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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19강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창27:46~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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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웨슬레조
댓글 0건 조회 126회 작성일 13-10-06 06:46

본문

2013년 창세기 제 19 강 
말씀 | 창세기 27:46-28:22
요절 | 창세기 28:16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본문배경> 사냥을 하는 소년은 에서이고, 양을 돌보는 소년은 야곱이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는 사냥을 잘해서, 가족이 먹을 양식을 집에 가져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삭은 에서가 잡아온 사냥감으로 별미를 만들어 먹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야곱은 조용하고 차분한 소년이었고 어머님 리브가를 도와 가정 일들을 돕고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그때까지도 살아 있었고, 야곱은 할아버지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관해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는데, 그때 이 쌍둥이는 15세였습니다. 에서는 40세에 가나안 여자 두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매우 슬펐는데, 그 여자들은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이삭이 자기의 큰아들을 축복할 때가 되었는데, 에서가 야곱의 형이었으므로, 에서는 자기가 그 축복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에서는 축복받을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또한 이 두 아들이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이삭은 자기 아들 야곱을 축복했던 것입니다. 후에 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는 야곱에 대해 몹시 화가 났습니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는 야곱을 죽이겠다고 말했습니다. 리브가는 이 말을 듣고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남편 이삭에게 ‘야곱도 이곳 가나안 여자와 결혼할까 봐 정말 걱정이에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삭은 자기 아들 야곱을 불러,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하란에 있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삼촌 라반 딸 하나와 결혼하거라’ 하고 지시하였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고 즉시 자기 친족이 살고 있는 하란 땅으로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치원 수준의 요약입니다.

  <본문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작정한 줄을 알고 야곱을 피신을 시키려고 합니다. 자기의 친정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야곱을 보내면서 믿음의 결혼을 하도록 돕습니다. 야곱의 나그네 생활이 시작됩니다.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막막한 나그네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부모의 품을 떠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믿음의 조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야곱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을 만나는지 살피는 가운데 우리도 나의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남자에게 있어서나 여자에게 있어서나 결혼은 참 중요합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면서 어떤 부탁을 합니까?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가 헷 족속(가나안)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며느리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배도 드리지 않고 쇼핑을 다니고 에서를 세속적인 삶과 우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는 믿음이 있는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부탁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와 그 후손에게 주어 그가 거류하는 땅을 차지하도록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멀리 길을 떠나보내면서 믿음의 계승자요, 축복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JBF여러분들은 아직은 청소년기 때문에 결혼은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은 '금나와라 뚝딱'처럼 어느 한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믿음으로 결혼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겠다. 그러니 결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고 현재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부모님게 효도하는 것이며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도 좋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보고 여러분들은 발견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에서는 자기의 눈에 차는 가나안 헷 족속의 딸들을 맞이했고 그것이 부모님들과 불화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축복의 계승자로서 물줄기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또 부모님들이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믿음의 결혼을 할 것을 당부하는 것을 보고 자기 멋대로 생각해서 이스마엘의 딸을 얻어 다시 결혼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렇게 하면 부모님들이 기뻐할 줄로 생각한 것이지요~ 결혼의 창시자는 하나님입니다. 결혼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상대 배우자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자 해가 졌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100킬로미터 정도로서 도보로 약 3일 길입니다. 하란까지 걸어가려면 약 80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합니다. 한 달 이상 걸리는 여행입니다. 그가 벧엘에서 돌 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외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기심이나 방황심에 담배도 피워보고 가출도 해보고 부모님들이나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것들을 해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혼자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도움이 되지 않는 외로운 때에 야곱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외로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을 때, 내가 의지하던 것을 다 내려놓고 가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만이 우리 곁에 남습니다.

  사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닥다리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은 하나님과 인간이 역동적으로 교제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이는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의 것을 추구하도록 도우시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랑, 물질, 명예보다 정말 위엣 것을 찾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서 그의 삶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본문에는 ‘보라’는 감탄사가 여러 번 반복되어 야곱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라! 사닥다리가’ ‘보라! 하나님의 사자가’ ‘보라! 여호와께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연결 통로로서 신약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요1:5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복을 넘치도록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이 때 야곱에게 꿈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으로 은혜를 받고 비전을 보게 됩니다. 지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귀중한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함으로써 이제 그는 어디서나 단독자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그를 보고 계시고 도와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자신감이 있어야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홀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어려운 인생의 고난도 능히 감당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13a절을 보십시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 너 야곱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무엇입니까? 13b-15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땅과 땅의 티끌 같은 자손과 열방에 대한 복의 근원으로 쓰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동일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야곱을 20년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야곱은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가 무엇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이토록 가깝게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 루스에도 계시는 분임을 발견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길 때 그를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소원은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열망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예배할 때 인간은 참된 만족을 느낍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그 하나님을 인식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또 그는 그곳을 하늘에 이르는 통로라는 의미로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이 통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의 문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말한 하늘의 문은 참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요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갑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께 서원을 하며 몇 가지 결단을 합니다. 20-2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자신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도록 서원 기도합니다. 자신을 이 여행길에서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박한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그가 구한 것은 작지만 구체적이었습니다. 이것이 꼬투리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인 결단을 하고 약속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야곱이 나그네 생활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사닥다리 꿈을 통해서 그를 만나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서 외로움을 느낄 때 하나님은 나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소망의 말씀, 비전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장래를 위해 갖고 계신 생각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배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더욱 인격적인 만남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제목 :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날 나는 꿈을 꾸었다.
주님과 함께 바닷가 모래 위를 거니는 꿈이었다.
하늘을 가로질러 저 멀리 내 인생의 장면들이 펄쳐졌다.
지평선 모래 위에 나란히 그려진 주님과 나의두 발자국이
멀리멀리 사이좋게 이어져 있었다.
하나는 나의 발자국, 또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
두 개의 발자국은 사이좋게 멀리 이어져 있었다.

발자국이 멈추어진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긴 길을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군데군데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 것을 보고서
나는 깜짝놀랐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내가 아플 때였고,
그때가 내가 견디기 어려울 때였고,
그때가 내가 비참하고 슬플 때였다.
그래서 나는 옆에 계신 주님께 물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했을 때,
주님은 저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지요.
그러나 보십시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하였을 때,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주님께서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조용히 대답하셨다.

  "나의 사랑하고 귀여운 아들아!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하였고
한시라도 너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네가 시련을 당하던 그때에 나는 결코 너의 곁을 떠나지 아니했다.   
네가 본 저 한 사람의 발자국은 너의 발자국이 아니고 나의 발자국이란다.
환난 때에 너를 품에 안고서,
피곤할 때에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어간 나의 발자국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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