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명기 3 강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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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3 강
말씀 | 신명기 4:44-6:25
요절 | 신명기 6: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상적인 목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이곳은 모세의 첫 번째 설교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장소입니다.
첫 번째 계명, 나 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7). 가나안 땅은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날씨와 번영의 신 바알과 다산과 관능의 신 아스다롯 등이 판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서 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섬길 유일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또 그들을 바로와 애굽의 우상들로부터 구원해 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첫 계명에서 이스라엘의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충성을 명령하십니다.
둘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을 형상화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8,9).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제한시키게 됩니다. 결국 신앙이 왜곡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어떤 형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공장과 같아서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크게 만들어서 그 힘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건물로 그 영광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림과 석상들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셋째 계명,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11). “너는 네 하나님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의 사사로운 유익을 위해서 도용내지는 오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름은 그의 존재를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찬양하고 섬겨야지, 함부로 이용하거나 농담거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헛되이, 공허하게, 무의미하게, 기대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주문을 외우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계명,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12-15).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사역을 이루시고 칠일에 쉬셨습니다. 언약 백성인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에 생업을 잠시 놓고 쉬며 성회로 모이고 언약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함으로서 새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죄에서 구원하신 구속의 은혜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교제를 나누며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주일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신앙고백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제사의 목적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주님과 연합된 의미를 되새기고 감사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께 예배드림으로 안식을 얻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16). 부모를 공경할 때 축복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효도의 개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세대를 통해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영접하고 순종하며 또 자손들에게 계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를 낳으시고 길러주시고 교육시켜 주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윗사람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줄 알게 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그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섯 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 피조물인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임의로 취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침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미움과 복수, 원한 품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격모독도 살인으로 보셨습니다. 이 말씀이 사형제도를 금하는 성경적 근거로 채택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된 ‘살인하다’는 동사는 전쟁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정당하게 범죄자를 처형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계명은 정당한 형 집행 테두리 밖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도입니다. 간음은 사회를 더럽히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범죄입니다. 간음은 사회질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를 깨는 일이기 때문에 심각한 형벌을 가하고 있습니다(신22:22) 음란 동영상이나 누드 사진을 보는 것, 동성애, 수간 등도 다 죄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도이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최초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서약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덟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물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각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기 전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일정한 양의 물질을 공동체에 기부하여 모든 지체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과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은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의 자존감이나 존엄성을 빼앗는 행위이기에 금하고 있습니다.
아홉째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20). 이웃은 모든 권리를 지닌 공동체의 멤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위증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 외에도 사회의 진실성과 질서를 위협합니다. 만일 위증에 근거하여 죄 없는 사람을 처형할 경우 그 죗값은 온 공동체가 져야 합니다. 성경은 최소한 두 명의 증언이 필요했습니다. 재판 결과 사형이 집행되어야 할 경우에는 증인들이 먼저 돌을 던지는 것도 의무조항이었습니다(신13:10).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21). 탐심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열망이며 이미 선포된 모든 계명을 위반하는 일의 첫 걸음입니다. 나의 소유권이 존중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남의 소유권도 인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명은 나의 권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필연성을 전제로 합니다. 탐내는 것은 사람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사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남이 소유한 것에 대해 소유욕에 불타 그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 물건을 갖기 위해 행악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또 탐욕은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직접 말씀하시고 두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율법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주셨고 그 이후에 주어지는 율법은 모세의 중재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들은 율법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즐기라고 준 것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삶의 지침이요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둘째로 율법은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삶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킴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유일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복 주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사랑해야 하며 그 증거로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된 인생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진정한 에덴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이요, 하나님 나라,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결입니다.
말씀 | 신명기 4:44-6:25
요절 | 신명기 6: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렵고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상적인 목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이곳은 모세의 첫 번째 설교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장소입니다.
첫 번째 계명, 나 외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7). 가나안 땅은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날씨와 번영의 신 바알과 다산과 관능의 신 아스다롯 등이 판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필요에 따라서 신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섬길 유일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또 그들을 바로와 애굽의 우상들로부터 구원해 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첫 계명에서 이스라엘의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충성을 명령하십니다.
둘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을 형상화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8,9).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제한시키게 됩니다. 결국 신앙이 왜곡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어떤 형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공장과 같아서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크게 만들어서 그 힘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건물로 그 영광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림과 석상들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셋째 계명,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11). “너는 네 하나님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의 사사로운 유익을 위해서 도용내지는 오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름은 그의 존재를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찬양하고 섬겨야지, 함부로 이용하거나 농담거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헛되이, 공허하게, 무의미하게, 기대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주문을 외우듯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계명,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12-15).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창조사역을 이루시고 칠일에 쉬셨습니다. 언약 백성인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안식일에 생업을 잠시 놓고 쉬며 성회로 모이고 언약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안식에 동참함으로서 새 힘을 덧입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죄에서 구원하신 구속의 은혜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교제를 나누며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주일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신앙고백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제사의 목적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주님과 연합된 의미를 되새기고 감사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께 예배드림으로 안식을 얻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16). 부모를 공경할 때 축복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단순히 효도의 개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세대를 통해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를 영접하고 순종하며 또 자손들에게 계승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를 낳으시고 길러주시고 교육시켜 주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윗사람을 존중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줄 알게 됩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그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섯 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 피조물인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임의로 취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침범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미움과 복수, 원한 품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격모독도 살인으로 보셨습니다. 이 말씀이 사형제도를 금하는 성경적 근거로 채택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된 ‘살인하다’는 동사는 전쟁을 통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정당하게 범죄자를 처형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계명은 정당한 형 집행 테두리 밖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도입니다. 간음은 사회를 더럽히는 부도덕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범죄입니다. 간음은 사회질서의 기초가 되는 가족관계를 깨는 일이기 때문에 심각한 형벌을 가하고 있습니다(신22:22) 음란 동영상이나 누드 사진을 보는 것, 동성애, 수간 등도 다 죄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제도이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리고 최초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 서약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덟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의 소유물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각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기 전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일정한 양의 물질을 공동체에 기부하여 모든 지체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과 존엄성을 유지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은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의 자존감이나 존엄성을 빼앗는 행위이기에 금하고 있습니다.
아홉째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20). 이웃은 모든 권리를 지닌 공동체의 멤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법정에서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위증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 외에도 사회의 진실성과 질서를 위협합니다. 만일 위증에 근거하여 죄 없는 사람을 처형할 경우 그 죗값은 온 공동체가 져야 합니다. 성경은 최소한 두 명의 증언이 필요했습니다. 재판 결과 사형이 집행되어야 할 경우에는 증인들이 먼저 돌을 던지는 것도 의무조항이었습니다(신13:10).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21). 탐심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열망이며 이미 선포된 모든 계명을 위반하는 일의 첫 걸음입니다. 나의 소유권이 존중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남의 소유권도 인정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명은 나의 권리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는 필연성을 전제로 합니다. 탐내는 것은 사람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사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남이 소유한 것에 대해 소유욕에 불타 그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 물건을 갖기 위해 행악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또 탐욕은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직접 말씀하시고 두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율법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주셨고 그 이후에 주어지는 율법은 모세의 중재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들은 율법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즐기라고 준 것이 아니라 율법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율법은 삶의 지침이요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둘째로 율법은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삶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킴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신 유일하신 분이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복 주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사랑해야 하며 그 증거로 계명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복된 인생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진정한 에덴의 축복을 회복하는 길이요, 하나님 나라,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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