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5강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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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로마서 제 15 강
말씀 | 로마서 12:1-21
요절 | 로마서 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입니다. 요절말씀인 12:1절을 봅시다.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이 말씀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말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이 좀 심상치 않죠?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듯이 우리 몸을 바치라는 건가요? 아니면 순교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런 말씀이 아니고요, 1절 말씀에서 ‘우리의 몸’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고 ‘산 제사’는 영적예배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할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JBF친구들이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삶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삶, 삶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께서는 이에 대해 오늘 말씀에서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우리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첫째, 마음의 변화를 받으라. 2절 전반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영어성경을 보는 것이 이해하는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NIV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이는 이 세상의 패턴, 풍조, 유행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최근에 드라마 학교2012를 재밌게 봤는데요, 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관심을 가져주려는 담임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점수만 올려주시면 되요?” 그 친구는 수능시험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고 배우려는 마음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고2때 자기가 모르는 것은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물어 보지만 제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이는 남은 어떻게 되든 나만 좋은 대학가면 되고 나만 잘되면 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로만 생각하는 풍조죠? 우리 학교가 우리 친구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밖에도 세상의 풍조들은 많습니다. 세상은 돈을 따릅니다. 세상은 돈이 없으면 죄고 돈이 있으면 죄도 덮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더욱더 돈, 돈, 돈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외모를 중요시합니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 그러다보니 의대도 성형외과가 인기가 가장 많습니다. 이러한 이 세상의 풍조와 유행은 거대한 물결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밖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한 답변이 2절 후반절에 나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려면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받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한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강남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가만히 보니까? 그 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한 부류는 강남에 사시는 분들이 그 병원엘 오고 다른 한 부류는 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오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남에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초기에 암을 발견하여 치료받으시고 많이들 사시는데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은 말기암때 오셔서 많이들 돌아가시더라는 겁니다. 그는 이 사실을 발견한 후에 사회적인 약자들을 연구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를 그만두고 영국에 유학을 가서 경제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하고 지금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연구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열심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안정된 의사의 삶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의사의 삶이 아니라 왜 다른 삶을 도전하게 되었을까요? 마음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통해서건 아니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건 가장 먼저는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 세대를 본받으며 살지 마십시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고 그 안에서 나의 꿈과 나의 비전을 발견하시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둘째, 은사로 봉사하라. 4-8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섬기는 것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돕고 나누는 일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악기를 잘 다루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은혜대로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내 은사가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은사가 없는 것 같아요? 하는 분들은 은사를 발견 못했거나 혹은 은사를 개발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은사를 받지 못한 분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또 반드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사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무엇을 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까요? 4,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여기서 한 몸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단체구원, 교회구원이란 건 없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또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공동체의 일원으로,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머리입니다. 우리 몸이 잘 하면 머리가 영광을 받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발휘하여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서로를 섬길 때 머리되신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는 다만 감사함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겸손히 사용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내가 받은 은사에 대해 불평하거나 남이 받은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대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얼마나 공동체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 사용했는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사로서 공동체를 세우고 머리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사가 많고 많은 봉사를 했어도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3장에서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를 꽹과리에 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에 반드시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9-13절을 봅시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이들의 생각을 묻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왜 그러냐면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질문 하나 해볼께요. 사랑을 받기가 힘들까요? 주기가 힘들까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가요?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사랑을 하기가 힘들다. 손을 들어 본다. 이유를 말해본다.) 네, 얼핏 보면 사랑받는 것이 쉬울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사랑은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사랑을 받는 건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은사는 받은대로 봉사하면 되는데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사랑을 할려면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사랑을 어떻게 주는 것인지 모두를 잘 배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몇 가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9절을 봅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의 가장 큰 적은 거짓입니다. 왜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고 또 부부들이 이혼하는 줄 아세요? 