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성탄 1강]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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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성탄 1강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말씀/ 이사야 11:1-16
요절/ 이사야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해 예언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이후에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신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을 예언하여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인 이사야 11장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 탄생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 분을 통해서 가져야할 비전이 무엇인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한 싹”, “한 가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9장에서는 “한 아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싹이나 가지, 아기는 모두가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의 비유대로 메시아 예수님은 그 출신이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막 태어난 메시아는 작고 어리고 약한 싹과 같았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냄새나는 말구유에 놓여졌습니다. 그의 탄생은 슬프고 불쌍하게 보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요1:46). 이처럼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실 때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한편 한 싹은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줄기란 잘려나간 나무의 밑둥인 그루터기를 의미합니다. 이는 큰 고목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듯이 장차 다윗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여 잘려나간 나무처럼 될 것이지만, 그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왕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예언입니다. 한 싹이 날뿐 아니라 그 싹이 결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싹은 작지만 희망을 상징합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한 싹과 같이 미약하게 보였지만 그의 삶이 크게 결실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한 싹, 한 가지에 불과하였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장차 큰 나무가 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충만히 덧입으시고 복음 역사를 섬기셨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제자들을 진리로 섬기시며 그들의 멘토가 되어주셨습니다. 많은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려 고통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죽은 사람들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위에 임하셨던 성령은 오늘날도 세계 만민이 복음을 듣고 자유를 얻도록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장차 이루어질 메시아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공의와 정직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우리사회가 점점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님이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시는 메시아 나라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6-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는 세상에선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천적이요 원수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나라에 함께 살고 함께 눕습니다.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어린 사자가 송아지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고 어린아이가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적대감,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난폭함이나 폭력성이 사라지고 오직 착하고 순전한 것만이 남습니다. 암소와 곰과 그 새끼들이 함께 엎드립니다. 사자가 소와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습니다. 젖 먹는 아이는 독사(cobra)와 장난하고 젖 뗀 아이도 독사굴에 손을 넣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들어갈 메시아의 왕국의 속성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고, 평화의 나라입니다. 기쁨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해 됨과 상함이 가득합니다. 이리가 양을 잡아먹고 표범이 염소를 사냥합니다. 곰은 암소를 잡아먹고 사자는 소를 잡아 뜯어 먹습니다. 아이가 멋모르고 독사 굴에 손을 넣다가 물려 죽습니다. 불행한 사고와 재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짐승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사회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갖기 위해 적대적이 됩니다.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자기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 아들 김정은도 아버지처럼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과 구타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나 어린 아이들인데 친구를 때리고, 돈과 옷을 빼앗고, 협박하고 한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를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너무 슬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런 일을 당한 그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요? 이 세상은 이렇게 서로 해치고 슬픔을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통치하는 곳에 이런 해 됨도 상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 안에 미움과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사납고 난폭한 사람이 순한 양과 암소처럼 부드러워집니다. 항상 으르렁거리며 싸워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서로 장난치고 노는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로 회복이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 땅에서 이런 회복과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유 회복의 날 아름다운 평화가 완성이 됩니다. 그날 세상의 분열과 갈등과 다툼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영원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국제 분쟁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나라간의 분쟁, 나라 안의 분열도 없어집니다.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 그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실현 가능합니까? 9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때 여호와의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가 아는 지식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없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곳은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없었습니다(계21:4).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물이 흐르고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는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 백성을 소생시키는 양식이었습니다. 그곳은 다시 저주가 없으며,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었습니다(계22:5).
