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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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믿음
말씀: 히브리서 11:29-40
요절: 히브리서 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오늘 말씀은 믿음의 승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힘든 환경을 이기는 승리요, 절망적인 상황을 이기는 승리요,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Ⅰ. 믿음으로… (29-31)
29-31절에는 믿음으로 행한 세가지 사건들,
곧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사건,
기생 라합이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한 사건이 나옵니다.
Ⅱ. 믿음의 용사들 (32-40)
저자는 이때까지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믿음으로 행한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열거하다가는 언제 편지를 끝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이때까지 말한 믿음의 증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말한 그 외에도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있음을 말하고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행한 일들을 총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믿음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첫째, 믿음으로 이룬 외적인 승리의 역사 (32-34).
32-34절에 언급된 믿음의 용사들은 대부분 사사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약하고
운명적인 자였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고 운명을 극복하여 새역사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이 두렵지만 먹고 살기 위해 숨어서 포도주 틀을 밟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리고 그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집은 극히 미약하고, 나는 아버지 집에서도 제일 작은 자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깊은 운명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가운데서 믿음으로 연약함과 운명주의를 극복하고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기드온 300용사로 막강한 미디안 군사들을 물리쳤습니다.
바락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스라가 쳐들어오자 두려워서
여선지자 드보라의 치맛자락을 붙들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게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않겠노라."
그는 이렇게 내면이 연약했으나 드보라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삼손은 힘이 센 장사였으나 육신의 정욕에 눈이 멀어 여우같은 들릴라에게 홀려 머리털을 깎이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두 눈이 다 뽑히고 원수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후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옵소서"(삿16:28).
이때 그는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고 기둥을 쓰러뜨려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음으로 원수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입다는 서자라는 인간조건 때문에 비관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연약한 소년에 불과했으나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에 도전하여 통쾌하게 물리쳤습니다. 사무엘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기도함으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삼상7:5-12).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자들로서 연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볼 때 연약함이 결코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달라며 동정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연약하여 죄악된 습관을 끊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연약함을 합리화하여 죄를 즐기고자 하는 악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연약한 것은 악한 것입니다. 연약함을 핑계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능력을 덧입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33,34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행한 역사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에 부딪쳤을 때 절망하여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는 가운데서 믿음으로 도전하여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이 넘치는 상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고 도피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연약함을 이길 수 있고, 믿음으로 슬픈 운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내 마음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는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고, 나를 유혹하는 죄의 세력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학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개인에게 있어서나 민족에게 있어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 선진들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39,40). 39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믿음의 선진들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므로 말미암아 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하다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손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하고 믿음을 저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여기서 볼 때 약속을 받는 것보다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함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40절에서 '더 좋은 것'이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신약의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역사의 정점이 되십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은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았으며, 신약의 크리스챤들은 오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의 선진들과 오늘날의 우리가 합하여 온전함을 이루고자 계획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이 믿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히브리서 11:29-40
요절: 히브리서 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오늘 말씀은 믿음의 승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믿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힘든 환경을 이기는 승리요, 절망적인 상황을 이기는 승리요,
환난과 핍박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Ⅰ. 믿음으로… (29-31)
29-31절에는 믿음으로 행한 세가지 사건들,
곧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사건,
기생 라합이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한 사건이 나옵니다.
Ⅱ. 믿음의 용사들 (32-40)
저자는 이때까지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믿음으로 행한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열거하다가는 언제 편지를 끝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이때까지 말한 믿음의 증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말한 그 외에도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있음을 말하고 이제부터는
믿음으로 행한 일들을 총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믿음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첫째, 믿음으로 이룬 외적인 승리의 역사 (32-34).
32-34절에 언급된 믿음의 용사들은 대부분 사사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약하고
운명적인 자였으나 믿음으로 강하게 되고 운명을 극복하여 새역사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이 두렵지만 먹고 살기 위해 숨어서 포도주 틀을 밟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리고 그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집은 극히 미약하고, 나는 아버지 집에서도 제일 작은 자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깊은 운명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가운데서 믿음으로 연약함과 운명주의를 극복하고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기드온 300용사로 막강한 미디안 군사들을 물리쳤습니다.
바락은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스라가 쳐들어오자 두려워서
여선지자 드보라의 치맛자락을 붙들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게 가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않겠노라."
그는 이렇게 내면이 연약했으나 드보라의 도움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삼손은 힘이 센 장사였으나 육신의 정욕에 눈이 멀어 여우같은 들릴라에게 홀려 머리털을 깎이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두 눈이 다 뽑히고 원수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후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옵소서"(삿16:28).
이때 그는 위로부터 능력을 덧입고 기둥을 쓰러뜨려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음으로 원수를 갚을 수 있었습니다.
입다는 서자라는 인간조건 때문에 비관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연약한 소년에 불과했으나 믿음으로 거인 골리앗에 도전하여 통쾌하게 물리쳤습니다. 사무엘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기도함으로 블레셋을 물리쳤습니다(삼상7:5-12).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자들로서 연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승리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를 볼 때 연약함이 결코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달라며 동정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연약하여 죄악된 습관을 끊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연약함을 합리화하여 죄를 즐기고자 하는 악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연약한 것은 악한 것입니다. 연약함을 핑계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능력을 덧입고 능력있는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33,34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행한 역사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에 부딪쳤을 때 절망하여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할 수 없는 가운데서 믿음으로 도전하여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이 넘치는 상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여러가지 크고 작은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좌절하고 포기하고 도피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연약함을 이길 수 있고, 믿음으로 슬픈 운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내 마음 속에 끊임없이 역사하는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고, 나를 유혹하는 죄의 세력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학업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개인에게 있어서나 민족에게 있어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 선진들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 (39,40). 39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믿음의 선진들은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므로 말미암아 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하다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손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신앙생활에 대해서 회의하고 믿음을 저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진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여기서 볼 때 약속을 받는 것보다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함을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40절에서 '더 좋은 것'이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신약의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역사의 정점이 되십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은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았으며, 신약의 크리스챤들은 오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의 선진들과 오늘날의 우리가 합하여 온전함을 이루고자 계획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이 믿음으로 연약함을 극복하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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