성격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거짓말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그 순간을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탈로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다르면 포기하거나 맞춰 살면 됩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면 같이 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한 사랑은 악을 미워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랑한 이후 악해졌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선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서로 우애하게 하고 서로 존경하게 되고 부지런해지고 열심을 품게 되고 즐거워하게 되고 참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도와주게 되고 대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것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정욕’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사랑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질 때인데 참된 사랑을 분별하고 참된 사랑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 선으로 악을 이기라. 14-21절을 읽어 봅시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지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삶인가요? 최근에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매우 흥행을 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두 번 모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적의로 가득하던 장발장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습니까? 은접시를 훔쳐 달라난 그를 죄인이 아니라 형제로 불러주며 용서해준 신부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신부님의 호의를 배반한 죄인이었지만 신부님은 그를 형제로 바라봐주고 그가 변화될 것을 믿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회계를 전공했는데요, 여러분 회사의 재무상태를 표시하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것을 재무상태표라고 합니다. 재무제표는 왼쪽에 자산, 오른쪽에는 부채와 자본을 표시합니다. 자산은 미래의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으로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무상태가 좋은 회사이고 그런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계에는 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면 회사는 손실이 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이 줄어들고 회사의 재무상태는 나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자산과 비용을 바라보는 회계적인 관점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회계사님께서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에 설명해주시는 것을 들으면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설명하시더군요. 신부님은 비록 장발장이 죄를 지었지만 그를 여전히 자산으로 바라봐 줬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변화되면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관 자베르는 그를 사회적 비용 즉 그는 결코 변화될 수 없는 죄인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레미제라블에 나온 신부님을 통해 이를 한 가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과거에 혹은 현재에 혹은 미래에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고 상처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내 인생의 비용이 아니라 내 인생의 자산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자산이 많을수록 우리의 인생은 성장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곧 삶으로 예배하는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은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악으로 선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아침에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작은 결단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과 도전이 쌓일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 | 로마서 12:1-21
요절 | 로마서 12:1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입니다. 요절말씀인 12:1절을 봅시다.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이 말씀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 말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이 좀 심상치 않죠?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듯이 우리 몸을 바치라는 건가요? 아니면 순교하라는 말씀인가요? 그런 말씀이 아니고요, 1절 말씀에서 ‘우리의 몸’은 우리의 삶을 의미하고 ‘산 제사’는 영적예배를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할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JBF친구들이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삶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삶, 삶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도바울께서는 이에 대해 오늘 말씀에서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저는 이것을 네 가지로 요약하여 우리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첫째, 마음의 변화를 받으라. 2절 전반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영어성경을 보는 것이 이해하는 좀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NIV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이는 이 세상의 패턴, 풍조, 유행을 따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최근에 드라마 학교2012를 재밌게 봤는데요, 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관심을 가져주려는 담임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점수만 올려주시면 되요?” 그 친구는 수능시험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고 배우려는 마음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고2때 자기가 모르는 것은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물어 보지만 제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결코 알려주려 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이는 남은 어떻게 되든 나만 좋은 대학가면 되고 나만 잘되면 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로만 생각하는 풍조죠? 우리 학교가 우리 친구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밖에도 세상의 풍조들은 많습니다. 세상은 돈을 따릅니다. 세상은 돈이 없으면 죄고 돈이 있으면 죄도 덮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더욱더 돈, 돈, 돈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외모를 중요시합니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도 합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 그러다보니 의대도 성형외과가 인기가 가장 많습니다. 이러한 이 세상의 풍조와 유행은 거대한 물결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 밖에 사는 것도 아니고 이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한 답변이 2절 후반절에 나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려면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받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한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강남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가만히 보니까? 그 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한 부류는 강남에 사시는 분들이 그 병원엘 오고 다른 한 부류는 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 오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남에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초기에 암을 발견하여 치료받으시고 많이들 사시는데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은 말기암때 오셔서 많이들 돌아가시더라는 겁니다. 그는 이 사실을 발견한 후에 사회적인 약자들을 연구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의사를 그만두고 영국에 유학을 가서 경제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하고 지금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연구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열심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안정된 의사의 삶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버는 의사의 삶이 아니라 왜 다른 삶을 도전하게 되었을까요? 