복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때론 하나님이 우리의 문을 닫으시고 시험에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항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 소망에 눈이 먼 우리를 고치시고 회복하기 위해 때론 전쟁같은 사랑을 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레위의 언약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레위의 언약을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설령 우리의 인생이 똥이 된 것 같은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전쟁 같은 그 분의 사랑이 날 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강의 복이 더할 것입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하나님과 레위의 언약 안에서 죄인인 날 용서하시고 이 세상에 제사장 지파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소망을 깨닫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분의 편에 서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라기 시대 많은 이스라엘 남자들이 어릴 적 믿음으로 결혼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여인들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는 성적인 타락의 문제라기보다는 여호와 신앙이 무너지고 그들의 마음에 맘몬신이 자리잡게 된 것이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재단이 버림받은 아내들의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같이 버림받은 아내들의 눈물을 보시고 울음과 탄식을 들으시니 얼마나 마음이 괴로우시겠습니까? 그로인해 마음이 상하신 하나님은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말2:13)
하나님은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금 결혼의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깨뜨린 결혼언약을 다시금 회복하도록 도우십니다.
말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여기서 언약은 구속적 차원의 언약이 아니라 결혼언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결혼언약은 이것입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결혼은 다른 누가 아닌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렇기에 하나님은 결혼을 기뻐하십니다. 특히 믿음의 결혼을 기뻐하십니다.
말2: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여기서 그 성결이 각주를 보니 성소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소가 어떤 곳입니까? 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 안에 있는 성소가 아닌 바로 가정이 당신이 사랑하시는 그 성소라고 하십니다. 그 성소가 이혼으로 인해 무너지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므로 더럽혀졌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악을 범한 백성들을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말2:12) 하나님은 이렇게 심각하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롬2:13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우리가 결혼식을 할 때 보면 결혼서약을 합니다. 특히 결혼예배에서 목사님이 뭐라고 선포합니까? 나 하나님의 종 누구누구는 “하나님과 여러 증인 앞에서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은 축하하기 위해 가는 것도 있지만 법적인 증인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너와 내 아내 사이에 증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결혼을 깨뜨리는 것은 증인되신 하나님께 거짓을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말2: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고 반대하시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2: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시고 반대하시는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경건한 결혼생활을 해야 자녀들의 경건한 자가 된다. 캐네디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처럼 명문가문이 된다”는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손의 원문을 보며 “하나님의 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이삭의 씨를 통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경건한 가정의 회복, 자녀의 회복은 하나님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시대 무너진 가정들, 그로인해 날마다 눈물과 울음과 탄식을 쏟아 내고 있는 아내들을 보시면서 그들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씨를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 땅의 가정을 봅시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1위 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 자살율이 1위 그리고 이혼율이 1위라고 합니다. 참으로 불명예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이는 우리의 참된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물질을 바라보고 배우자만을 바라본 결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전쟁같은 사랑을 합니다. 결혼을 하면 살콤한 사랑만 있을 것라는 생각은 현실이 아닙니다. 이상입니다.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데 부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기고 살면서 우리가 바라봐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시구나 주님만이 나의 참된 신랑, 신부가 되시는 구나” 이를 깨닫고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부부관계에서 이를 연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배울 때 우리의 가정을 경건한 가정으로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가정을 세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의 후손들도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오늘 말씀과 같이 레위와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회복을 꿈꾸고 소망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경건한 가정을 세우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고 일평생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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