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명기 5강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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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5강
말씀 | 신명기 9:1-10:11
요절 | 신명기 9:5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였음을 분명하게 보이십니다. 사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온갖 죄악과 허물 밖에 없었습니다. 죄악과 허물로 가득찬 백성들을 그 크신 긍휼로 용서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크신 은혜를 돌아보고 영접하며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주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심(1-3). 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할 족속들은 매우 강하고 그들의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성벽의 높이가 9-15미터에 이르고 폭이 4-5미터에 달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성벽이 하늘에 닿았다는 표현이 생생해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상대해야 할 적들 중에는 아낙 자손이 있습니다. 아낙 자손은 키가 크고 힘이 세기로 소문이 나 있던 족속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그들 앞에 나아가사 적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이는 가나안 족속의 악이 하늘에 사무칠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가나안 족속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만약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면 소멸하는 불이 되어 그들을 삼킬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4: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하시고, 적이 되기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북군이 남군에게 전세가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의 참모가 급히 대통령 각하에게 전황을 보고합니다. “각하, 지금 전선에서 북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각하, 하나님은 우리 북군 편에 계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참모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신가. 적의 편에 계신가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네. 나는 오직 지금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를 생각한다네.”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도우시며 놀랍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 JBF 학생들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 편에 서고자 결단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피해야 할 죄, 자만(4-5). 4-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신 후에 그들이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가나안 주민들을 내치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이유는 가나안 백성들의 악함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창15:16).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또한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땅 백성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깊이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반역한 이스라엘(6-24).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6,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6,7)”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이는 말씀을 청종하기 위해서 머리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머리 돌리기를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고 격노하게 하였던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일을 지적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들으면 죽을 것 같아 모세에게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산 정상에서 사십 주 사십 야를 머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새긴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중이던 이때만큼은 하나님께 신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장소가 반역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40일이 끝나는 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었으니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12).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14).”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모세의 후손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호렙산 사건이 자세히 나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32:1).” 아론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라고 했고 그것을 모아 녹였습니다. 녹인 금을 부어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우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송아지가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신의 신이라고 고백하며 그 앞에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이 모습을 보고 그 두 돌판을 두 손으로 들어 던져 그들의 목전에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모세가 돌판을 던져 깨버린 것은 그의 화가 난 감정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졌다는 것을 뜻하는 법적인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 조건을 위반함으로써 그 언약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만든 송아지를 불에 태우고 부숴서 가루로 만든 다음 흐르는 개울물에 띄워 보냈습니다(21).
금송아지를 없애버린 모세는 곧장 다시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론을 죽이려고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목숨을 내건 중보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살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아론을 계속 대제사장으로 있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론을 당장 직위해제 시키고 백의종군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한 사람 모세의 중보기도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다베라(불사름) 사건(민11:1-3)은 그들이 시내산을 떠난 지 3일 밖에 안 되었을 때인데 길이 좀 힘들다고 악한 말로 원망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진노하사 불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백성이 부르짖고 모세가 기도하매 불이 꺼졌습니다.
맛사 사건(출17:1-7)은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물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민11:4-35)은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과일과 채소와 고기를 먹었는데 광야에서 만나만 먹는다며 지겹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울며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며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은혜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되 냄새를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내려 거두게 하셨는데 백성들은 이틀간 종일토록 거두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120말, 12가마)를 모아 자기를 위해 진영 사면에 펴두었습니다. 그 정도로 엄청나게 탐욕을 부렸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탐욕을 부린 그들을 아직 고기가 잇사이에서 없어지기 전에 큰 재앙으로 쳐서 죽이셨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13:17-14:10)은 1강에서 다루었습니다. 불신과 두려움으로 그들은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었습니다. 이 반역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보류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반역의 대가로 치룬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당장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하셨습니다. 모세가 기억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알던 날부터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모세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를 통해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넷째, 모세의 중보기도와 새 돌판(9:25-10:11).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께 중보기도하였습니다. 25-29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무조건 죄송하다, 송구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해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리고 애굽인들이 하나님이 능력이 없고 그들을 미워해서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무조건 떼를 쓰듯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기초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욕심과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기뻐하시고 속히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받으시고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두 돌판에 말씀을 쓰시고 조각목으로 만든 궤에 두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이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본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사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지만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하며 대적하며 불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구주 예수님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며 주님께 모든 영광과 경배를 드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 안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신명기 9:1-10:11
요절 | 신명기 9:5
