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년3강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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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말씀 3 강
말씀 | 시편 119:129-152
요절 | 시편 119:130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119편은 성경 중에 가장 긴장으로 무려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2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연이 8절로 되어 있고 앞에 4절과 뒤에 4절이 대조를 이루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많은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과 그 말씀을 사모하는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울 말씀은 17연에서 19연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신년말씀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한해의 방향을 잡는데 반드시 말씀에 대한 방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소원과 목표를 다 이룬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깨닫고 우리도 시인과 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말씀을 받고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주의 증거들은 놀랍습니다(129-136). 129절을 봅시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시인은 얼마나 놀라운지 내 영혼이 이를 지킨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다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130절을 봅시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주로 유목을 하던 유대인들은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천막의 문은 가죽 덮개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죽덮개를 열며 빛이 비추어 천막 안을 구석구석 밝혀 주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천막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습니다. 어두운 천막 안이 천막 문을 열 때 비로소 빛이 비추어 볼 수 있게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성경에는 말씀의 빛이 비추어 깨닫게 하는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그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원이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매우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깊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문제는 거듭나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목마른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을 통해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5장에는 38년 된 중풍병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문제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 안에는 깊은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하나님과 사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말씀을 공부하며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한 줄기 빛과 같이 비추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저는 이 말씀의 빛을 통해 예수님이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삶이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고 위대한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요?
첫째로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됩니다. 133절을 봅시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는 죄가 죄인줄 모르고 짓는 죄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죄를 깨닫고 분별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죄가 싫어지고 죄와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때론 죄가 어찌할 틈도 없이 우리를 덮칠 때가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그가 모시던 주인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갑작스럽게 그를 덮쳤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췄습니다. 그때 그는 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죄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굳게 세워주십니다. 그렇기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어떤 죄도 나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천하를 다 얻고도 죄에 넘어지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죄를 이기면 승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친구들을 올 한해 말씀에 굳게 세워주셔서 어떤 죄도 주관치 못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134절을 봅시다.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고 칭찬해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도리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의 삶이 세상과 구별되고 그 결과 세상의 죄가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 나를 미워한 것 같이 너희도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은 미움과 박해를 받으며 똑같이 미워하고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은 사람을 그렇지 않습니다. 135-136절을 봅시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미움과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해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박해한 것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보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의 마음입니다.
둘째, 주의 판단은 옳습니다(137-144). 시편119편 18연의 주제는 의입니다. 137,138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은 의로시고 그의 말씀이 의롭고 성실하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고백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창므로 그렇다 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개인의 삶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딸자식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창12:2) 자식과도 같은 조카 롯을 떠나보낸 후 낙심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4) 이 말씀들은 당시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말씀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를 믿을 수 없어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을 모태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성케 하신 후에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여인의 후손가운데 구원자를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네 왕위를 이를 영원한 왕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에게는 메시야를 고난의 종으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그는 성실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 민수기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우리는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보시고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신토록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11)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면 그대로 되었고 바람과 광풍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면 그래도 되었고 군대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면 그대로 되었고 죽은 나사라에게 “무덤에서 나오라”하면 죽은 자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의 말씀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43-144절을 봅시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을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우리는 하는 일이 잘되고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성실하시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미천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우리의 삶에 환란과 우환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정말 왜 이렇십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저를 사랑하기나 하시는 겁니까? 어느 때까집니까? 하나님이 계시기나 하신 것입니까?”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시인은 어떠하였습니까? 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라고 고백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기초해서 판단하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환란과 우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못살겠다. 죽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살겠다. 살만하다. 아니 감사하다”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 다른 무엇보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주의 말씀을 위해 기도합니다(145-152). 우리는 얼마전에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회사를 위해,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시인이 간절히 바라며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145,146절을 봅시다. 그것은 “내가 주의 교훈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입니다. 그는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려면 결단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인과 같이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으로 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방향을 잡은 후에 이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시인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는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에 온 마음을 다했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주의 말씀을 바라며 날이 밝기 전에 새벽녘에 눈을 떴다고 고백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의 말씀을 바라며 먼저 기도부터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는 새벽 이른 시간에 깨어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기보다는 기도하고 일용할양식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일용할 양식을 묵상한 방법은 이것입니다. 148절을 읽어봅시다.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그는 말씀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조용히 소리내서 읽었습니다. 아침에는 부족한 잠 때문에 피곤하여 졸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조용히 소리내어 읽는 것은 졸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잠이 깨고 말씀의 빛이 조금씩 마음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말씀은 기도가 되고 말씀에 기초한 기도는 우리의 삶이 됩니다. JBF 친구들도 일용할양식 책자가 있습니다. 그렇데 이 책이 책장에 장식용으로만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하루 말씀의 빛을 받고 시작하는 것과 그냥 시작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하루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습관을 익힌 사람은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열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새해 우리 JBF 친구들이 시편의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며 매일 아침 일용할 양식을 조용히 소리내어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며 빛이 들어와 우리를 깨닫게 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많은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축복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축복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하고 세상을 이길 지혜와 통찰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환란과 우환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는 어떤 죄악도, 어떤 대적도, 어떤 환란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 감당 못할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올 한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갖고 말씀을 대한 자세를 새롭게 결단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시편 119:129-152
요절 | 시편 119:130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119편은 성경 중에 가장 긴장으로 무려 176절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2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연이 8절로 되어 있고 앞에 4절과 뒤에 4절이 대조를 이루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많은 내용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과 그 말씀을 사모하는 시인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울 말씀은 17연에서 19연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신년말씀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가 한해의 방향을 잡는데 반드시 말씀에 대한 방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소원과 목표를 다 이룬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깨닫고 우리도 시인과 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말씀을 받고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주의 증거들은 놀랍습니다(129-136). 129절을 봅시다. “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시인은 얼마나 놀라운지 내 영혼이 이를 지킨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다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를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130절을 봅시다.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주로 유목을 하던 유대인들은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천막의 문은 가죽 덮개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죽덮개를 열며 빛이 비추어 천막 안을 구석구석 밝혀 주었습니다. 이러한 광경은 천막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습니다. 어두운 천막 안이 천막 문을 열 때 비로소 빛이 비추어 볼 수 있게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성경에는 말씀의 빛이 비추어 깨닫게 하는 역사가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그는 당시 산헤드린 공회의원이요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매우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깊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의 문제는 거듭나지 못한 문제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목마른 여인이 나옵니다. 그녀는 남편을 통해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5장에는 38년 된 중풍병자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문제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제 안에는 깊은 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저는 하나님과 사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말씀을 공부하며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한 줄기 빛과 같이 비추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저는 이 말씀의 빛을 통해 예수님이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삶이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고 위대한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요?