마음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을 통해서건 아니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건 가장 먼저는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아무 생각없이 이 세대를 본받으며 살지 마십시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고 그 안에서 나의 꿈과 나의 비전을 발견하시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둘째, 은사로 봉사하라. 4-8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섬기는 것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돕고 나누는 일을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악기를 잘 다루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잘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은혜대로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내 은사가 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은사가 없는 것 같아요? 하는 분들은 은사를 발견 못했거나 혹은 은사를 개발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은사를 받지 못한 분들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또 반드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사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무엇을 할 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까요? 4,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여기서 한 몸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구원은 단체구원, 교회구원이란 건 없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또한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공동체의 일원으로,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머리입니다. 우리 몸이 잘 하면 머리가 영광을 받습니다. 그와 같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발휘하여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서로를 섬길 때 머리되신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는 다만 감사함으로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겸손히 사용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내가 받은 은사에 대해 불평하거나 남이 받은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대로 은사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얼마나 공동체를 세우고 섬기는 일에 사용했는지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은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사로서 공동체를 세우고 머리되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은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사가 많고 많은 봉사를 했어도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13장에서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를 꽹과리에 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사에 반드시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9-13절을 봅시다. 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아이들의 생각을 묻는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왜 그러냐면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질문 하나 해볼께요. 사랑을 받기가 힘들까요? 주기가 힘들까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가요?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사랑을 하기가 힘들다. 손을 들어 본다. 이유를 말해본다.) 네, 얼핏 보면 사랑받는 것이 쉬울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사랑은 받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가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받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 사랑을 받는 건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은사는 받은대로 봉사하면 되는데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사랑을 할려면 먼저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사랑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사랑을 어떻게 주는 것인지 모두를 잘 배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사랑에 대해 몇 가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9절을 봅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사랑의 가장 큰 적은 거짓입니다. 왜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고 또 부부들이 이혼하는 줄 아세요? 성격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거짓말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그 순간을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탈로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성격은 다르면 포기하거나 맞춰 살면 됩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면 같이 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한 사랑은 악을 미워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사랑한 이후 악해졌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선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서로 우애하게 하고 서로 존경하게 되고 부지런해지고 열심을 품게 되고 즐거워하게 되고 참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도와주게 되고 대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것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정욕’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우리 JBF친구들이 사랑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질 때인데 참된 사랑을 분별하고 참된 사랑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넷째, 선으로 악을 이기라. 14-21절을 읽어 봅시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지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삶인가요? 최근에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매우 흥행을 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두 번 모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적의로 가득하던 장발장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습니까? 은접시를 훔쳐 달라난 그를 죄인이 아니라 형제로 불러주며 용서해준 신부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신부님의 호의를 배반한 죄인이었지만 신부님은 그를 형제로 바라봐주고 그가 변화될 것을 믿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회계를 전공했는데요, 여러분 회사의 재무상태를 표시하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것을 재무상태표라고 합니다. 재무제표는 왼쪽에 자산, 오른쪽에는 부채와 자본을 표시합니다. 자산은 미래의 경제적 효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으로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무상태가 좋은 회사이고 그런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회계에는 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용이 수익을 초과하면 회사는 손실이 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이 줄어들고 회사의 재무상태는 나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자산과 비용을 바라보는 회계적인 관점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회계사님께서 이런 관점에서 이 사건에 설명해주시는 것을 들으면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 분은 이렇게 설명하시더군요. 신부님은 비록 장발장이 죄를 지었지만 그를 여전히 자산으로 바라봐 줬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변화되면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관 자베르는 그를 사회적 비용 즉 그는 결코 변화될 수 없는 죄인으로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레미제라블에 나온 신부님을 통해 이를 한 가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과거에 혹은 현재에 혹은 미래에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고 상처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내 인생의 비용이 아니라 내 인생의 자산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자산이 많을수록 우리의 인생은 성장하고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곧 삶으로 예배하는 삶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은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악으로 선을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예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아침에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런 사람을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작은 결단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과 도전이 쌓일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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