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에 담긴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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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담긴 보배
말씀 / 고린도후서 4:7-18
요절 /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에 담긴 보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삶에 힘과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낙심하지 마라. 그리고 보배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며 힘들고
지친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얻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7-18절)
7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진 쉽게 깨어지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싸게 팔리고, 우리에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그릇입니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아마도 마트에 진열된 제일 저렴한 접시, 다이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플라스틱 그릇이 질그릇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무시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질그릇과 같지만 우리 속에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보배,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말씀입니다.
골 2:3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담은 복음서에는 보배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떠한 점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보배와도 같습니까?
먼저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생명의 주인으로서 보배가 되십니다
(요1:4).
그리고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갈급한 인생들에게 영생수를 주시는 영생의 보배이십니다(요4:14).
또한 배고픈 자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요6:35), 소경들에게 빛을 주십니다(요9:5).
사망권세에 신음하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산 소망이 되십니다(요11:25).
이처럼 보배로운 예수님께는 어두움이 없고 운명이 없고 슬픔이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과 빛과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여 찬란하게 빛납니다.
보배로운 예수님을 간직한 사람은 그 예수님을 닮아 보배와 같은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우리 속에 예수님이 이미 계신다는 것입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께서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먼저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외로운 삭개오를 찾아가서 그의 집에 머무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친히 우리 안에 담기고자, 나의 좁고 지저분한 마음속에 질그릇 같은 인생 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보배이시고, 그 보배를 담은 우리는 질그릇이다.'라는 정체성을 깊이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결코 교만해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보배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7절 하반부를 보면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이던 시절, 그는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 동족들을 구원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살인자로 추락하고 광야로 도망칩니다. 모세의 인간적인 힘과 의지를 낮추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부르십니다. 모세는 그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냅니까?"(출 3:11) 하나님은 모세의 겸손한 고백을 받아주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는 인간적인 힘만 의지하는 왕자, 모세가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발도 벗을 줄 알고, 아무런 힘이 없다고 고백할 줄도 아는 겸손한 모세가 필요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 한 마디에 용기를 얻고 일어서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모세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열심히 자기 계발하고, 실력을 갈고 닦아 다이아몬드가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다면, 질그릇 같은 우리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저 허물만 보인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그 능력은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적인 힘과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8, 9절은 이 능력이 얼마나 큰지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란 보배를 가진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찬송하며 길을 뚫어 나아가게 하십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우리를 깨뜨리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보배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잠시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깨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무게중심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에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1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에 대해 말하며 앞선 권면의 메시지들 일단락 짓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고 가벼운 것이다.
하지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은 심히 크고 영원한 것이다.' 이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산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내 안에 계신 보배로운 예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고린도후서 4:7-18
요절 /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에 담긴 보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우리의 삶에 힘과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낙심하지 마라. 그리고 보배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묵상하며 힘들고
지친 우리의 마음에 위로를 얻고,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보배이신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7-18절)
7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진 쉽게 깨어지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싸게 팔리고, 우리에게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그릇입니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아마도 마트에 진열된 제일 저렴한 접시, 다이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플라스틱 그릇이 질그릇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무시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질그릇과 같지만 우리 속에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보배,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말씀입니다.
골 2:3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담은 복음서에는 보배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떠한 점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보배와도 같습니까?
먼저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생명의 주인으로서 보배가 되십니다
(요1:4).
그리고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갈급한 인생들에게 영생수를 주시는 영생의 보배이십니다(요4:14).
또한 배고픈 자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요6:35), 소경들에게 빛을 주십니다(요9:5).
사망권세에 신음하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산 소망이 되십니다(요11:25).
이처럼 보배로운 예수님께는 어두움이 없고 운명이 없고 슬픔이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과 빛과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여 찬란하게 빛납니다.
보배로운 예수님을 간직한 사람은 그 예수님을 닮아 보배와 같은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우리 속에 예수님이 이미 계신다는 것입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께서 질그릇과 같은 우리에게 먼저 친히 찾아 오셨습니다.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외로운 삭개오를 찾아가서 그의 집에 머무셨던 예수님, 예수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친히 우리 안에 담기고자, 나의 좁고 지저분한 마음속에 질그릇 같은 인생 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보배이시고, 그 보배를 담은 우리는 질그릇이다.'라는 정체성을 깊이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결코 교만해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보배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7절 하반부를 보면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이던 시절, 그는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 동족들을 구원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살인자로 추락하고 광야로 도망칩니다. 모세의 인간적인 힘과 의지를 낮추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부르십니다. 모세는 그 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입니까? 내게 무슨 능력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냅니까?"(출 3:11) 하나님은 모세의 겸손한 고백을 받아주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는 인간적인 힘만 의지하는 왕자, 모세가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발도 벗을 줄 알고, 아무런 힘이 없다고 고백할 줄도 아는 겸손한 모세가 필요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이 한 마디에 용기를 얻고 일어서고,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모세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열심히 자기 계발하고, 실력을 갈고 닦아 다이아몬드가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는다면, 질그릇 같은 우리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그저 허물만 보인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그 능력은 내 속에 있는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적인 힘과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8, 9절은 이 능력이 얼마나 큰지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란 보배를 가진 사람은 어떤 시련이 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게 하시고, 찬송하며 길을 뚫어 나아가게 하십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고난과 박해를 당해도 우리를 깨뜨리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보배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잠시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깨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무게중심을 꽉 붙들고 있기 때문에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1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에 대해 말하며 앞선 권면의 메시지들 일단락 짓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고 가벼운 것이다.
하지만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은 심히 크고 영원한 것이다.' 이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산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일꾼으로서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내 안에 계신 보배로운 예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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