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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제 24 강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창39~4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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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베드로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13-11-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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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39:1-41:57
요절 | 창세기 39:23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는 의로운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계속됩니다. 이런 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꿈과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꿈과 같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자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요셉의 삶은 마치 극적인 반전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연출하신 분은 바로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을 통해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세 부분으로 나누고자 배워 보고자 합니다.

첫째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와 형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그의 꿈 이야기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묻어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묻히지 않았습니다. 큰 형 르우벤이 그를 아버지의 품에 돌려보고자 동생들을 말렸습니다. 유다는 “그를 죽일 필요가 뭐가 있냐? 우리가 그를 안 보면 그만 아니냐?” 하고 “그를 종으로 팔아 버리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귀공자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고난은 요셉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는 더 이상 채색옷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비천한 옷을 입고 멸시를 받으며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짐승처럼 죽도록 일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요셉과 같이 고난 가운데 있는 분들이 반드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Why me? 왜 하필이면 나야?”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참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이 질문을 하다보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고 이런 나를 구원하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질문을 하다가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의 저자인데 최근에 힐링캠프에도 나오신 분이데 이지선 씨라고 들어봤나요? 그녀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다니던 시절에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 사고로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과 여덟 손가락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녀에게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조상 중에 화상을 입은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는 그녀를 두 번 죽이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화상을 입은 귀신의 저주가 대대로 흘러 그날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품어온 희망은 물론 그녀가 겪은 고난을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은 고난 그 자체보다도 때로는 그 고난의 이유를 모를 때 더 괴롭고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지선 씨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찾았습니다. 요한일서6: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라.” 그녀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과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 사고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라는 사실을 영접했습니다.

다시 요셉에게로 돌아가 봅시다. 그도 고난 가운데 “Why me?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과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요? 그렇습니다. 창세기 39:2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그의 고난 가운데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난으로 인해 좌절하고 인생을 비관하는 시들한 자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꿈을 꾸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힘 있게 살아가는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의 고난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진정한 삶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신 하나님
요셉은 아버지의 집에 있었을 때 아버지에게는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형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의 인사를 받지도 않고 왕따를 시켰습니다. 마침내는 그를 죽이려고 위협하다가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회복하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애굽에서 요셉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집 주인인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4,5절을 봅시다.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당시 보통의 사람들은 종에게 별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자기 자식도 아닌데 종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은 달랐습니다. 그는 본래 그 집에서 난 종도 아니고 팔려온 종이지만 요셉의 삶을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삶을 볼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며 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요셉에게 자기 집의 종들과 모든 소유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의 직분을 맡겼습니다. 이는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아내가 요셉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을 알고 그를 극형에 처하기보다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들어왔을 때 그들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전역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창39:21-23을 읽어봅시다.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보통 죄수들이 받는 대우는 종들보다 더 못합니다. 간수장들은 이런 죄수들을 난폭하게 다루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의 간수장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간수장은 그에게 제반 업무를 처리하게 하고 그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술 맡은 관원장의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에게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근심하던 중에 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어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의 꿈 이야기를 듣더니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 하면서 그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는 요셉이 해석해 준대로 삼 일만에 복직되어 바로를 다시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직하면 바로에게 말해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는 요셉과의 약속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가 꿈을 해석하지 못하여 근심함을 보고 바로에게 요셉을 추천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이년동안 자신의 약속을 잊었지만 요셉에게 받은 섬김을 기억했습니다. 우리에게 술만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요셉을 추천한 일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중한 나라 일에 대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왕에게 사람을 추천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책임을 질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술 맡은 관원이 요셉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이 어려운 일을 나서서 해 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 왕 바로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바로는 당시 대 제국인 애굽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태양신의 아들로 여김을 받으며 신의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애굽에 팔려온 종에 불과한 요셉, 그것도 주인의 아내를 범했다고 하는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요셉을 그의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요셉이 하는 꿈에 대한 해석과 그 해법을 듣고는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지혜 있고 명철한  자가 없다고 말하며 그를 총리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인장을 벗어주고 그에게 전권을 주어 장차 다가올 칠년 대흉년을 준비하는 막중한 사명을 맡깁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노예소년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반전 드라마가 가능했던 이유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셉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애굽의 총리 요셉도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요셉이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요셉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에게 은혜를 베푼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했기에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는 감동적인 반전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사람들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푼 공통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쌓은 실력이나 인맥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꿈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요셉이 하는 일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
요셉은 애굽 왕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왔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집에 와서 처음에는 가장 낮은 종들이 하는 일을 맡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화장실 푸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맡은 일이 무엇이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깔끔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일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일을 다해놓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요셉을 좋아했습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고 또 좋은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이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면 장군이 되려면 여러 보직을 거쳐야 하고 많은 병사들을 지휘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사건 사고가 거의 하나도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병사 중에 하나라도 사고를 치면 안됩니다. 이렇게 세상일이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이 모두 잘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일마다 형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맡아서 하면 일이 다 잘 되었습니다. 안될 것 같은 일들도 잘 풀리고 관리하는 종들 중에도 사고치는 종이 없었습니다. 이를 본 보디발은 그를 가정총무로 세워 그의 집의 모든 일을 맡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는 간수장이 요셉에게 감옥의 제반 사무를 맡기고 그에게 맡긴 일을 살피지도 않았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자신의 인장반지까지 내어주며 요셉을 실세총리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이렇게 대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요셉과 하시며 그의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보디발이라면 혹은 간수장이라면 혹은 애굽 왕 바로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겠습니까? 물론 일 잘하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할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확실하다." 왜 그럴까요? 기도하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기도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잘되기를 원하고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되고 우리의 꿈이 이루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열심히 하면 될까요? 사람들이 도와주면 될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그렇습니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는 말도 있지만 세상에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는 탑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탑입니다.

저희 회사는 사장님이 장로님이시고 매주 목요일에 회사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친히 경영자가 되셔서 회사를 경영해 주시도록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체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와 거래하는 큰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그러면 저희 회사가 받지 못한 돈이 있은 떼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대부분의 돈을 받은 상태였고 받지 못한 돈을 조금 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때 돈을 다 받지 못했으면 저희 회사는 큰 일 날뻔 한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한치 앞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회사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신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비 중에 신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 위해 하늘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낮고 작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의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 중에 신비는 또한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마태복음 1:23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하는 일마다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굴까요?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를 이길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디발도, 간수장도, 애굽 왕 바로도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요셉을 일개 팔려온 종이 본 것이 아니라 그를 존귀한 자로 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존귀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JBF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존귀한 인생,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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