네 공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였음을 분명하게 보이십니다. 사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온갖 죄악과 허물 밖에 없었습니다. 죄악과 허물로 가득찬 백성들을 그 크신 긍휼로 용서하시고 약속의 땅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의 크신 은혜를 돌아보고 영접하며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주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심(1-3). 1-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할 족속들은 매우 강하고 그들의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성벽의 높이가 9-15미터에 이르고 폭이 4-5미터에 달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성벽이 하늘에 닿았다는 표현이 생생해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상대해야 할 적들 중에는 아낙 자손이 있습니다. 아낙 자손은 키가 크고 힘이 세기로 소문이 나 있던 족속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까? 3절을 보십시오.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그들 앞에 나아가사 적들을 멸하실 것입니다. 이는 가나안 족속의 악이 하늘에 사무칠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가나안 족속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도 만약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면 소멸하는 불이 되어 그들을 삼킬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4: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행동에 따라 아군이 되기도 하시고, 적이 되기도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의 일입니다. 북군이 남군에게 전세가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의 참모가 급히 대통령 각하에게 전황을 보고합니다. “각하, 지금 전선에서 북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각하, 하나님은 우리 북군 편에 계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참모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신가. 적의 편에 계신가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네. 나는 오직 지금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를 생각한다네.”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도우시며 놀랍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우리 JBF 학생들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 편에 서고자 결단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피해야 할 죄, 자만(4-5). 4-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신 후에 그들이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가나안 주민들을 내치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이유는 가나안 백성들의 악함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때문입니다(창15:16).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백성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사용했을 뿐입니다. 또한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땅 백성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깊이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반역한 이스라엘(6-24).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6,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6,7)”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이는 말씀을 청종하기 위해서 머리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머리 돌리기를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고 격노하게 하였던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호렙 산에서 여호와를 격노하게 한 일을 지적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것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들으면 죽을 것 같아 모세에게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산 정상에서 사십 주 사십 야를 머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새긴 두 돌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중이던 이때만큼은 하나님께 신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장소가 반역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40일이 끝나는 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었으니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12).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14).”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모세의 후손만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엄청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호렙산 사건이 자세히 나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32:1).” 아론은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가져오라고 했고 그것을 모아 녹였습니다. 녹인 금을 부어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우상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송아지가 자신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신의 신이라고 고백하며 그 앞에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이 모습을 보고 그 두 돌판을 두 손으로 들어 던져 그들의 목전에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모세가 돌판을 던져 깨버린 것은 그의 화가 난 감정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깨졌다는 것을 뜻하는 법적인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 조건을 위반함으로써 그 언약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만든 송아지를 불에 태우고 부숴서 가루로 만든 다음 흐르는 개울물에 띄워 보냈습니다(21).
금송아지를 없애버린 모세는 곧장 다시 40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론을 죽이려고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목숨을 내건 중보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을 살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아론을 계속 대제사장으로 있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론을 당장 직위해제 시키고 백의종군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한 사람 모세의 중보기도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느니라.” 다베라(불사름) 사건(민11:1-3)은 그들이 시내산을 떠난 지 3일 밖에 안 되었을 때인데 길이 좀 힘들다고 악한 말로 원망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진노하사 불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습니다. 백성이 부르짖고 모세가 기도하매 불이 꺼졌습니다.
맛사 사건(출17:1-7)은 르비딤에 장막을 쳤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물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민11:4-35)은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 값없이 과일과 채소와 고기를 먹었는데 광야에서 만나만 먹는다며 지겹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울며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며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은혜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시되 냄새를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메추라기를 내려 거두게 하셨는데 백성들은 이틀간 종일토록 거두는데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120말, 12가마)를 모아 자기를 위해 진영 사면에 펴두었습니다. 그 정도로 엄청나게 탐욕을 부렸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탐욕을 부린 그들을 아직 고기가 잇사이에서 없어지기 전에 큰 재앙으로 쳐서 죽이셨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가데스 바네아 사건(민13:17-14:10)은 1강에서 다루었습니다. 불신과 두려움으로 그들은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격이었습니다. 이 반역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보류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반역의 대가로 치룬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당장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하셨습니다. 모세가 기억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알던 날부터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과 모세의 목숨을 건 중보기도를 통해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넷째, 모세의 중보기도와 새 돌판(9:25-10:11).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께 중보기도하였습니다. 25-29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무조건 죄송하다, 송구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해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그리고 애굽인들이 하나님이 능력이 없고 그들을 미워해서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합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무조건 떼를 쓰듯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기초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욕심과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기뻐하시고 속히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받으시고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두 돌판에 말씀을 쓰시고 조각목으로 만든 궤에 두게 하셨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이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본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사실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지만 얼마나 자주 하나님을 원망하며 대적하며 불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은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구주 예수님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며 주님께 모든 영광과 경배를 드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 안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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