첫째로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됩니다. 133절을 봅시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는 죄가 죄인줄 모르고 짓는 죄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죄를 깨닫고 분별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죄가 싫어지고 죄와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때론 죄가 어찌할 틈도 없이 우리를 덮칠 때가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그가 모시던 주인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갑작스럽게 그를 덮쳤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췄습니다. 그때 그는 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죄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의 발걸음을 굳게 세워주십니다. 그렇기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어떤 죄도 나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천하를 다 얻고도 죄에 넘어지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죄를 이기면 승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JBF친구들을 올 한해 말씀에 굳게 세워주셔서 어떤 죄도 주관치 못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134절을 봅시다.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고 칭찬해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도리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며 우리의 삶이 세상과 구별되고 그 결과 세상의 죄가 들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에게 세상 나를 미워한 것 같이 너희도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보통은 미움과 박해를 받으며 똑같이 미워하고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받은 사람을 그렇지 않습니다. 135-136절을 봅시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미움과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해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박해한 것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보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의 마음입니다.
둘째, 주의 판단은 옳습니다(137-144). 시편119편 18연의 주제는 의입니다. 137,138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은 의로시고 그의 말씀이 의롭고 성실하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고백한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창므로 그렇다 라고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개인의 삶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딸자식하나 없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창12:2) 자식과도 같은 조카 롯을 떠나보낸 후 낙심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4) 이 말씀들은 당시에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말씀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를 믿을 수 없어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고자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굽을 모태로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성케 하신 후에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여인의 후손가운데 구원자를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네 왕위를 이를 영원한 왕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에게는 메시야를 고난의 종으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그는 성실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 민수기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23:19) 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우리는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보시고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신토록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11)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행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면 그대로 되었고 바람과 광풍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면 그래도 되었고 군대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하면 그대로 되었고 죽은 나사라에게 “무덤에서 나오라”하면 죽은 자가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의 말씀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43-144절을 봅시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을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우리는 하는 일이 잘되고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성실하시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미천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우리의 삶에 환란과 우환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정말 왜 이렇십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저를 사랑하기나 하시는 겁니까? 어느 때까집니까? 하나님이 계시기나 하신 것입니까?”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고 떠납니다. 그러나 시인은 어떠하였습니까? 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라고 고백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기초해서 판단하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환란과 우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못살겠다. 죽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살겠다. 살만하다. 아니 감사하다”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한해 다른 무엇보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 주의 말씀을 위해 기도합니다(145-152). 우리는 얼마전에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회사를 위해,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시인이 간절히 바라며 부르짖어 기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145,146절을 봅시다. 그것은 “내가 주의 교훈을 지키리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입니다. 그는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려면 결단과 의지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인과 같이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으로 전심으로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방향을 잡은 후에 이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시인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는 전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에 온 마음을 다했고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순위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주의 말씀을 바라며 날이 밝기 전에 새벽녘에 눈을 떴다고 고백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의 말씀을 바라며 먼저 기도부터 하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는 새벽 이른 시간에 깨어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기보다는 기도하고 일용할양식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일용할 양식을 묵상한 방법은 이것입니다. 148절을 읽어봅시다.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그는 말씀을 눈으로만 보지 않고 조용히 소리내서 읽었습니다. 아침에는 부족한 잠 때문에 피곤하여 졸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조용히 소리내어 읽는 것은 졸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잠이 깨고 말씀의 빛이 조금씩 마음에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말씀은 기도가 되고 말씀에 기초한 기도는 우리의 삶이 됩니다. JBF 친구들도 일용할양식 책자가 있습니다. 그렇데 이 책이 책장에 장식용으로만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하루 말씀의 빛을 받고 시작하는 것과 그냥 시작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하루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습관을 익힌 사람은 반드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열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새해 우리 JBF 친구들이 시편의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며 매일 아침 일용할 양식을 조용히 소리내어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며 빛이 들어와 우리를 깨닫게 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주신 많은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축복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축복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의 빛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보게 하고 세상을 이길 지혜와 통찰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환란과 우환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는 어떤 죄악도, 어떤 대적도, 어떤 환란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 감당 못할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JBF 친구들이 올 한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갖고 말씀을 대한 자세를 새롭게 결단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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