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마태복음 34강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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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태복음 34강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6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신 후 장사지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깊이 살펴보고 부활신앙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깊은 슬픔 가운데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일이 끝나려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무덤으로 향한 것입니다. 여인들의 마음은 온통 예수님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도착할 때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큰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천사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은 것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특히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려낸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인들로 하여금 빈 무덤을 확인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열리기 전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두려워하여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을 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주의 사자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지키라고 임명 받은 자들은 죽은 자 같이 되었고, 죽은 자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아이러니 한 모습입니다.
천사는 새벽 일찍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들이 찾고 있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버림받아 죽은 슬픈 왕입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되어줄 수 없는 한계적인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마음은 죽음이 주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부활을 기대하고 무덤을 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제자들이 여인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줍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줍니다.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고전25:42-44). 여인들이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시작하심으로서 실패를 만회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장면은 바뀌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당황한 종교 지도자들은 음험한 술수를 도모하였습니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가는 동안 경비병 중 몇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모든 된 일을 보고했습니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경비병들은 부활의 증인이 된 셈이고, 대제사장들은 부활의 기적을 들은 셈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군병들의 보고를 통해 명백한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은 결코 몇 사람의 거짓으로 은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속임수를 쓸 것이라 예견했으나(27:63,64), 오히려 스스로 속임수를 씁니다. 하지만 경비병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잠든 사람이 누가 시체를 훔쳐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이를 통해 대제사장들이 꾸민 이야기가 얼마나 믿을 만하지 못한지 보여줍니다. 거짓이 진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거짓은 잠시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진실이 이깁니다.
장면이 바뀌어 이제 다시 갈릴리에서 만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난 제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도마와 같은 경우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상처 난 못 자국에 자기 손을 넣어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명령을 하십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보고도 의심하며 망설이는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친밀하게 나아오셔서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기초로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명령의 주동사는 ‘제자를 삼으라’이며 3개의 종속 분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교는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란 배우는 자, 학생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명하신 선교의 핵심은 복음 선포보다도 제자로서 살도록 계속 양육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중대한 한 가지 선언과 함께 고별 말씀을 마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임마누엘로 마칩니다. 구약 시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 예수님을 통해 그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함께 거하지 않으나,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며 그들에게 맡긴 대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 약속은 제자 당대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계승한 후대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약속대로 오늘날 예수님을 배우며 따르고 순종하는 우리 모임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모든 족속을 제자 만드는 성서한국 세계 선교 사명에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28:1-20
요절 | 마태복음 28:6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신 후 장사지냈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지상 명령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깊이 살펴보고 부활신앙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깊은 슬픔 가운데 안식일을 보내고 안식일이 끝나려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무덤으로 향한 것입니다. 여인들의 마음은 온통 예수님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도착할 때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큰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천사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은 것은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특히 천사가 무덤의 돌을 굴려낸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인들로 하여금 빈 무덤을 확인하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열리기 전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두려워하여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을 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주의 사자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지키라고 임명 받은 자들은 죽은 자 같이 되었고, 죽은 자는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아이러니 한 모습입니다.
천사는 새벽 일찍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들이 찾고 있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십니다. 버림받아 죽은 슬픈 왕입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되어줄 수 없는 한계적인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찾는 그들의 마음은 죽음이 주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이 부활을 기대하고 무덤을 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제자들이 여인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줍니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줍니다.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고전25:42-44). 여인들이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할 메시지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시작하심으로서 실패를 만회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장면은 바뀌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당황한 종교 지도자들은 음험한 술수를 도모하였습니다.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가는 동안 경비병 중 몇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모든 된 일을 보고했습니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경비병들은 부활의 증인이 된 셈이고, 대제사장들은 부활의 기적을 들은 셈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군병들의 보고를 통해 명백한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했다는 소문을 퍼뜨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역사적 사건은 결코 몇 사람의 거짓으로 은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속임수를 쓸 것이라 예견했으나(27:63,64), 오히려 스스로 속임수를 씁니다. 하지만 경비병이 잠든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가 모순입니다. 잠든 사람이 누가 시체를 훔쳐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이를 통해 대제사장들이 꾸민 이야기가 얼마나 믿을 만하지 못한지 보여줍니다. 거짓이 진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거짓은 잠시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진실이 이깁니다.
장면이 바뀌어 이제 다시 갈릴리에서 만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난 제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도마와 같은 경우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상처 난 못 자국에 자기 손을 넣어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반응은 예수님의 부활이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명령을 하십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보고도 의심하며 망설이는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친밀하게 나아오셔서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를 기초로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의 명령의 주동사는 ‘제자를 삼으라’이며 3개의 종속 분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교는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란 배우는 자, 학생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명하신 선교의 핵심은 복음 선포보다도 제자로서 살도록 계속 양육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중대한 한 가지 선언과 함께 고별 말씀을 마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를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임마누엘로 마칩니다. 구약 시대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제 예수님을 통해 그의 백성인 새 이스라엘,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함께 거하지 않으나,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그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며 그들에게 맡긴 대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 날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 약속은 제자 당대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계승한 후대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약속대로 오늘날 예수님을 배우며 따르고 순종하는 우리 모임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의 임마누엘의 약속을 믿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모든 족속을 제자 만드는 성서한국 세계 선교 사명에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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