지난 주 뉴스에서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365일 만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수퍼지구는 태양과 같은 항성을 290일에 한 번 공전한다고 합니다. 그 별의 온도도 평균 섭씨 22도로 우리가 사는 지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지구가 멸망하면 이 곳에 이주하여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별은 지구로부터 자그마치 600광년이나 먼 거리에 위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란 것은 새로운 별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몇 백 광년 떨어진 곳까지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 이주한다고 해도 우리의 속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우리는 죄와 죽음의 그늘아래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메시아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저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의 죄성을 그대로 가지고 영원히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사라지고 예수님과 같이 거룩한 내면을 덧입는 근본적인 속사람의 변화가 있습니다. 모든 난폭함과 사나운 본성이 사라지고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그의 나라가 세상의 참된 희망입니다. 그 날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여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메시아가 하시는 사역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여호와를 아는 참된 지식을 배우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하도록 소망하며 섬기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온 날입니다. 이 싹은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궁극적인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 사죄의 은총을 덧입고 하나님과 평화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평화의 복음을 힘써 증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새의 뿌리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말씀/ 이사야 11:1-16
요절/ 이사야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메리 크리스마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해 예언한 책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이후에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신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을 예언하여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인 이사야 11장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 탄생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 분을 통해서 가져야할 비전이 무엇인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한 싹”, “한 가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9장에서는 “한 아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싹이나 가지, 아기는 모두가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의 비유대로 메시아 예수님은 그 출신이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막 태어난 메시아는 작고 어리고 약한 싹과 같았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냄새나는 말구유에 놓여졌습니다. 그의 탄생은 슬프고 불쌍하게 보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요1:46). 이처럼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실 때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한편 한 싹은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줄기란 잘려나간 나무의 밑둥인 그루터기를 의미합니다. 이는 큰 고목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듯이 장차 다윗 왕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여 잘려나간 나무처럼 될 것이지만, 그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왕이 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예언입니다. 한 싹이 날뿐 아니라 그 싹이 결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싹은 작지만 희망을 상징합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한 싹과 같이 미약하게 보였지만 그의 삶이 크게 결실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한 싹, 한 가지에 불과하였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장차 큰 나무가 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충만히 덧입으시고 복음 역사를 섬기셨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 제자들을 진리로 섬기시며 그들의 멘토가 되어주셨습니다. 많은 병든 사람들과 귀신들려 고통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죽은 사람들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위에 임하셨던 성령은 오늘날도 세계 만민이 복음을 듣고 자유를 얻도록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장차 이루어질 메시아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공의와 정직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우리사회가 점점 공정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님이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시는 메시아 나라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6-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는 세상에선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천적이요 원수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나라에 함께 살고 함께 눕습니다.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어린 사자가 송아지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고 어린아이가 그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인도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적대감, 욕심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난폭함이나 폭력성이 사라지고 오직 착하고 순전한 것만이 남습니다. 암소와 곰과 그 새끼들이 함께 엎드립니다. 사자가 소와 사이좋게 음식을 나눠먹습니다. 젖 먹는 아이는 독사(cobra)와 장난하고 젖 뗀 아이도 독사굴에 손을 넣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들어갈 메시아의 왕국의 속성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고, 평화의 나라입니다. 기쁨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해 됨과 상함이 가득합니다. 이리가 양을 잡아먹고 표범이 염소를 사냥합니다. 곰은 암소를 잡아먹고 사자는 소를 잡아 뜯어 먹습니다. 아이가 멋모르고 독사 굴에 손을 넣다가 물려 죽습니다. 불행한 사고와 재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짐승들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사회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갖기 위해 적대적이 됩니다.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자기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괴롭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 아들 김정은도 아버지처럼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과 구타에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나 어린 아이들인데 친구를 때리고, 돈과 옷을 빼앗고, 협박하고 한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를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너무 슬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런 일을 당한 그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요? 이 세상은 이렇게 서로 해치고 슬픔을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통치하는 곳에 이런 해 됨도 상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 안에 미움과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사납고 난폭한 사람이 순한 양과 암소처럼 부드러워집니다. 항상 으르렁거리며 싸워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서로 장난치고 노는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로 회복이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 땅에서 이런 회복과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유 회복의 날 아름다운 평화가 완성이 됩니다. 그날 세상의 분열과 갈등과 다툼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영원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국제 분쟁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나라간의 분쟁, 나라 안의 분열도 없어집니다.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 그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실현 가능합니까? 9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때 여호와의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가 아는 지식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없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곳은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없었습니다(계21:4).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물이 흐르고 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는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들은 만국 백성을 소생시키는 양식이었습니다. 그곳은 다시 저주가 없으며,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었습니다(계22:5).
지난 주 뉴스에서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365일 만에 한 바퀴 도는 것처럼 수퍼지구는 태양과 같은 항성을 290일에 한 번 공전한다고 합니다. 그 별의 온도도 평균 섭씨 22도로 우리가 사는 지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곳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지구가 멸망하면 이 곳에 이주하여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별은 지구로부터 자그마치 600광년이나 먼 거리에 위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란 것은 새로운 별나라에서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몇 백 광년 떨어진 곳까지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어 이주한다고 해도 우리의 속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우리는 죄와 죽음의 그늘아래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메시아 왕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저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의 죄성을 그대로 가지고 영원히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 사라지고 예수님과 같이 거룩한 내면을 덧입는 근본적인 속사람의 변화가 있습니다. 모든 난폭함과 사나운 본성이 사라지고 평화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그의 나라가 세상의 참된 희망입니다. 그 날에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여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메시아가 하시는 사역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여호와를 아는 참된 지식을 배우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하도록 소망하며 섬기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온 날입니다. 이 싹은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궁극적인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 사죄의 은총을 덧입고 하나님과 평화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 평화의 복음을 힘써 증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새의 뿌리 가운데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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